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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밀 졸라의 <나나>와 유정문학 에밀 졸라의 한국 이식(移植)은 최승우에 의해 <창조> 4호(1920.2.23)에서 비롯된다. 이후 졸라에 대해서는 <개벽>창간호(1920.6)에서 무기명의 저자 및 안자산 등이 언급하고 있고 본격적인 졸라론은 <신천지>1월호(1922)에서 김한규가 언급하고 있다. 졸라의 <나나>는 홍난파가 처음 번역, 간행(박문서관,1924.6.25)했다. 이후 <나나>는 심경산인에 의해 <조선일보>(1929.10.28.11.4 총4회)에서 다시 한 번 더 소개된다.
유정은 ‘졸라의 걸작인 <나나>는 우리를 재웠고....’라고 하며 <나나>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와 같은 반응은 이미 김동인의 “소설작법”에서도 보인 바 있다. 문단 대 선배인 동인의 졸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그대로 유정에게 전달된 것은 아닐까. 왜 유정은 <나나>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졸라 문학의 특징을 더듬어 보아야 할 것이다.
졸라가 소설 창작에서 ‘경험 그 자체를 바탕으로 한 관찰의 방법’을 주장한 것은 1866년이었고 <떼레즈 라캉>(1867)을 통해 그의 창작이론은 肉化된다. <나나>는 그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제9권에 해당하는 책으로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의 성적 문란과 타락의 극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창작 노트에서 ‘한 사회 전체가 암캐의 꽁무니 위로 덤벼들고 있다. 온갖 수캐떼들이 한마리의 암컷을 뒤쫒는다. 그러나 암캐는 암내를 내지 않은 상태로 수컷들을 비웃는다- 수컷의 욕망의 시’라고 그 테마를 설명한다.
<나나>에서 등장인물들은 거리의 창녀로부터 황태자와 귀족과 거부, 건달들에 이르기까지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나는 4~5대에 걸친 주정뱅이 집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가난과 음주의 유전인자로 인한 異常性格의 여자로 그려지고 있다. 나나의 성욕은 식욕과 동격이다. 그녀가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먹어치우고’, ‘해치우고’, ‘삼키고’, ‘뜯어먹고’ ‘털어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그녀는 남자들을 끊임없이 교체하며 가학적· 피학적· 동성애적 변태행위자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타고난 육체의 아름다움과 관능적인 조건으로 그녀는 끝없이 주변의 남자들을, 물건들을 소유하고 요구하며 사치와 허영을 추구한다. 그것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옥의 아귀처럼 아름다운 동물인 그녀는 인정사정 없이 끊임없이 돈을 요구한다.
“ 돈을 안 가지고 왔다구?...그렇다면 가줘요, 뮈프씨. 어서 빨리요! 뻔뻔스럽게! 그러 고도 나를 껴안을 작정이에요!........돈 떨어지는 날이 매사가 끝나는 날이라구요! 알았 어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참사원 의원이며 황후의 시종인 뮈파 백작에게 나나는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포악을 떤다. 나나는 사고력 자체가 결여된 하나의 살 덩어리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치와 허영을 위해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고, 돈을 줄 수 있는 상대라면 그 어떤 시체같은 늙은이라 해도 주저하지 않는다. <나나>에서는 상대에 대한 인격적 존엄성과 사랑에 대한 숭고한 동경 따위는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숫컷과 암컷의 교미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들의 소설 세계는 인간계가 아닌 동물의 꿈틀거림, 쫓고 쫓기는 모습, 인간에 대한 환멸만이 있을 뿐이다. 돈과 색욕에 걸신 든 아귀들의 수라장인 것이다..
유정의 작품 가운데 돈과 색욕을 매개로, 인간에 대한 환멸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에 <정조>가 있다. 서방님은 본처 말고도 기생첩과 여학생첩을 두고 있으면서도 ‘계집이면 덮어놓고 맥을 못쓰는’ 인간이다. 더럽고 못생긴 행랑 어멈은 술에 만취한 주인 서방님을 유혹하고 돈을 요구한다.
