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의제
① 제국은 근대 주권에서 탈근대적 주권으로의 이행이다.
② 제국은 훈육 사회에서 통제 사회로의 이행이다.
# 핵심용어
# 생각해볼 문제
① 우리는 배달이라는 단일 민족이라고 믿어왔고 또 믿고 있다. 그런데 '민족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상적으로 구성된 것인가'라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민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자.
② 우리는 평생을 제도 속에서 살아가면서 훈육된다. 직장이 개인을 어떻게 훈육해왔는가 생각해보자.
③ 대표적인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통제에 봉사할 때는 제국적 기능으로, 개인의 삶의 역동적 힘을 증대할 때는 다중적 기능으로 역할한다. 우리의 생활에서 인터넷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보자.
1. 근대 주권 패러다임을 넘어서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판옵티콘). 프랑스 철학자 푸코에 의하면 원형감옥은 감시의 시선을 통해 권력이 개인에게 행사되는 메커니즘이다. | |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민'의 개념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한 민족이 한 국가를 형성하는 경우에 국민이나 민족은 동질적이고 본질적인 용어로 통용된다. 그러나 대체로 국가의 형성은 이질적인 여러 민족들을 포괄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이들을 '국민'으로 탄생시키는 일이 관건이 된다. 즉 국가는 국민의 창조와 함께 이루어진다. 국민 또는 민족은 내부적으로는 동질성과 정체성을 주장하고 외부적으로는 배제와 차이를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배달민족이라는 이름하에 동질성을 확보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이고 계급적인 이해관계와 이질성을 통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이나 국민 개념의 '자연스러움'은 재고해야 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예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즉, 민족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으로 구성된 공동체라는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도 역시 자연적이고 원형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인민의 개념을 비판하는데, 그들은 "사실상 근대적 인민 개념은 국민국가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에서 국민과 관련하여 근대적 인민 개념이 형성되는 데 두 가지 중요한 작용이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하나의 헤게모니적인 집단, 인종, 또는 계급이 전체 주민을 대표함으로써 내부적 차이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보여준 바는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과 권력 구조 사이에 새로운 균형 상태를 확립하고자 하는 요구였다. 즉 국민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차원 뒤에는 부르주아지라는 자본축적 과정을 지배하는 계급적 인물들이 이미 있었다. 이제 주권은 부르주아지의 대표제를 통하여 전유된다. 부르주아지라는 헤게모니적 계급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의 작용은 식민지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식민지 원주민들을 '타자'로 규정하고, 타자를 부정하면서 포섭하는 변증법적 과정에서 유럽 인민들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식민적 인종주의이다. 동양과 아프리카는 유럽에 비유럽이라는 타자로 제시되었고, 유럽인은 비유럽적인 것의 배제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인종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절대적인 인종적 차이를 만드는 일은 동질적인 국민 정체성 관념을 위한 본질적인 기반이다. 이렇게 근대적 인민의 개념은 인종차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네그리와 하트의 근대적 국민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은 제국주의 국가들 뿐 아니라 민족해방을 이루어낸 피식민지 정부에까지 이어진다. 우선 그들은 국민 개념이 유럽 밖에서는 다르게 기능해왔음을 인정한다. "국민 개념이 지배자의 수중에서는 정체와 복고를 촉진하는 반면, 피지배자의 수중에서는 변화와 혁명의 무기"로 작용한다. 피지배자의 국민 개념은 외부 세력들의 지배에 대항하는 방어선으로 봉사하는 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인다. 반식민 투쟁에서 국민은 지배적인 열강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투쟁 그 자체이며, 반제국주의적 정책은 압도적인 외국 자본 세력을 막기 위해 국민적 방어벽을 세운다. 또한 국민 개념은 피지배 주민과 문화를 열등하다고 묘사하는 지배 담론을 물리칠 이념적 무기가 된다.
그러나 그런 방어벽들은 외세의 지배에 대항하는 측면에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만큼, 내부적으로는 쉽사리 역기능으로 바뀔 수 있다. 외국 열강에 저항하는 만큼 내부적으로 억압을 자행하며, 국민적 정체성과 통합, 그리고 안전의 이름으로 내적인 차이와 반대를 억압한다. 국민보호와 국민억압은 구분하기 힘들 수 있다. 이 양날의 칼은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근대화를 치루면서 민족주의 정부가 휘둘렀던 것으로, 우리의 경우 해방 이후 근대화와 독재의 경험이 이를 증명해준다.
