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루방향은 왜 시계반대(Anti-clock wise) 방향이어야만 할까.
야구경기의 주루 위치는 아주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마련됐다. 즉, 왼쪽다리와 오른쪽다리의 기능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두발을 가진 동물(특히 사람과 같은 직립동물)은 일반적으로 왼쪽다리는 지지기능(Support)이 강하고, 오른쪽다리는 추진력(Spurt)이 강하다.
그래서 추진력이 강한 오른쪽 다리를 바깥쪽에 두어 달릴때 발생하는 원심력(遠心力)을 최소화 하기위한 방법이다. 이런 이유는 육상의 달리기나 빙상경기도 마찬가지다. 만약 야구경기서 루(壘)의 위치를 바꾸면 장타를 친 경우 원심력이 커져 루에 도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러한 인체 특성이 규명되기 전에는 스포츠에서 달리는 방향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그래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서 열린 제1회 올림픽 육상경기서 선수들은 시계방향(Clock-wise)으로 달렸다. 하지만 사지(四肢)동물의 경우는 다르다. 그래서 경마에서는 주로(走路)방향에 대한 규정이 없다.
2. 홈플레이트가 오각형인인 이유는?
야구가 처음 시작됐을 때 홈플레이트는 둥근 모양이었다.
정해진 규격없이 접시, 모자 등 둥근 것이면 무엇이든 홈플레이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869년에야 비로소 홈플레이트가 규격화됐다. 가로, 세로 각각 12인치의 정사각형 모양이 채택되어 1900년까지 사용되었다. 처음엔 돌로 만들어졌으나 곧 부상 위험 때문에 고무재질로 바뀌었다.
지금의 오각형 형태가 자리잡은 것은 1901년 부터다.
오각형으로 바뀐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주심과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을 명확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각형의 뾰족한 부분은 주심과 투수의 시선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둘째, 1루와 3루의 방향을 잡아주기 위함이다. 오각형 빗변을 따라 선을 그으면 1루와 3루의 베이스 라인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3. 야구 방망이 끝부분에 둥근 홈이 파여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방망이 끝 부분의 무게를 줄여 헤드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위한 방법이다.
배트 끝이 가벼우면 그만큼 배트의 스윙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물론 홈이 파인 방망이 끝부분에 공이 맞았을 때에는 반발력이 줄어드는 단점을 감수해야 한다. 충격량은 질량과 가속도의 함수관계(F=ma)이다. 홈을 파면 질량은 감소하지만 빠른 배트스피드로 보완해 전체 충격량은 커진다.
규정상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게 최대 2.5㎝까지 홈을 팔 수 있는데, 이럴 경우 30g정도의 배트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꼭 둥글게 파야한다는 규정은 없으나 사각형으로 팔 경우 배트의 스윙시 무게중심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둥글게 판다.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끝이 평평한 배트를 구입한 뒤 선수들 각자가 공예점 등에 의뢰해 홈을 파곤했었다. 하지만 요즘엔 배트 제조업체에 홈의 깊이를 지정해 주문형 방망이를 구입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국내 프로야구선수들의 경우 80% 가량이 홈이 파인 방망이를 쓰고 있다. 그만큼 장타와 직결되는 헤드 스피드를 중시한다는 얘기. 나머지 20% 정도는 끝이 평평한 방망이를 쓰는데, 스윙시 손목을 많이 스는 선수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체력이 달리는 여름철에는 배트 끝에 홈을 파는 선수들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4. 홈런이 처음 도입된 때는 언제일까?
초창기 야구에는 홈런 규정이 없었다.
그저 탁 트인 넓은 운동장에서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홈런이라는 규정은 최초의 야구장 건립과 함께 만들어졌다. 1862년 브룩클린에 최초의 야구 전용구장이 세워졌다. 윌리 카메이어가 세운 이 구장은 10센트의 입장료를 받았는데, 외야에 담장을 침으로써 '홈런'이라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팬들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외야의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홈런을 보면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홈런은 내셔널리그 원년인 1876년 5월2일 로스 반스(시카고 커브스)가 신시내티전서 기록한 아치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최초의 홈런주인공은 이영민(1905~1954년)이었다. 이영민은 1928년 6월8일 경성운동장(현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제2회 연희전문-경성의학전문의 정기전서 한국야구 1호 홈런을 기록했다. 1926년 야구장 개장 이래 3년만이었다.
5. 세이브 제도는 언제 생겨났을까?
세이브는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선발투수에 반해 역투하고도 아무런 기록을 챙기지 못했던 구원투수들을 배려하기 위해 도입됐다. 1960년 '시카고 트리뷴'의 메이저리그 담당 제롬 홀츠만 기자가 고안했으며 그해 '스포팅뉴스'에서 맨먼저 기록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세이브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69년부터였지만 당시에는 이긴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투수에게 무조건 세이브가 주어졌다.
이후 지난 73년에 '등판 당시의 주자 혹은 타자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올라가 리드를 끝까지 지키거나 이긴 게임의 마지막 3이닝을 던진 투수'라는 구체적인 규정의 틀이 잡히게 됐다.
그러나 이후 세이브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여론이 일자 지난
75년부터는 '3점차 이하로 앞선 상황에서 1이닝 이상을 던지며 리드를 끝까지 지킨 투수,
주자나 타자 또는 다음 타자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등판하거나
이긴 게임의 마지막 3이닝을 던진 투수'로 조건이 완화돼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6. 최초의 야간경기는 언제 시작됐을까?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가장 큰 변화는 야간경기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흥행'에 있다. 프로는 늘 볼거리를 제공해야하고 관중을 모아야한다. 자연스럽게 하루일을 마친 늦은 오후가 최적의 경기시간으로 굳어졌다.
국내야구 최초의 야간경기는 지난 1966년 10월7일 오후 6시 서울운동장(현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한일은행과 제일은행의 경기였다. 결과는 한일은행의 4대1 승리. 그로부터 16년후인 1982년 프로야구시작과 함께 국내 각 구장에 조명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1935년 신시내티 레즈가 홈구장인 크로레스필드에 불을 밝히고 필라델피아와 첫 야간경기를 가진게 그 시작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1948년 8월17일 요코하마구장에서 자이언츠와 주니치가 첫 야간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시카고 커브스는 지난 1988년에야 비로소 첫 야간경기를 갖기도 했다. 구단의 전통과 밤에 추운 날씨 등이 고려됐다. 야간경기는 적당한 조도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적응 등 승부에 큰 변수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