허나 년의 행실이 더 고약했는지도 모른다. 전일부터 맥없이 빙글빙글 웃으며 눈을 째긋이 꼬리를 치던 것은 그만 두고라도 방에서 그 알량한 낯판대기를 갖다부비며 “ 전 서방님하구 살구 싶어요. 웬일인지 전 서방님만 뵈면 괜스리 좋아요.” “ 그래 그래 살아보자꾸나!” “ 전 뭐 많이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집 한 채만 사주시면 얼마든지 살림하겠어요”
이후 행랑어멈은 누구의 아이를 임신한 것인지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를 임신시킨 상대가 서방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미끼로 주인아씨에게 큰소리침은 물론 아씨가 ‘서방님과 어쩌다 같이 자게되면, 시키지도 않은 밤중에 슬며시 들어와서 끓는 고래에다 불을 쳐지펴서 요를 태우고, 알몸을 구어놓는’ 심술을 부린다. 일을 시키면 오히려 아씨에게 역정부터 부리던 행랑어멈이 마침내 행랑을 내놓고 이사를 가던 날, 어멈은 다른 집에 행랑살이로, 삯월세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한 이백원 가지고 고뿌술집을 하러간다고 히짜를 뽑는다.
아씨는 가만히 눈치를 봐하니 저년이 정녕코 이백원쯤은 수중에 가지고 히짜를 빼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젯저녁 자기가 뒤란에서 한참 바쁘게 약을 끓이고 있을 제 년이 안방을 친다고 들어가서 오래 있었는데 아마 그때 서방님과 수작이 되고 돈도 그때 주고 받은 것이 확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고분고분히 떠날 리도 없거니와 그 년이 생파같이 돈 이백원이 어서 생기겠는가.
<정조>에서 행랑어멈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사치와 허영 때문에 남자에게 몸을 맡기는 여자는 더욱 아니다. 색끼가 있는 여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고뿌 술집을 차리기 위한 200원을 목적으로 주인서방을 유혹하고, 심술과 강짜를 부려서 결국은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신이 나서 떠나간다. 그러나 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 행랑어멈 부부의 행위 속에서, 또 여자라면 그 노소와 미추를 가리지 않는 서방님의 색욕 속에서 ‘나나’와 그녀를 둘러싼 같은 부류의 군상들을 보게된다.
.......졸라는 언제나 하층민들의 친구였고, 과학을 믿고,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자였 다. 처음 과학주의에 의해서, 자기의 애정이나 원하는 바를 감추고 준엄한 객관주의로 서 어두운 현실을 그렸지만, 자연주의적 양식을 떠나면서 그의 인도주의적, 이상주의 적 사회주의를 떳 떳하게 말하게 된다. 드레퓌스 옹호도 정의파로서의 그의 당연한 행동이다.
<나나>에 대한 유정의 표면적인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유정의 전 작품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 하층민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에 대한 유정의 객관적 묘사- 생활에서의, 언어에서의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표현- 이것이야 말로 유정이 에밀 졸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내재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와 유정문학
제임스 죠이스의 이식은 1931년 최정우 번역의 <구름조각>이 동아일보(1931.5.9~17, 8회연재)에 게재되면서 비롯된다. 다시 최정우는 < 下宿屋>을 문예월간(1932.3.1)에, 學圃가 <意外>를 조선일보(1932.6.21~26, 5회연재)에, 無涯가 <살러리 맨>을 동아일보(1934.4.2~11, 8회연재)에 번역 소개하는데 이들은 모두 <더불린 사람들>에서 발췌 번역한 것들이다.
제임스 죠이스 관련 논문들은 1934년 복영환이 “세계문학계에 일대 반향을 일으킨 제임스 죠이스”(신생,1934.1.1)를 필두로 필자 미상의 “제임스 죠이스”(신동아.1934.9.1)에 이르기까지 8편이나 소개된다. 1935년대에 이르면 본격적인 죠이스 작품론인 김영석의 “영국 신심리주의 문학”(1935.7.21~8.4 12회)이 소개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金象의 “세계 문단의 신인- 제임스 죠이스 소고”이다.
