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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04(987m : 강원/홍천)
*일 자 : 2004. 10. 31(일), RTNAH 제4차 산행(27명), 날씨(맑음)
*코 스 : 군업리-안말계곡-뜨메기골-공작산-770봉-800봉-맞바위고개
-덕지천-수타계곡-수타사-주차장
*소 시 : 오전 8시 45분~후미 오후 3시 10분 완료 → 총 6시간 25분 소요
<山行三行>
-가지고 가는 것은 도시락
-못 가지고 가는 것은 담뱃불
-가지고 오는 것은 쓰레기
1998년 7월 양주에 있는 산림청 연수원에서 일주일간 생태학 연수를 마치고 보너스로 받은 것이 '명예산림보호지도요원증'이다. 한 차례 갱신(재발급)한 바 있는 지도요원증은 지금도 학생야외활동 교육용으로 이용한다. 그 증명서 겉봉투에 산림청이 정한 캐치치플레이즈가 바로 '산행삼행'(山行三行)이다. 산꾼이라면 되새김질할 警句다. 엊그제 서랍을 뒤지다 발견한 지도요원증을 담았던 헌 봉투표면의 인쇄가 비록 희미하게 변색됐지만 내용이 가진 뜻은 무엇보다 밝게 보였다.
지난 10월 18일은 제3회 '山의 날'이다. 잊고 지나간 날이지만 생각해 볼 날이다.
우리나라 국토의 64%(2003년 말 기준)가 산림이지만 숲이 울창할 정도인 ha당 林木축적은 73m2다. 스위스(337m2), 독일(268m2), 일본(145m2)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다. 또 樹齡분포도 30년 이하가 67%로 경제성이 있는 재목채취엔 다소 거리가 있다. 숲 분포는 침엽수림이 42%(266만 7,000ha), 활엽수림이 26%(168만 7,000천ha), 침-활엽수림이 섞인 혼합림이 30%(190만 1,000ha)다. 산이 인간과 다른 동식물에게 주는 혜택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숲의 기능은
첫째, 목재생산기능(전통적 임업)이다. 우리나라의 목재수입의존도는 95%이며, 자급율은 5%에 불과하다.
둘째, 공익 및 문화적 기능(숲 문화 발생의 기초)인데 멸가지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①산소제공과 공기정화
②물의 저장과 정화, 야생동물과 어류의 서식처( -"숲은 고기를 모은다."--양분 좋은 물,
숲 그늘아래 지하로 흘림)
③ 홍수방지 및 토사유출방지, 방풍 및 방음과 고온완화 역할,
④ 휴식공간제공(삼림욕-오전, 여름, 침엽수림이 효과적)
⑤ 각종약재제공(식약용인 송화가루, 은행잎의 혈액순환제 징코민, 주목열매의 항암제 탁솔 개발 등)
⑥각종식품제공(송이의 경우 동해안 화강암지역에서 생산량이 많고, 석회암지역은
全無하다. 비쌀 때는 2000년도 기준으로 Kg당 50~60만원을 호가. 표고버섯 재배 등)
최근 30년 간 100억 그루의 식목을 했지만 도시화로 인한 주택건설과 농지확대로 최근 20년 간 18만 3000ha의 산림이 감소됐다는 통계다. 또 공업화와 자동차배기가스로 매년 60억톤의 탄산가스가 방출되며, 또 등산객들의 부주의로 연간 산불발생으로 인한 산림파괴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림의 공익적가치(2000년 기준)연 49조 951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7%로 국민 1인당 106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산의 날을 무심하게 보내는 우리들이 숙지해야할 편린을 긁어모아 본 거다.
동대문 '청암'산악회에 편승하여 찾았던 공작산(2002. 3. 3)을 찾은 이후 만 2년 8개월만의 재회다. 당시는 공작골 입구-삼거리 갈림길(우측 길)-능선안부-정상-안공작재-안부-작은골고개-수타사-주차장(오전 9시35분~오후 2시45분, 4시간 10분 소요)으로 하산하는 코스였으나, 오늘은 공작골 반대방향인 정상의 북쪽 너머 군업리에서 뜨메기골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제4차 RTNAH 정기산행이다.
이강섭소장 대신 천보관광 김군실기사(인천 78바 2222)가 동원됐고, 또 강영성 이사님의 개인사정으로 최영복씨가 발산동까지 차량을 리드하는 수고를 겪었다. 새벽 출발은 현란하도록 순조로운 스타트였다. 홍천읍에서 타고 오던 44번 도로를 이탈하여 정북 방향 공작교를 건너 왕복 2차선 아스팔트가 깔린 406번 도로 쪽으로 좌회전이다.
오전 8시 42분.
보통 때보다 이른 시각에 들머리에 닿았다.
군업리 안말계곡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차했다.
어김없이 찾아든 가을은 붉게 물들였던 온 산을 어느새 스산한 裸木으로 변모시켰다. 무엇보다 하차한 지점 맞은 편에 노랗게 변한 이깔나무 단풍이 너무 고와 보였다. 역산행을 선택한 2명(황-최여사)을 제외한 25명의 행렬은 논둑길을 횡단하면 이내 시멘트로 만든 洑가 있는 군업천이 나온다. 맑은 군업천의 투명한 물 색깔이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渡川하면 남쪽 기슭에 농가 한 가구가 앉아있다. 누군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뱉는다. 오랜 도시생활에서 얻은 염증 때문인가, 아니면 어지러운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리는 심리적 도피인가 모를 일이다. 동쪽으로 난 좁은 강변 길을 따라 이동했다. 棧道를 지나 들머리를 출발한지 10여 분만에 본격적인 산행코스를 알리는 이정표와 산행안내도 간판 앞에 섰다.
