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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기행(霧津紀行)
김승옥 (金承鈺)
무진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Muij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 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 분 후엔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데드롱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 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골 사람들답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을 반수면(半睡眠) 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시찰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무진엔 명산물이……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 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 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 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 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좀 덜해졌다.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더하고 덜하는 것을 나는 턱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있었으므로 버스가 자갈이 깔린 시골길을 달려오고 있는 동안에 내 턱은 버스가 껑충거리는 데 따라서 함께 덜그덕거리고 있었다. 턱이 덜그덕거릴 정도로 몸에서 힘을 빼고 버스를 타고 있으면, 긴장해서 버스를 타고 있을 때보다 피로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열려진 차창으로 들어와서 나의 밖으로 드러난 살갗을 사정없이 간지럽히고 불어가는 6월의 바람이 나를 반수면 상태로 끌어넣었기 때문에 나는 힘을 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粒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 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低溫),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무진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더욱 실감되었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던 것이다. 아니,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리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
“당신 안색이 아주 나빠져서 큰일났어요. 어머님의 산소를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에 며칠 동안 계시다가 오세요. 주주 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 놓을게요. 당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 보면 대회생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게 아니예요?”
라고, 며칠 전날 밤, 아내가 나의 파자마 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진심에서 나온 권유를 했을 때도, 가기 싫은 심부름을 억지로 갈 때 아이들이 불평을 하듯이 내가 몇 마디 입안엣소리로 투덜댄 것도,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 반사였었다.
내가 좀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 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였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나의 무진에 대한 연상의 대부분은, 나를 돌봐주고 있는 노인들에 대하여 신경질을 부리던 것과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不眠)을 쫓아보려고 행했던 비밀스런 행위와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였었다. 물론 그것들만 연상되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 밤늦게 신당동(新堂洞) 집 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때,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15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라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臥床)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그렇다고 무진에의 연상이 꼬리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나의 어둡던 세월이 일단 지나가 버린 지금은 나는 거의 항상 무진을 잊고 있었던 편이다. 어제 저녁 서울역에서 기차를 탈 때에도, 물론 전송 나온 아내와 회사 직원 몇 사람에게 일러둘 말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정신이 쏠려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하여튼 나는 무진에 대한 그 어두운 기억들이 그다지 실감나게 되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역 구내(驛區內)를 빠져 나올 때 내가 본 한 미친 여자가 그 어두운 기억들을 홱 잡아 끌어당겨서 내 앞에 던져 주었다. 그 미친 여자는 나일론의 치마 저고리를 맵시 있게 입고 있었고, 팔에는 시절에 맞추어 고른 듯한 핸드백도 걸치고 있었다. 얼굴도 예쁜 편이고 화장이 화려했다. 그 여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쉬임없이 굴리고 있는 눈동자와 그 여자를 에워싸고 서서 선하품을 하며 그 여자를 놀려대고 있는 구두닦이 아이들 때문이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돌아버렸대.”
“아냐, 남자한테서 채여서야.”
“저 여자 미국 말도 참 잘한다. 물어 볼까?”
아이들은 그런 얘기를 높은 목소리로 하고 있었다. 좀 나이 든 여드름쟁이 구두닦이 하나는 그 여자의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집적거렸고 그럴 때마다 그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그 여자의 비명이, 옛날 내가 무진의 골방 속에서 쓴 일기의 한 구절을 문득 생각나게 한 것이었다.