.......이 작품에 의해서 근대 도시 ‘더불린’의 추악과 연민과 육욕과 범죄는 기탄없이 폭 로 되고 있다. 작자는 ‘더불린’을 묘사하는 것으로 세계의 도회생활의 가면을 벳겨 낸 것이다. 통렬한 사회비평을 하였으며 추악한 인간정신을 해부하였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문체와 수법은 전혀 혁명적이며 이 내용에 적당한 신형식으로 창조하였 다. <유리시즈>는 드디어 세계 각국에서 성히 애독되어 동경에서도 原書가 破天荒 의 熱로 팔렸으며 번역도 2종 이나 출판되었다. <유리시스>는 방금 동경 각대학 영 문학자들이 연구제목으로 되여 있 다.
<율리시즈>가 1922년 영국에서 10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된 이래, 이 작품이 일본에서 번역된 것은 1930년의 일이다. 1934년 당시 일본에는 이미 2종류의 번역본이 있었고 이 작품에 대한 일반독자들과 동경 대학 영문학자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음을 보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 죠이스 작품은 1931년 <더불린 사람들>이 발췌, 번역되면서 우리 문단에 소개되었고, < 율리시즈>가 우리 소설작품에 구체적인 이름을 나타내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조선중앙일보,1934.8.1~9.1 연재)에서 비롯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서 연재되었다는 사실과 김유정이 후기 구인회 회원이었었다는 것, 유정이 가장 감동받은 해외문학작품에 <율리시즈>를 들고 있다는 사실은 김유정과 <율리시즈> 사이의 강력한 연관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유정과 < 율리시즈>의 만남은 적어도 1935년 이후로 추정된다. <정분>(1934년 8월 16일 탈고)과 이를 개작한 <솥>(매일신보1935년9.3-14 연재)에서 주인공의 내면의식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정분>에서 8개 부분, <솥>에서 15개 부분으로 배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정이 신춘문예로 공식 등단하기 전에 발표 내지 탈고한 작품들의 서사전개가 대체로 ABC 또는 BAC의 평면적인 유형임에 비해 1935년 이후에 탈고된 작품들은 CABC 유형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같은 ABC 유형이라고 해도 이들에는 사건전개에 있어서 주인공의 과거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나 현재의 의식상태를 보여주는, 내면의식의 묘사부분들이 층층으로 삽입되어 서사공간의 입체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지>는 사직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사직골 꼭대기의 ‘깨웃한’ 초가집에서, 밀린 방세를 받아내려는 집주인과 여기에 응할 수 없는 세입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대 난투극을 희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죠이스의 <율리시즈>와 김유정의 <따라지> 사이에는 유사점과 차별점이 공존한다. 이들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A. 이야기 구성의 측면에서 <율리시즈>는 ‘낮의 소설’이고, 대체로 지식인 계층의 의식세계를 다룬 장편소설이라면 김유정의 <따라지>는 반나절 동안의 따라지같은 목숨들의 해프닝과 그들의 의식의 단편들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율리시즈>는 더불린을 공간 배경으로, 1904년 6월 16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세 주인공의 시선과 내면의식의 전개로 구성된다. 전체 18장 가운데 1~3장은 스티븐, 4~8장은 블룸, 9장은 다시 스티븐, 그리고 10장은 더불린 시의 여러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군소 인물들을 동시에 묘사한다 11~14장은 블룸의 시점에서 15~17장은 블룸과 스티븐이 함께하고 18장은 몰리의 의식의 세계를 다룬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는 스티븐- 블룸-스티븐- 등장한 군소인물 전부- 블룸과 스티븐-몰리의 순으로 전개된다.
<따라지>는 사구라꽃 핀 어느 봄날, 사직골을 배경으로 구렁이의 집에서 방밖과 방안에서의, 다시 집안팎으로 공간이 교체되면서 갈등관계에 있는 두 주인공의 시점 및 내면세계의 전개로 구성된다. 전체 이야기는 구렁이- 아끼코-집주인 및 세입자 전부-구렁이-순경-아키꼬의의 순으로 펼져진다. 이들을 좀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전개된다.
