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공채 경쟁률 XX 대 1” “○○그룹에서 당신의 꿈을 키우십시오” 하는 신문 기사나 채용 광고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공채 XX기”라며 수백명이 동시에 입사, 단체로 젊은 힘을 과시하던 신입사원들의 화려한 시대도 이젠 끝이 났다.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고 실력을 쌓아 스스로 인터넷을 뒤져서 여러 기업에 원서를 내 취업하는 ‘각개 약진’의 시대가 왔다. 이들은 한 번 직장이 영원한 직장이라고도, 회사가 자신들의 평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도 회사에 매이겠다는 생각은 없다. 준비가 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돌하지만 합리적인 신세대 신입사원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이들은 회사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대한항공, 삼성전자, 신세계, 엔씨소프트, 포스코, 한화, 현대자동차, KT, LG전자, SK텔레콤(가나다 순) 등 주간조선이 선정한 10대 주요 기업 100명의 신세대 신입사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이들은 누구인가
절반이 해외연수·유학 경험
‘26~27세·미혼자’ 대부분… ‘전산 관련 자격증 소지’눈에 띄어
▲ 신입사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왼쪽부터 고은경,손상득,이은정,서상현,윤정연,안소영,이준호,이동훈씨.
만 27세, 미혼, 절반은 해외 경험. 10대 기업 신입 사원들의 가장 평균적인 모습이다. 조사대상 100명 중 설문에 응답한 92명 가운데 27세(1976년생)가 25명(27%)으로 가장 많았고, 26세가 22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28세 12명, 24세 11명, 25세 9명의 순이었다. 평균 23세 정도에 첫 직장을 잡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사회 진출은 퍽 늦게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남성들의 군 입대 때문이다. 응답자 중 결혼을 한 사람은 3명뿐이었다. 대졸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11명이었다. 상당수 직원들은 직장 생활 도중이라도 해외 유학, 석사 학위 취득 등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전공 지식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연수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외국에서 아예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6명이나 됐고, 외국에서 1년 이상 연수한 사람이 12명, 1년 미만의 단기 연수를 다녀온 사람이 27명 등 45명이 ‘외국’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기업체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50대들이 대학 다니던 시절 해외 경험을 거의 할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같은 변화라고 할 만하다. 다만 유학이나 해외 어학 연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도 47명으로 절반이 넘어 일류기업 신입 사원 대부분이 외국 연수를 다녀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는 선입견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신입 사원들은 대학시절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 이상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7명에 달했는데 대부분 전산관련 자격증이었다. 정보처리기사, 인터넷 검색사, 무선인터넷 관리사, 전자상거래 관리사 등 이름으로 어느 정도 의미를 알 수 있는 자격증으로부터 SCJP, CCNA, CISA, SCJP, MCSE, MCDBA, MOUS, e-Test Professional 등 생소한 이름의 자격증들을 무더기로 가진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심지어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눈에 띄었다. 투자상담사, 사이버 무역사, 홍보관리사 등 경영·홍보에 관련한 자격증과 일본어 능력시험 1급, 무역영어 1급, 한자능력 1급 등 어학 관련 자격을 소지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졸업반이 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55명이 4학년이 된 후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응답했고,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사람은 18명이었다. 1·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사람은 각 1명씩으로 극히 미미했다. 반면 졸업 이후, 혹은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공부한 사람은 21명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대인관계가 기능보다 중요”
취업을 위해 필요한 공부는 전공과 어학이 각각 34명으로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을 사귀는 게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5명이나 돼 컴퓨터 등 기능적인 공부가 취업을 위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 7명을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취업을 위해서는 대인관계가 기능적인 측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서클활동(5명), 인턴 등 다양한 경력 쌓기(4명),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 쌓기(2명) 등을 취업을 위해 필요한 공부라고 응답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취미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답게 가지각색이었다. 영화관람·여행이 각 14명, 독서·음악감상·컴퓨터게임이 각 10명으로 ‘전통적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농구(9명)를 비롯해 축구 검도 야구 인라인스케이트 스노보드 수영 테니스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취미라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씩 있었다. 요리, 십자수 놓기 등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구세대와 그리 구별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잠을 자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응답이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음악감상 11명, 친구들과 술마시기 8명, 노래부르기 7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독특한 것은 찜질방에 간다, 운다, 고독을 즐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요가, 청소, 단전호흡, 영양제를 먹는다 등이었다.