<공작산 정상 가는 길 3.4Km, 1시간 50분 소요>
우측으로 꺾여 남쪽으로 올라가는 너른 안말 계곡길이다. 아침햇살을 받아 반사하는 억새꽃이 눈이 아리도록 부시다. 지천으로 깔린 활엽수낙엽은 모든 생물들의 삶 자체를 음미하게 한다. 저마다 주워진 삶에 감사할 줄 알고 세상에 대해 겸손함을 배우는 가을은 天惠의 계절이다. 낙엽 쌓인 미끄러운 길바닥은 디디며 올라가는 계곡은 잡다한 사념들이 질펀하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낙엽이 돌아가는 종착점은 뿌리다.
동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의 고향은 각기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뿌리를 흔히 잊을 때가 많다. 인간도 동식물처럼 마지막 육신을 자연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 새로운 탄생을 열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낙엽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다. 틱닛한 스님의 표현대로,
"구름이 비를 뿌리고 그 비로 나무가 자라고 나무로 종이를 만들 듯이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 있으며 독립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그대가 시인이라면 종이 위에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을 것"
慧眼을 지적한 스님의 권고가 신선한 계곡에 흘러내린다.
만물의 윤회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윤회설의 교과서적 설명은 인도인의 사고에서 출발한다.
오화이도설(五火二道設)!
우파니샤드시대에 왕족 사이에서 신봉되고 있던 윤회관(輪廻觀)이다.
인도인들은 만든 윤회사상은 인도인들의 독특한 발상에 따라 브라만교-힌두교-자이나교-불교 등 공통적 종교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인도인들은 죽으면 화장이란 장례방법을 선택했는데, 영혼은 하늘위로 올라가고 그것이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면 거기에서 식물이 소생한다. 그 식물을 섭취하면 그것이 정액이 되어 모태에 들어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영혼의 순환을 믿었다.
인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길이 두 곳이 있는데, 이름하여 '오화이도설'이다.
<오화설>은 인간이 이 세상에 재생되는 과정을 5개 공희(供犧)의 제화(祭火)로 설명하는 설이다. <이도설>은 해탈한 사람이 가는 신도(神道)로 브라흐만에 도달하는 것과, 선인(善人)이 가는 조도(祖道)를 구별하고, 조도를 취하면 오화설처럼 다시 지상에 재생한다는 설이다. 이 2가지 설은 인도의 모든 종교는 이 윤회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도 초기에는 윤회사상을 받아들이고 설교를 했다고 하지만 53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기독교의 종교회의에서 윤회사상이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이단으로 규정된 후 공개적인 논의가 금지되었고,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디다노는 공공연히 윤회 사상을 가르치다가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성경 곳곳에서도 윤회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으나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死後에도 하느님만이 심판하고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는 一神敎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직도 윤회사상은 이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 Even a chance acquaintance is clue to the karma in a previous life.
우리의 우연한 만남도 인연이다......
언젠가 KBS 무대가 소개한 <윤회설(輪廻說)>이 생각난다.
한 부도덕한 사나이가 죽어 암소로 태어나, 마침내는 그 아들의 손에 도살되는 이야기인데 내용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한 사나이가 죽어서 소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도 암. 수가 뒤바뀌어 황소가 아닌 암소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운명지어진 암소의 생애를 통하여 그는 전생에 아내를 구박하고, 한 처녀를 짓밟은 죄를 뼈저리게 뉘우친다. 송아지 때 그는 그를 극진히 사랑해 주는 농부 아내의 모습에서 그가 짓밟은 처녀 달래를 기억해낸다.
최초의 교미(交尾)에서 그는 너무도 소홀했던 전생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되살리고, 최초의 출산에서 아내의 고통, 육아의 고초를 깨닫고 남편으로서 너무도 무관심했던 자신을 뉘우친다. 그 뉘우침으로 하여 그는 암소로서 인종(忍從)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며 늙어간다. 그가 늙어가자 다정했던 그의 주인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팔아 넘긴다. 그는 그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살장에는 악덕 상인들이 있어, 소를 도살하기 전에 중량을 늘이기 위해 소에게 강제로 물을 먹이고 심한 매질을 한다. 그도 그런 매질을 당할 운명에 놓이자. 인종도 한계가 있다고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는 악덕 상인에게 반항할 결심을 한다. 억센 뿔로 받아 죽일 각오까지 한다.
그러나 그에게 물을 먹이고 매질은 한 그 악덕 상인, 그는 바로 그가 전생에 짓밟은 처녀 달래의 아들이었다. 곧 그는 자기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저간의 사실을 아들에게 전달하려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소의 울음일 뿐, 그의 아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마침내 그는 아들의 손에 도살되어 푸줏간의 한 덩이 고기로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그의 영혼은 소의 육체를 떠났다. 그의 영혼은 다시 윤회하여 딴 육체에 머물 것이다. 어떤 육체가 다음에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직 모르나, 그의 영혼이 소의 생애를 통하여 다분히 정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서양인들이 기독교의 영향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동양인들은 유(儒),불(佛),도(道) 3교의 깊은 영향 속에 태어나고 생활하며 죽어 간다. 특히 불교의 윤회설은 민간에 깊이 뿌리박은 내세관(來世觀)이다.
중생의 영혼은 불멸(不滅)이다. 영혼은 육체와 더불어 멸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차례로 여러 육체로(인간이나 아귀, 축생 6도) 끝없이 전전하며 다시 태어나는 것이 윤회설이며, 이 윤회는 수행을 쌓아 해탈을 얻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우화(寓話)다.
계곡바닥에 눈처럼 쌓인 낙엽을 밟으며 올라가는 만추의 길목에서 교차하는 雜像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윤회설로 발전해 버렸다.
三思而行(또는 一行)이나 三思一言이란 옛말이 있다.
: One action, Three thinking(Speaking)이다.
