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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
출애굽기 33:18-23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우리는 이제 ··· 세 번째로 분명히 성경 전체에 의해서 발견되는 가장 특이한 기사(記事) 중 하나에 틀림이 없는 이 위대한 출애굽기 33장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저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점을 더 명백히 하고 싶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편적으로 그 부흥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이 어떤 개인에게는 어느 때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다른 말로 해서 이러한 일들 중 어떤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부흥이 오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체험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1. 모세의 요청(하나님 자신을 구함)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 첫 번째 요점은 모세의 요청입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 모세는 아직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과 이제까지 받아왔던 모든 것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 40주 40야 동안 ··· 거기서 하나님과 교통 ···. 이미 33장에 기록된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확신과 만족할 만한 증거를 달라고 요구하는 모세의 요청에 응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더 나아갑니다. 그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 그것이 바로 언제나 큰 믿음 속에 나타나는 외람된 성질로 우리가 묘사하면 매우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그 점에 대한 다른 실례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그러한 응답을 이미 받은 모세가 감히 계속 더 나아가서 또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한 단계씩 자꾸만 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 여기서 그는 여러 방면에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요청이 되는 이른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 우리는 한 단계와 진행 과정에서 한 차원 더 높여 나가는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고 있습니까? ···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 ··· 우리는 도달한 지점에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월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서 계속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믿음의 날개를 달아 날고 싶어 하는 증거를 얼마나 많이 보입니까? ··· 우리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위해서 가지는 열망을 어느 정도로 느끼고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 복락보다 더 나아가서, 또한 그가 받은 여러 은사들보다 더 초월하여 나아갑니다. 이제 하나님 자신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과 하나님 자신을 대면하여 만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여러분은 그러한 갈망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고 있습니까? ···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복락을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어느 정도입니까? ··· 시편 기자가 42편에서 말한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갈급해하고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우리가 그 실제적인 체험에 있어서 그들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울부짖습니다. 그 시편 기자도 하나님을 아는 친밀한 지식을 가졌음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부흥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두는 것을 밑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집합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우리는 지금 어려운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 팽배한 죄와 악을 봅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영광 가운데 존재하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로 감동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모세의 기도를 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은 거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 우리 중 어떤 사람이 너무 바빠서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 우리는 너무 바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돌아가면서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가져다주는 어떤 기관쯤으로 방종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은 없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지식으로, 체험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 자신을 알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을 더욱더 간절히 열망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그 자신의 경우에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고, 비상한 영적인 복락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서 3:10에서 ··· ‘내가 (그를) ··· 알려 하여.’ ··· 그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 그처럼 비상한 체험을 여러 번 했던 이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요점은 그가 그러한 지식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 자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그 갈망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알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으로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울부짖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알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응답
“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궁극적인 신비와 마주치게 됩니다.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다른 말로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다 보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고통 가운데 겪는 99.9%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데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도저히 하나님의 꿈도 꾸지 못할 영광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모세는 자기가 구하고 있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교정해 주고 가르치십니다.
··· 모세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 번은 이사야도 ··· 말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언뜻 보게 되었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영광이 딱 한 번 나타난 것에 불과한데도··· 그는 놀라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 영광을 언뜻 보게 되었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계1:17)’고 말합니다. ··· 이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세상과 육체의 조건을 입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체험을 가졌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갖지 못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서 조금밖에 알지 못합니까?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사도 바울 자신이 다소 사람 사울로서 다메섹 도상에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정오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 그는 땅에 엎드러져 소경이 되었습니다. ··· 영광을 보는 것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 우리는 핵폭탄의 능력에 대해 읽습니다. 또한 그 섬광 때문에 사람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자기의 눈을 보호해야 된다는 것도 읽습니다. ··· 사도들과 제자들이 변화산상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있었을 때, 그 변모한 모습을 보며 깊이 잠들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영광이 너무나도 찬연하고 그것을 보면 눈이 멀고 그 영광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그 제자들을 그러한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깊은 잠을 자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14년 전에 하늘로 올리움을 받은 체험을 했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 그는 그것을 적나라하고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조건과 상태에 있었습니다.
