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호를 아시나요?
겨울이 다가왔네.
대관령에 내린 눈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네.
동해 바다는 더 추워 보이고.
이 한가로운 날 고암이 강원도 대진에 아내와 함께 가서 안부 전하기에 가재미 물횟집을 권하였다.
맛있게 먹고 갔겠지. 여기서도 먼 곳이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경호는 말도 탈도 많은 세월호나 내가 제주도 가면 타는 평화호 같은 배 이름이 아니라, 예전에 싸전거리 용식이네 집 앞에서 조선일보 지국도 하고 교복이나 작업복 염색도 하던 집 – 그집 아들 우리 친구의 이름이다.
혁수 처럼 작고 꾀바우로 생긴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는 초등학교는 우리와 같이 다니고 중학은 안동중학교에 갔다. 공부도 제법하고 가세도 넉넉했단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아버지도 연로하시고 가세도 기울어서 국가에서 학비를 지원해주는 5년제 삼척공전으로 가서 토목을 전공했단다.
그 학교는 봉현국민학교를 나와서 풍기중학을 졸업한 김갑선(작고)이란 친구가 전기과에 수석으로 합격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학교다. 지금은 폐교한 학교요, 없어진 학제다. 참고로 그의 형님(한경섭)은 작고한지 오래라는데 그 연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경호는 그 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강원도청에 들어가서 도에서 국장까지 하고 삼사 년 전에 제대를 하고 지금은 홍천에 산다.
그와 연락이 닿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수 년 전에 횡계에서 황태를 취급하고 우리 집에 약도 지으러 오는 족형(族兄) 한 분이 자기가 잘 아는 사람 하나가 풍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누군가 알아보니 바로 경호였다.
당시지제(當時之際)는 2018 동계올림픽 준비로 강원도청이
중심이 되어 불철주야 여념이 없던 때였다.
그도 토목전공이라 김진선 도지사 휘하에서 경기장 건설 등으로 횡계와 강릉을 제집드나들 듯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은 우리 약국에 들러서 박카스라도 한 병 마시고, 또 저녁 시간이면 술자리도 함께 하기도 했다.
첫 눈이 내리던 저 지난 주 주말, 나와 마누라는 홍천 남면으로 가고, 경호와 그의 친구는 동면에서 홍천을 거쳐 남면으로 와서 팔봉산 아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인제 내린천 휴게실에서 토산품을 잔뜩 사고 팔봉산 아래서 만나 것이 오후 한 시. 미리 예약해놓은 한방 토종닭으로 거나하게 마시고 나니 오후 세 시. 그날은 그렇게 보냈다. 오후에 만난 것은 오전에 교회에 가야한다는 그의 일정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어찌 알고 교회만 가는고?
천당에서 오랄지 극락에서 올랄지 모르니 한 주는 교회에 가고, 또 한 주는 절깐에 가게.’
우린 유쾌하게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가 3백명이 넘는다.
그 중 삼분지 일은 죽은 것 같고, 또 삼분지 일은 연락이 닿지 않고 그 행방이 불명이며, 나머지 삼분지 일중의 반은 살아있으되 접촉이 없고, 그 나머지가 겨우 연결이 되어서 이런 사이트에서도 만나고 교류를 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 삼십년 전에는 경기도에서 고물상을 한다는 장우경이를 본 적이 있고, 동생의 교통사고로 대구에서 유수영이를 만난 적이 있으나, 이제는 모두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스스로 성골, 진골을 자처하는 서울에 사는 몇 몇 넘을 빼고는 모두가 그립고 반가운 얼굴일진데, 나와 경호처럼 연락이 닿는 친구들은 이 지면에 들어와서 적극 알려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찬 바람이 분다.
오댕 국물에 소주 한잔 하고 들어가야겠다.
무술년을 반 달 남기고
강릉에서 豊 江
첫댓글 한경호 잘 알지
미곡시장으로 들어가면서 왼쪽 끝에서 두번짼가 첫번짼가 그 끝에는
김길준장노님 댁과
영전사 가는 골목이 있지 그 골목 들어가며
왼쪽에 두번째 집이 술집이 있었어
그집 아들 이름이 김진욱인가 있었어 늘
코에는 콧물이 흘렀지
말도 좀 어눌했고 . . .
초등학교 동창이지
그나저나 한경호가 강원도청에서 국장이라며 지금은 이미 퇴직 했겠지
옛날에는 옷 염색을 하는 염색 집이였어
암튼 동창이 잘 되 있으니 기분은 좋네
경호 형님은 신문지국을 했지 아마
철길로 영주쪽으로 내려가면
산법동이 있는데 경호 형이
거기에서 과수원 농사를 지었었어 순복이 글로는 작고 하셨다고 ~
우리, 소백산 고집의 촌 놈들, 그냥 그대로 ~~~
소백산 정기 마르지않고, 늟은이는 예전 그대로, ~~~~~~~~~~~~~~~~~~~~~~~~~~~~~~~~~~~~~~~~~~~~~~~~~
소백산 정기 그대로 . . . . ..
아무런 관련없는 지금은 이방인 입니다.만
본문 작성자님.댓글로 답하시는 님
부럽습니다
어릴적 그 어릴적 추억의 글이 세상 가장 아름답습니다
부디 오래 이곳에서 정 나누기 하십시요
저는 그저 고향소식 고향분들 근황에 덩달아 향수를 달래봅니다
다가오는 새해 더 건강?손위 어른들께 건강 운 운이 실례라 그러지요?
