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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마당 ☞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찾아서
“방가 방가” 반갑다
“하이루” 안녕이라는 말이랍니다.
컴퓨터 채팅어를 보면 이게 무슨 뜻인가 싶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 한글이 얼마나 과학으로 만들어 진 글인가는 이미 세계에서 인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글의 주인인 우리들은 어떤가요?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외국어로 쓰여진 간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렇게 가게 이름을 지으면 어쩐지 멋있게 보인다나 뭐라나요.
말과 글은 그 나라의 정신이고 혼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뒤 성을 바꾸고 말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은 우리의 정신을 없애려 했던 거지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우리말과 글을 망가뜨리는 지를 우리 친구들이 스스로 깨달아야지요. 올바른 말과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창원 상가☆
우리말과 글을 쓰자!
정지원 (창원 토월초등 5)
요즘 간판이나 우리가 쓰고 있는 말에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무척 많다. 우리 한글은 겨레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으뜸가는 과학적인 글자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창적으로 만든 글자이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글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복잡한 변화를 하여 지금의 글자가 되거나 남의 글자를 흉내내거나 빌린 것이다.
그러나 한글만은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이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글을 두고 여전히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 이다. 그들은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즉각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땅의 여론, 민주정치는 잃어버릴 것”이라고 협박까지 한다. 게다가 한자를 모른다고 문맹이라고 한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한자를 많이 사용하던 신문조차도 앞 다투어 한글 전용 쪽으로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고 있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얼이요, 넋이다. 이런 한글을 훼손시킨다면 우리 겨레의 얼과 넋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우 말과 글을 되도록이면 많이 쓰고 외래어와 외국어를 조금만 쓰도록 노력 해보자.
☆창원 상가☆
깨끗한 우리말을 쓰자!
정상원 (창원 토월초등 5)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외래어나 외국어뿐이다. 간판을 봐도 거의 반은 외래어, 외국어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언제나 영어가 쓰여져 있다. 지금 내 옷에는 영어가 쓰여져 있다. 나는 지금 영어로 꾸며져 있는 이 옷이 아주 부끄럽다. 그냥 우리말로 <이쁜이, 멋쟁이> 라고 쓰면 될 것을 ‘Lady and Gentleman’이라고 쓴다.
우리말과 우리의 얼이 점점 사라져 가려고 한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얼은 결국 사라져 우리는 식민지가 될 것이다. 문화의 식민지 말이다. 이제는 우리 글이 소중하다고 생각만 하지말고 실천을 했으면 좋겠다.
우선 되도록이면 좋은 우리말을 쓰길 바란다. 예를 들면 ‘야 너 이 스커트 짱이다’로 할 게 아니라. ‘야 너 치마 예쁘다.’로 말이다. 또는 ‘캡’을 ‘최고다’로 쓰고 ‘짱’을 멋지다 좋다 로 써 보자. 또 ‘목전’ 을 눈앞으로 고쳐 쓰고 ‘장발’을 긴머리라고 고쳐 쓰면 된다. 이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고쳐 나가면 어느새 우리말만 써는 어린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창원 상가☆
물건도 가지가지 사람도 가지가지
‘무지개’
서지원 (창원 남양초등 5)
굴렁쇠 기자들이 모여 창원 중앙동에 있는 간판을 둘러보았다. 둘러보니 의외로 외래어로 된 간판이 많았다. 예를 들면 바캉스, 코코, 레밍스 들이 있었다. 외래어로 지은 가게에 들어가서 아줌마나 아저씨께 간판을 지으신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이상하게도 외래어로 된 가계는 주인이 없다는 둥 손님이 많아서 안 된다 둥 핑계를 대면서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았다. 외래어로 지은 간판은 폼만 나고 그 가게에 있는 아줌마들이 불친절했다.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가게에 들어가 보니 아줌마들이 웃으면서 정성껏 대답해 주시고 장난도 치셨다. ‘청장군 생오리 숯불구이’라는 가게에 있는 아줌마는 “청둥오리 요리 집이거든 청둥오리가 귀엽잖아 그래서 그냥 아줌마가 지은 이름이야.” 라고 하셨다 또 ‘바지천국’ 에 가서 여쭤보니 아줌마 두 분이 “바지천국을 어떻게 지었냐고? 바지가 많으니까 그렇지.” 하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이런 것을 보고는 ‘역시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간판 주인들은 너무 친절해!’ 라고 생각했다. ‘외래어로 지은 간판은 멋만 부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우리를 귀찮게 하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만약에 간판 이름을 짓는다면 ‘무지개’ 라고 짓고 싶다. 그 이유는 무지개는 여러 가지 색깔이니까 여러 물건이 다 있고 여러 사람들이 다를 수 있다는 느낌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람들이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창원 상가☆
