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했다."
"아니다."
"중단된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대(對)우크라 군사 정보 제공 여부를 놓고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였다. 러-우크라 간에 에너지 휴전(정확하게는 정유시설 공격 중단이라는 설이 유력/편집자)이 합의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11일 발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연일 우크라이나 발전 시설 등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을 계속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미-우크라 정상간 갈등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지난해(2025년) 2월 미 백악관에서 벌어진 두 정상 간의 '말다툼'이 재연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두 정상은 기자들 앞에서 휴전 여부를 놓고 말다툼을 벌인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쫓기듯 백악관을 떠났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정보 제공을 끊었다. 그 결과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하룻만에 손을 드는 사실상 항복으로 끝났다.
2025년 2월 백악관에서 설전을 벌이는 젤렌스키-트럼프 대통령/영상 캡처
이번 갈등은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치솟는 경유 가격을 잡기 위해 우크라이나 측에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습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면서 시작됐다. 무려 6차례나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측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뿔이 난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러시아로부터 직접 경유를 매입하는 등 대(對)러 에너지 제재 조치를 일부 해제했다. 그리고 때마침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우크라 고위급 협상에서 정보 제공 중단 가능성을 흘렸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태도는 요지불동(搖之不動).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10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로 지칭하면서 "(평화) 협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최고지도자를 바꿔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해 2월 백악관 미-우크라 정상간 갈등이 즉시 휴전 여부로 시작됐다면, 이번에는 정유 시설 공습 중단 요청이었던 게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남은 수순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실질적인 압박 조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습에 대한 미국의 위성 정보가 갑자기 전달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군의 통신망인 '스타링크'가 부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스타링크 단말기를 설치하는 우크라군/사진출처:우크라 총참모부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4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군사) 정보및 스타링크 제한'(Ограничение разведданых и Starlink) 코너에서 "키이우는 이날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며 "이번 공격에서 핵심 논의 사항은 공습 그 차제가 아니라 미국의 정보 제공 중단 문제"라고 짚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탄도 미사일을 포함해 약 40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우크라이나에 알리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이에 따라 두 번 연속으로 탄도 미사일 경보를 발령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공군도 이에 동의하면서 "39발의 미사일 중 단 4발의 요격에 그쳤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 제공 중단 사실을 일단 '부인'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지난 9일 마이애미 미-우크라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 금지 요구와 함께 그러한(정보 중단) 위협을 가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어 14일에는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군 장군들도 군 채널을 통해 그같은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워싱턴이 현재 (공식적으로) 키이우와 정보 교환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 백악관은 정보 지원 중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 제공이 완전 중단된 것은 아니더라도, 특정 목적이나 대상에 대한 중단을 시사하는 정황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링크의 접속 제한 조치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들은 미국이 사전 통보 없이 하룻밤 사이에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스타링크 접속을 차단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드론과 같은 비행체에 설치된 스타링크의 단말기가 특정 속도(시속 60~100㎞)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췄다는 것이다.
베스크레스트노프 우크라 대통령 고문/사진출처:페이스북
우크라이나 대통령 기술고문인 세르게이(세르히) 베스크레스트노프는 14일 텔레그램을 통해 "어젯밤 미국의 스페이스X가 이동 중인 스타링크 단말기의 작동 속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의 중요한 작전이 차질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언론들은 러시아 후방 지역에 대한 우크라군의 중거리 공습이 불가능해졌다고 부연 설명했다.
미-우크라 측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는 상태에서, 스타링크 접속 어려움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다.
우선, 불가리아에 설치된 스타링크 위성 시스템에 대한 화재 사건. 불가리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에도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링크 안테나 17개 중 11개가 불에 탔다"고 보도했다.
다른 하나는 백악관(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의 의도설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게 필수적인 스타링크 서비스들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부문에서 매우 고통스럽도록 제한 조치를 걸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을 길들이는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이봐, 머스크, '빅 맨'(big man·대단한 양반). 당신 제품으로 또 정치 놀음을 하고 있나?"고 비꼬았다.
차단 시점도 흥미롭다.
우크라이나가 겉으로는 미국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청을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마이애미 양국 고위급 회담(지난 9일)이후 러시아 정유 시설에 대한 공격 (발표)은 없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모스크바 인근 정유시설이 불타는 모습/사진출처:영상 캡처
하지만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14일 우크라이나군이 사라토프와 랴잔 지역의 정유 시설을 공격했다고 공격 재개설을 들고 나왔다. 러시아 국방부도 "전날 밤(~이날 새벽) 사라토프와 랴잔 지역을 포함한 러시아 영토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902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만약 러시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스타링크가 끊어진 날이 러시아 정유 시설에 대해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재개한 바로 그날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동안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 금지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미국의 이같은 접근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공격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갑자기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찰스 3세 국왕을 만난 것도, 지난해 2월 '백악관 다툼' 이후 행보를 연상시킨다. 당시 그는 워싱턴에서 돌아온 뒤 바로(3월 2일)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또 주말을 빌어 버넘 영국 총리 등 유럽 주요 정상들에게 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백악관 충돌 직후인 지난해 3월 초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찰스 3세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위)과 14일 다시 만난 두 사람/사진출처: president.gov.ua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를 대신할 만한 위성 통신망을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29년 이전에는 스타링크를 대체할 통신망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마스 레이니에르 EU 집행위 고위 대표가 14일 밝혔다. 그는 "EU는 회원국의 위성 정보를 통합하는 '유럽 정부 위성 통신망'(GovSatCom)에 우크라이나를 연결할 계획이지만, IRIS² 위성 시스템을 통한 기본 통신 서비스와 군사 데이터 전송은 2029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GovSatCom의 상업적 이용도 유럽의 위성 인프라 구축및 통신 보안 기능 확대를 이유로, 내년(2027년) 초로 검토 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EU의 IRIS² 시스템은 2033년까지 완전 가동될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최대 300개의 군사 및 상업용 위성 배치가 포함된다.
