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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를 위한 작은 파티였다. 장소는 소연회장. 인원이라곤 왕, 왕비, 그리고 브리뿐이었지만. 달
콤한 치즈케이크와 그 외 다디단 다과와 과일들과 함께 체리를 띄운 칵테일이 함께한 파티는 소
소한 것이 즐거웠다. 특별히, 브리를 위해 루엥에서 제일간다는 희극배우들을 불러온 왕은 우스
꽝스럽게 넘어지고 기괴한 자세를 취하는 배우들을 보고 깔깔거리는 브리를 보고 흡족한 듯 미
소 짓는다.
“어떠냐?”
“당연히 즐겁죠. 아, 결혼한 뒤로 이런 연극..푸히히 자주 보지 못했어요. 워낙 후안이 바쁘니까
어딜 나갈 수가 있나.”
말을 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의 모습에 화사하게 웃는 얼굴의 브리와 연분홍의 드레스가
잘 어울렸다. 기품을 떠느라 크게 웃지 못하는 레이나 왕비와는 달리 깔깔거리며 배꼽을 잡으며
웃는 브리는 저것 좀 보라는 듯 배우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윽고 눈물이 날만큼 웃어댄다.
오랜만에 웃는 그 얼굴에 조금은 마음이 편한 왕비지만 어제 후안과 만나고 나서 엉엉 울더라
는 말을 듣고는 여전히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그녀다. 배우들을 보며 깔깔거리는 두 부녀를 등지
고 케이크를 한입 썰어 입에 넣은 레이나 왕비가 문득 누구를 발견한다. 연회장의 입구에 들어
오기를 망설이는 한 명의 시녀. 분명, 공주의 시녀였다. 한참 그 시녀는 지켜보던 왕비는 곧 시
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용기를 낸 시녀가 당당하
게 소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의 시녀가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전히 웃는 얼굴의 브리는 빨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무슨 일이야? 후후, 리넷도 볼래? 아바마마 리넷도 같이 봐도 되죠?”
루벳국왕을 바라보며 묻는 브리. 안될게 없다는 듯 온화 로이 웃어 보이는 루벳국왕. 브리는 자
신의 곁에 서라는 듯 서서히 다가오는 시녀에게 연신 손짓하지만 시녀의 표정이 좋지 않다. 당
황스러워 하는 게 분명하다. 조금은 오버였나? 어쩌면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브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시녀가 조금 더 빨랐다.
“손님이 와계십니다.”
손님? 브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스친 생각에 즐겁게 보던 희극 배우들의 연
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국왕은 가지 말라는 듯 브리를 바라보지만 레이나 왕비는 시녀와
함께 가라 턱짓한다.
“누군데?”
브리의 물음에 시녀가 답한다.
◈
“미리 연통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탠데..”
급하게 방으로 돌아온 브리는 서둘러 응접실의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
범한 얼굴로 스푼으로 차를 뒤섞은 헤렌부인은 싱긋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왔단 소리에 며느리
는 급하게 뛰었는지 볼이 붉게 상기됐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좋다. 성에 와서 브리를 만나고
나서야 헤렌부인은 저택의 브리가 얼마나 헬슥하고 메말랐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좋아 보이는 구나. 그렇게 저택이 싫었니?”
대답대신 브리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무언가 아쉬운 듯 그녀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웃는 얼굴로 헤렌부인을 대한다. 그 한숨을 놓치지 않는 헤렌부인은 아무것도 모른 척 운을
띄웠다.
“어제, 후안이 다녀갔다며?”
헤렌부인의 물음에 브리가 멈칫했다. 그러나 곧 웃어 보인 브리는 답했다.
“예, 오랜만에 만났어요.”
“어땠니?”
“..어떻긴요. 여전해요. 제멋대로에, 자기 할 말만하고..”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쿡 웃어 보인 헤렌부인은 한입 차를 마셨다. 그런 그녀를 주시하는 브리. 여전히 나이를 초월해
아름답긴 한데, 어딘가 달라 보인다. 부드러워졌달 까? 예전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금방 손이
라도 날아올 것처럼 딱딱하고 깐깐한 분위기의 그녀였는데 웃음부터가 틀렸다.
한참 차를 머금던 헤렌부인이 곧 말을 꺼냈다.