'Two nose, Two eyes, Two ear, Only one mouth"란 미국 속담과 연계되는 오전이다.
9시 4분.
<정상 가는 길 3.1Km ↑↗밤나무골>
좌측 계류를 건넜다. 계류소리가 청아하다. 몇 차례 계류를 건너다보면 암반 위를 구르는 옥류가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가을풍광에 잠시 행보가 멎는다. 군사지역임을 알리는 낡은 경고안내간판 앞에 섰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던 계곡오르막 계류를 수도 없이 가로질렀다. 이끼가 낀 돌을 잘못 밟거나 헛디뎌 넘어지는 일행도 비일비재하다.
9시 44분.
차츰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오늘기온(25도)으로 보아선 30분 이상 땀을 쏟아야 제 컨디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풍대신 졸참나무·갈참나무·떡갈나무와 진달래 裸木이 빽빽하게 들어선 계곡이다. 잠시 평탄한 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급한 경사가 나온다. 공작폭포를 지나 뜨메기골로 들었다. 한 여름이면 우거진 숲으로 행보가 다소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다.
9시 59분.
<정상 가는 길 1.0Km, 30분 소요>
선두가 후미를 기다리며 다소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마침 중풍으로 인해 어려운 과정을 이기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선두그룹에 끼어 올라오는 '의지의 한국인' 김필웅 사장님의 사정을 일행들에게 소개했다. 동시에 김사장님처럼 꺾이지 않는 역량을 반면교사로 삼기를 요청했다. 일행들이 박수로 그를 맞는다.
이정표는 좌측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다소 험하지만 지름길이 될 직진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오른 계곡은 워밍업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깔딱 오르막이다. 뜨거운 콧김을 30분 이상 뿜어내야만 정상을 밟게된다. 모처럼 동참한 정연묵선생님과 그의 夫君 오정호씨가 선두그룹에 끼어있다. 최인호 선생님은 오늘만큼은 돌봐줄 일행이 없어 부담이 없다며 페이스대로 산행하겠다며 선두대장 바로 뒤를 바짝 따른다. 두터운 스폰지처럼 쌓인 급박한 낙엽 斜面을 오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10시 25분.
정상 북쪽 안부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능선산행이다. 한숨을 몰아쉬고 이어 정상동편 우측 사면을 지나 곧바로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릉 절벽을 만난다. 金공주님의 울상이다. 육산행보는 능숙하나 암릉이나 암벽엔 약점을 가진 그네의 행보를 뒤에서 바라보며 올라갔다. 정영애씨가 절벽 끝에 달린 바위에 올라 아래를 조망할 것을 권했지만 엄살과 함께 그네는 막무가내다.
10시 35분.
정상에 올랐다. 조금 이르게 先登한 일행들이 맞는다.
차례로 올라오는 일행들을 차례로 카메라에 담았다. 모처럼 참여한 정천우 교장님 내외도 가뿐하게 올라섰다. 정상을 밟는 사람마다 힘들었던 표정이 밝게 변한다. 삼각점과 스텐으로 세운 높이 1m 정상표지 삼각기둥 앞에 선 표정들을 담는 렌즈가 재미있다. 2차 산행부터 체중증가로 애를 태우던 정재근 감사님의 행보가 염려스럽다. 본인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오르막엔 심각한 체력적인 도전을 받나보다. 후미대장 홍기호님의 리드가 있으니 염려는 놓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노파심 때문인가.
<삼각점, 1988 재설, 청일리>
<공작산 887m, 춘천 그냥산악회, 1977년 6월>
표지기둥을 만들어 세운 산악회 이름이 <그냥산악회>다.
코믹한 이름에 잠시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정상 동편 공터에는 무인산불감시, 및 기상측후시스템 시설이 서있다. 2년 8개월 전 그대로의 정경이다.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선두는 舊 정상봉우리를 지나 서쪽 안공작재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고 있다. 따끈한 가을기온으로 흥건하게 적셔졌던 전신의 땀이 소슬한 바람이 씻어준다.
사방이 無限際다
동북쪽 멀리 응봉-오대산과 한참 너머로 설악산 정수리들이 장엄한 白頭다.
서북방향으로 가리산이, 동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인 오대산 두로봉에서 갈라져 나온 계방-흥정-태기-운무-발교-오음산 줄기가 부분적으로 병풍을 이룬다. 서쪽으로는 공작의 몸통에 해당되는 공작산 능선이 수타사를 향해 곱게 뻗어있다. 홍천읍을 중심으로 44-54번 도로를 휘감아 돌아 흐르는 홍천강의 감미로운 곡선이 관능적으로 비쳐온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며, 풍치가 아름답고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정상에서 서남쪽 능선 약 6km 아래에 있는 수타사와 노천리까지 이어지는 약 8km의 수타계곡은 갖가지 멋진 바위들과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서쪽 20m 정도 떨어진 맞은편 지점에는 정상과 유사한 크기와 높이의 암봉이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붙어있다. 두 암봉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패어져 있어서 남, 북쪽 양편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왕래하는 병목지점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공작 날개처럼 펼쳐진 능선을 남북을 갈라놓은 지형이다.
10m 길이의 로프를 따라 암릉 지대를 지나 구 봉우리로 이동했다. 돌탑이 보인다.
히말라야 14좌를 정복한 거인들(한국의 엄흥길 44세,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스키 53세,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마르티니 55세) 3명이 평일 오전 9시 도봉산산책에 나섰다.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 도봉산 좁은 산길에서 북적이는 취재진과 등산객들에 사여 인터뷰한 내용이 10월 29일(금) 일간지에 게재됐다. 그들이 기자들에게 흘린 말을 혼자 담기에는 안타까워 옮겨본다.
"산도 아름답고 사람들 마음도 아름답다. 이렇게 많은 등산객이 나와 반겨줄 줄은 몰랐다."