우리말을 쓰는 북한
은재헌 (창원 남양초등 5)
굴렁쇠 친구들과 중앙동에 거리 간판 조사를 하러 나갔다.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 없이 보아오던 간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니 여기저기 외국어나 외래어로 된 말 천국이었다. 우리말과 외국어를 나누어 조사를 해보니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것이 70%가 넘었다. 너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가거나 멋을 내려고 그러는 것 같다. 멋도 좋지만 나는 우리말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을 때도 우리말에 얼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말을 못쓰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와 사정이 틀리다. 순수한 우리말을 그대로 지키고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말을 더 많이 쓰는 이유는 모두들 쉬운 우리말로 정보를 나누어 가지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북한이 우리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우리도 북한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창원 상가☆
말과 글을 지켜야 겨레가 산다
이영일 (창원 남양초등 5)
10월인데도 볕이 따가운 것 같다. 우리는 성산 아트홀에서 굴렁쇠 아저씨를 만나 우리동네 간판 조사를 했다. 간판조사를 하다보니 느낀 점이 있었다. 외국어로 된 간판이 우리말로 된 간판보다 훨씬 더 많았다. 말로만 외래어와 외국어 간판이 많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눈으로 확인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어쩔 때는 나라를 빼앗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이 잘못한다고 반미 운동을 하는 어른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적인 미국의 식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는 가게 주인들이 생각을 가지고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제 2의 식민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글의 우수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컴퓨터 채팅을 하면서 함부로 글을 쓰면 안될 것 같다.
열마당 ☞ 여러 곳과 우리 풀꽃을 찾아서
토요일 오후 짬짬이 시간을 내서 우리둘레에 있는 기관을 찾았습니다. 말로만 듣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면 훨씬 더 실감이 나게 마련이지요.
신문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 시의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외국인 노동자상담소에서 우리나라 공장에서 이주 노동자들 인권은 제대로 지켜주는지를 알아 봤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기관들이 그런 기회를 통해 좀더 친숙하게 느껴지고 하는 일도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자연을 찾을 때마다 틈틈이 풀꽃공부도 함께 했습니다. 작은 들풀 하나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자연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첫 걸음이니까요.
☆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외국인 노동자의 어려움
김누리 (창원 남양초등 4)
굴렁쇠 기자 친구들과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에 갔다. 가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굴렁쇠 아저씨의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외국인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고, 다쳐도 치료도 제대로 해주는 사장도 있다고 하였다. 놀랐고 안타까웠다.
그 다음 ‘알리’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은 파키스탄에서 왔고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담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묻고 하다보니 노동자들은 참 힘들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16-19시간 정도까지 일하고 외출도 못 한다고 했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하다 여자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왠지 어색하기도 했다. 돌아와서 글을 썼다.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많이 알게 되었다. 도와주고 싶고 더 자세히 알고 싶다.
☆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외국인 노동자 아저씨 아줌마들 힘내세요!
고운나 (창원 온천초등 4)
저는 창원 온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운나라고 해요. 아저씨, 아줌마 하루에 10시간 많게는 16시간씩 일하시는데 삼십 이 만원-오십 육 만원 밖에 못 받는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세요?
정말이면 큰일이네요. 우리나라 국민도 아니시고 외국 분이신데… 아저씨 아줌마 어렵더라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그런데 창원 어느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출도 못하게 하고 다쳐도 보상도 안 해줬다는데 정말 힘드시겠어요.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전태일이라는 사람을 아세요? 그 사람은 노동자들을 위하여 스무 두 살까지 열심히 일을 하신 분이예요. 스무 두 살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노동자들을 걱정했는데 그러니까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고 포기하지 마시고 힘 내세요.