1)집안의 방밖 : 설겆이를 마친 시간, 구렁이의 시선을 통한 집안팎의 묘사와, 세입자 들의 방문을 차례로 열어젖히면서 그녀의 눈과 내면의식을 통한 세입자들의 생활상 이 묘사된다.
2)집안의 아끼코의 방: 낮 12시 18분, 뚫린 문구멍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는 아키꼬의 시선과 의식을 통해, 톨스토이를 중심으로 한 7개의 삽화가 전개된다. / 낮 1시 45 분, 영애가 돌아 오고, 다시 톨스토이에게 연애편지를 부탁해보려고 하는 아키꼬의 의식 속에 3 개의 삽화가 전개된다.
3)집안의 방밖 : 구렁이가 조카인 뻐드렁니와 함께 톨스토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세 간살이들을 끌어낸다.
4)집안의 아키꼬의 방: 뚫린 문구멍을 통해 영애와 방밖의 기척을 살피던 아키꼬는 톨스토이를 돕기 위해 방밖으로 나선다.
5)집안의 마당: 집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의 일대 육탄전이 벌어진다.
6)집밖: 구렁이가 고반의 순사에게 신고를 하러가고, 순사와 구렁이가 집안으로 들어 선다.
7)집안: 버드렁니 혼자서 마루에 앉아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시치미를 뗀다. 구렁이가 순사에게 아끼꼬를 혼내주라고 한다.
8)집밖: 고반으로 가는 사직골 공원 길, 아키꼬는 순사에게 멋대로 인사를 하고, 활터쪽 으로 올라가며 집으로 돌아가면 장독대에 요강을 버리고, 오줌을 누워서 구렁이를 골 려 줄 결심을 한다.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세계가 뚜렷하게 많이 나타난 부분은 1)의 구렁이의, 2)의 아키꼬의 내면 전개이고 6),7)에서는 구렁이의 내면의식이, 8)에서는 아키꼬의 내면의식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들을 다시 정리하면 <율리시즈>의 이야기는 대개 특정인- 등장인물 전부-특정인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지> 역시 특정인-등장인물 전부-특정인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B. 작가모습의 투영이라는 측면에서 <율리시즈>의 젊은 의학도이며 예술가인 스티븐이 지적, 또는 정신적 세계를 반영 하는 인물이고, 동시에 작가인 제임스 죠이스의 젊은 날의 자화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티븐은 아침에 마아텔로 탑에서 나와 학교, 신문사, 도서관, 병원, 술집, 사창가, 그리고 블룸의 집으로 순례하며 정신적인 자유와 예술가로서의 불변의 법칙을 찾기 위해 자아에 몰두한다.
<따라지>에서 톨스토이는 누님의 온갖 히스테리를 겪으면서 ‘햇빛을 못 봐서 얼굴이 누렇게 찌들’도록 방구석의 책상 앞에 앉아서 소설 창작에 여념이 없고, 때로 사직공원에 나가 ‘굵은 소나무 줄기에 등을 비겨대고 ’ 바람을 쏘일 때에도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설 구상에 몰두한다. <율리시즈>의‘스티븐’은 작품의 주인공이면서 1인칭 시점으로, <따라지>의 ‘톨스토이’는 비록 부수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아끼꼬의 시선을 통한 3인칭 선택적 시점 속에서 묘사된다. 그러나 스티븐과 톨스토이는 모두 예술가 지망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C 여성 주인공의 ‘개방된 성세계’와 ‘영혼의 처녀성’의 측면에서 <율리시즈>에서 블룸의 아내인 몰리는 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는 여성으로서, 성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몰리는 현재 34세로 제 17장 이타카(Ithaca)에서 그녀의 애인 25명의 이름이 나오고, 18장 페네로페(Penelope)에서는 그 중 18명이 그녀의 회상 속에 떠오른다. 몰리는 성에 대해서 솔직하고 대담하다. 그녀는 남편 블룸과 10년이 넘게 성관계를 맺어오지 못하다가 정력적인 보일런과 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몰리는 새디스틱하고 경박한 보일런에게 보다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에게로 마음을 향하며,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으로 남편의 성불능을 치유해주고 원만한 가정을 꾸밀 생각을 한다. 몰리는 ‘자연의 이미지와 결부시킨 창조, 생명, 多産을 상징하는 여성이다. 제 18장 ’페넬로페’에서 몰리는 육감적인 육체로, 월경의 징조를 느끼고 소변을 보기 위해, 요강에 앉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몰리의 월경은 ‘만물의 자연적 질서에 대한 여성의 유대’를 보여준다.
