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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전하면 더 행복해질까?(La science nous menace-t-elle? 2003)
에티엔 클렝, 지선경, 민음in 24, 2006, P. 76.
- 에티엔 클렝(Etienne Klein, 1958-) 프랑스 물리학자. 파리상트랄 학교 졸업 이론 물리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과학철학으로 박사. 시간이 현존하는가? (Le temps existe-t-il?, 2002, 과학은 우리를 위협할까? (La science nous menace-t-elle?, 2003), 시간 배달부는 결코 두 번 벨을 울리지 않는가(Le facteur temps ne sonne jamais deux fois, 2007, 물질의 비밀들(Les secrets de la matière, 2015) [현상학적 태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자로서 과학의 입장을 고수하게 되면 주지주의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다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회현상 중에서 노래방과 피씨방이 있다. 이 두 가지가 함축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손바닥에 쥐어준 스마트폰을 합하여 이 셋은 하나의 문화형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술의 도움으로 편리를 구가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누릴 본래적인 것이 아니다. 긴장과 노력을 하지 않는 신체는 타성에 빠져들어 물체화 될 우려가 있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명상과 선정의 길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랑이 같은 기술의 유용성이 49퍼센트 정도, 빨강이 같은 자연 속에서 노력이 51퍼센트 정도의 연관 관계로 사회가 이루어져 간다면 그나마 행복이나 즐거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아니다, 그러나 편리하긴 할 꺼다. 그래도 인간 자신이 움직여서 몸에 새로운 활동성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과학은 새로운 활동성을 넓혀 줄수도 있다는 점에서, 즉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 신체의 노력을 어떤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극지를 탐험하기 위해 장비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노력과 몸대주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기술에 맡긴 인간이 불행과 두려움을 더 많이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과 진보를 같은 방향으로 놓았다. 너무 과학의 발전을 강조하면 진보가 인간을 기만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진보란 기술에 의해 인간의 활동의 영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벩송이 재미있는 표현을 한적이 있다. 데카르트 이래호 400년 동안 물체 또는 물질을 다루는 방식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우렸는데, 영혼 즉 인격에 대해 고민했더라면 현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진보와 빨강이 인민의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있지, 몇몇 소수, 다수 또는 99퍼센트라 하더라도 일부 소수를 배제하면서 삶의 질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 수탈하는 방식과 같다고 본다. 인본주의로 나가는 길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로 가는 길에 노력과 긴장을 해야 한다. 이 긴장의 노력은, 추적(秋適 1246-1317)의 명심보감(明心寶鑑, 1303), 「계성(戒性)」편에서 자왈(子曰), “百行之本 忍之爲上”(백행지본 인지위상)에 나오는 인(忍)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백행지본 인지위상 ...”이란 계성편의 글은 공자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추적이 그렇게 쓰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나로서도 이것을 찾아보고 전호근에게 물어본 것은 공자가 인(忍)을 강조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忍)과 인(仁)을 같은 의미로 썼을까? / 글자를 바꾸어 놓았다고 하면, 추적이 공자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은 것이고, 같은 의미로 썼다고 하면, 공자의 논어에 그와 비슷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기에 추적의 고의성이 있다고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 자왈을 빼고, 원문이 추적의 글이라 치면 인(忍)자를 강조한 것은 유가적이라기보다 묵가적이 아닐까 한다. ] 딴 길로 빠졌는데, 천성(본성)을 지니고 살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노력이 먼저이고 다음이 과학을 동원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질병과 위험에 대한 것은 과학이 훨씬 더 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로서는 인간적 관계에서 생긴 문제거리는 과학이 아니라 인도주의가 먼저라는 것이다. (48Q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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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 발전하면 더 행복해질까?(La science nous menace-t-elle? 2003)
* 차례 5
자신이 일으킨 혁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7)
* 질문: 과학이 발전하면 더 행복해질까? 7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거의 폐허로 만들고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이 일어났다. (8) [이 지진으로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고 식민지 경쟁에서 탈락하였다.]