"산에 대한 열정, 산을 오르면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고산등반에 잠복한 치명적인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 나는 늘 즐거웠다."(비엘리스키)
죽음을 이기는 삶의 희열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그의 말이 耳鳴이 되어 떠날 줄 모른다.
삼거리 갈림길로 내려섰다.
<정상 0.1Km← 안공작재↓→내려가는 길 2.1Km>
남서방향 공작의 몸통능선으로 내려서는 길은 잠시 가파르다.
급강하하는 가파른 암릉이 겹친 지점마다 로프가 걸려있다. 능선 좌우에는 진달래 裸木들이 빽빽하다. 오늘따라 행보가 처진 吳이사님 부부에 이어 정교장님 부부와 동행이 됐다.
11시 13분.
안공작재에 내려섰다.
<정상 0.6Km>
움푹 패인 안부에 이정표가 서있고, 낯선 등산객 6~7명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좌측으로 궁지기골과 안공작골을 거쳐 노천리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선명하다. 잠시 꺼졌던 능선은 따라 다시 논스톱으로 급경사 오르막을 쳤다. 울창한 노송림으로 둘러 싼 능선에 굵기가 20Cm 이상 되는 물 박달나무 한 그루가 여전히 고고함을 자랑한다. 갈잎과 솔잎이 혼합된 메마른 낙엽들이 이불처럼 깔려있다. 잠시 심호흡을 위해 뒤를 돌아 봤다. 우뚝한 공작산머리(벼슬)와 양 날개가 사실적으로 머물러 있다.
활엽수 잎과 솔잎이 혼합된 메마른 낙엽들이 이불처럼 깔려있다. 이제 다시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다. 잠시 심호흡을 위해 뒤를 돌아 봤다. 우뚝한 공작산머리(벼슬)와 양 날개가 사실적으로 머물러 있다.
11시 29분. 헬기장에 올라섰다.
770봉이 버티고 섰다. 다시 얕은 오르막이다.
10분만에 770봉에 올라섰다. 홍천강 강줄기가 요염한 곡선을 이룬다. 서쪽 산록사이로 수타계곡 일부가 잡힌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냉동시킨 페트병에 담긴 물로 목을 축였다. 페트병을 싼 舊聞이 된 헌 스포츠 신문지(10월 초)에 언뜻 보인 타이틀 라인을 흥미있는 시선으로 훑었다. 가을 잔치인 2004년 한국프로야구 결산을 <병법>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논술한 舊聞 기사다.
'PS무림' 연륜 vs 패기
김재박·김응용 감독 경험 많고 노련한 '우승 조련자'
김경문·유남호 새내기감독 '성적 기대이상' 상승세
‘마라톤의 영웅’ 고(故) 손기정 옹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전쟁은 파괴의 스포츠이고, 스포츠는 창조를 위한 전쟁이다”
인간의 뜨거운 피 속에 들어 있는 스포츠와 전쟁욕구의 본질에 대한 영웅의 시선은 그랬다.
곰곰이 따져보면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는 전쟁의 속성을 많이 닮았다. 전쟁에서 죽은 적들의 머리를 차고 놀던 놀이에서 비롯된 축구의 기원도 그렇고,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식축구는 사실 땅 따먹기 전쟁이다. 넓은 초원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을 몰아내면서 영토를 넓혀가던 초창기 미국인들의 모습을 스포츠로 포장해 보여주기에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프로야구도 또 다른 전쟁놀이다.
▦야구는 전쟁이다
주군(구단주)의 명령을 받아 군을 정비하고(스프링캠프) 물자를 정비해(프런트의 지원) 전쟁터(경기장)를 돌아다니며 1년 내내 상대와 전쟁(페넌트레이스)을 벌이는 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위, 오, 촉 3국의 전쟁의 모습 그대로다.
게다가 야구는 장수(감독)가 지휘봉을 쥐고 수많은 병사(선수)를 一絲不亂하게 움직여 상대를 물리치는 스포츠다. 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인간이 점수를 올리는 경기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스포츠보다 많은 변화가 있다. 인간 세상사에 있는 희로애락의 모든 것이 야구에 있다. 야구공의 실밥도 공교롭게 108개다.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가 야구공에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로야구를 ‘대하 전쟁드라마’라고 말한다.
▦2004년 강호에서 살아남은 4명의 장수
2004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4일 막을 내렸다. 지난 4월4일 8개 팀이 같은 준비를 마치고 강호에 들어와 서로의 기량을 겨뤘지만 결국 남은 장수는 4명-빛고을의 돌아온 호랑이(歸虎) 유남호, 잠실의 젊은 곰(若熊) 김경문, 달구벌의 늙은 사자(老獅) 김응룡, 화산의 외로운 여우 (孤狐) 김재박-뿐이다. 저마다 다른 리더십을 가진 이들 4명의 장수들은 포스트시즌이라는 또 다른 전투 앞에서 지친 병사들을 다독거리는 한편 상대의 전력과 기세를 살피며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눈앞의 성을 향해 숨을 가다듬고 있다.
동서양을 통틀어 병법에 관해서는 최고로 치는 손자병법의 내용에 이들 4명의 장수를 대입시켜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선 이들은 올해 승리를 따낸 장수로 평가받아 충분하다.
▦손자가 말씀하시길
손자병법 모공편에 보면 장수가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 등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고, 군에 대한 작전지휘 명령 등 권한에서 군주의 견제와 간섭을 받지 않고 장수의 독립된 권한만 가진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4명의 감독이 ‘장수의 5덕’ 가운데 어디에 닮았느냐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하여튼 이들은 5덕의 어떤 부분을 가지고 선수들을 이끌며 4강이라는 일단의 목표를 달성했다. (김종건 기자 marco@sportshankook.co.kr )
어디 스포츠만 전쟁이던가.