허나 딱히..오래 이 공간에서 머무십시요
새 봄 풍기.영주의 그 들판을 하마 상상해봅니다
그리운 내 고향 골 골마다 능선마다 내 시선이 머물던 곳
그리워라~그리워라
렛테님 !
많이 바쁘셨나봐요? 오랫만에 글 쓰셨네요
여기에는 눈도 많이오고 날씨도 굉장히 춥습니다.
제주도 날씨는 남쪽이라 이곳 보단
푸근 할 테죠?
신축하시는 저택은
제법 건물의 모형이 갖춰지고
있겠지요.
고급자재와 고급 인력 으로 제주에서 가장 잘 지은 저택으로 완공 하시어 사진한장 올려
주세요
렛테님의 글에는 온통
고향 그리는 글이 주 를
이루는 군요 ~
고향떠나 타향살이 하시는 모든 분 들은
고향이 그렇게 그립다고 들
합디다.
렛테님도 그중 한 분이
아닌가 싶네요~
늘 건강하시고
짬 나시는 되로 사진이나
댓글 올려 줘요 ~
한경호...어렴풋이 기억난다...공부도 잘 했었지. 최경호는 확실히 기억나는데...장우경이가 경기도에서 고물상을 한다고...
우경이 별명이 장너구리였지. 넉넉 너구리의 불알은 바람도 않부는데 털렁 털렁~~하는 노래를 교실에서 여럿이 부르며 놀렸었지...
그의 부친께서도 지게에 엿판을 지고 다니시며 팔았었는데 여러번 그 분의 엿을 사먹었었지.....
대구에서 유수영이를 만났었다고? 경북대병원 간호과장으로 있을때인가? 그때 나는 중부경찰서 정보형사로 근무했었지.
흔적을 남겨주신 참남배기 선배님! 아름다운 제주에 계시며 진환이와 친하신 렛테(김서정)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글 올려준 풍강에게 큰행운 있으라~~
그러니 나처럼 잊혀져가는 친구를 발굴하라고!!!!
장우경이는 장(張)씬데 노루를 뜻하는 장(獐)과 발음이 같아서 장노루라 했고(뜻도 모르고), 노루의 사투리로 놀갱이라고 했지. 장놀갱이 (장씨들에게 미안-길덕이)
노루가 꼬리가 짧다하여 장씨는 짠돌이의 대명사가 됨.. 맞는것 같기도 하고
장길덕이는 노좌(?)에서 과수농사를 짓는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집과 가까이 살았던 노종률이는 서울로 이사 간후 고향과 인연을 끊어 버리더라...
우리집 옆방에 살았던 신기춘이는 초교 졸업후 객지로 나갔는데 1973년 2월 안동 36사단 신병훈련소 매점에서 우연히 만났었지. 나보다 한기 후배로...
풍기 토성 조금 못가서 동네가 하나 있었는데 김재식이라는 동창이 살았었지. 덩치도 크고 얼굴이 조금 검어서 황소를 닮았었지. 3학년 봄소풍(?)으로 청계사에 갔는데
점심을 나와 함께 먹었었지. 나는 김밥(무지하게 굵었고 자르지도 않은)과 넙적한 찐빵3개,칠성사이다 한병을 갖고 갔는데 재식이는 꽁보리밥에 고추장 종지를 한개 박은
@나만다리/손혁수 장길덕이는 철길 넘어
순흥으로 가는길 과
삼업조합 가는길 중간에 풍기중하교와
북부초등학교 가는길 까지 못가서 올라가면서 오른쪽에
과수원이 있고 과수원 안에 기와집이
장길덕네 집이였어
블독이라는 개가 학교 오 갈때 얼마나 짖는지
그후의 그의 삶은 잘 모르고 살았는데
5~6년 전 예천 어디에
살고있고 골프를 잘 쳐서 내기 골프로 쏠쏠하게 재미를 본다는 소문을 듣고있지
홍우선이는 고대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있어 한번 봤지
@배진환. 홍우선이가 고대병원 원무과에 근무한다니 반갑네! 진환이 사랑해~~
놋주발 하나를 붉은보자기에 싸갖고 왔었지... 평생 잊지못하지... 일찍 하늘나라로 갔다고.... 토성 살았던 삐쩍 마른 홍우선이도 보고 싶다. 서울 산다고 하고...
한경호씨 형 한경섭은 나와 초.중.고.동창이며 경섭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봉화 석포의 한 제련소에 근무하다가 직업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우리와 이별한 친구이지요,
豊 江(이순복)과 참남배기(차휘석)는 나와 같은동내 서부1리에서 자란 사람들이고
나만다리/손혁수 님의 어린 날 들의 회상이 나를 과거로 이끌어 주는 군요,
모든 분들 건강하시어 오래도록 이 곳 온라인에서 라도 만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덕은 선배님!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석포제련소옆 산의 나무들도 모두 죽었던데 사람이 어찌 견디겠습니까...
운명으로 돌려야 마음 편하겠지요... 풍강 덕분에 한경호가 기억에 되살아 났고 공무원으로 성공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선배님! 강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