과학지식을 축저해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생산물이 증가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이 향상되어 개개인은 점차 행복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 베이컨(Bacon, 1561-1626),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가 초기 이론을 확립하고 꽁뜨(Auguste Comte, 1798-1857), 스펜서(Spencer, 1820-1903), 르낭(Renan, 1823-1892)이 이를 계승하면서 교조적 믿음으로 확립되었다. (9-10)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사회주의 철학자인 생시몽(Saint-Simon, 1760-1825)은 1814년에 마치 위대한 예언가라도 된 듯이, 앞으로 몇 세대 안에 과거의 낡은 사상이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11)
그러나 근대 초기와는 분위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 첫째, 현대인은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11) .... /둘째, 현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안전한 시대인데도 종종 위험사회로 표현되고 한다. (12)
뒤쀠(Jean-Pierre Dupuy, 1941-) 같은 사람은 파국의 시대(원제?)라는 책에서 현대를 ‘재앙의 시기’라고까지 불렀다. (12)
마지막으로 현대인은 과학이 아니라 자연에 더 깊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에 대한 낙관론을 단순히 뒤집은 견해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인들을 더 이상 첨단과학을 진보라고 하지 않고 낙원에서의 ‘추락’이라고 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얻은 기술적 성과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행복하게 해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13)
여기서 우리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신화가 다시 한 번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4)
과학자들 미심쩍게 보는 경향은 그만큼 현대인이 위험에 민감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4)
니체(Nietzsche, 1844-1900)
제1장. 과학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할까? 17
인간은 미래로부터 감시를 받는 운명을 타고 났다.
한스 요나스(Hans Jonas, 1903-1993) (19)
∙우리는 왜 미래를 불안해할까? 19
20세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생각해보라. 세상 사람의 절반이 한 세기동안이나 정치적 이상향이라고 믿어왔던 공산주의가 갑자기 붕괴했다. 그 결과 밀어닥친 정치적 충격이야마로 우리가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도록 만든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이제 사회의 모든 분야와 관계를 맺게된 과학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인내심의 위기[뒤쀠의 용어라 한다]의 첫째 희생양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일까? 20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결정론에 입각해 미래를 예측해 왔다. (21)
미래가 인간의 의도대로 될 것이라고는 더 이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22)
∙미래에 대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헛된 일일까? 22
오늘날은 종말의 시대가 아니라 넓게 퍼진 어둠의 시대, 마치 당연히 느껴져야 할 더위가 사라진, 여름날 저녁 무렵 같은 시기다. / 이러한 아노미 현상은 미래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영향을 미치고, 갖가지 부수 효과를 낳고 있다. (23)
∙미래에는 모든 것이 현재보다 나아질까? 25
진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결국 ‘행복이 지속되리나는 믿음’에 다름 없다. 진조는 사람들에게 위한과 희망을 줌으로써 현재라는 빈혈 상태에 필요한 일종의 영양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진술이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25-26)
제2장. 과학 발전을 예측할 수 있을까? 29
나의 아저씨, 유명한 손재주꾼 ....
-보리스 비앙(Boris Vian, 1920-1959)
∙과학은 정해진 방식이 따라 발전할까? 31
우연히 발견된 것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GPS는 아인슈타인(Einstein, 1879-1955)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상당히 간접적으로 응용된 기술이다. 앙리 베크렐(Becquerel, 1852–1908)이 엑스선을 이용하여 어떤 현상을 연구하다가 천연 방사능 물질을 발견한 것도 같은 경우이다. (32)
∙과학은 어떻게 사회를 바꿀까? 32
중성미자라고 불리는 입자의 기본 특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미세한 양의 방사능까지 측정할 수 있는, 극히 민감한 탐지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34)
실제로 측정한 결과 핵실험이 없었던 1950년 이전에 만들어진 포도주에서는 세슘137이 나오지 않았다. (35)
피터 갤리슨(Peter Louis Galison, 1955-)이 특수상대성 이론이라는 환상 열차에서 지적하듯이 상대성이론의 기초 논문은 사고를 집약한 결과가 아니라 특허 덕분에 얻은 것이었다. (36)
헬무트폰 몰트케 백작(Helmuth von Moltke, 1800-1891)
∙과학 연구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까? 38
제3장 과학과 더불어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가? 41