“정이란 건 참 신기한 거야. 후안과 나는 네가 모르는 사연이 많아. 고무처럼 질기고 질긴 악연
이지.. 그런데 그 악연 속에서도 미운 정이란 게 있어서. 어느새 그 녀석이 화가 나면 미간부터
찌푼다는 거랑 턱밑이 미세하게 떨리는걸 알 수 있더구 나. 난 관심이 하나도 없는데 말야.
그냥 곁에서 오래 지냈다는 그 하나만으로 남들이 모르는 녀석의 모습을 알고 있었어.”
브리는 우두커니 앉아 그녀의 말을 듣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허공을 응시하던 헤렌부인은
다음 말을 잇기 힘겨운 듯 머뭇머뭇 거리다 끝내 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미워했던 건 그 아이의 친모 때문이었어.”
고백이라도 하는 듯 헤렌부인이 말했다.
“내가 디에고의 부인이 됐는데, 녀석의 어머니가 됐는데.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죽은 사람이..”
어딘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말이 끊어졌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브리는 헤렌부인
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그녀의 눈에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이 고인 것
도. 브리가 그렁그렁 고인 눈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헤렌부인은 미리 준비해온 손수건으
로 재빨리 눈 주위를 닦았다.
그런 그녀에게서 브리가 비친다. 이해하려고해도, 비집고 들어가려도 해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브리를 그토록 괴롭히던 후안과 아네트의 사이. 그녀가 가엾다.
“어제.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오더구나. 그런 일은 10년.. 아니지, 11년 만에 처음이었어. 갑작
스럽게 나타난 것도 당황스러운데 갑자기 쏟아내듯이 말하는 거야.”
“..뭐라고 말 했나요?”
헤렌부인은 작게 심호흡을 했다. 브리를 정확히 응시한 그녀는 말했다.
“죄송하다고. 내게, 죄송하다고 말했어. 내 아들을.. 내 아들을 죽여서 미안하데. 어머니라고 제 대로 못해줘서 미안하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벨스를 떠올렸다. 붉은 머리에 녹색 눈. 그다지 잘생긴 얼굴은 아
니었지만 약간 재수 없는 말투를 제외하면 깔끔하고 호감 있는 인상의 말쑥한 사내였다. 그가,
이 앞에 있는 헤렌부인의 아들이고 죽었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브리는 자신도 모르게 헤
렌부인의 손을 쥐었다.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무척이나 따뜻한 손이었다.
“난 후안을 죽이려고 했어.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길가에 버려두고도 왔지. 용케
살아나는 아이를 보면 증오가 더 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충격적인 소리에 브리는 자신도 모르게 헤렌부인의 손에서 손을 때고 입을 가렸다. 그를, 죽이
려고 하다니. 자신을 미워해 브리의 아들을 죽인 아네트와 헤렌이 겹쳤다.
“그 녀석도 잘 알고 있어. 내가 자신을 여러 번 죽이려고 했다는 걸. 그랬기에 망설임 없이 내 아
들의 목을 베었지. 그래, 그런 아이다. 후안은 그런 녀석이야. 냉정하고 갚을 건 칼같이 갚아내
고 받는 대로 주는 그런 사람이지.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내게 먼저 죄송하다고 했다.”
말을 마친 헤렌부인은 싱긋 웃었다. 웃음과 함께 주룩 눈물이 흘렀다.
“이유가 뭘 것 같니?”
벙찐 얼굴의 브리가 헤렌부인을 바라봤다. 스르르 고개를 떨군 브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좋다.
「따뜻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와.」
아랫입술을 꾹 깨문 브리가 헤렌부인을 바라봤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은
헤렌부인은 말했다.
“아침에 간다는 걸, 내가 점심으로 미뤄 놨다. 1시에 출발한다니 지금 달려가면 만날 수 있을 거
야.”
헤렌부인이 타고 온 마차에 브리가 급하게 올랐다. 어서 출발하라며 마부를 들볶는 브리는 갑
작스러운 브리가 떠난다는 소식에 서둘러 인사를 나온 레이나 왕비도 국왕도 안중에 없는지 그
저 짧은 눈인사를 하고 서둘러 떠나 버리려 한다. 혹시, 기분이 풀어지지 않을까. 브리가 좋아하
는 분홍장미로 정원을 가득 채운 왕비는 정원에 눈길하나 주지 않고 너무 서둘러 떠나는 브리가
약간은 아쉬운 듯 보인다.
