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장애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지배적인 개념이었던 장애의 의료모델(medical model)에 의하면, 장애인에게 필요로 한 것은 의료서비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몇 가지 가정과 역할기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사는 기술적으로 유능한 전문가이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는 의사가 중심적인 의사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체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환자 보호에 대한 책임도 그 담당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다. 둘째, 환자(patient)의 요구에 의해 반드시 필요한 협력을 행하여야 하는 병자의 역할(sick role)을 할 것이 기대된다. 셋째, 의학의 주요 목적은 급성 혹은 회복성 서비스(acute/restorative care)를 제공하는 것이며, 장애인에 대한 조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넷째, 질병은 일차적으로 수술 혹은 약물치료나 재활치료와 같은 임상절차를 거쳐서 치유된다. 다섯째, 질병은 수련을 받은 의사에 의해서만 진단되고 증명되며, 치료될 수 있다. 이처럼 장애의 의료모델에 의하면, 장애인은 의료전문가에 의해 의학적인 차원에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가 됨을 뜻한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의료모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서 장애의 탈의료화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탈의료화는 시설수용 중심의 장애인 치료 혹은 보호의 개념에서 탈시설화와 함께 자립생활운동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운동(IL운동)이 장애의 탈의료화를 주장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의료모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설들이 장애인들의 욕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모델은 환자에 대한 급성 혹은 회복성 중심의 서비스에 대한 강조는 급성질환의 단계를 넘어서 만성적이며, 장기적으로 장애인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장애가 발생하고 급성의 단계를 지나 자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많은 장애인들의 경우 임상의학의 특징인 수술이나 약물, 그리고 전문가인 의사의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오랫동안 장애상태를 유지해 온 장애인들의 경우엔 스스로 의료적 감독이나 치료를 해낼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의 조건이 지닌 특이성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의료 전문가들의 진단, 증명 혹은 치료적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이다.
2. 병자역할(Sick Role)과 손상된 역할(Impaired Role)로부터의
탈피
자립생활 운동(IL운동)은 병자역할(sick role)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것이며, 장애에 대한 의료모델에서 기대하는 장애행동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Talcott Parsons(1951)에 의해 형성된 병자역할 개념(파스니언 이론)은 의료사회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Parson가 제시한 병자의 역할은 상호 관련된 몇 가지 면제사항과 의무사항을 요구하고 있는데, 면제사항은 병자는 질병의 특성과 장애정도에 따라 정상적인 사회활동과 책임으로부터 면제되고, 또한 병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병자는 정상적으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으며, 단순한 질병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지로 병이 호전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면제조항들은 조건부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그에 대한 대가로서 몇 가지 의무사항을 지키도록 되어있다. 병자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의 내용은, 첫째, 병자는 병든 상태를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로 규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병자 자신의 회복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둘째, 병자는 필요한 원조를 구하여야 하며, 회복하기 위해서 의사와 협력하여야 한다는 등의 병자로서의 의무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병자의 역할은 일시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경우, 완전한 비장애인의 상태로 복귀된다는 의미의 회복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장애란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 존재의 한 부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이 오랫동안 병자역할을 지속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의 장애상태뿐만 아니라, 장애인 자신의 인격 자체도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더구나 장애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병자의 역할이란 이름 하에 제시된 의존성을 당연시하게 된다. 이러한 의존적인 상황의 지속은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 자주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모든 면에서의 책임성을 경감시켜 주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병자역할에 비해 보다 더 낮은 지위를 뜻하는 개념이 손상된 역할(the impaired role)이다. 손상된 역할은 그 조건에 개선의 여지가 없고, 가능한 한 빨리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환자역할의 제 1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손상된 역할을 가진 사람들은 회복이라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자신의 조건과 의존성을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뜻한다.
손상된 역할은 인간적 지위의 완전한 상실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상된 역할은 의료적 처치에 있어서 협력이나 자신의 건강을 되찾도록 노력하고 재활치료를 위해 참여하고 협조하려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지속적인 손상된 역할은 나태함으로 취급되고, 그 대가는 인간적인 가치하락을 가져와 일종의 하급시민의 자격으로 인식되어짐을 뜻한다(Ramon, 1991).