<따라지>에서 카페 여급 아키꼬는 19세로 영애가 보기에도, 순사가 보기에도 아담하고 귀여운 여성이다. 그녀는 카페 손님 가운데 연애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돈의 필요에 의해서 남자 손님들을 사직골 꼭대기 셋방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그녀는 이와 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심리적인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히스테리 누님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는 톨스토이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자신이 호감을 가진 톨스토이의 누님이기에 그 누님에 대한 아키꼬의 의식 속에서의 호칭은 ‘누님’으로 일관한다.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꿈속에서까지 톨스토이를 연모한다.
그러나 그렇게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아키꼬라 할지라도 그녀는 톨스토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연애편지를 써달라는 정도로밖에는 나서지를 못한다. 몸으로는 수많은 남자들을 껴안으면서 마음으로는 오직 톨스토이 밖에는 그 누구도 들이지 않는 영혼의 처녀성을 지닌 이가 아끼꼬인 것이다.
아키꼬의 사고와 행위 속에서도 풍요와 다산으로 상징되는 모습들이 보인다. 아키꼬는 손결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오줌을 눌적마다 요강에 받아서는 이 손을 담그고 한참 있고, 저 손을 담그고.’ 그렇게 석달을 반복해 왔다. 아키꼬는 오줌이 묻은 손으로 태연히 과자를 집어 먹는다. 오줌에 대해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키꼬는 오줌을 배설물로서가 아니라 손결에 윤기(풍요로움)를 주는 어떤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아키꼬는 버드렁니와 싸울 때에 ‘권투로 집어실까’ 하다가 상대의 어깨를 뒤로 물고 늘어진다. 심정적으로 남성과 같은 투지를 갖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자신의 체력의 열세를 인정한 것이다. 아키꼬는 순사와 헤어져 사직원의 활터쪽으로 올라가며 ‘저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자신도 풋볼을 마음껏 차 복걸하고 후회가 막급이다’. 마치 남자로 태어날 수도 있었는데 그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자로 태어난 것처럼 생각한다. 이는 아키꼬의 무의식에 내재된 兩性的 性向을 보여주는 것으로 존재하는 모두를 포용하려는 생명의식의 넘침을 보여준다.
열아홉 살 아키꼬의 몸과 마음은 봄을 맞아 피어오르는 봄나무가 되고 봄꽃이 되고 풍요로운 생명의 원천이 된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면 구렁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장독대에 요강을 버릴 것을, 아예 장독대에 오줌을 눌 생각을 한다. 이같은 아키꼬의 생각은 구렁이에 대한 도전이고, 그 원인은 톨스토이에 대한 사모의 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든 아키꼬가 오줌에 손을 담그거나, 오줌을 누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오줌이 지닌 생생력 상징-풍요와 다산성에 연관된다. 죠이스 작품에서의 방뇨행위가 창조와 관련된 다산성을 의미하듯이, 우리 구비전승에서도 여성의 오줌은 풍요와 다산성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D. 폭력의 희화화- 해학성의 측면에서 한때 조이스는 해학 작가로서 그 명성이 절정에 달했으나 ‘그의 작품들의 위치와 의미, 그리고 그 영역을 지나치게 축소시킨다하여 그 표현이 탈락되었다'. <율리시즈>는 위대한 풍자와 해학소설로 그 중 제 12장 ‘키클롭스 장’(Cyclops)은 익명의 일인칭화자의 시점을 통해 바니 키어넌 주점에 모여든 술꾼들과 블룸을 향한 그들의 오해가 빚어낸 갈등, 그로 인한 항가리계 유태인인 블룸에게 행해진 그들의 부당한 행패가 과장의 수법을 통해 희화화되고 있다. 특히 블룸의 친구인 마틴 일행이 블룸을 찾아 주점에 나타나 함께 술을 마실 때 일인칭 화자는 그들의 음주행위를 모든 수도원장들과 그들이 이끄는 수도회들- 수사, 수녀들, 성인, 성녀들이 함께 동참하는 대미사제전으로 과장한다.