우두커니 시녀들과 함께 떠나가는 동그란 갈색의 마차를 보며 서있는 왕과 왕비, 그리고 집정
관들과 수많은 시녀들.
“내 이기심에 보낸 거지만,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아?”
루벳국왕이 웃으라고 한 소린지 아니면 진심인지 레이나 왕비에게 말한다. 이제 질렸다는 듯 고
개를 절래 젓는 레이나 왕비. 어느덧 잔디를 가로 질러 성 문으로 향하는 마차를 보며 씁쓸한,
그러나 전혀 슬프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 왜 어제 후안과 같이 돌아가지 않았을 까요? 멍청하게 울기만 했어요.”
애써 아그네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녀들이 곱게 치장해 주었건만, 급하게 굴고 또 우는 바람에
그녀의 화장이 망가지고, 높이 올려 장식한 머리도 부산해졌다.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 없
는 헤렌부인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달각달각 하는 말발굽소리. 어느덧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
리는 것이 왕성을 빠져나온 듯 했다.
“가 버렸음 어떡해요. 나 마지막으로 보여준 게우는 모습인데. 우는 건 너무 추한데. 아아, 한 달
이면 돌아올까요?”
“..한 달이라니. 데스칸테 지부는 세계에 널렸어. 다 돌아보고 오면 3년은 족히 걸릴걸? 게다가
배를 타고 갈 경우도 있으니까...5년?”
“오..오년이요?!”
“그래, 디에고도 한번 외국을 나갔다 하면 그 정도 있다 돌아왔지.”
헤렌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러나 브리는 청천벽력 같이 들려오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쉰다. 삼 년이라니. 오 년이라니.
“더 빨리 몰 거라! 만약, 내가 후안을 만나지 못하면 너희들은 경을 치게 될 거야!!”
급한 마음에 마부 쪽으로 쿵쿵 두드리고 괜한 말을 해본다. 어떡할지 답답하고 답답해서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마차의 속력이 조금 빨라졌다. 헤렌부인이 이러
다 전복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이 될 정도로 빨라진 마차는 평소보다 10분이나 빨리 더 저택에
도착했다. 익숙한 썰렁한 데스칸테가의 저택이 보이자 하인이 열기도 전이 부리나케 마차의 문
을 열어 내려왔다. 이토록 드레스가 싫은 적이 또 있을 까! 브리가 왔다는 소리에 뛰쳐나온 하녀
들이 브리를 붙잡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모두 무시한 브리는 드레스자락을 붙잡고
서두르며 뛰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이 풍경에도 떠오르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다. 쿵쾅거리며 복도를 뛴 브리. 지나치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던 아기를 잃던 장
소인 응접실도, 산방이 있는 복도도 아무렇지도 않게 스친 그녀는 후안과 같이 쓰는, 공작 부부
의 방을 활짝 열었다.
퀭하고 쓸쓸한 바람이 분다. 그녀가 떠나고 정말 잠만 자고 간 것인지 방은 무척이나 썰렁했다.
“..후안?”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썰렁한 그 방에서 후안의 이름을 부르는 브리. 그러나 대답이 없다.
“마차로 가시려고 했는데, 계획이 수정되어 방금 전에 항구로 떠나셨습니다.”
익숙한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브리. 제제부인을 발견하곤 그만 목을 놓고 울어버
린다. 그 울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제부인과 브리를 따라 서둘러 들어온 헤렌부인은 브리에
게로 향해 그녀의 작은 어깨를 토닥인다.
그러나 돌연 눈물을 거둔 브리가 벌떡 일어선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전하.”
반 루앙의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한참 무엇을 생각하던 후안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차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3월인데 날씨가 어떻게 된 것인지 여름처럼 햇살이 따가웠다. 모자를 쓰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무새를 다듬은 후안은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차에서 내렸다.
“지금 출발하시면 오후가 되기 전에 로아국의 수도로 도착하실 겁니다.”
반 루앙의 말에 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에서 몇 보 떨어진 후안은 바다위에 떠있는 커다
란 데스칸테 상회의 배를 보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짓는다.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되자 더욱 흥분이 된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지부장들은 모두 어떤 사람일까? 과
연, 나를 아버지에게 했듯, 존경으로 대해줄까?
“후안!!!”