다시 말해 '손상된 역할'이 어떠한 것이라고 정확하게 개념을 규정하는 것이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손상된 역할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병자의 역할을 지속하게 되고 회복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장애인이 빠져들기 쉬운 역할인 것이다. 손상된 역할은 병자의 역할보다 더 낮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낮은 지위는 아동들의 역할과 같다. 다시 말해 어린이들이 그러하듯이 하루종일 카드게임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며, 가져다주는 식사를 하고, 서로서로 함께 놀이를 하며, 또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지내도록 허용된 사람들을 뜻한다. 이러한 설명은 손상된 역할에 내재된 아이와 같은 의존성의 경향을 잘 파악하여 제시하고 있다. 자립생활운동은 병자의 역할이나 이의 파생적 역할인 손상된 역할에 의해 제시된 행동 기대들을 거부하고, 장애인들이 아동과 같은 의존의 대가로 그들의 가족, 직업 및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박탈당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박탈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생활에 참여하고 완전한 인격체가 될 권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
의료모델의 병자의 역할이나 손상된 역할이 지니고 있는 의존적 특성은 장애인이 속한 시설 상황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시설들은 임상 실천가들과 의료진들이 외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서 사회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봉쇄된 사회체계이다.
환자들이 장기간 시설에 수용된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환자들은 병원의 지시와 규칙과 규율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환자들에게 있어 순응은 매우 높이 평가되는 한편, 개별행동은 허락되지 못한다. 훌륭한 환자란 지시사항을 잘 따르고, 의료진에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한편 자신의 일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환자나 개인적인 용무로 외출을 요구하는 환자는 귀찮은 환자 혹은 관리가 용이치 않은 환자로 분류된다. 환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약속을 정할 수가 없고, 자신의 의료기록을 살펴볼 수도 없으며, 약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일들의 책임은 법적으로 시설에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시설에서 퇴소하는 날(탈시설화가 이루어지는 날)부터 환자 자신은 이러한 모든 일들에 대한 통제와 책임을 스스로 지어야만 되는 것이다.
탈시설화의 경향은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지역사회 정신보건운동(community mental health movement)이 가장 대표적인 탈시설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만성장애인들은 시설의 수용보호 생활을 떠나서 지역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유사한 예들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청소년 교정과 같은 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개인의 의무와 책임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탈시설화에 관한 논점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시설보호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반해, 지역사회보호는 납세자의 지출을 절감시켜 줄 것이라는 정치적 논제에 의해 탈시설화 운동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기관들의 수용능력을 충당하기 위해 활용도를 높이고 있는 경향을 주목한다면,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뒷받침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탈시설화의 폐해 또한 심각했다. 예를 들면, 중증장애인이나 정신손상 장애인들의 경우, 탈시설화를 위한 건축물이나 지역사회 환경상의 보완과 수정,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통합에 대한 시민태도와 인식의 성숙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탈시설화 정책은 많은 장애인의 삶의 질을 더욱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자립생활운동은 다른 집단들이 탈시설화의 경우와 동일한 목적인 비용절감 차원에서 채택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들 대부분이 실제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에 있어 실질적인 감소를 확인하지도 못해 일반 납세자들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탈시설화에 대한 대중의 냉소적인 반응 등,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데 있어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4.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
1990년대 중반까지 장애인이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온 채 의료적 조치를 필요로 하는 특정형태로 장애에 대한 이해가 이뤄져 왔다. 그후 후기 자본주의 과도기에는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개인의 의료적 문제로 간주되던 장애의 생산에 대한 견해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장애를 이해하는데 있어 적절한 사회적 통합의 형태가 논의의 의제로 등장하게 되었다(Kuhn, 1981). 장애인의 사회통합에 관해 몇 가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첫째, 사회통합의 이념은 사회구성원인 장애인이 개인의 기본적인 시민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이념과 사회를 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집합체로 규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집합주의적 이념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개인주의 복지이념이나 집합주의적 복지이념은 장애인복지과정에서 함께 추구하지 않으면 않되는 이념으로서 이들 두 이념이 통합된 것이 통합주의적 복지이념이다. 통합주의적 복지이념은 장애인복지과정에서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 즉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를 실현함과 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실현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관념이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은 장애인복지이념의 결정체이며 복지실현의 목표인 것이다.