그 때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였다. 6․25 사변으로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나는 서울에서 무진까지의 1천여 리(千餘里) 길을 발가락이 몇 번이고 부르트도록 걸어서 내려왔고,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고 의용군의 징발도 그 후의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 버리고 있었었다. 내가 졸업한 무진의 중학교의 상급반 학생들이 무명지(無名指)에 붕대를 감고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을 부르며 읍 광장에 서 있는 트럭들로 행진해 가서 그 트럭들에 올라타고 일선으로 떠날 때도 나는 골방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행진이 집 앞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대학이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나는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었다. 모두가 나의 홀어머님 때문이었다. 모두가 전쟁터로 몰려갈 때 나는 내 어머니에게 몰려서 골방 속에 숨어서 비밀스런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웃집 젊은이의 전사 통지가 오면 어머니는 내가 무사한 것을 기뻐했고, 이따금 일선의 친구에게서 군사 우편이 오기라도 하면 나 몰래 그것을 찢어 버리곤 하였었다. 내가 골방보다는 전선을 택하고 싶어해 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쓴 나의 일기장들은, 그 후에 태워 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汚辱)을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다. ‘어머니 혹시 제가 지금 미친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일 테니 그 점에 유의하셔서 저를 치료해 보십시오……’ 이러한 일기를 쓰던 때를, 이른 아침 역 구내에서 본 미친 여자가 내 앞으로 끌어당겨 주었던 것이다. 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을 나는 그 미친 여자를 통하여 느꼈고 그리고 방금 지나친, 먼지를 둘러쓰고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이정비를 통하여 실감했다.
“이번에 자네가 전무가 되는 건 틀림없는 거구, 그러니 자네 한 일 주일 동안 시골에 내려가서 긴장을 풀고 푹 쉬었다가 오게. 전무님이 되면 책임이 더 무거워질 테니 말야.”
아내와 장인 영감은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퍽 영리한 권유를 내게 한 셈이었다. 내가 긴장을 풀어 버릴 수 있는, 아니 풀어 버릴 수밖에 없는 곳을 무진으로 정해 준 것은 대단히 영리한 것이었다.
버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와 지붕들도 양철 지붕들도 초가 지붕들도 6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糞尿) 냄새가 새어들어 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끓고 있었다. <하략>
▶ 줄거리
‘나’는 지금 ‘무진(霧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나’는 장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는데, 아내가 ‘나’의 승진을 위해 잠시 서울을 떠나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내가 숱한 좌절과 방황 속에서 헤매던 고향인 무진에 가서 예전의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 ‘조’는 세무서장으로 근무하는 출세 지향형의 속물이다. 술자리를 함께 한 후배 ‘박’은 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박’은 같은 학교 교사인 ‘하 선생’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 선생’은 순수한 인물인 ‘박’보다는 출세 지향형인 ‘조’와의 결혼을 원하지만, ‘조’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하 선생’ 에게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앓았던 순수의 열병을 발견하고는 짙은 연민을 느낀다. ‘하 선생’은 무진에서의 생활이 싫어 서울로 올라갈 것을 원한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무진을 떠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 어휘 및 구절 이해
* 무진(霧津) : 언제나 안개가 껴 있어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특정한 공간. 당대 사회의 한 특성을 함축하도록 설정된 공간
* 시찰원(視察員) : 돌아다니며 실제의 사정을 살피는 사람
* 반수면(半睡眠) : 자는 둥 마는 둥한 상태. 잠이 들락말락한 상태
* 무명지(無名指) : 약손가락
* 일선 : ‘제일선’의 준말. ① 최전선. ② 일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의 맨 앞장
* 모멸(侮蔑) : 업신여기어 깔봄
* 오욕(汚辱) : 명예를 더럽히어 욕되게 함
*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 나와 있었다. : ‘그것’은 ‘무진’을 안내하는 이정비를 가리킨다. ‘옛날’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무진에 들렀던 때를, ‘똑같은 모습’이란 무진으로 향하는 길이 변함 없음을 뜻한다. ‘나’가 무진으로 가는 이유는 그 전처럼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 ‘안개’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의 명산물은 아니지만, 무진 하면 자욱한 안개가 먼저 떠오르는 만큼 ‘안개’는 무진의 명산물임을 ‘나’는 강하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무진’이라는 지명 자체에 안개 무(霧)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화를 통해 무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후,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정보를 직접 서술한 구조이다.