노동자 아저씨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2002년 10월 19일
노동자 아저씨, 아줌마들을 도와주고 싶은 운나 올림
☆창원시 의회☆
한글로 이름을 쓰면 안되나
고세권 (창원 용남초등 5)
굴렁쇠 어린이 기자 모임에서 창원 시의회에 다녀왔다. 창원 시청 옆에 시의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저씨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정동화 시의회 의원님께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정동화 의원님께서 시의회는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다시 의원님을 따라 3층에 있는 본 회의장으로 갔다. TV에서 본 서울의 회의장보다는 규모(크기)는 작았지만 실제로 회의장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냥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한문으로 적혀 있는 이름! 말이 쉬워야 겨레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순수한 우리나라 말을 좀 쓰면 좋겠다.
굴렁쇠 아저씨는 시의회에 대해 얘기 해 주시다가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 해 주셨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반대 독재에 관해 쭉 설명을 해 주셨다. 아저씨께서 설명을 마치고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셨다. 과연 우리나라 국회 의원들은 민주주의 회의를 하는 것일까? 순간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지난번 TV에서 국회의원들이 조용히 회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히 회의를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항상 자기 의견만 내세우고 남의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고 시끄럽게 싸우면서 회의를했기 때문이다. 왜? 어른들은 우리에게 올바르고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면서 어른들은 나쁘게 행동하는 것일까?
다음부터는 국회의원들이 조용히 회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창원 소답동 . 용지공원☆
‘고향의 봄’ 이원수 선생님
진규빈 (창원 토월초등 4)
이원수 선생님이 지으신 것 중에 훌륭한 고향의 봄 노래기념비가 용지공원에 있다. 이원수 선생님은 동시와 노래를 많이 지으셨다. 물오리, 고향의 봄, 겨울나무… 아주 좋은 내용들이다.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이원수 선생님은 언제나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사시고 어린이에게 희망을 심어주신 분이다.
이원수 선생님의 고향은 창원 소답동이다. 소답동의 풍경을 보고 고향의 봄을 지으셨다. 원래는 고향이 양산이지만 1년밖에 살지 않아서 소답동이 고향이 되셨다. 처음에는 고향의 봄을 누가 지었는지 몰랐다. 이원수 선생님이란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차츰차츰 이원수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이원수 선생님의 부인인 최순애 여사님도 이원수 선생님을 많이 도와주셨다. 이원수 선생님과 싸움을 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들은 이원수 선생님께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나까무라라는 사람은 이원수 선생님을 엄청 많이 조사하고 존경하는데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원수 선생님을 잘 모르고 있다. 이원수 선생님은 아주 존경스러운 분이다.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계셨던 게 자랑스럽다.
☆경남 도민일보사☆
신문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세권 (창원 웅남초등 5)
‘경남 도민일보’를 만드는 신문사에 다녀왔다. 신문사 4층에서 기자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회의실에서 기다렸다. 이성진 기자 아저씨가 오셔서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아주 자세히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 주셨다.
신문사에는 취재기자, 편집기자, 사진기자, 교열기자가 있다. 취재기자가 아침 일찍 취재를 하러 나가면 신문사에서 취재지시를 내려 지시대로 기자는 취재를 하게된다. 오후에 돌아오면 기사를 작성하고 데스크에서 검사를 받는다. 그 다음 편집기자에게 제출을 해 다시 검사를 하고 만약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으면 그 기사는 취재기자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 검사를 통과하면 편집부데스크가 다시 검사를 하고 편집국장이 마지막으로 검사를 하게 된다. 교열기자가 오타나 제목을 붙여준다. 그 과정을 거친 다음 편집부가 레이아웃을 하고 필름이 만들어지면 윤전소로 보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문은 다음날 새벽 4시경에 여러 가정으로 전달된다.
옛날에는 도장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찍어 신문을 만들었지만 요즈음에는 컴퓨터로 자판을 치면 신문이 만들어지는데 그런 것을 C.T.S라고 한다. 또 취재부, 편집부, 사진부, 교열팀 외에도 신문사에는 여러 분야의 팀들이 있었다.