··· 이것은 그러한 가능성들을 인식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 일어납니다. 또한 여러 세기에 걸쳐서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숲속에서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체험했던 것을 기술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또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위대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것에 대해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날은 몹시 추웠고 그 주위에 얼음이 얼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땀을 흘리게 했습니까? 그것은 영광, 영광의 성격과 영광의 초월성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세대와 보다 더 가까운 한 사람을 소개하자면 ‘무디’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어렴풋한 안목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 그만 손을 거두시라고 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죽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 부흥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면 이것에 대한 상세한 국면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사람들이 이 영광의 임재 속에서 또는 이 임재에 대해서 느끼고는 문자 그대로 땅에 엎드러져 기절을 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의 분량이 그 정도입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의 부분적인 성질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부분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하나 어떤 것은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언뜻 지나치면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여러분은 부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바로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흥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광을 언뜻 지나치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또 그것을 압니다. 그것은 곧 옷자락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고 하나님의 등을 보는 것입니다. ··· 우레와 번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 같은 방식으로 부흥은 그의 능력을 접촉하는 것이고, 그 분이 친히 어떤 분인가를 얼른 지나치면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며,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것임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작은 것들로 만족하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 가능성들을 보여주는 몇 가지 성경적 암시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고린도후서 12:1-4에서 바울이 묘사한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그러한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 베일로 가리어지고 부분적인 방식으로 영광 자체를 체험한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체험한 여러 가지 사례들! 그 결과로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알게 된 나머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1:21,2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어째서입니까? ···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말해야 마땅합니다.
··· 다시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 이 세상에서 우리는 희미하게 거울을 통해서 봅니다. ··· 그것은 부분적인 것입니다. ··· 그러나 그것이 있기는 합니다. ···‘주의 영광’입니다.
··· 우리도 베드로전서 1:8의 말씀을 따라서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너무나 잘 알고 그리스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입니다. 부흥을 맞이할 때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일종의 천국을 처음 맛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마저 천국을 먼저 맛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며.’
우리는 용기를 얻기 위해서 어떤 글 중에서 몇 대목을 살펴봅시다. 먼저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에거 생각해 봅시다.
‘때로는 한 단어만 언급해도 내 마음은 속에서 뜨거워진다. 오,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거나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 어떤 것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 ··· 내가 체험한 것 중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것은··· 복음의 영광스러운 것들을 직접 보는 데서 우러나온 것이다. ··· 때로는 내가 나의 밖에서 보는 그 영광스럽고 즐거운 대상으로부터 눈을 떼어서, 나 자신과 나 자신의 좋은 평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정말 참을 수 없는 큰 손해같이 보인다.’
‘1737년 내 건강을 위해서 숲속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말에서 내려 내가 늘 하던 대로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특이하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놀랍고 위대하고 충만하고 순결하고 달콤한 은혜와 사랑, 온유하고 겸손한 낮아지심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그처럼 고요하고 달콤하게 나타났던 이 은혜는 하늘보다 크게 보였다. ··· 내가 판단하기로는 거의 한 시간 가량 그러한 일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 시간 내내 거의 대부분을 나는 눈물의 홍수에 빠져 있었고 흐느껴 울었다. 내 영혼이 텅 비어 기절하여 먼지 속에 누워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고, 거룩하고 순전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은 격렬한 느낌을 가졌다. ··· 나는 다른 때도 여러 번 바로 그러한 성질에 속하는 것을 매우 많이 체험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똑같은 효과를 발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스펄젼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그를 통해 부흥이 일어났던 해에 행한 어느 설교에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 감각의 증거는 거짓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증거는 진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성령의 증거를 우리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틀림없는 확신을 얻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새로운 기름으로 그 머리에 흘러 넘쳐 찬미의 흰옷으로 그에게 입혀주고, 그 입으로는 천사들의 노래를 부르게 할 것입니다. ··· 만일 여러분이 간절히 알고 싶어 하면 그럴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그러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는지 분명히 알고 싶어 견딜 수 없다면 멀지 않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강렬하게 사모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 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 작은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큰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시면 믿음을 구하십시오. 믿음을 주시면 확신을 구하십시오. 확신을 얻었으면 충만한 확신을 구하십시오. 충만한 확신을 얻었으면 즐거움을 구하십시오. 즐거움을 얻었으면 영광 자체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것을 분명히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갈망하고 있습니까? 믿음, 소망, 확신, 완전한 확신, 기쁨, 영광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십시오. 모세의 예를 따르십시오.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서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 만일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진지하게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좋은 때에 그렇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영광을 구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구하십시오. 교회를 위해서,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
첫댓글 주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저희 각자의 삶 가운데, 교회와 모든 땅 가운데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