역을 지나 계속 달리는 기차에게 기차의 목적지는
이제 종착역이기를 거부한다
- 피에르 닥(Pierre Dac1, 1893-1975)
∙과학이 발전하면 무엇이 바뀔까? 43
약 50년 전부터 인공지능이나 인공생명과 같은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 팽창이 일어나 자연과 기술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가 급격히 무너졌다. 1800년부터 1950년 까지 과학과 산업의 순환 고리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제 산업이 과학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진보’를 끌어나가기 시작했다. (43-44)
20세기말 진보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 것은 생명과학과 정보과학이다. 생명과학과 정보과학의 발전은 ... 우리 신체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가 바뀌에 되는 것이다. (44)
컴퓨터 바이러스, 에이즈, 생화학 무기.. ‘감염-확산’ 모델의 다양한 변이가 그 증거다. 이러한 복잡한 발전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뿐만 아니라 “미래의 어떤 곳”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45)
진보의 역사 역시 우연한 사건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최악의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사소한 것 하나가 진보의 역사를 갑자기 둘로 갈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45)
역사에는 위험 요소가 있다. (46) [[자연현상에도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위험이란 물리적인 위험요소와 그 위험요소에 공격당하기 쉬운 인적, 경제적 여건, 즉 취약성이 결합된 개념이라는 것이다.(38)> - 쓰나미를 예측할 수 있을까? (Peut-on prévoir les tsunamis, 2006), 엘렌 에베르, 프랑수아 솅들레]]
∙과학 연구의 성과를 온전히 제어할 수 있을까? 47
기원전 3세기에 씌어진 중국 도교의 서적에는 “지식에 대한 열정이 세상에 무질서를 널리 퍼뜨렸다.”라는 내용이 있다. (47)
1940년 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확실성에 대하여(On Certainty 1949-1951)」라는 글에서 .. (48-49)
도미니크 르쿠르(Dominique Lecourt, 1944-) 진보의 미래(L’Avenir du progrès, 1997)(49)
그림: 전파를 통한 소통이 실제로는 또 다른 고독과 독밸을 낳지 않을까? (50)
나노기술(Nano Technology; NT) (51) [나노(nano)는 그리스어 나노스(νάνος, nain 난장이)에서 따온 것이다]
제4장.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53
현실은 나에게 천식을 일으킨다.
에밀 시오랑(Emile Cioran 1911-1995)
∙과학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있을까? 55
과거의 과학자들은 실재가 탄탄하고, 정확하며, 근원적이고, 허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온갖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시뮬레이션, 모델화, 시나링 등의 영향으로 실재의 특성 자체가 은유적으로 바뀌고 있다. (55)
과거의 과학자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론을 응용하여 현실화하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는 선악을 미리 판단할 수 없은 상황에서 가능성을 실현한다. 그들이 만드는 현실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 현재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소위 “치료복제”는 연구를 계속해야 할 지 아니면 중단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실재 변형의 좋은 예다. (56) [줄기세포 사건: 황우석 사건(黃禹錫 事件)은 2005년 11월 MBC-TV의 사회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이 서울대학교 교수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지 게재 논문에서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
우리는 갑자기 윤리학이 모든 분야의 진보에 맞서는 마지노선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과연 윤리학을 기초로 새로운 휴머니즘이 탄생할 수 있을까? (57) [저자에게는 새로운 형이상학에 대한 견해는 없다.]
∙과학자도 윤리학을 공부해야 할까? 58
윤리학이란 선이라고 일컫는 행위를 실천하라고 인간에게 명령하는 철학이다. (58) [이 표현, 칸트 냄새가 많이 난다. 인식론자 또는 과학론자는 그럴게 생각할 수 있다. 본성론의 철학은 명령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연의 필연에 속한 자유의 길을 노력하는 것이다. (48QLI) ]
문제는 철학이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만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윤리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59) [이 표현이 이 책에서 돋보인다.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울, 두려움, 불안, 허무에 닿을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철학이 진실로 도움이 될까? 사실의 직시, 현실에서 삶의 태도는 본성에 대한 탐구노력과 삶에 긴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연결 줄을 놓고 있다가 자연에 대한 회귀는 실재적이고 진실한 성찰이 되지 못한다. 윤구병을 따라 가보아야 할 것이다. (48QKI)]
제5장. 과학을 통제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63
한 사회의 운명뿐만 아니라 정신적 취향까지도
완전히 변화시키는 혁명이 있다.