난 신문이 취재기자가 취재만 하면 인쇄를 통해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여러 과정을 거쳐 아주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든 쉽게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산 교도소☆
교도소가 없다면
오상훈 (창원 토월초등 4)
우리는 오늘 마산 교도소에 갔다. 가면서 그곳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범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교도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나쁜 사람이 우글우글 할 것이다. 살인자는 죄 없는 사람을 죽일 것이고 사기치는 사람이 많아 재산 피해가 많을 것이다.
법이 없다면 힘이 없는 사람은 보호를 받지 못해 살지 못할 세상이 될 것이다. 법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제일 좋겠지만 그런 시대는 아직 멀었다. 왜냐하면 하루에 많으면 30명이 넘게 들어온다고 한다. 이 좁은 마산 교도소에도 2천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서 다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교도소라면 좋겠다.
☆창녕 목포늪☆
물 속에 살고 있는 식물들
구슬혜 (김해 월산초등 5)
우포늪은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오늘 우리기자단이 찾은 곳은 목포늪이다. 목포늪은 우포늪 만큼이나 볼 것이 많았다.
목포늪에는 많은 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개구리밥, 어리연꽃, 자라풀, 마름, 갈대 등을 보았는데 그 중에 자라풀이 제일 신기했다. 자라풀은 연못에서 사는 수중식물인데 잎은 둥글고 심장모양이다. 뒷면이 자라등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겨서 자라풀이라고 한다. 잎 중간에는 조금마한 공기주머니가 있었다.
물 속에 사는 식물들은 물 속에서 살기 위해 특징을 가지고 있다.그 리고 그런 식물들이 물을 깨끗하게 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창원 주남 저수지☆
새와 풀꽃
이주용 (창원 토월초등 3)
주남저수지에는 쇠무릎, 억새, 갈대, 도깨비바늘, 자리공이 있다. 도깨비바늘은 막대기처럼 생긴 것에 조그만 막대기 세 개가 있다. 그리고 옷에 달라붙는다. 갈대는 나무에 털이 붙어있다. 억새는 들에 있고 갈대는 물가에 많다고 한다. 또 주남저수지 가는 길에는 크다란 음나무가 있다.
그리고 주남저수지에는 새들도 많다. 재두루미, 청둥오리, 고니는 백조다. 깃털이 하얗고 아름답다. 두루미는 학이다. 다리가 길다.
주남저수지가 김해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고장에 있고 주남저수지는 유명해서 난 참 좋다.
☆양산 통도사☆
나도 풀꽃처럼
특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동현 (김해 계동초등 4)
양산 통도사에서 단청을 하고 서원암으로 풀꽃공부를 하러갔다. 먼저 구절초와 쑥부쟁이에 대해서 배웠다. 들국화 중에는 하얀색 들국화와 보라색 들국화가 있다. 하얀색은 구절초고 보라색은 쑥부쟁이다.
국화과 구절초는 오월 단오 때가 되면 다섯 마디가 되고 9월 9일 날에는 아홉 마디가 되어 구절초라 부른다. 또 흰 모양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고 해 신선초라고도 한다.
그리고 물봉선이 많이 있었는데 손을 대면 뻥 터지는 물봉선은 봉황이라는 뜻의 봉과 신선이라는 뜻의 선이 합해졌다고 한다.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꽃은 다트처럼 옷에 착착 달라붙는 가막사리이다. 나도 풀꽃처럼 특징을 가졌으면 좋겠다.
☆진해 웅천 왜성☆
쑥부쟁이 전설
박지현 (창원 토월초등 4)
오늘은 진해 웅천에 있는 왜성에 올라갔다. 왜성은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의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올라가면서 쑥부쟁이, 구절초, 도깨비바늘, 쇠무릎을 보았다. 옷에 도깨비바늘이랑 쇠무릎이 붙었다.
오늘은 쑥부쟁이의 전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항상 먹고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이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이나 산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열심히 캐왔다. 이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이라는 뜻의 쑥부쟁이라 불렀다. 이 처녀가 쑥을 캐러 다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쓰러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라고 불렀단다.
나는 이 꽃을 볼 때마다 그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굴렁쇠 아저씨와 함께한 체험 글 모음
일곱 살 때 나, 지금 나
펴낸곳 어린이 신문 굴렁쇠 경남지사
펴낸날 2003년 12월 30일
편지통 chan903@chollian.net
누리집 www.hikid.net-경남지사 이야기
소리통 ☎ 055)231-5274, 011-844-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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