2차대전 후 식민주의의 종결은 근대 세계 및 근대 지배 체제의 종결을 의미한다. 국민 개념을 기반으로 한 근대주권의 패러다임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식민주의의 종결은 실제로 무조건적인 자유 시대를 연 것은 아니라, 오히려 전지구적인 규모로 작동하는 새로운 지배 형식들을 가져왔다. 제국으로의 이행이 시작된 것이다.
2. 근대 주권에서 제국 주권으로, 훈육 사회에서 통제 사회로
흔히 탈근대주의로 번역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제국으로의 이행을 알리는 경제적, 문화적 신호이다. 경제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포디즘과 함께 세계시장의 실현을 알린다. 포디즘이 미국 포드사의 근대적 대량생산 시스템을 표준으로 한 근대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용어라면, 포스트포디즘은 자본의 축적체제가 근대적인 시스템 내에서 위기를 맞이하여 포디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화, 정보화, 탈산업화, 탈국가화를 말한다. 다시 말해 대량생산공장이 주축이 된 근대 자본축적체제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이윤을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자, 한편으로는 하이테크 자본주의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로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이와 혼종성을 인정하고 확산하는 다문화주의적 경향을 띤다. 근대국가의 국민이 자아/타자의 이분법을 토대로 차이를 배제하고 동일성을 추구했던 반면, 제국은 이분법을 넘어서 차이를 선호하고 혼종성을 퍼트린다. 이러한 다문화주의적 경향은 세계시장의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 모든 차이는 기회이다. 예컨대 마케팅은 주어진 차이가 많을수록 더욱 발전한다. 인구가 혼종적이고 분화될수록 목표시장이 늘어난다. 탈근대적 마케팅은 각 상품과 각 인구층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펴나간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차이를 억압하는 근대적 이분법의 극복을 윤리적인 강령으로 내세우고 차이와 혼종성을 해방적인 개념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는 근대적 이분법을 극복하는 탈근대적 움직임이 바로 해방과 자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국으로 포섭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차이와 혼종성은 제국 내에서 또 다른 위계구조로 편입된다.
한 예로 제국의 인종주의를 살펴보자. 근대적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근거에 의존했다. 피부색의 차이가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제국의 인종주의에서는 문화가 생물학의 역할을 떠맡는다. 예컨대 흑인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자료가 있다면 이것은 이제 과거 근대적 인종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흑인의 유전자나 두뇌의 구조가 다르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흑인이 속한 문화적 차이에 의한 것으로 해석한다. 문화적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보다 유연한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에 못지않게 본질주의적이다. 제국의 인종주의는 모든 차이를 인정하면서 그 차이를 통해 혐오감을 정교하게 표출한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근대 주권에서 제국 주권으로의 이행은 훈육 사회에서 통제 사회로의 이행을 함축한다. 훈육은 미셸 푸코의 용어로서 근대국가에서 권력이 주체를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권력이 절대군주에게 집중되어 있었을 때는 권력의 행사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전달되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권력은 신경세포처럼 사회적 육체를 향해 널리 확산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권력의 새로운 작동 메커니즘으로서 훈육은 개인을 가족, 학교, 직장, 공장, 군대, 병원, 감옥 등의 제도 하에 두고서 끊임없이 감시함으로써 권력을 작동시킨다. 권력은 마치 모세혈관과 같아서, 개인에 대한 권력의 효과는 개인의 육체와 행동, 태도, 이야기, 그리고 학습과정이나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곳까지 미치게 되었다.
훈육의 대표적인 구조는 원형감옥(panopticon)이다. 원형감옥은 반지모양의 원환이 여러 개 겹쳐있는 모양으로 중앙의 감시자가 각 독방의 내부로 난 창을 통해 수감자를 감시할 뿐 아니라 다른 감시자도 감시하는 메커니즘이다. 수감자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감시의 시선에 대한 반응으로 스스로 자신에 대한 감시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 감시탑 안에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원형감옥은 수감자뿐 아니라 감시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권력의 효과를 나타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나, 전자신분카드가 암시하는 국민감시통제 체계는 훈육 사회의 발달된 예를 보여준다. 훈육 사회는 국가가 감시를 통해 개인들을 통제하려는 체계이기 때문에, 권력이 지나친 침범을 할 경우 개인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통제 사회에서 권력은 모든 개인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활성화하는 필수적인 기능이 된다. 즉 권력은 삶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생체권력이 된다. 이 생체권력을 보는 각도에 따라 제국과 다중의 입장이 갈라져 나온다.
김지영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부산대 영문학 박사 nominasacr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