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소설 | |||||
|
2. 소설의 요소와 구성 단계 5. 소설의 표현 요소 6. 인물의 뜻 : 소설의 구성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
(3) 인물 묘사 방법
7. 소설의 종류 |
8. 소설의 특질
소설의 특질
1)허구성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과 상상력에 의해 꾸며진 거짓의 세계라는 것이다. 비록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러 구성요소의 긴밀하게 짜 맞춤으로 인해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가상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2)진실성
인간의 진실(뭔 말인지 원! 쉽게 말하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고 삶인가 하는 것 아닐까 싶다.)을 밝혀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소설은 비록 허구의 세계를 그리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참모습과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소설가들의 관심사는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많은 인물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탐구하는데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3)인생의 표현
원숭이들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표현한다는 말이겠죠? 죠지 오웰의「동물농장」에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인간의 성격을 그대로 옮긴,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이죠.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4)서사성
인물, 사건, 배경 등이 있고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일정한 이야기(English로 스토리)구조를 지닌다는 이야기다.
5)예술성
소설이 문학예술의 한 장르인 만큼 일정한 형식미와 예술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cf) 희곡과 소설의 차이점
♠ 소설은 독자에게 읽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희곡은 읽기 위해 만들 수도 있으나 관객에게 연극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 인물면에서 보면,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의 수에 제한이 없지만, 희곡에서는 등장 인물의 수에 제한을 받으며 또 분명하고 의지적인 희곡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
♠ 소설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지만, 희곡은 제약을 받는다.
♠ 소설의 문장은 대화와 지문으로 이루어지지만 희곡의 문장은 주로 대화로 이루어진다.
조정래 소설창작법 신문기사를 쓸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게 여섯 가지 있다. 그것을 육하원칙이라고 함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육하원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이렇게 여섯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육하원칙이 비단 신문 기사 쓰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신문 기사든, 소설이든,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리고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육하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삶의 육하원칙을 생각해보자.
첫째, 내 삶을 "누가" 사는가? 먼저 첫째 문제인 내 삶을 "누가" 사는가를 생각해보자.
누가 내 삶을 사는가? 물론 "내"가 내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고 있을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모든 문제를 자신을 주어로 한 문장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왔다. 강의실에 어느 학생이 젖은 채 들어섰다. 장난기가 동한 나는, "너 왜 그렇게 젖었냐?"하고 물었다. 그 학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의아해서 답했다. "비가 와서 젖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한다. 재수없어서 그때 마침 비가 왔다고. 운이 나빠서 비를 맞았다고. 내가 나의 삶에 주인공이 된다라는 말은 싶게 할 수 있지만, 실제 삶에서 그렇게 살기는 힘들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이런 삶의 방법에 대하여 좋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수능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절망하여 자살한 여학생이 요즘 화제이다. 그 여학생은 아마 저승에 가면서도 잘못 보도한 언론이나 예측을 잘못한 입시전문가들을 원망할 지 모른다. 자신을 주어로 삼지 않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자기 삶을 자신이 살 수 없다. 스스로 제 삶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삶의 첫번째 원칙이 된다
육하원칙
둘째, 내 삶을 "언제" 사는가?
셋째, 내 삶을 "어디서" 사는가?
넷째, 내 삶을 "무엇을" 가지고 사는가?
다섯째, 내 삶을 "왜" 사는가?
여섯째, 내 삶을 "어떻게" 사는가?
그래서 내가 또 묻는다. "비가 너를 적셨단 말이지. 그런데 비가 와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 젖었는데 왜 너만 젖었니?"
참으로 엉뚱한 물음에 그 학생은 기가 막힌다. "다른 사람들은 방에 있었으니까요."
물론 비가 오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지만 젖고 젖지 않고는 자신이 선택할 문제이다. 비가 와서 젖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젖는 게 아닐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비가 와서 젖었다"와 같이 비를 주어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주어로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늘 상황이나 운명에 자신의 삶을 맡겨야 한다. 이런 일조차도 자신을 주어로 삼아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내가 젖고 싶어서 비를 맞았다"는 식으로. 말이 안되는 소리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주관할 수 있는 힘과 길을 얻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적 세계의 시스템을 매트릭스라 부르지만, 실제 삶에서 우리는 그런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운에 맡기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내가 스스로 자기 삶을 운영하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서 자기 삶을 만들어가려 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은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도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매트릭스에 몸을 맡기고 살려는 인물도 나온다. 그게 당장은 편하다.
반면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주인공들은 힘든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삶이 궁극적으로는 자기에게 행복을 주므로 그것을 얻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당신들 때문에 내가 미리 절망하여 목숨을 끊었다고.
그러나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황에 휘둘려서 목숨을 스스로 잃은 것 아닐까?
이처럼 우리는 늘 상황 탓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세상이 하도 더러워서 내가 불행하다"
"대통령이 잘못해서 살기가 힘들다"
"날씨가 이상해서 장사가 안된다"
"교수를 잘못 만나 취직이 안된다"
"친구 때문에 강의에 지각했다"
등등 우리가 사용하는 "~때문에"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말들은 다 자신을 주어로 삼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