- 참게, ‘시민’,하고 조가 말한다. 그만 둬! 젠장 그는 한 손을 뒤로 뻗어 힘껏 한 번 휘 둘러 내던졌다...................(중략)........................ 그와 같은 대격변은 순간적인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했다. 던싱크 기상대는 모두 1 1번의 진동을 기록했는데, 모두 메르칼리 진도계의 제 5눈금에 해당하는 것이어 서 실큰 토머스의 반란의 해인, 1534년의 지진 이래 우리들의 섬에 있어서 그와 비슷 한 지진 소동은 기록상에도 없는 것이었다.
아이랜드의 국수주의자로서 악은 악으로, ‘힘에는 힘으로 대결’하려는 철칙을 갖고 있는 ‘시민’이 마틴의 보호아래 이륜마차를 타고 바니 키어넌 주점을 탈출하는 블룸에게 비스켓 상자를 내던지는 장면이다. 비스켓 상자가 내던져짐으로써 나타난 파문은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서 일대 격변과 재앙으로 보고 되고 이에 따라 로마 교황은 사자(死者)들을 위한 미사를 거행하게 하고, 파괴물과 구조작업은 범국가적 행사로서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과장되고 희화화된다.
김유정 문학의 특징을 그 해학성에서 찾고 있는 많은 지적들이 있어왔다. <따라지>에서의 그 해학성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삭월세를 내랬으면 좋지, 내쫓으려구 하니까 그렇게 분란이 일구 하는게 아니냐?” “아닙니다. 누가 내쫓으려구 그래요. 세를 내라고 그러니까 그 아끼꼬란 년이 올라와 서 온통 사람을 뜯어먹고 그러는 군요” “말 말아. 내쫓으려고 한걸 아는데 그래, 요전에도 또 한번 그런 일이 있었 지?”
구렁이는 자신의 조카인 버드렁니를 불러다가 톨스토이의 세간살이를 억지로 끌어냈었던 사건의 발단은 생략하고, 아키꼬가 버드렁니를 깨물었던 사실을 ‘사람을 뜯어먹고’라고 과장하여 순사에게 일러바친다. 구렁이는 버드렁니가 겪은 피해를 심각하게 호소하는데 순사는 한 마디로 구렁이의 호소를 묵살해 버린다. 문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동시에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데 있다. 환언하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가 가해자이고 동시에 모두가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아끼꼬만은 어디까지나 당당한 톨스토이의 보호자며 애호자로 남는다.
<따라지>에서 난투극은 그 폭력의 장면을 과장하고 희화화하되 화자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 실지로 당했다면 무척 당혹스러웠을 난장판은 봄날 반나절 동안에 일어난 희극으로 그려진다. E. 영화취미와 소설기법 한때 더불린에 영화관을 차린 적이 있었던 조이스는 <율리시즈>에 영화 수법인 몽타쥬 오버랩 기법을 시도했다. <율리시즈> ‘제10장 배회하는 바위들」에서는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의 더불린 거리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거의 동시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수회의 수도원장, 존 콘미 존사가 사제관 층층대를 내려오면서 그의 매끄러운 회중 시계를 안쪽 호주머니 속에 도로 넣었다. 3시 5분 전, 아테인까지 걸어가기에 꼭 알 맞은 그런데 그 소년의 이름이 뭐였더라? 디그넘. 그래.....................(중략).........외다리 수병 한 사람이, 흔들거리는 그의 절름발이 지팡이를 떠듬떠듬 짚고, 앞을 향해 건거 리면서 무슨 노랫가락을 중얼거렸다. ......