무릇 생명 있는 모든 생물의 생존 그 자체가 전쟁이 아니던가.
770봉을 떠나 남서쪽으로 급박하게 내려선 안부에서 선두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강고문님이 준비한 라면에 목을 매고 있나보다. 긴 휴식이다. 준비한 행동식을 나누고, 양대장님이 준비한 마늘주를 나누며 농담이 오갔다. 서울교대 출신인 정묵연(19회)-최인호(13회) 선생님과 정교장(5회)-이준연선생님(12회)과 선후배간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역산행 중이던 황정숙씨로부터 세 번째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기가 무료했던가 보다.
빠른 하산을 기대하는 눈치다.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능선을 따라 모두 일어섰다. 능선 사이로 열린 계곡마다 그림같은 농가의 적막한 평화가 깔려있었다. 660봉을 거쳐 803봉을 향한 행보다. 평탄하다싶던 능선은 어느새 숨넘어가듯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다시 평탄한 능선이 나타난다. 발목까지 차는 푹신한 낙엽깔린 바닥은 그 굴곡을 식별하기 애매하다. 가끔 뒤로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며 즐거운 웃음을 흘린다. 능선좌측엔 신갈나무 군락이, 우측엔 적송군락이 사이좋게 서식지를 확보하여 편안한 자연의 순리와 산림의 세대교체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극상림(極相林)이란 구성 수종이나 양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안정된 산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극상림 상태가 수 천년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꽃가루를 분석해 보면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극상림에는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이 주를 이루며 극상림은 변화가 매우 작고 그 속도 또한 느리다. 그렇지만 아무리 변화가 작은 極上林일지라도 하나 하나의 나무에는 수명이 있다.
나무는 수백 년을 살수는 있어도 수천 년은 살기는 어렵다.
결국 변화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산림에도 항상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 극상림으로 간주되고 있는 경기도 광릉의 소리봉 천연림에도 굵은 줄기가 바람에 쓰러지거나 잘리고, 혹은 병이나 충해를 입어 죽어있는 나무가 상당히 많이 있다.
12시 30분.
803봉에서 바라본 홍천 시가지는 훨씬 가까워 졌다.
강성윤씨가 산록 아래로 펼쳐진 마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自問한다.
"너는 과연 누구며 직업은 무엇이냐?"
물음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답했다.
"네, 인간이란 직업입니다."
554봉으로 이어진 북쪽 사면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이준연 선생님의 행보가 어렵게 보였다. 내리막 행보가 아킬레스건인가 보다. 까다로운 구간에는 로프가 매어져 있다. 몹시 신경이 집중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한참을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한 행동과 함께 진땀을 흘리며 내려서면 편안한 안부지대를 맞는다.
오후 1시 05분.
554봉을 눈앞에 둔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계곡으로 방향을 바꿨다.
고만고만한 굵기와 키의 이깔나무 낙엽송림 지대다. 이곳 안부에서 우측 내리막길을 선택하면 '맞바위 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고도가 상당히 낮아졌음은 육감으로도 알 수 있다. 편안하고 아늑함을 가져도 될 지점이다. 송림이 덮인 얕은 경사로를 내려오면 무덤 1기를 만났다. 烏石으로 만든 <洪川 龍公鱗赫之墓><孺人仁同張氏之墓> 부부합장묘다. 묘소 주위에 있던 100년 생 이상인 소나무 30여 그루가 무참하게 벌목되어 시체처럼 쓰러트려 참람스런 횡포를 목격한 2년 8개월 전의 곱잖은 기억이 생각났다. 낭만이 질펀하게 깔린 솔잎, 굴참, 상수리 낙엽이 적당히 혼합되어 깔린 내리막길이다.
오후 1시 26분.
임도에서 좌측으로 얼마 내려서면 이내 우측 산길로 난 지름길로 바닥 표지 지시대로 우측 숲지대로 들어섰다.
잘 정비된 다른 묘소 1기다.
<孺人慶州李氏順다同之墓>
봉분 주변에 철늦은 제비꽃 몇 개체가 가을 오후의 고독을 곱씹듯 만발하다.
산행 중 분묘는 제2의 이정표다. 별다른 지형적 특징을 말하기 어려울 때 서로의 위치확인과 행보방향을 알려야하는 경우 이 놈을 써먹기 일쑤다.
1시 37분.
맞바위길(홍천군)이란 표지가 명패가 걸린 민가에 내려섰다.
농가에서 얕은 경사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는 시멘트포장 小路다.
완만한 경사를 내려가는 소로에 시멘트 포장소로와 비포장소로가 간헐적으로 반복한다. 좌측 개울엔 바닥 일부만 물기에 적셔있다. 수량이 부족하다. 가을비가 좀 내려야 할 때다. 대체로 가문 가을이다. 우측 산아래 얕은 경사엔 독립농가와 그에 딸린 텃밭이 가는 가을을 보내고 있다.
오후 1시 44분.
마이산 탑사 앞에 있는 원뿔형 석탑과 같은 돌탑 10여기가 울타리처럼 홀립한 <동봉사> 앞이다. 암자 안에선 무슨 공사를 하는지 중장기가 내뿜는 요란한 기계음이 계곡을 흔든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내려갔다. 우측 둔덕에 이국풍의 2층 흰 건물이 서있다.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이 차갑다. 경관을 해친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다. 전국 어느 곳이든 볼만한 경관이 있는 지점엔 으레 있기 마련인 별장이나 펜션형 건축물이다.
1시 52분. 삼거리를 만났다.
<동봉사 가는 길→>
우측으로 방향을 꺾었다. 수타계곡으로의 진입이다.
