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 정채봉
쫓기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꼭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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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듯 살아가는 이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어제 봉화경찰서장께서 미국 시인의 "여유"를 낭송하였는데
오늘 아침 정채봉님의 이 시를 만나 소개합니다.
시인의 일상이 남과 다르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입니다.
아주 하찮은 것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감성-
이게 시인의 자질이고 노력이어야 합니다.
돈이 되지 않고 밥은 되질 않지만
스스로의 작업이 한동안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