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등대 외·내항을 구분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 인천 팔미도 등대
인기멤버
hanjy9713
2024.05.13. 16:17조회 3
댓글 0URL 복사
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등대
외·내항을 구분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 인천 팔미도 등대
요약 소재지는 인천시 중구 무의동 374번지,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8km 지점에 있는 바위섬.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고 일본과 서구 열강 제국들이 인천항을 전진기지로 삼으면서 이용.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고 해안선이 복잡해 외·내항을 구분하기 위해 1903년에 등대를 세움.
인천상륙작전 수행 시, 등대수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도 위치를 알려 상륙에 도움을 준 등대.
팔미도 등대
출처: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물류와 문류기반의 항구문화), 한국콘텐츠진흥원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불을 밝힌 등대는 팔미도에 있는 등대다. 소재지는 인천시 중구 무의동 374번지.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8km 지점에 있는 바위섬이다. 팔미도는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1백여 개의 무인도 가운데 인천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등대는 이곳 해발 71m 정상에 하얀 몸매로 서 있다.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03년. 그 빌미는 인천항이 개항된 1883년 일본과 서구 열강 제국들이 인천항을 원활하게 이용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면서부터 비롯되었다. 등대가 들어서기 전엔 물론 갈매기들만이 지키고 있던 작은 섬에 불과했다.
당시 인천항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할 뿐만 아니라, 해안선이 복잡해 입출항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인들은 프랑스 표지 회사의 기술을 이용하여 착공 1년 1개월 만에 등대를 설치한 것이다. 일인들은 이 등대를 러일전쟁 수행에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천항을 찾는 외항선이나 대형 선박들은 팔미도 밖 해상에 정박해 있다가 도선사에 의해 입항한다. 그때 이 등대는 내항과 외항을 구분하는 분기점 역할을 해준다. 섬의 면적은 0.17km2. 파도 속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세워져 있는 등대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등대의 높이는 7.9m다. 일인들이 세웠을 당시에는 90촉광짜리 석유등으로 등대를 밝혔다고 한다.
90여 년 전인 그때만 해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보이는 불빛이란 도깨비불밖에 없었다. 어부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그것도 섬 꼭대기에 밤새 켜져 있는 불빛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한다.
이는 일인들이 등대를 세우면서 우리의 어부들을 도외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등대를 세운 애초 목적이 어업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선박들의 안전운행만을 위해 이 등대를 세웠던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용 가치가 있는 인천항으로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등대는 동서남북을 가리켜주는 역할을 해주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던 팔미도 등대가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광복 후 교통부에서 인수하고 9년이 되었을 때였다. 이때 처음으로 렌즈의 내경이 300mm, 초점거리 150mm인 백열등이 자가발전 시설로 설치된 것이다. 이때의 밝기는 9천 촉광이었다. 또 처음으로 안개 신호기를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된 등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후 1963년에는 이 등대에 무선표시국을 설치했고, 1967년에는 무선전화를 들여오는가 하면, 등명기를 백열등에서 수은등으로 교체했다. 또한 부대시설을 새롭게 꾸몄는데, 이는 60여 년 동안 해풍을 견뎌오면서 낡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의 등명기 교체와 부대시설 개조는 팔미도 등대를 현대화시키는 첫 단계였다.
이어서 1981년에는 등명기를 다시 할로겐 램프로 교체했으며, 1991년에는 태양광 발전장치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단순히 방향을 가리켜주기 위해 설치되었던 팔미도 등대는 지금 항로 표시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시설물이나 기기를 관리하는 기능까지 맡고 있다. 또한 기상 관측과 연안지역의 해양 관측까지 해 여객선은 물론 화물선, 어선 등의 입출항에 없어서는 안되는 등대가 된 것이다.
특히 항로 표시는 등명기로만 했던 과거에 비하면 큰 변화가 있었다. 할로겐 램프는 6등 소형 회전식으로 5만 촉광짜리이며, 30초 마다 소리를 내보낼 수 있는 6백 와트짜리 전기혼이 설치되어 있다. 또 출력 150와트짜리 무선표시기가 있어 전파로도 항로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석유등으로 시작한 팔미도 등대는 지금은 광파·음파·전파를 이용한 삼파 기능 등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등대는 인천상륙작전 수행에도 한몫을 담당했다. 등대수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석유 램프를 켜놓은 채 등명기를 손으로 돌려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상륙에 도움을 준 것이다.
현재 이 등대에는 세 명의 등대지기가 있다. 팔미도 등대 이후 총 6천 9백 9마일에 달하는 우리 나라 해안선 주변엔 3백 3기의 등대가 세워졌다.
관련이미지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등대 - 외·내항을 구분하는 분기점 역할을 한 인천 팔미도 등대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