삼거리에서 合水된 溪流량이 많아지며 제법 넓은 덕치천(시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우측에 서있는 2층집(1층은 시멘트-2층은 목조) 앞마당을 지나자 작은 애완견 한 마리가 우리들을 향해 짖어댄다. 한여름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곳이라 생각했다. 다시 소폭으로 형성된 U자 계곡 우측 경사면은 棧道가 이어간다.
암반 위로 흐르는 수타계곡 변에 쌓인 낙엽이 흥건하다. 낙엽에는 색깔별 종류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단풍나무나 붉나무처럼 紅葉이, 은행나무처럼 黃葉이, 또 참나무 종류처럼 葛葉이 있다. 또 떨켜의 유무에 따라 낙엽수를 구분하기도 한다.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 잎자루와 가지가 붙어있는 부분에 만든 특별한 조직이 바로 떨켜다. 늦가을에 만들어진 떨켜는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코르크화해서 본 줄기의 수분증발이나 해로운 미생물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모든 생물은 살아가기 위해서 주변환경변화에 반응을 감지하고 전달하는 신호물질이 호르몬이다. 식물의 호르몬 중 앱시스산은 식물의 겨울나기를 알려주고 겨울잠을 자도록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참나무종류나 떡깔나무, 또는 담쟁이는 본디 열대성수목이라 떨켜를 만들어 낙엽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잎이 갈색이 되어 마르더라도 잘 떨어지지 않고 겨울 강풍에 의해 떨어지거나, 그 이듬해 돋아나는 새 잎에 밀려 떨어진다. 낙엽수 잎의 수명은 1년이지만 침엽수인 상록수의 경우는 2~3년이다. 새 잎에 의해 밀려 떨어지는데 육안으로 쉽게 볼 수가 없으므로 우리는 영구적인 잎으로 오인한다. 어떤 침엽수의 경우는 30년의 수명을 가진 수종도 있다는 보고다. 낙엽은 토양을 기름지게 하여 새 생명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낙엽을 밟으며 잡다한 생각을 가는 대로 끄적거려 본 거다.
모든 자연은 會者定離요, 離者定會의 싸이클이 아니던가.
공작산에서 발원한 덕지천 상류를 수타계곡이라 한다.
수타사에서 동면 노천리까지 12Km에 이르는 계곡에는 너른 암반과 仙女탕이라 부를만한 沼가 여러 곳이다. 단풍시즌은 계곡자체를 붉게 물들여 장관을 이룬다. 봄 철쭉-가을단풍-겨울 雪山을 보기 위해 등산객들마다 잊지 않고 선호하는 공작산이다.
경기도 양평군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어 동해안의 오대산까지 포함하고 있는 홍천군은 우리나라에서 면적이 가장 큰 군이다. 역사유적이나 고찰, 청정계곡이 아주 많다. 홍천군에서도 첫 손에 꼽을만한 관광지는 홍천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작산 수타사다. 수타사는 고즈넉한 고찰의 모습도 좋지만, 절을 감싸며 동남쪽으로 뻗은 12km의 수타사 계곡은 여름철 휴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수타사 뒤 공작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은 수타사를 감싸며 흘러 홍천강과 합류하는데, 물이 아주 깨끗하고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다. 수타사 계곡은 급류를 이루는 곳도 있지만, 넓게 여울져 흘러 가족과 함께 물놀이하기에도 적당한 곳이다. 동면 노천리에서 덕치리로 흐르는 수타사 계곡은 맑은 계곡과 아름다운 벼랑, 조그마한 자갈들과 하얀 모래밭이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2시 04분.
<수타사 1.6Km (귕소) 신봉마을 1.5Km>
약수봉 등산로 안내도 간판과 이정표가 서있는 지점이다.
듣기에 이상하고 생소한 이름의 '귕소'아래로 내려갔다. 너른 하얀 암반에 선두 일행들이 휴식 겸 땀을 씻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수온은 예상대로 냉담하리만치 차가웠다. 일행들을 앞질러 내려간 이희용씨(일행 권순천씨)로부터 전화다. 554봉을 올라가 작은골고개를 거쳐 굴은골 방면으로 내려섰다가 되돌아오는 헤프닝을 열었다는 전언이다. 1시간 정도 산행을 더 치른 셈이다. 그 그룹에 최인호 선생님이 합류해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다.
수타계곡으로 내려오는 계곡변에는 홍수 때를 대비해 잔도가 만들어져 있는 점이 옛날과 다른 모습이었다. 암반 사이에 깊게 패인 소(용담)가 있다. 암반주위에는 홍수 시 추락이나 미끄러짐을 예방하는 가드 로프가 매어져 있다. 가을 탐승을 위한 관광객도 드문드문 보인다. 좌측 100m 전방에 수타사가 그림 같은 자태로 반겨준다.
<수타사↔용담 가는 길>
2시 40분.
수타사 입구 계곡방축 여지에 진하디 진한 난장이 패랭이꽃을 심어두었다.
척박한 돌밭임에도 불구하고 화사하게 핀 꽃 색깔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카메라에 실었다.
수타사에는 일주문이 없고 대신 우리의 전통 민속의 하나인 장승이 좌우에 버티고 있어야 했다. 우측엔 천하대장군, 좌측엔 여장군이 건강한 표정이 3년 전과 다름없이 건강한 표정을 기대했으나 수타사 입구 계류를 가른 신설한 공작교(돌다리)가 대신하고 있었고, 두 남녀 장승 대신 그 목을 잘라 심어둔 대장군장승 하나가 수타교 옆에 植木하듯 처참하게 말뚝처럼 박혀있다. 승려들의 소행인지, 아니면 홍천군의 소행인지 분간은 어렵지만 서운하고 괫심한 생각이 들어 못내 불편했다.
암반 사이에 깊게 패인 소(용담)가 있다. 암반주위에는 홍수 시 추락이나 미끄러짐을 예방하는 가드 로프가 매어져 있다. 좌측 100m 전방에 수타사가 그림 같은 자태다.
