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 벌써 한 학기가 다 지나가고 있다. 기대와 포부를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마성을 찾아 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에도 희비와 고락이 점철된 많은 일들이 스쳐 갔다. 처음에 품었던 뜻들이 조금씩 이루어진다 싶을 때는 기쁨과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뜻밖의 벽을 만날 때는 당혹감에 젖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판단과 처신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사람 사는 일에 무슨 일인들 없을쏘냐며 자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몇 가지 일들이 마성에서의 삶을 행복하게도 했다.
아이들의 즐거움은 곧 나의 즐거움이었다. 전교생이 경기도 고양의 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린 '교육·인적자원혁신박람회(Edu Expo 2005)'의 초청을 받았다. 교육부와 경기도의 공동 주관으로 수도권 나들이가 어려운 전국의 벽지 학교 몇 곳을 초청하여 2박3일 일정으로 박람회를 관람하게 하고 경기도 일원의 관광과 함께 안산의 영어마을에 입소하여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경비 일체는 경기도가 부담했다. 우리 학교가 초청을 받은 것은 내가 박람회장 구성에 약간의 임무를 띠고 있었던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을 초청 해 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아이들이 매우 재미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학기가 막 시작된 어느 날, 정원사들이 와서 학교의 나무를 단아한 모습으로 다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동창회장님이 보낸 사람들이다. 교목인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나무들이 가지가 아무렇게나 뻗은 것을 보고 보기 좋게 다듬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초여름 어느 날, 학교운영위원장님이 메리골드, 오색맨드라미, 호리우스 등의 꽃을 한 차 싣고 왔다. 꽃들이 하도 예뻐 학교에 화단을 꾸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꽃만이 아니었다. 화단을 만들 흙도 트럭에 하나 싣고 오고, 몇 되지 않은 식구에 일손이나 있겠느냐며 인부까지 구해왔다. 학교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지극했다. 아담한 화단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떠나던 날, 학부모회장님은 학부모님들과 함께 빵이며 음료수며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푸짐하게 장만해 왔다. 아이들을 위한 자정(慈情)이다. 즐겁게 먹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속으로 촉촉한 온기가 젖어온다.
K 씨. 그는 마성 서쪽의 조그만 마을 하내리에서 태어나 지금은 없어진 서성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역경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원까지 마쳤다. 그리고 '측량 및 지형공간 정보기술사'라는 그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면서 특히 지리정보시스템(GIS)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거듭했다. 지금은 대구와 문경에 이 분야의 회사를 설립하여 벤처기업으로서 한창 번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 후 태어나고 자란 향토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많은 이바지를 하고 있다. 모교가 폐교된 것을 늘 애석하게 생각하다가 교육청으로부터 학교를 인수하여 회사 연수원으로 꾸며 여러 사람들에게 문화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 분이 어느 날부터 우리 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월 일정액을 학교로 보내는 것이다. 우리 학교가 모교는 아니지만, 고향의 발전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에서임은 물론이다.
매미소리가 시원스럽던 칠월 어느 날, 중년 신사 한 분이 학교를 찾아왔다. L 씨라는 분이다. 우리 학교 제2회 졸업생이라고 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마성의 연작살(燕雀殺)이라는 동네다. 하도 빈한한 동네라 날새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다는 곳이다. 형제 많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나 더 이상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아 집안 일을 돕고 있다가 문득 깨친 바 있어 어느 날 탈출하듯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 길로 서울로 가서 독학으로 정진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그 당시에는 최첨단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여, 대학을 마친 후 곧바로 대기업 전산실에 취업을 했다 그 이후 정보기술 관련 업무에 계속 종사하다가 몇 년 전에는 드디어 창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컴퓨터 관련 솔루션 업체의 대표 이사가 된 것이다. 지금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어렵게 공부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여 모교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학생 수에 비해 거금이라 할 수 있는 장학금을 내어놓겠다고 하면서도 적은 금액이라며 얼굴을 붉힌다. 그 붉어진 얼굴이 나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이란 말이 있다. 재산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재산이 있다고 누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애써 이루어 놓은 재산을 남을 위해 선뜻 내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선량을 마음을 갖추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재물이 없어도 이웃을 돌아볼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재물을 갖추고서도 더 못 가져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다행이 우리 사는 세상에는 항심(恒心)을 가진 사람도 많아 사람살이를 아름답게 해주기도 한다. 동창회장님, 학교운영위원장님, 학부모회장님, K 씨, L 씨 같은 분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 속에 인정도 피어나고 사랑도 싹트게 되는 것이 아닐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받기만 하고 갚을 줄은 모른다면 그것은 다행이 아니라 염치없는 일이 될 것이다. 무엇으로 이들의 도움을 갚을 수가 있을 것인가. 우선 아이들에게 이분들의 정성과 사랑이 골고루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이 면학에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바람직한 인격과 실력을 갖춘 인재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분들과 같은 '항심(恒心)을 가진 사람'이 되어 이웃을 위해 다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기를 애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움에 대한 염치를 세우는 길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다시 무거워진다.
고마운 분들이 주는 그 고마움, 그것은 곧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어찌하면 그 소금이 더욱 요긴한 세상의 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어찌하면 그 빛이 세상을 더욱 밝게 하는 광명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다시 바라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