*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 ‘안개’를 ‘여귀의 입김’에 직접 맞대어 표현한 직유법의 표현이다. 짙게 끼어 있는 안개를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을 지닌 형체로 보고 감정을 이입하여 드러내고자 하였다.
* 이웃집 젊은이의 전사 통지가 오면 어머니는 내가 무사한 것을 기뻐했고, - 모두가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汚辱)을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다. : 전시에는 자원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강제로 이 때 자신의 아들을 군대에 내 보내지 않기 위해 다락방이나 산 속에 숨기는 일이 왕왕 있었다. 물론 사랑하는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심리적 동요를 우려하고 아들 친구의 편지마저 중간에서 절취하기도 하는데 정작 아들은 남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싸울 때 혼자만 남아 삶을 도모하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 아내와 장인 영감은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퍽 영리한 권유를 내게 한 셈이었다. - 무진으로 정해 준 것은 대단히 영리한 것이었다. : 아내와 장인의 무진행 권유를 ‘퍽 영리하다’고 한 것은 ‘나’가 긴장을 푸는 데는 무진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 버스가 달리고 있어서,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소리가 철공소에 가까워질 때는 커졌다가 지나칠 때부터 차츰 작아지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 무진 읍내의 한가함과 느슨함, 권태감, 고요함을 실감나게 표현한 구절이다.
▶ 작품 해제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1960년대 무진(霧津)
* 성격 : 서정적. 몽환적
* 구조 : 떠남 → 추억의 공간 → 복귀
* 주제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 의의 : 감각적인 문장의 구사로 발표 당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작품 해설
김승옥은 새로운 감수성(感受性)의 혁명을 일으킨 1960년대 문학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았다. 이 작품에는 도시 사회 속에서 겪는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이 탁월한 문체와 구성의 도움을 받아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서울에서 고향인 무진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행(紀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속물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고향인 무진에 와서도 삶의 순수한 가치를 되찾을 수 없다. 출구가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은 ‘안개’라는 상징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고향 ‘무진(霧津)’은 안개 마을인 것이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후배 ‘박’과 속물이 되어 버린 친구 ‘조’ 사이에서 망설이는 젊은 음악 선생 ‘하인숙’에게서 ‘나’는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순수한 삶과 타락한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나’와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잊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가는 바로 찢어 버린다.
그 편지는 이제 ‘무진 기행’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 전해질 것이다. 편지와 전보, 안개와 수면(睡眠) 등의 이미지를 서로 연결시켜 가며 작품을 감상하면 훨씬 깊은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이해
■ “무진 기행”의 등장 인물들
나(윤희중) : 서른세 살. 장인이 경영하는 제약 회사의 전무 자리에 오르기로 되어 있으나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려고 무진으로 가지만 허무만을 느낀 채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위선적․허무적 인물로, 당시의 시대 상황이 빚어낸 창백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인숙 : 무진 중학교 음악 교사. ‘나’를 만난 수 허무를 벗어나기 위해 무진을 떠나고 싶어하나 결국 그 삶을 수용하며 무진에 남는다. 다소 자조적인 여자로서 등장 인물 중 가장 허구적인 인물이며 ‘나’의 젊은 날의 초상과 비슷하다.
조 : ‘나’의 시골 학교 동창생. 세무서장. 속물적 인간의 전형이다.
박 : ‘나’의 중학 후배. 교사. 하인숙을 사랑하는 순정적 인간. 등장 인물 중 가장 순수한 인물로서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 “무진 기행”의 특징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인생의 보편적인 갈등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갈등을 속물 근성을 지닌 세무서장과 순수한 성격의 중학 교사 사이의 대립, 서울의 아내와 고향에서 만난 음악 교사 하인숙 사이의 대립으로 바꾸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불화와 대립의 구도를 서울과 고향의 경계에 놓인 이정표, 무진 마을의 명산물인 ‘안개’라는 상징을 빌려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