아직 우리 직장문화는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부서에서 주5일제를 채택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1명에 불과했다. 주5일 근무제가 채택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금요일 저녁을 활용한 여행과 개인적 발전을 위한 공부를 든 사람이 가장 많았다.
지금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그들은 회사를 선택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개인의 발전 가능성(60명·65%)을 봤다. 회사 선택 기준 2위인 회사의 발전 가능성(25명)은 개인의 발전 가능성에 밀려버렸다. 3위를 차지한 것은 ‘회사에 대한 사회적 평판(6명)’이다. 해외근무 가능성(5명)도 생각한다. 급료(3명)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택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업종과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68명)는 것이다. 전공을 살릴 수 있다(13명), 그런대로 괜찮은 회사라고 생각했다(8명)는 대답도 있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1명)이란 대답 등이 있었다.
입사 이후 회사 생활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유연한 대인관계(48명)를 들었다. 그 다음이 성실성(23명), 업무추진력(18명), 영어 등 어학실력(6명) 순이었다. 또 마인드컨트롤(1명), 가치관(1명), 패기(1명) 등 다양한 기타 의견이 나왔다. 결국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주요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에게는 신입사원이란 말이 무색하다. 일단 현재 직장이 두 번째 직장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4분의 1(25명)이 넘는다. 심지어 세 번째 직장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3명이나 있었다. 신입사원을 향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년 때까지 다닐 것” 34% 불과
현재 직장에 언제까지 다니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보면 ‘헌(?)’ 신입사원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를 알 수 있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은 국내 최고를 다투는 주요 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정년 때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사람은 34명에 불과했다. 53명이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밝혔다. 심지어 언제든 전직이 가능하다고 말한 사람도 2명이나 있었다.
전직을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교수(1명) 의사(1명) 국제변호사(2명) 유학(1명) 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답도 나왔다. 그러나 음반제작(1명) 요리사(1명) 등 상상하기 힘든 대답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 자체가 다양했다. 전직을 한다면 선택하겠다는 직군이 총 27개에 달했다. 가장 많은 대답은 개인사업(12명), 다음은 마케팅(8명)이었지만 23개 직군을 단 1명이나 2명이 새로운 일로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다양성이 지배하는 세대인 셈이다.
평생 직장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기존 직장인들은 회사가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현재 고용상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50명이 신분보장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 42명은 현재 상태에 아주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회사가 나를 버릴까 두려워하는 대신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생각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들은 현재 직장에 만족하고 있다. 현재 직장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25명이 아주 만족한다고 답했다. 63명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그저 그렇다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이 4명. 불만, 혹은 아주 불만이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에 만족하는 이유도 개인의 발전 가능성(46명)을 꼽았다. 다음은 회사의 발전 가능성(21명) 업무내용(13명) 급료(8명) 회사 분위기(7명) 순이었다. 회사에 만족하지만 회사를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두 가지는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유형의 선배나 상사가 좋은 평가를 받을까? 일단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26명)과 업무 노하우를 후배와 공유(25명)하는 사람이다. 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상사(10명), 업무 외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선배(10명)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친근감을 자주 표시(6명)하는 것도 좋다. 소수 의견으로는 유머감각 있고 너그러운 사람(1명) 등이 있었다.
반대로 싫어하는 상사는 권위주의적인 사람(30명)이 압도적으로 많다. 업무에 소홀(12명)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8명),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7명)도 기피대상이다. 소수의견으로는 술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1명),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1명), 너무 조용하고 일만 하는 상사(2명)도 있었다.
신입사원들은 배우자가 연상이든 연하이든 상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75명(82%)이 ‘별 문제 없다’고 답해 신랑이 신부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기존 관념이 무너졌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이들이 원하는 결혼 시기는 부모님 세대보다 점점 늦어지는 추세로 남자의 경우 ‘서른살 이전에 하겠다’는 응답은 16명뿐이었고 여자의 경우 ‘서른살에 하겠다’는 응답자도 7명이나 됐다. 이는 상대방을 잘 알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만남을 가져보겠다는 것과 경제적인 안정을 얻은 후에 결혼하겠다는 것을 반영한 결과였다. ‘아무때나 하겠다’(1명)는 응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배우자가 갖춰야할 요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28명이 ‘지적 능력’, 8명이 ‘경제적 능력’이라고 답해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능력과 함께 중시되는 것은 ‘성품’으로 22명이 최우선 요건으로 들었고 ‘비슷한 성격ㆍ가치관’이라고 답한 사람도 12명이었다. 이에 반해 외모(2명), 집안 등 배경(2명)은 최하위권에 속했다. 기타 답변으로는 ‘사랑하는 마음’(3명) ‘지혜’(3명) ‘종교’(1명) 등이었고, 눈에 띄는 답변으로는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2명) ‘평생 친구’(1명) 등이 있었다.