라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1680)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확실성이다. (65) [주지주의자들의 확실성과 엄밀성을 강조하고, 본성론자는 정확성을 강조한다. 과학이 확실성이 있느냐는 문제는 사물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미궁에 빠진 것 같다. 게다가 복잡계와 혼돈이론 등이 비결정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부추기고 있지 않는가! ]
두려움이란 누군가가 느끼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두려움이란 어떤 상황이 강요하는 즉 어떤 상화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므로 모든 두려움에는 다 이유가 있다. ... 모든 두려움이 다 지식으로 해결되지도 않으며, 심지어 어던 위험들은 과학적 지식 덕분에 발견되기도 한다. (66)
반대로 불안은 언제나 걷잡을 수 없고, 때로는 명확한 이유가 없을 때도 있다. (67) [ 두려움과 불안 원어보다 이 규정방식이 맞을까? 두려움은 대상적인데 비해 불안은 대상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메르스 확산은 두려움이지 불안은 아닐 것이다. 박령정부에 대한 불안은 두려움이 아니라, 또 어떤 사고를 칠지에 대해 불안하다는 점이며, 무슨 대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두려움은 과학과 지식을 동원할 수 있지만, 불안은 심성의 안정이 필요하다. 즉 필연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48QLI)]
∙과학자들만 과학을 이야기해야 할까? 67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심들이 모두 다 비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의심과 두려움은 하나로 묶인 채 동시에 커지는 것이므로 그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67)
과학정치의 문제에 속한다. [새로운 언어인데,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과학정치라는 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과학은 종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에 비유되곤 한다. (68) [이런 말을 누가 했을까? 좀 맹목적인 것 같다. 사실 인간을 다루면 온갖 불편한 사실들을 다루어야 하는데, 과학을 다루면 잘 못된 것을 버리고 좋은 것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이 잘 못된 것을 버린다고 버려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환경학과 생태학이 그런 점에서 전면에 나선것이 아니겠는가? ]
∙과학과 민주주의가 결합할 수 있을까? 72
물리학자인 레비-르블롱(Jean-Marc Lévy-Leblond, 1940-)은 시금석(La pierre de touche (la science à l’épreuve), 1996에서 .. (72)
그림: 오늘날 대중은 과학적 지식보다는 점성술에 관련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그에 의존하려 한다. (73) [대중의 사고에서 상식은 오랜 관습과 같다. 그 관습을 넘어서 실재성을 파악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평등, 보편, 무상, 탈종교여야 한다. 모두 무상으로 일정기간을 받아야 한다. 탈종교는 다음이다. 울나라 종교가 학교를 장학하고 있는 비율이 너무 많다. 이 종교들이 관습 또는 기복에 묶어 놓고 있다. (48QLI)]
이런 상황에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이 발달하면 더 행복해질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과학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책이 아닐까? (75) [교육이다. 무상으로서 자연 교육이 절실하다...]
* 더 읽어 볼 책들 76
- 도정일, 최재천, “대담”, 휴머니스트, 2005.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편, “과학연구 윤리”, 당대. 2001.
- 도미니끄 르꾸르, 권순만, “인간 복제 논쟁”, 지식의 풍경, 2005 [르꾸르(Dominique Lecourt 1944-)]
- 리처드 모리스, 김현근, “시간의 화살”, 소학사, 2005. [리차드 모리스(Richard Morris, 1939-2003) Time's Arrows: Scientific Attitudes Toward Time (1986)
- 수전 그린필드, 전재호, “미래” 지호, 2005. [그린필드(Susan Greenfield, 1950-) 영국 과학자, 작가. Tomorrow's People: How 21st Century Technology is Changing the Way we Think and Feel. 2003.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Journey to the Centres of the Mind』『인간의 뇌The Human Brain:A Guided Tour』『뇌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the Brain』 등을 썼고, 『마인드웨이브Mindwaves』『브레인 파워Brain Power』]
- 토머스 새무얼 쿤, 김명자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2002. [토머스 새뮤얼 쿤 (Thomas Samuel Kuhn, 1922- 1996) 미국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 하시모토 히로시, 오근영, “하루밤에 읽는 과학사” 중앙M&B, 2005.
-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이충형, “골렘”, 새물결, 2005. [Harry Collins, Trevor Pinch, The Golem: What You Should Know about Science, 1993. 콜린스(Harry Collins, 1943-), 핀치(Trevor J. Pinch, 1952-)/ 골렘(Golem)은 유대인들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진흙으로 빚어 유대교 라비의 주문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일종의 인조 인간인 것이다. 골렘은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충직한 하인 구실을 하지만, 언제라도 미쳐서 난폭하게 날뛸 수 있는 위험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 논술 · 구술 기출문제 77
(48QLI)
** 인명 및 용어들
아노미(l'anomie)란 용어는 1893년에 뒤르껭(Émile Durkheim 1858-1917)이 사회적 노동분업에 대하여(De la division du travail social, 1893)에서 도입한 개념이며, 자살론(Le Suicide, 1897)에서도 사용되었다. 인간의 품행을 규제하고 사회적 질서를 보장하는 규범이 효과없는 사회적 상태를 의미한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The Proficience and Advancement of Learning, 1605), Novum Organum, 1620) New Atlantis, 1626)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 독일의 사회학자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 1986)
앙리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 프랑스의 물리학자. 방사선을 발견한 공로로 1903년에 뀌리 부부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에밀 시오랑(Emile Cioran 1911-1995)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수필가. 현대문명의 퇴폐를 비장한 필치로 고발하여 '절망의 심미가(審美家)'라고 일컬어진다.