복잡한 생각을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홱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그저 항구의 허
름한 상가들과 데스칸테상회의 배 안으로 열심히 식량과 물 그리고 딜렌들을 옮기는 선원들, 후
안과 함께 배를 타고 지부를 돌 반 루앙과 그의 아들뿐이다. 더 뒤로 보자면 항구로 내려오기 전
에 있는 노란색 대리석 길과 그 위에서 항구로 돌진하는 마차 하나다.
성에 있을 여자가 이곳에 있을 리 없다. 다시 배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후안 그러다 곧 다시
마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뜨악하는 표정을 짓는다.
“브리?”
분명 마차의 창가에서 고개를 쏙 빼놓고 행여 모자가 날아갈까 모자를 손으로 쥐고 열심히 후안
의 이름을 불러대는건 브리다.
“마..마님께서 여긴.”
반 루앙도 꽤 당황했는지 그녀를 한참 응시하다 퍼뜩 정신을 차려, 역시 브리를 응시하는 선원
들의 시선을 자신들이 열심히 움직여 옮겨야할 짐으로 돌려놓았다. 저렇게 엉뚱한 공작부인, 공
주가 세상 어딨냐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선원들. 그런 말조차 들어오지 않는 후안은 부서질
듯 달려오는 저 마차가 정말 부서지는 게 아닌지 약간은 걱정되는 얼굴로 바라본다.
허나 용케도 멀쩡히 노란색 대리석 길을 내려온 마차는 분주히 움직이는 선원들을 지나 흙먼지
를 내며 후안의 앞에 섰다.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예의는 차리는 반 루앙이 문을 열려 했으나 거
칠게 먼저 문을 열어버린 브리 덕분에 그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반 루앙을 돌볼 여유도
없는지 서둘러 마차에서 내린 브리는 후안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깔끔한 수트차림의 그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브리를 바라본다. 햇살이 비치는 것인지, 아니
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인지 반짝거리는 그의 모습에 그만 쿡 웃음이 나온 브리. 그러다 무엇이
복받치는지 또 눈물을 보인다. 당황해하는 후안이 입을 연다.
“너 여기 어떻게..”
와락. 안겨버렸다. 후안이 말도 마치기 전에 말이다. 웃음과 함께 눈물이 같이 나오는 그녀는 어
지간히 눈물이 많은 울보다.
“그냥, 보고 싶어서...”
후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너무나 그리워했었다는 것을 깨닫곤 그녀는 또 어깨를 들썩였다.
당황한 후안이 반 루앙을 바라본다. 어제 울던 것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몇 년은 못 보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이렇게 품에 안겨버리다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럽다. 반 루앙은 흙이 묻은 바지를 털며 싱긋 웃는다.
달려와 안겨버린 브리의 풍성한 금발 머리에선 맡기 좋은 향긋한 향이 났다. 언제부턴가 코에
익숙한 그녀의 향이었다. 흐느끼는 작은 어깨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조심스레 팔을
움직인 후안은 잠시 그녀의 어깨에서 머뭇거리다 곧 넓은 팔로 브리를 끌어안았다.
후안이 안아준다. 차가운 그의 가슴은 너무나도 따뜻해 들어갈 것 같았던 눈물을 오히려 재촉
한다. 이 가슴, 또 언제 안길 수 있을까? 얼마나 그리울까? 얼마나 보고 싶을까? 눈물이 그렁그
렁한 눈으로 후안을 올려다본다. 당황과 걱정이 섞인 후안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울지 좀 말라니까.”
그는 어색하게 브리의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꼭 이런 일은 처음해보는 사람처럼 돌보는 것이
처음이고, 어색한 사람처럼. 그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올려보게 한 다음
약간 속삭이듯 말한다.
“3년. 그 안에 돌아올게.”
그리곤 싱긋 웃었다. 그가 웃으니까 웃어야 할 탠데 웃음이란 것도 뜻대로 나오지 않는 것인지.
오전 그녀를 웃겼던 희극 배우들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전하. 이제 오르셔야 합니다.”