수타사.
수타사에는 일주문이 없고 바로 천왕문과 비슷한 봉황문으로 접어들게 된다.
봉황문을 지나면 만나는 흥회루는 법당을 향해 예배를 드리거나 법회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한쪽에는 목어와 법고 그리고 범종이 보관되어 있다.
흥회루와 일직선상에 놓여진 대적광전의 규모는 매우 아담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수타사 법당(=본당)이름은 대적광전이다. 영원한 진리의 몸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대부분 사찰 본당명칭은 대웅(보)전인데 수타사는 본당을 대적광전, 副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원통보전(관세음 보살을 모신 곳)등 10여 동의 佛宇가 함께 갖고 있는 이색적인 사찰이다. 본당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균형이 잘 잡힌 전면과 측면이 3칸으로 조선 후기 불교건축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당 안에 모신 尊像과 협시보살 및 후불탱화를 구분하면 빠른 이해가 된다.
古色蒼然한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을 그 맞은편 누각의 그늘에 서서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한동안 머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천황문 양쪽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상은 조선조 숙종 2년(1676년)에 조성된 것으로,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과 유별나게 과장된 몸짓이 재미있다. 뜰 안의 샘물 맛도 좋다.
대적광전 법당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수타사 원터는 계류 건너 우측에 석탑이 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수타사의 원래 절터라 쓰여있다. 대적광전 옆으로는 삼성각과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원통보전이다.
이렇게 수타사를 둘러보는 데는 별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만큼 작은 사찰이다. 하지만 꽤 오랜 역사가 숨어 있고 심우산방 옆에 있는 강원도 보호수 주목 한 그루는 잡귀들로부터 이 수타사를 보호한다는 설화도 깃들어 있으니 수타사 계곡을 찾을 때에는 꼭 한번 들어볼 만하다. 수타사 뒤편으로는 특이하게도 삼성각과 성황당이 있다. 불교뿐 아니라 우리의 민속신앙까지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한국불교 본래의 관용을 보이는 가람배치에 한결 친근함을 느낀다.
수타사는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다.
708년 창건이래 여러 차례 재난을 겪었다. 그러면서 여러 번 중창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성덕왕7년(708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절 안에는 사천왕상을 비롯하여 대적광전, 봉황문, 칠성각 등 고풍스런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어 고찰의 면모를 일게되고, 키 큰 나무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어 절은 한결 푸근한 인상을 준다. 壽陀寺는 신라 성덕왕 때(708년) 원효대사가 '日月寺'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조선 선조2년(1569) 풍수지리에 의해 지금의 위치로 옮긴 후 '壽墮寺'라 개칭하였다.
절 이름을 바꾼 후부터 스님 한 사람씩 절 뒤편 깊숙한 소에 빠져 죽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어느 해 이곳을 지나가던 떠돌이 중이 이야기를 듣고 사고의 원인은 사찰 이름 탓이라고 했다. '물水때'자와 '떨어질墮'에서 '목숨壽, 비탈陀'자, 즉 '壽陀寺' 로 개명한 이후 사고가 멎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여러 스님에 의해 수타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세조4년(1458년)에 간행된 월인석보 2권이 사천왕상 안에서 발견된 바 있다.
사찰 내 사천왕상 안에서 세조 4년(1458년)에 간행한 월인석보(보물 745호) 2권(17권과 18권)이 발견되어 한때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다.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후 최초로 한글로 나온 불교서적으로 당시의 한글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사찰건축물과 관련된 몇 가지 사안을 옮겨본다.
수타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짧지만 울창한 전나무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다. 오른편 우거진 전나무 송림 사이로 보이는 부도밭에는 10기의 부도와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중에는 8각 원당현의 부도 5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이 부도들 중에는 이름을 판독할 수 있는 홍우당, 서곡당, 중봉당, 청송당, 기허당 등은 부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오후 2시 45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군업리에서 출발, 뜨메기골-정상-770봉-맞바위고개-동봉사-수타사계곡을 거쳐 수타사 바로 아래 주차장에 이르는 10Km 거리에 산행소요시간은 6시간 25분간이다. 주차장 우측 시냇가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한산한 민박 및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2002년 3월 청암산악회 공작산행 때는 오전 9시 35분 출발, 오후 2시 50분에 산행을 종료, 개인 소요시간은 4시간 10분간이었던 후기를 남긴바 있다.
어제 전화예약과, 逆산행하는 황정숙씨를 통해 직접 확인한 감자바우 산골식당에서 맞는 식사시간이다. 두부전골(한 테이블 4인씩)과 부대반찬이 기대하지 않았던 안주였다. 최영복씨가 특별히 마련한 죠니워커는 어느 틈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작 주인은 한잔이나 마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흥겹고 흔쾌했던 식사시간은 황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생활의 즐거움의 하나가 제시간보다 이르게 몰래 도시락 먹는 재미였는데, 등산을 마치고 나누는 최상의 즐거움은 바로 식사시간이 아닌가. 대궁밥이면 어떻고, 대궁술이면 어떠랴. 수저가 가는 대로, 또 닿는 대로 주고받는 음식과 대화가 이 아니 즐거우랴.
오후 4시 정각.
예정대로 수타사 앞 주차장을 제법 여유롭게 출발한 시각이다.
긴 수타溪谷을 벗어나 동면 석초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홍천 시내로 들어서는 44번 도로를 만난 버스는 우회전이다.
오후 5시 40분.
용문을 지나면서 유례없는 지, 정체를 만났다. 비몽사몽의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밖을 내다보니 양수리를 막 지나고 있다. 歸京하는 경강 국도는 이른 시간이건만 상습적으로 지·정체(오후 5시~9시 사이)가 반복되는 구간이다. 징그러운 지체시간은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했다. 김군실 기사님도 이런 정체를 처음 겪는다며 혀를 찬다.