콜린스(Harry Collins, 1943-) 영국 과학사회학자. The Golem: What You Should Know About Science (1993).
꽁트* (Auguste Comte, 1798-1857) 프랑스 대혁명과 그리고 18세기 혁명의 과정에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체험하고,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며 역동적인 조직의 변화를 설명하는 사회학을 창설하였다. 그런데 한 여인에 사랑에 빠져 이 사회학을 종교화하려 했다.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 (Marie-Jean-Antoine-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교육개혁 옹호자. 인류가 무한히 완전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진보 이념을 내세운 주요혁명가 중 한 사람이다.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 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1795)
시베리아(Cyberia)는 이중적 개념이다. 눈보라 휘날리는 황량한 벌판인 현실 공간의 시베리아와 사이버(cyber)와 토피아(topia)의 합성어로 사이버세계란 뜻도 있다.
피에르 닥(André Isaac, dit Pierre Dac1, 1893-1975) 프랑스 만담가, 코메디언. 알사스계 유태인, 아버지(Salomon Isaac)와 어머니(Berthe Kahn)이다. 칸이란 이름은 벩송과 연관있다. 1846년에 프랑마송 계열에 입문했다. (« Les Compagnons ardents » de la Grande Loge de France le 18 mars 1946)(1952년까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뒤쀠(Jean-Pierre Dupuy, 1941-) 프랑스 기술자, 인식론자, 철학자. 에꼴 폴리테크니크 출신, 카톨릭. Introduction à la critique de l'écologie politique, 1980, Aux origines des sciences cognitives, 1994, Les savants croient-ils en leurs théories? Une lecture philosophique de l'histoire des sciences cognitives, 2000, Pour un catastrophisme éclairé. Quand l'impossible est certain, 2004, 그는 시간을 다루면서 벩송과 요나스의 영향을 입었다고 한다. [한사람은 자연주의자 다른 한사람은 시오니스트, 묘하다. ] ..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맑스의 가장 가까운 동료로서 마르크스와 함께 현대 공산주의를 세웠다. 두 사람은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1848)을 공동 집필했으며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죽은 뒤 자본론 Das Kapital(제2․3권)을 편집했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1851)가 과학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한 괴물에 대해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818)이다. 첫 판은 1818년에 런던에 익명으로 출판되었다가 1823년에 프랑스에 그녀의 이름으로 두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
갤리슨(Peter Louis Galison, 1955-) 미국 과학사학자. 하버드 대학교수 Image and Logic: A Material Culture of Microphysics, 1997) Einstein's Clocks, Poincaré's Maps: Empires of Time, 2003
골렘(Golem): 유대인들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여러 전승이 있는데 용어상으로는 멍청이(cocon, fou ou stupide)이다. / 진흙으로 빚어 유대교 랍비의 주문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일종의 인조인간인 것이다. 골렘은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충직한 하인 구실을 하지만, 언제라도 미쳐서 난폭하게 날뛸 수 있는 위험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 다른 전설에 따르면, 프라하의 랍비 뢰브(Rabbi Yeouda Loew ben Bezalel, Morenou HaRav Loew, 1512 ou 1520-1609)이 만들었다고 한다.
요나스(Hans Jonas, 1903-1993) 독일 출신 미국활동 철학자. 신지학 연구자. 시오니즘 운동가. 1933년 미국으로, 책임성의 원리(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ür die technologische Zivilisation. 1979),
라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1680)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작가․공작. 당시 살롱에서 유행하던 문학양식에 따라 저술, 발표한 작품이 잠언과 성찰(1665)이다.