<율리시즈> ‘제10장 배회하는 바위들’에서는 콘미신부가 사제관 층층계를 내려오며 3시 5분전의 시간을 확인하는 장면을 포함하여, 신부의 여정(旅程) , 외다리 수병, 디더러스家의 가족들, 상점에서 보일런이 몰리에게 보낼 선물을 사는 장면, 스테판이 거리에서 음악선생을 만나고, 보석상 앞에서 보석을 구경하고, 또 다른 거리에서는 블름이 아내에게 줄 책을 고르는 장면, 레스트랑에서 장기를 두는 멀리간과 헤인즈, 더들리 백작 부부가 하부 마운트 가를 향해 그의 수행원들과 함께 말을 타고 가면서 보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 등 전체 19개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더불린 거리에서 일어난 각기 다른 사건들이지만 거의 동시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른바 서로 다른 장면들의 병치를 통한 서사의 공간화(spatiality), 영화에서 말하는 몽타쥬 오버랩 기법이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그것이 그의 문학에 끼친 문제에 관한 시도적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희극적 영화의 인물들이 유정 작품에 끼친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따라지>에서는 뚜렷한 영화적 기법을 볼 수 있다. 카메라 앵글이 집안에서 열어놓은 쪽대문을 통해 사직공원에 피어난 사구라꽃을 비치고 곧 이어 집안으로 돌려져 이엉이 흘러내리는 초가지붕과, 밑둥이 나간 뒷간 벽들로 이동한다. 그리고 구렁이가 차례차례 열어젖히는 대로 톨스토이의 방, 김마까의 병, 아끼꼬의 방의 어수선한 모습들과 그곳에 기거하는 방주인들의 모습을 비추어 고단한 도회지 하층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다시 카메라 앵글은 아키꼬의 방으로 들어가 뚫어진 문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아키꼬의 모습, 그 뚫어진 문구멍을 통해서 안채의 모습, 마루위, 뒤주 위에 놓인 정종병과 그 병에 꽂힌 복숭아꽃과 개나리꽃이 보인다. 그리고 아키꼬의 톨스토이에 대한 짝사랑이 7개 삽화로 몽따쥬 처리되어 연결된다.
독자들은 사직골 꼭대기의 깨웃한 초가집 속에서 살아가는 따라지들의 삶의 현장과 그들의 꿈과 고민을 영화 장면을 보듯 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집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에 일대 활극이 벌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그것과 일치한다.
얼자가 문턱에 책상을 떨구더니 용감히 홱 넘어 나온다. 아끼꼬는 저 자식이 달마 찌의 흉내를 내는구나, 할 동안도 없이 영애의 뺨이 짤꺽- “이년아! 늙은이를 쳐?” “아 이 자식보레! 누구 뺨을 때려?” 아끼꼬는 악을 지르자 그 혁대를 뒤로 잡아서 나꿔친다. 마루 위에 놓였던 다듬잇돌 에 걸리어 얼자는 엉덩방아가 쿵, 하고 잡은 참 날아드는 숯보니는 독오른 영애의 분풀이다. 그러나 또 아랫방문이 확 열리고, 지팡이가 김마까를 끌고 나온다.
문턱으로 떨어지는 책상, 뻐드렁니의 손에 맞아 짤꺽 소리를 내는 영애의 뺨, 악을 쓰는 아끼꼬의 얼굴, 아끼꼬의 두 손에 나꿔채진 뻐드렁니의 혁대, 다듬잇 돌에 걸리어 나가 떨어진 뻐드렁니의 엉덩이, 날아가는 숯보구니, 김마까보다 먼저 방밖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지팡이···· 이들 하나 하나는 그들이 소속된 전체의 모습은 가려지고 확대된 부분들이 모여 이 사건의 긴박감과 속도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 클로즈 엎된 독립된 장면들이 순간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인 것이다.