밤 9시5분.
팔당대교에 접어들며 숨통이 트였다.
적어도 밤 8시 전후해서 서울에 닿으리란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생맥주 파티라도 치를 계획이 수포화됐다. 모두가 지친 표정들이다. 산행으로 인한 피로가 아니라, 차량지체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가 빚은 피로다. 미사리 강변에 즐비한 각종 유흥점의 현란한 조명이 흐느끼듯 명멸하고 있다. 밤의 세계는 다른 내일을 기약하지 않던가.
밤 9시 45분.
발산역에 내렸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그리웠다.
명년 계획을 心算으로 주무르며 귀가하는 발끝이 흔들렸다.
바보 목록.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남의 욕을 많이 하는 사람.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사람.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
사고의 깊이보다 목소리가 더 큰 사람.
얕은 이치를 깨닫고 성자가 된 듯이 날뛰는 사람.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능력 있다고 말하는 사람.
조금 쉬우면 시시하다 하고, 조금 어려우면 포기하는 사람.
바람직하지 않은 특정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지혜가 짧은 줄도 모르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설교하는 사람.
조그만 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큰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
자기보다 조금 못나 보이면 경멸하고, 조금 나아 보이면 주눅드는 사람.
자신의 주장은 열심히 피력하고 남이 이야기 할 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남의 어려운 체험을 들으면 자기도 10년 전에 체험했다고 늘 말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 조금도 관련 없는 자신의 신변 사항을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
절대로, 죽어도,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등 극단적인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바보 Babo
환자.
정신병자.
이기적 존재.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교 통 : ①대중버스[동서울터미널~홍천 06:10~20:3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
홍천버스터미널~노천리 06;20~20:00까지 1일 7차례 운행, 공작골 하차]
홍천터미널~수타사 09:10~17:40까지 1일 4차례 운행]
②승용차[서울-양평 국도 44번-홍천-동면-공작골]
*도로안내 : 1) 홍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홍천4거리 - 우회전 - 우회전 - 노천
방면 444번 지방도로 - 4.4 km - 수타사 입구 표시 - 좌회전 -
800m - 좌회전 - 400m - 삼거리 - 좌회전 - 2.6km - 수타사 입구
주차장.
2) 홍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홍천4거리 - 우회전 - 우회전 - 노천
방면 444번 지방도로 - 4.5 km - 3거리(동면 면사무소와 속초국민
학교) - 좌회전 - 수타사 입구
*찾아가는 길(자가운전)
팔당대교-양평 경유 6번 국도-홍천으로 이어진 44번 신 도로로 직진-연봉삼거리에서 우회전-인제, 구성포 방면 44번 국도로 직진-오른쪽으로 팔레스 모텔을 지나서 바로 첫 번째 신호등-우측으로 노천을 가르치는 444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수타사 이정표-이 길을 따라 직진을-약 10km 쯤 달리면 길 왼쪽으로 수타사 이정표-소구니 강변이라 쓰여 있는 곳에서 좌회전-소구니 강변을 끼고 조금 달리다가 좌측 길-세화교, 덕치교를 지나면 수타사 계곡 이정표를 보고 좌측 길을 타고 직진하면 수타사계곡 주차장 도착
*숙 박 :
-홍천읍[홍천관광호텔(033-433-9111), 강변장(-435-0051)
-수타사[부림장(-435-5673), 보석장(-435-3690),
-민박(느티나무집-433-6292, 통나무집 -433-6520, 1호 민박 -433-6327
민남홍 436-6838, 박건환 436-6296, 안태식 436-6344, 한상철 436-6555)
*맛 집 :
-홍천읍 입구[양지말 화로구이 (양념 돼지구이) 033-435-7533, 1인분 7,000원]
-홍천 시내[인정식당(-434-3187 양곱창·양회), 만석집(-434-2139 돌솥밥)]
-수타사 입구[느티나무집(033-433-6292 매운탕·버섯전골), 돌집민박집(-436-0751) 감자바우식당(-436-0752), 수타계곡돌집(-436-4641)→동면사무소( -436-6301)]
-주변업소 : 수타계곡돌집 (촌떡, 막국수전문 " -436-4641
종점 식당(산채비빔밥, 도토리묵 " -433-7698)
-화로숯불구이 읍내로 들어서기 직전 오안리 마을 : 한방집 033-434-5792,
다들림집 435-0895, 머슴집 435-3592, 양지말집 435-1555, 옛날집 435-8613.
-홍천읍 와동리 잠수교 건너 동해동태찜(033-435-2100)
*기 타 :
-홍천장[1-6일 채소·산나물·영지·버섯·막장·서면기름세트·표고버섯·옥선주]
-홍천온천[033-435-5000, 02-573-5516 북방면 소매곡리 소재, 약 알카리성
중탄산나토륨 온천→숙박 (홍화장; 한실 양실 스위트름)]
-수타사 (033-436-6611)
-주요문화재 : 수타사 대적광전(지방문화재 17호), 월인석보(보물745호)
수타사 동종(보물 11-3호), 사천왕상(유형문화재121호)
삼층석탑(문화재 자료 11호), 홍우당 부도(문화재료15호)
-주변명소 : 공작산, 수타사, 대명홍천스키장, 홍천북방온천
(작성기준일 2004년 09월21일)
-홍천군은 매년 여름 찰옥수수 축제[8월8일부터 8월10일까지 홍천군 청소년수련원(두촌면 역내리 가리산 자연휴양임 입구], 8월말까지 대로변 각 요소에서 특판(행사 안내 033-430-2371~2).
첫댓글 꼭 같은길을 걸어왔건만..... 난 그저 " 숨차다! 절경이로군! "하는 생각밖엔 없었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