반 루앙이 말했다. 헤어짐이 아쉬운 브리가 품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지만 후안은 그녀를 품에
서 풀어주었다. 모자를 다시 고치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는 브리를 바라본 뒤 다시 싱긋 웃은
후 반 루앙과 함께 배와 이어진 발판으로 향한다. 철썩 거리는 파도 소리가 차가웠다. 후안이 등
을 보이고 그 위로 올랐다. 위태로워 보이는 발판위에 오른 후안이 다시 뒤를 돌아 브리를 바라
본다.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너무 많이 묻어 있는 걸까? “웃으면서 보내줘.” 후안이 말했다. 그
럴 것이라고 생각한 브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연신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다. 바다 파도
에도 출렁이지 않는 커다란 배. 데스칸테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커다란 돛. 후안이 저 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난다. 11개국에 퍼져있는 데스칸테 지부를 모두 돌고 돌아오면 두 사람은 이미 더
큰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브리도 후안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공주님을 괴롭게, 힘들게, 피폐하게 만들었던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아그네스가 물었다. 그리고 브리가 대답했다.
「나, 그곳이 더 소중해졌나봐. 후안이, 더 소중해졌나봐.」
그가 배에 올랐다. 유독 큰 키라 가장 눈에 띄었다. 반 루앙과 그의 아들도 배에 다 오르자 배 안
의 선원들이 발판을 배 안으로 이끈다.
브리를 바라봤다. 분명 예쁘게 올리고 꾸몄을 금발머리는 헝클어졌고, 얼마나 울었는지 벌써
눈이 퉁퉁 부은 것 같다. 왜, 내게 저렇게 마음을 쓰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라 생각했
던 왕궁에서의 만남. 여러 경험으로. 그를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던 후안은 의외였다.
의외라기 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기보다는 기뻤다. 그녀가 와 주었다.
“잘 다녀와..”
낮게 브리는 말했다. 검은 수트를 입은 그가 손을 흔든다. 브리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훌쩍 훌
쩍 거리는, 하녀들도 대동하지 않은 그녀를 보고 항구의 사람들이 뭐라 수군거리지만 상관없었
다. 그저, 아그네스도 밀치고 그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할 만큼 급하게 후안을 만나기 위해 항구에
왔으면서 그 어떤 마음도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사랑한다. 가슴이 아프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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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러브신.....ㅋㅋ
짧은 댓글 포스가 강하네열..ㅋㅋㅋ
러브러브러브신♪ 후훗, 그것도 진한 -_-*
너무 원하시는거 아니냐규 -_-*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재학생이면 미소님 저랑 동갑이시네요 ㅋㅋㅋ 사실 알고있었던거다. 그래요, 힘내보아요!!! 님도 저도 화이팅! 브리도 화이팅!
하핫 작가님 저는 러브신을 사랑합니다..후훗,,
하핫 저도 러브신을 사랑합니다. 특히 21금은 아주그냥..
좋아좋아! 포옹신~
포옹 다음엔 뭘까? (응?)
저는 후안이 떠났을때 브리가 애하나 낳기를 원했답니다 -_- ㅎ... 그니까 떠나기 전에 관계를 맺는것도 좋았을뻔했다는...너무 목말라있어요 ㅜㅜ
그렇다면 후안이 브리에게 떠난다고 말하려고 성을 방문했던 그때 역사가 치뤄져야 됐었는데, 그땐 브리가 여전히 튕기는 중이라... 다음을 기대해주세요 -_-*
으와! 이제 브리와 후안의 마음이 점점 합쳐지는군요*ㅡ_ㅡ*좋아요!! ~ 건필하세요!
*ㅡ_ㅡ* 이표정 음흉한게 마음에 드네요..ㅋㅋㅋㅋ 네네, 건필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으으음.. 3년 뒤의 모습이 바로 나타나려나요오오??
글쎄요오오오오?? 계속 읽어주삼 -_-*
와오-_-후안의 괄목할 만한 성장?ㅋㅋ 많이 컸군요,(표현에 있어서ㅋㅋ)그래도 아직 멀었어! 후안!!분발해야져!!ㅋㅋ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저 녀석도 사람이니까 마음이 슬슬 변하는데 반응을 보이겠죠? 전 이렇게 느릿느릿 차분히 가는게 좋답니다. 무작정 주인공이라 서로 첫눈에 반하고 그런건 싫어서ㅎㅎㅎ 네, 좋은글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포옹- _- * ㅋㅋㅋㅋㅋ
서... 설마 이러다가 후안이 사고로 죽지는...ㅜ_ㅜ(농담 이라도 그런말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