5. 닫는 글 해외문학작품에 대한 김유정의 기호와 관심에 대해서는 그의 조카 및 문우들이 여러 곳에서 증언한 바 있다. 유정이 작품으로 또 육성으로 밝힌 외국작가 및 작품에 대한 언급은 그의 해외문학 수용에 대한 가능성을 높여준다.
본고에서는 유정이 직접 언급한 바 있는 톨스토이, 에밀졸라, 제임스 죠이스들이 유정문학에 끼친 영향관계를 살펴보려했다. 유정은 졸라나 죠이스의 극단적인 자연주의나, 극심리주의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으로 부터 일탈된 자들-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우매한 사람들의 삶과 꿈과 그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꼼꼼하고 생생한 기록, 그들 인물들의 고단한 삶과 돈과 사랑에 대한 추구 등에서 유정은 그가 거부한 작가들의 문학관과 기법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단 이들은 그들 선배들의 견해나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단순한 인용이나 흉내내기가 아니라 유정 특유의 언어와 기법으로 새로이 태어난 것들이다.
유정의 야학운동, 그의 노동자 농민, 들병이, 카페 여급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들은 톨스토이의 작품과, 특히 예술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유정은 톨스토이의 인생관, 예술관에 대해서는 완전한 동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밀 졸라의 <나나>에서 보여주는 황금과 성적 욕망에 대한 추구, 그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추악함과 그들 삶의 현장에 대한 자세한 묘사에 대해서 유정은 ‘우리를 재웠고’라고 하여 그 지루함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나>에서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생활에 대한 자연주의적 수법은 유정의 전 작품에 그대로 확산되어 수용된다. 인간을 그렸다기 보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추악한 기질을 그렸다는 <나나>에 비해서 유정의 <정조>는 인간의 황금과 성욕에 대한 추구를 그리면서도 차별성을 보인다. 유정은 인간 기질의 추구라기 보다는 환경 요인에 의해 보통의 사람이 악종의 인간으로 변신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유정은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에 대해서도 인간심리에 대한 ‘괴망히도 치밀한 모사법’으로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품을 연발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유정작품에는 <율리시즈>의 영향이 곳곳에 퍼져 있음을 다음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1) 소설 구성의 측면에서 등장인물이 처하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묘사가 상세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는 특정인-등장인물전체-특정인의 시점에 따라 내면의식이 전개된다.
2)작가모습의 투영이라는 측면에서 <율리시즈>의 스티븐,<따라지>의 톨스토이는 모두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죠이스와 김유정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3)여성주인공인 몰리와 아끼꼬는 ‘개방된 성세계’와 ‘영혼의 처녀성’ ‘풍요와 다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치점을 보인다.
4)폭력의 희화화-해학성의 측면에서 죠이스와 김유정은 모두 해학의 작가로 그들은 폭력의 장면을 과장적 표현으로 희화화 한다.
5)영화 취미와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죠이스는 몽타쥬 오버랩을, 유정은 몽따쥬와 클로즈엎의 수법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리하면 김유정은 <부활><나나><율리시즈>에서 긍정적인 문학적 특성을 수용하되 이를 ‘유정의 언어로’ 변용하고 있다. 유정은 <부활>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사랑의 정신을 전면 수용한다. 그러나 <나나>가 보여주는 지나칠 정도로 지루한 객관적 묘사,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추적, <율리시즈>가 보여주는 인간의 행위는 보이지 않고(상대적으로 축소시킨) 의식 세계만을 극단적으로 추적하는 세부 묘사에는 제동을 걸었다.
유정은 <나나><율리시즈>에서 공감할 수 없었던 부정적 요인들은 거부하고, 그의 작중 인물들의 행위에 생기를 주고, 여기에 맞추어 내면세계를 그리려 했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특히 행위를 과장하고 희화화하여 이야기에 재미를 가미했다. 그리하여 유정은 등장 인물 모두에게 현실에 발붙인, 피가 통하는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해외의 선배 작가들과 유정 자신의 작품에 대한 변별성을 높였다.
출전: [ 유인순, 김유정을 찾아가는 길 ] 김유정과 해외문학 전체 pp.195-229 가운데 pp.20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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