배우자가 될 사람의 이혼 경력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결혼하기 어려울 것이다’(68명)가 ‘별문제 없다’(24명)보다 많아 아직까지 이혼 경력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연애와 결혼의 상관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직장인으로서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게 정상이다’(53명)가 ‘연애는 연애일 뿐 결혼과는 아무 관계 없다’(32명)보다 많았다. 기타 답변도 ‘연애의 성공은 결혼이다’ ‘연애하다 좋다는 확신이 있을 때 결혼한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일 뿐이다’ 등으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고 답한 응답자 32명은 전체의 35%에 해당되기에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신입사원들에게서 나온 답변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신입사원들은 직장 내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으로 ‘일로써 인정받는 것’을 꼽았다. 응답자 가운데 41명(45%)이 이같이 답했다. 그러나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답한 사람도 36명이나 돼 3분의 2 이상이 승부욕이 강한 이들로 나타났다. 이외에 ‘일을 배워 독립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은 9명,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 사람은 5명이었다. ‘안정된 상태에서 오래도록 일하는 것’을 가장 바라는 소망이라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직장에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으로는 ‘행복한 가정’이 단연 1위로 꼽혔다. 3분의 2에 가까운 64명이 부와 명예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다고 답했다. 신세계의 신입사원 유삼수씨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되고 큰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부와 명예도 좋지만 늘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임할 때 성취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당장 결정권을 가진 경영자가 된다면 무엇부터 가장 먼저 바꾸고 싶겠는가? 10대 기업의 신입사원들은 이 같은 질문에 ‘회사의 의사결정 체계를 가장 먼저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사원은 “우리나라 회사들은 아직도 윗사람이 명령하면 아랫사람이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무한 경쟁시대에 아직도 이 같은 상명하달식 체계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휴일 중요시…‘주5일 근무제’ 선호
경영자로서 바꾸고 싶은 것 2위는 ‘주5일 근무제 실시’였다. 현실적으로 아직도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한 설문 참여자는 “오랫동안 남아있거나 휴일에 나와서 일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데, 사실 한심해 보인다”며 “휴일은 ‘노는 것’이 아니라 ‘충전의 기회’이므로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일고 있는 ‘신세대식 서열파괴 붐’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능력에 따른 차별 보상 등 임금 체계 개선’ ‘권위적인 회사 분위기 개선’ ‘격식 파괴를 통한 신바람나는 직장으로 만들겠다’ ‘처우 개선’ 등의 답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야심찬 포부를 내비쳤다. 기타 바꾸고 싶은 것으로 든 답들도 수익성 없는 사업을 과감히 접겠다, 신규 사업에 진출하겠다, 세계적인 연구소 설립에 힘을 쏟겠다 등 젊은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는 누굴까? 응답자 중 16명이 미국의 제네럴일렉트릭(GE)사의 전 회장이었던 잭 웰치를 꼽았다. 끝없는 도전과 용기로 인간의 무한가능성에 도전하고 인재 육성에 힘을 쏟은 잭 웰치의 경영 마인드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야심이다. 한편 여성 신입 사원들 가운데는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가장 추앙받았다. 피오리나 회장은 미 경제지 ‘포춘’ 선정 5년 연속 ‘세계 최고의 여성 CEO 1위’에 뽑힌 인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리고 있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사장이 꼽혔다.
한국 기업인으로서 존경하는 인물로 뽑힌 사람 가운데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이 눈에 띄었다. 삼성 직원들은 대부분 이건희 회장을, 현대 직원들은 정주영 전 회장을 뽑는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 젊은 벤처기업가가 4표를 받은 것이다.
존경 인물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는 ‘경영자로서의 감각’을 높이 샀다. 탁월한 능력과 입지전적 성공기가 그 뒤를 이었다. 청렴성과 공정성, 도덕성, 인간적인 성품을 선정 이유로 든 사람은 10명이 안 되었다.
