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손발 오그라드는 일본 연애소설 추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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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전쟁과 평화』 읽으라고 할 거야!”
취향의 테두리를 넓히는 둘만의 독서 모임
에세이스트 구달과 번역가 이지수의 독서 교환 에세이. 달라도 너무 다른 독서 취향을 지닌 두 사람이 지난 1년 동안 상대가 추천한 책으로 자기 세계의 테두리를 넓히는 동시에 서로의 세계에 스며드는 과정을 담았다. ‘책꽂이 교환 프로젝트’라고 이름 지은 이 색다른 독서 모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자신의 책장에서 고른 책 열 권을 미션이 담긴 쪽지와 함께 보내면, 상대방은 그 책을 읽고 미션을 수행한 다음 글로 남기는 것.
두 저자는 책과 삶의 교집합 안에서 노동, 여성, 비건, 환경, 퀴어 등 다양한 목소리를 건져 올리고 그것을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시킨다. ‘읽는 사이’가 만든 작은 연대이자 ‘읽는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담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작가 김혼비의 말처럼 “분명 당신도 그들을 따라 누군가와 독서 교환 일기를 쓰고 싶어 못 배길 것”이다.
👦 저자 소개
구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원서로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운 적 있는 에세이스트. 방문판매 호시절에 태어나 각종 전집류를 섭렵하며 자랐다. 결정적으로 세계문학전집에 빠지면서 다소 고전적인 독서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은 나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다. 『아무튼, 양말』 『읽는 개 좋아』 『한 달의 길이』 등을 썼다
이지수
하루키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 언젠가 그의 책을 작업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다.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무튼, 하루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공저)를 썼다.
📜 목차
프롤로그, 구달에게
구달: 택배 상자 이어달리기| 『작은 아씨들』
지수: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 남긴 위대한 글|『도스또예프스끼 평전』
구달: 덕업일치로 가는 길|『김이나의 작사법』
지수: 돈보다 나은 것|『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구달: ‘캐붕’의 순간들|『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지수: 한때 내 것이기도 했던 나날|『코쿤카!』
구달: 데이트란 무엇인가|『우리는 같은 곳에서』
지수: 당신의 인생을 영원히 바꿀 사람|『캐롤 한/영 각본집』
구달: 도시 식물의 쓸모와 슬픔|『식물의 책』
지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부드러운 거리』
구달: 편지가 구원이 될 수 있다면|『가장 사소한 구원』
지수: 의리 있는 여자, 야망 있는 여자, 쟁취하는 여자|『정년이』
구달: 개와 인간의 시간, 개와 인간의 대화|『노견일기』
지수: 고양이는 고양이이기 때문에|『고양이는 예술이다』
구달: Go Vegan!|『나의 비거니즘 만화』
지수: 맥주 두 캔으로 끝나지 않을 음주를 기다리며|『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구달: 외투 소매로 지구 구하기|『지구에서 한아뿐』
지수: 달라지고자 하는 마음이 거기 있다는 것을|『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달: 에덴식당과 No. 1 국자 손잡이|『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지수: 보이저 1호와 데이비드 보위와 칼 세이건과 함께|『혜성』
에필로그, 지수에게
리뷰, 이토록 담백한 독서 정담|김혼비
📖 책 속으로
나에게 『읽는 사이』는 책을 통해 서로의 원이 확장된다기보다는 서로의 원 안에 가만히 스며들어가는 여정으로 읽혔다. 확장은 경우에 따라선 허무할 만큼 간단하게 다시 축소될 수도 있지만, 스며듦은 한 번 일어나면 입자를 화학적으로 잘게 분해하지 않는 한 원래대로 돌려놓기 힘든, 보다 본질적인 변화다. 그래서 그들이 요란한 확장 대신 서서하고 고요한 스며듦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나 미더울 수 없었다. 그렇지, 이게 그들의 방식이지. 그들은 언제나 무심한 듯 곡진하다, 책에, 서로에게.
이 무심한 곡진함에 마음속 모든 빗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해볼 생각조차 없었던 ‘친구와 둘이서 책으로 이어 달리는’ 행위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평소였다면 손대지 않을 책을 친구의 손에 이끌려 읽는 건, 전혀 모르는 낯선 곳이지만 아는 사람이 살고 있어 묘하게 안심이 되는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일까. “서로를 웃기고 싶은 열망으로 단단히 묶여 있으며”, 때로는 서로를 화사하게 밝혀주는 영혼의 반사판이 되었다가, 때로는 서로에게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많은 문제적 순간들이 정신에 자극을 줄 수 있게 정신의 반사면이 되어주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분명 당신도 그들을 따라 누군가와 독서 교환 일기를 쓰고 싶어 못 배길 것이다. 일단 지금 나부터도 그러니까.
