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안목은
환경의 상호 관계성에서 오는
결실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환경에 관한
이해 부족에서 생기지요.
여기서 환경이란
자연 환경은 물론
사회,신체,심리 그리고
인연의 환경까지 포함합니다.
어리석음은
지능이 아닌, 안목의 문제이지요.
반대 개념인 현명함도
지능이 아닌
안목이 관건입니다.
안목은
데이터의 방대함이나 논리성의
정밀함이 아닌
관계성에 관한 깊은 이해에서
발생합니다.
안목이 시행착오와 연륜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지요.
관계성을 높이기 위해선
개방과 관심과
새로 만들어질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관계를 저해하는 실질적 장애가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지요.
현대엔
다수가 특히 젊은 세대에도
이런 두려움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요.
대면보다 통화를
통화보다 문자를 더 편안해 합니다.
여러 요소가
이 두려움의 원인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점점 더 확산된다는
사실입니다.
관계성의 저하는
갇힘이지요.
갇힘에서 발생하는 특성 중 하나는
그 영역 안에서
높은 정밀함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자폐증에서 파생하는
부분적 천재성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보이는
날카롭고 예민한 감정
그리고
학업이나 연구를 위한 집중도
사실은
일종의 갇힘이지요.
좁은 영역 안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정밀함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닌 방향성과 색깔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지요.
갇힘 속에선
자신의 계산이나 논리가 강해집니다.
가끔은
우연히 건설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편견과 독선에 빠지지요.
지난 100여년간
2차 산업혁명 시기엔
대량 생산과 분야별 전문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일종의 갇힘인
특화된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정밀함이
산업과 문명을 이끄는 힘이
되었지요.
그러나
특화된 정밀함을 월등히 잘하는
AI의 등장은
인간인 우리의 주요한 역량 중
하나인
안목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AI에게도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하는 안목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인간의 안목은
단순히 논리성에 기반한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통찰입니다.
문명적으로 볼 때
21C는 혁명의 시기입니다.
파괴와 변화와 창조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할 키워드는
'의미'와 '관계성'과 '영성' 이지요.
이 3가지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관계성입니다.
관계성에 관한 해석이 의미이며
의미의 확장과
성숙이 영성이기 때문이지요.
관계성은
다양한 환경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관계는 자신을 넘어
타자 곧 환경과의 교류이지요.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사실
어느 종교나 철학 사조보다
우선합니다.
붓다의 무아無我와
노자의 무위無爲
장자의 유연성(자유, 소통)
예수의 사랑
이 모두는
결국 관찰자와 환경과의 관계성을
숙고하여 도출한
결실들이지요.
관찰 의식도 방향만 바꾸면
역시
환경의 일부입니다.
현상에는
열고, 이어주고, 뻗어가는 힘의
방향이 있고
단절하고, 닫고, 웅크리는 힘이
있지요.
윤리의 가치 기준으로
선과 악이라 할 수 있으나
가치 기준을 내려놓으면
양陽과 음陰이 되기도 합니다.
음양엔
가치의 우열이 없지요.
환경에 대한 이해는
철학과 종교와 영성을 위한
출발선입니다.
공간 나누는 빛바랜 창틀
작은 눈길 호기심 일어도
길게 드리운 불신의 문양
햇살마저 튕겨져 나오네.
..260728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