르꾸르(Dominique Lecourt 1944-) 철학자. 7대학 명예교수. 주로 (Bachelard à Cavaillès, à Canguilhem et Foucault)연구했다. Pour une critique de l’épistémologie : Bachelard, Canguilhem, Foucault(1972, réed. Maspero, Paris, 5e éd. 1980). 진보의 미래(L’Avenir du progrès, 1997, Bioéthique et Liberté en collaboration avec Axel Kahn (PUF/Quadrige essai, Paris, 2004)(번역: 인간 복제 논쟁?).
레비-르블롱(Jean-Marc Lévy-Leblond, 1940-) 프랑스 물리학자, 수필가. ENS출신, 공산당원(1956-1968), 니스대학 명예교수. 저술 중 물질에 대하여(De la matière: relativiste, quantique, interactive, Seuil, 2006), 수필집 시금석(La pierre de touche (la science à l’épreuve), 1996,
리차드 모리스(Richard Morris, 1939-2003) 작가, 시인 편집자. 물리학 박사. Time's Arrows: Scientific Attitudes Toward Time (1986)
헬무트폰 몰트케 백작(Helmuth Karl Bernhard Graf von Moltke, 1800-1891) 프로이센 및 독일 제국의 군인이자 근대적 참모제도의 창시자.
나노기술(Nano Technology; NT)은 원자나 분자 정도의 작은 크기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조립, 제어하며 혹은 그 성질을 측정, 규명하는 기술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크기가 1 내지 100나노미터 범위인 재료나 대상에 대한 기술이 나노기술로 분류한다.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에서 유래하였다. 1나노초(㎱)는 10억 분의 1초를 뜻한다. 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로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 대략 원자 3~4개의 크기에 해당한다.
중성미자(中性微子 neutrino 뉴트리노)는 약력과 중력에만 반응하는, 아주 작은 질량을 가진 기본입자이다. 1930 볼프강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가 처음이 이 입자를 '중성자(neutron)'라고 부르기로 제안하였지만, 그 후 1932년에 채드윅(James Chadwick)이 지금의 중성자를 발견하고 그 입자를 중성자(neutron)라고 불렀다.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다음 해인 1933년에 베타 붕괴의 이론을 발표하며, 파울리의 '중성자(neutron)'에 '작다.'라는 이탈리아어의 접미어 '-ino'를 붙여서, '뉴트리노(neutrino)'로 부르게 되었다. 세 종류(Il en existe trois saveurs : électronique, muonique et tauique)가 있다. 전자 중성미자는 1956년에 라이너스(Frederick Reines)와 코언(Clyde Cowan)이 발견했다. 뮤온 중성미자(muon)은 잭 스타인버거(Jack Steinberger, 1921-)가 레온 M. 레더만, 멜빈 슈바르츠과 함께 발견했다. 타우 중성미자(tauon)는 1974에서 1977 사이에 펄(Martin Lewis Perl)에 의해 발견되었다. / 1990년대 말까지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1999년 슈퍼 카미오칸데 실험 이후 여러 실험을 통해 미세하지만, 질량이 있다고 밝혀졌다(중성미자 진동). 그러나 질량이 너무 작아 아직 직접적으로 질량을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그리스 고전어에 뛰어났다. 그는 당시의 성직자의 태도에서 한의 윤리를 보았고, 이런 태도가 신을 죽게 했다. 늘 새롭게 확장하는 영겁회귀를 거치면서 자연의 자기 생성 속에서 새로 태어난 인간은 환희를 실행하는 인간이 된다.
핀치(Trevor J. Pinch, 1952-) 영국 사회학자. 음악가. Pinch, Trevor; Collins, Harry M. (1998) [1993]. The golem: what you should know about science (2nd ed.),
르낭(Joseph-Ernest Renan, 1823-1892) 프랑스의 사상가, 종교사가, 언어학자. 프랑스 실증주의 대표자의 한 사람. 그리스도교 기원사, 7권, 1863~1883).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Claude Henri de Rouvroy de Saint-Simon, 1760-1825)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가.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보한다는 역사의 발전적 전개를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비산업 계급과 산업 계급이 투쟁하던 과거를 개선, 양자가 협력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영국의 종합철학자, 진화론의 개념을 창안
비앙(Boris Vian, 1920-1959) 프랑스 작가, 시인, 가수 자즈 음악가(트럼펫 주자) 에꼴 상트랄 출신(Ingénieur de l'École centrale, promotion 42B), 소설 거품같은 나날들(L'Écume des jours, 1947)도 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활동한 철학자. 논리학, 수학 철학, 심리 철학, 언어 철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확실성에 관하여(On Certainty 1949-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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