역시 신입사원들은 젊은 세대였다. 최근 대통령 선거, 북핵 문제, 대북지원, 반미촛불시위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슈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상당한 입장차가 드러났던 소위 세대갈등이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젊은 신입사원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념 성향과 그들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이념 성향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 데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우리 사회의 이념 성향과 관련, 절반이 넘는 답변자(50명·54%)가 우리 사회의 이념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사람(5명)까지 합치면 60%에 가까웠다. 우리 사회를 중도적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25명.
반면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중도적이라고 답변한 사람이 40명으로 가장 많았다. 보수냐 진보냐에선 진보적이라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스스로를 진보적(35명), 매우 진보적(3명)이라고 답변한 사람(총 38명)이 보수적(12명), 매우 보수적(2명)이라고 답변한 사람(총 14명)의 3배에 가까웠다.
이러한 세대갈등에 대해 신입사원들은 비교적 ‘건강한’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 사원은 신·구 세대가 서로 충분히 이해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원은 “사내에서도 상사들이 젊은 사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도 나이 많은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기업체에서 사회 첫 출발을 하는 이들답게 ‘경제적 혼란’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1명이 선택지 가운데 경제적 혼란을 꼽았다. 이어 정치적 혼란(17명), 북핵 문제(15명)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또 대미(對美) 관계 혼동이라고 답변한 사람(8명)도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최근 북핵 사태로 빚어진 한미(韓美)간의 갈등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사람도 1명 있었다.
●“한국 경제 어렵지 않다” 1명도 없어
최근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대다수(79명)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경제 현장의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체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體感) 경기 역시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 경제가 어렵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최근의 경제 상황은 신입사원들간에 이견(異見)이 없는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그저 그렇다’는 답변은 12명 정도.
한국 경제가 어렵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다양한 답변이 쏟아졌다. 우선 선택지로 제시된 사항 중에선 ‘세계 경제 침체’(39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22명)이라는 자기 반성적 답변도 이에 못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침체는 단순히 세계 경제 침체 등 외생변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내재된 자체 문제에서도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정치 불안’(15명) 때문이라는 답변도 적지 않아, 이제 재계 일원이 된 신입사원들도 우리 정치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최근 경기 침체의 주요인으로 꼽힌 이라크 전쟁(8명), 북핵 사태(7명) 등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 또 세계 경제 침체, 한국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 국내 정치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답변은 2명이었다. 이밖에 가계대출 급증과 개인신용불량자 증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답한 사람도 각각 1명씩 있었다.
◆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
경영서적 ‘위대함을 향해’ ‘더 골’ 1위
10대 기업 신입사원들이 ‘최근에 읽은 감명깊은 책’은 무엇일까? 경영서적 부문에서는 짐 콜린스의 ‘위대함을 향해(Good to Great)’와 엘리 골드렛ㆍ제프 콕스의 ‘더 골(The Goal)’이 공동 1위(7명)를 차지했다. ‘위대함을 향해’는 스탠퍼드대 경영대 교수를 지낸 저자가 20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성공적인 기업이 ‘우량(Good)’의 차원을 넘어 어떻게 ‘위대함(Great)’ 수준으로 이를 수 있었는지를 5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 ‘더 골’은 미국 제조업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은 ‘TOC(Theory of Constraintㆍ제약조건 이론)’를 소설 형식으로 풀이한 책이다. 3위(5명)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 책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의 습관을 분석해서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등을 부각시켰다. 경영서적 부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피터 드러커 관련 서적이 많다는 것이다.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가 4위(4명)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도전과 용기’가 공동 5위(3명)에 올랐고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2명) ‘프로페셔널의 조건’(1명) 등 다수가 포진해 있었다.
이외에는 ‘마케팅 불변의 법칙’(3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2명) 등이 뒤를 이었고,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향하고 있다’ ‘제4의 물결’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등이 있었다.
일반서적 부문에서는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1위(7명)를 차지했다. 이 책은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는 ‘생쥐 우화’를 통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을 꼬집었다. 2위(4명)는 ‘단순하게 살아라’(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외 지음)로 삶을 단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33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 ‘아버지’ ‘직장인을 위한 변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he Age of Access’ 등은 각각 2명이 응답해서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말을 듣지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봉순이 언니’ ‘백범일지’ ‘뇌’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