🖋 출판사 서평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덕’은 무해한 기쁨으로 여기고 ‘업’은 고단한 밥벌이로 치부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된 시점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려고 몇 차례나 이직을 거듭하면서도 일과 취미는 철저히 분리하려 애썼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출판사에 취직하고 보낸 첫해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꼬박 1년 동안 업무에 필요한 책을 훑는 일 말고는 독서를 전혀 하지 못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어렵사리 출판 편집 일을 업으로 삼았더니,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내가 읽고 싶은 글자를 눈에 넣을 여력이 없는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 _구달, 「덕업일치로 가는 길」
일본어에 ‘모로이脆い’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1. 원래의 형태나 상태가 무너지거나 부서지기 쉬움 2. 버티는 힘이 약함 3. 감정에 잘 휘둘림이라는 뜻이 나온다.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1, 2, 3의 의미를 모두 합해 ‘모로이’한 인간이었고, 어쩌면 그 ‘모로이’함과 정면으로 승부하기 위해 혼자 거기서 그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무르고 무른 나. 이 핑계 저 핑계로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 그런 나를 견디지 못하는 나. 그럼에도
미미하게나마 스스로에게 균열을 내보려고, 끝까지 무언가를 밀어붙여보려고, 그렇게 해서 관성의 세찬 힘으로 구르고 있는 삶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 _지수, 「한때 내 것이기도 했던 나날」
아기와 함께 지낸 건 짧은 시간이었어요.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조카를 보면서 웃을 일이 많았던 나날입니다. 하지만 불쑥불쑥 이런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왜 당연하다는 듯이 육아를 돕고 있지? 조카가 집에 머무는 동안 남동생은 휴가를 내지 않았어요.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지요. 밤이면 가족들 모두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가 잠을 설치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아기 침대는 제 방 문 앞에 있었습니다. 방은 내 일터이기도 한데 다들 그 사실은 까먹은 것만 같았어요. _구달, 「편지가 구원이 될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소설판 『유리가면』의 결말에 격분하던 그때의 초등학생에게 무전을 쳐서, 조금만(한 30년…?) 기다리면 보라색 장미의 사람이 없어도 충분히 재밌는 만화를 보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청순·가련·섹시·큐티와 같은 납작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 캐릭터로 가득한 『정년이』라는 작품에서 너는 아무나 하나를 골라잡아도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분명한 흐름으로, 거스를 수 없는 기세로 변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_지수, 「의리 있는 여자, 야망 있는 여자, 쟁취하는 여자」
인간이 왼팔을 개의 등에 붙인 자세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휴대전화를 열어 SNS에 접속했다. 지수 계정에 새 동영상이 올라왔다. 조르바와 노바가 나란히 소파 아래 누워서 뜨신 바닥에 몸을 지지고 있다. 소파가 스크래치 자국으로 너덜너덜한 게 눈에 띄어서 웃음이 났다. 빌보 송곳니에 갈기갈기 찢긴 우리 집 거실 벽지와 리빙 포인트가 같군. 삼평동 고양이 두 마리와 성북동 개 한 마리의 시간이 뜨끈하고 평온하게 흐르고 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오직 순간으로 나열될 뿐이다.” 톨스토이가 남겼다는 말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네발 친구들과 사람 친구들의 속마음이 각자의 머리 옆에 말풍선으로 따라붙는 만화 같은 꿈을 꾸고 싶었다. _구달, 「개와 인간의 시간, 개와 인간의 대화」
양심의 가책과 간편함의 유혹 사이에서 시달리며 그야말로 내 마음 편하자고 세운 규칙은 다음과 같다. 혼자 먹을 때는 가능한 한 채식을 할 것. 가죽 제품은 안 사거나 꼭 필요하면 되도록 중고로 구입할 것. 화장품은 비건 제품을 쓰고 달걀, 우유, 육류는 동물복지 농장에서 난 것을 살 것. 고기가 나오는 사진은 SNS에 올리지 말 것. 이것이 본격적인 비건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게으른 노력인 건 안다. 그러나 게으른 노력이라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 느슨하게나마 계속해보기로 한다. _지수, 「고양이는 예술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정말로 우주선을 보게 될까 봐 약간 걱정하면서) 나를 바로 지금 이 풍경 앞에 놓이도록 이끈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아와 경민, 정세랑 소설가, 미션을 준 지수, 소각될 운명에 놓인 자사 재고를 활용해 업사이클링 의류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린 패션회사 직원, 낡은 옷을 능숙하게 뜯고 깁고 이어 붙여 새 숨을 불어넣는 재봉 장인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기지를 발휘해 자그마한 초록빛 원을 그리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당당히 배역 하나를 꿰차려면 나는 또 무얼 시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일단은 저탄소 멋쟁이로 거듭나고 싶다. _구달, 「외투 소매로 지구 구하기」
그러나 지금의 나는 분명 이런 생각도 한다. 가족들이 가부장에게 응당 순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한 발자국만 잘못 나아가도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령 물리적인 폭력에 이르지 않았다 해도, 그런 사고방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 구성원에게 정신적 내상을 지속적으로 입힌다고. 그러므로 권위적인 아버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좋았던 옛 시절의 그리운 아버지상’으로 미화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내가 아무리 나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의심한 적 없다 해도, 나는 아빠의 방식으로 유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방식의 사랑을 대물림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유하에게 내 사랑을 증명하고 싶다. _지수, 「달라지고자 하는 마음이 거기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