둘째, 통합이란 한 개인이 가치 있는 방법에 의해 정상적인 지역사회 안에서 인격적인 개인으로서 성공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개인(personal)과 참여(participation)이다.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치가 저하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 개인 그 자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참여는 단지 해당 장소에 몸이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통합이란 필요한 지원도 없이 어떤 지역사회로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반적으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학교에 다니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아동이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소외되고 분리되어질 것이다. 또한 특수학급에 정상적인 지적능력을 가진 아동이 함께 교육받는 경우, 다시 말해 가치 저하된 사람들이 분리된 채로 집단화되어 있는 세팅(환경)에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이 초청되어지는 경우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를 역통합이라 부른다.
진정한 통합이란 가치 있는 활동과 접촉 그리고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개인적인 참여를 의미한다. 이러한 통합의 정의는 한 사람이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 모든 필요한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통합은 교육과 훈련의 과정이 참여의 과정과 동시에 일어날 것을 요구한다.
셋째, 장애인 복지의 통합체계의 개념으로 살펴보면 장애인이 생물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가지는 장애(impairment)와 능력장애(disability)는 있을지라도 사회적 불리(social handicap)를 제거해 줌으로써 사회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느끼는 신체장애나 의식장애와 사회적으로 느끼는 물리, 문화적 장애 등 환경적인 장애의 두 가지 영역을 모두 극복하도록 의료, 교육, 직업, 심리, 사회재활 영역의 개발과 물리적 환경, 문화적 환경, 사회 심리적 환경의 개선을 수단으로 사회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장애에의 적응문제에 있어서 주관적(내면적 혹은 정신적) 측면과 객관적(사회적 혹은 환경적) 측면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행동은 인간과 환경간의 관계적 기능의 산물이라는 공식에서 발전되었다.
Wright(1980)에 의해서 재활의 통합이론이 개발되었다. 행동적 반응이 한편으로는 환경적 압력에 대한 통합된 반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적 정신 과정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점에서 그의 이론은 사회적(환경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높은 수준의 자존심이나 긍정적 자기 존중감 같은 내면적인 상태를 바람직한 개인적 적응과 관련시키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면적 적응의 성공 정도를 결정짓는 요인으로서 물리적, 대인적(interpersonal) 환경의 형성적(formative)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이론에 의하면, 장애인의 심리적 부적응이 장애 그 자체 때문은 아니며, 심리, 정신분석, 사회, 생활환경 등의 종합적인 영향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심리적 부적응은 장애인이 타인들이 부여한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를 받아들일 때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평가절하를 조장하는 사회적 태도 역시 환경이라는 요소에 의해 생산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타인들의 부정적 평가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중시하면서 개인의 내면적 상태라는 심리적 요인도 이론 안에 통합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심리적 부적응은 개인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절하와 그 평가절하에 대한 것을 자기 자신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상황, 이 두 가지 모두가 일어날 때에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이밖에도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원인 가운데 한가지 특징은 장애나 질병을 신체의 객관적 상태가 아니라 건강, 질병, 장애 등에 대한 사회의 규범적 기준에 근거한 사회적 판단이라고 보는 사회학적 관점을 받아들인 점이다. 또 다른 원인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반응을 나타내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장애 상황의 실제적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더욱 민감히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응에의 어려움은 장애인의 심리적 무능력이나 혹은 환경적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장애인의 욕구에 대한 환경의 무관심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사회통합은 사회적 가치절하의 위험에 놓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개인의 사회통합과 의미 있는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통합의 이념과 실천의 확산은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성공적인 자립생활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사회적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