스타링크를 대체할 위성통신망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현 상황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매우 심각하며, 대미 화해가 시급함을 보여준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런던에서 "(미국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새 평화안에 대해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가 쓴 워싱턴 포스트 칼럼/캡처
앞으로 더욱 주목을 끌만한 사안은 미 워싱턴 포스트(WP)의 칼럼 형태로 공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새 우크라 평화안(전쟁 종식 방안)이다. 마이애미 미-우크라 고위급 회담에서 제시된 이 안을 간략하게 줄이면, 현 전선을 기준으로 양국이 휴전하되, 우크라이나에게는 △전후 재건 투자와 △나토 규약 5조에 버금가는 전후 안보 보장을, 러시아에게는 △대(對)러 제재 조치 해제를 통한 러-우크라-유럽 간 경제 협력 및 새 안보 질서 구축을 약속했다.
미국이 지난해(2025년) 8월 앵커리지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에게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평화 계획과는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군의 도네츠크주(州) 철수 요구를 철회했다. 우크라-유럽이 주장해온 휴전 조건을 받아들인 것. 대신 러시아의 반발을 막기 위해 우크라 점령 지역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통제권을 공식 인정하기로 했다. 현 전선을 기준으로 러-우크라 간에 새 국경선이 획정되면, 상대(특히 우크라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요구를 완전히 봉쇄한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가 장악한 돈바스(도네츠크주·州와 루간스크주)와 크림반도 등에 대한 어떤 형태의 반환, 혹은 탈환 시도를 포기하라는 뜻이다. 동시에 국제사회도 러시아의 점령 영토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유엔안보리 결의안 채택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새 평화안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WP는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특사가 이 안을 모스크바에 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당초 마이애미 미-우크라 고위급 회담이 끝나면, 위트코프 특사가 모스크바로 떠날 계획이었으나 연기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과 새 평화안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이 정보 제공 중단및 스타링크 접속 부분 차단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새 평화안을 유럽이 수락할지 여부도 관건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갑작스런 런던 방문도, 전쟁 발발 이후 러-우크라 간 첫 평화안(2022년 3월 이스탄불 합의)의 파기를 사실상 종용한(?) 영국과의 사전 협의를 위한 행보로 추측 가능하다. 영국의 지지(새 평화안에 대한 거부)를 얻으면, 유럽 동맹국(EU)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순방 외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영국이 새 평화안을 수락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지는 급격히 좁아진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동맹국에 대한 기대도 접을 수밖에 없다.
새 평화안 논의의 첫걸음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에 동의할지 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위트코프 특사가 모스크바 방문의 연기 명분으로 러-우크라 간 정유시설 휴전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 측이 일단 동의해야 모스크바로 가 휴전 협의를 계속하겠다는 것인데, 미국 측으로서는 모스크바에서 새 평화안을 제시하려면 먼저 키이우와 유럽을 설득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러시아 측은 그동안 미국이 우크라-유럽 설득에 실패하는 바람에 지난해 8월의 '앵커리지 합의'가 유야무야됐다는 불만을 여러 차례 드러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게는 당연히 '우크라-유럽에 대한 설득을 먼저 보장해라, 그러면 우리도 검토(사실상 수락)할게'라고 주장할 만한 사태 전개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최대 위협은 가뜩이나 취약한 방공망에 미국의 정보 제공 중단까지 계속되는 시나리오다. 그가 키이우의 동계 방어 전략을 놓고 클리치코 시장과 설전을 벌인 것도 이에 대한 대비 성격이 짙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키예프시/젤렌스키 대통령 텔레그램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키이우의 겨울 나기 준비가 최전선 도시들에게도 못 미친다고 직격했고, 이튿날(14일) 클리치코 시장은 최고라다(의회)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잇단 공습으로 수도와 인근 지역의 주요 에너지 시설 피해가 상당히 심각하다"며 "우크라이나 수도의 방공망은 어디에 있느냐? 전력회사인 우크르에네르고 시설은 어떻게 보호하고 있느냐"고 중앙 정부에 따졌다. 그러면서 권력형(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들) 부패를 겨냥해 "수도 방어를 위해 배정된 수십억 달러는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반격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난을 순전히 "쇼"라고 일축하면서 "중앙 정부가 자금을 차단해 수도권 방어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못했다"고도 했다.
"고통스럽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그만큼 안팎으로 그를 조여오는 압박감은 전쟁 발발후 최고조에 오른 것 같다. 그의 선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