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마케팅에 있어서는 혁신의 장점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너
무 많이 이야기되었고 모방에 대해서는 논의가 너무 없었다. 어찌보
면 혁신과 조기시장 진출의 이점이 아주 과장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
다. 물론 창작의 장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쟁상대보다 먼저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는 기업
들이 시장점유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유지하는 일은 - 이
를 흔히 선발자의 우위, 또는 진입 순위 효과라 부른다 -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혁신이 시장진입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많은 경우에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혁신자가 후발자보다 못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호 마케팅 포커스에서는 모방전략(Managing
Imitation Strategies)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하고 그 내용을 간략
히 요약해 보고자 한다.
II. 후발기업이 선발기업을 추월하기 위한 방법
1. 모방의 동기
1960년대 중반에 디어도어 레빗이 '먹던 사과 정책'을 들어서 초
기 추종자들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들은 기회를 인지하여 포착하는 첫번째 기업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다른 기업이 선구자가 되도록 놓아 두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그들은 재빨리 뒤따른다. 초기 추종
자들은 사과의 첫 입을 깨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깨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은 열 번째의 작은 입이 아니라 최소한
두 번째의 커다란 한 입을 먹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많은 경우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선구기업은 과도한 위험을 지게되고 너무 늦게 진
입하면 기회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반면에 초기 진입자들은 대부분
의 경제적 보상을 얻는다. 일부러 바깥에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꾹 참
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움직임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이런 전략은 보
통 유통과 광고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금
력이 충분한 업계의 주도자들이 구사한다.
즉, 시장이 매력적임이 분명해지고 선구자들이 거의 항상 저지르
는 불가피한 실수를 저지르면, 모방기업들이 진입하여 자신들이 생각
하기에 당연히 자신들의 몫인 부분을 다시 빼앗게 되는 것이다.
2. 모방의 종류와 내용
모방에는 인기있는 제품을 부정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복제하는
것에서부터 선구적인 제품에 영향을 받아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
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위조 또는 해적판, 모
조품 또는 유사품(Knockoffs), 디자인 복제 또는 의장 복제, 창조적
개작(Creative adaptation), 기술적 추월, 타산업에의 적용 등이 있
다.
그리고, 모방의 내용도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절차, 과정
또는 전략, 경쟁적 벤치마킹 등이 있다. 벤치마킹을 통한 모방적 개작
을 획기적 사고(Breakthrough thinking)라고 부른다.
3. 모방 전략
모방기업이나 후발진입 기업들은 다음 세 가지의 전략을 써서 성
공했다.
(1) 선구자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2) 더 나은 제품을 팔거나,
(3) 시장력을 사용하여 약한 선구자를 짓밟는다.
가장 인기있고 성공적인 모방전략 중의 하나는 선구자가 내놓은
제품의 싸구려 복제품을 만들어 염가로 파는 것이다. 이 전략을 추구
하는 데는 보통
(1) 선구제품의 정확한 복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파는 방법,
(2) 축약판을 훨씬 더 싼 값에 파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전략의 공통된 점은, 선구자가 요구하는 높은 가격에는 응
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시장을 主流로 확대시킬려
는 시도라는 점이다.
어떤 모방기업은 "두 번째이지만 더 낫기 때문에" 성공하기도 한
다. 그런 후발기업들은 선구자의 제품을 단순히 복제하려고 하지 않는
다. 저가를 근거로 경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전략은 선
구자의 디자인을 개선해서 소비자들이 초기 제품보다 더 뛰어난 디자
인을 선호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다음은 시장력을 이용하는 모방전략이다. 이론상 선구자들은 모방
기업이 뛰어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을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구자
의 혁신적인 제품에 의해 자신의 기존 제품이 위협받게 되는 업계 거
인들이 갖고 있는 시장력과 겨루게 되었을 때, 이 장벽은 약하거나 아
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기존기업들은 작지만 빠른 도전자들이 갖고 있는 선견지명을 갖
지 못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장에 진입하기로 하면 선구자를 짓밟
을 수 있는 막강한 힘으로 진입한다.
업계의 주도기업들은 선구자에 대한 반격에 쓸 수 있는 세 가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1) 대규모의 업계 주도기업들은 모방제품의 판매촉진에 관한 마케팅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은 또 유명한 브랜드명, 명성, 그리고 기존 고
객을 확보하고 있어서 제품의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
(2) 기존기업들은 모방품을 유통시킬 유통경로를 이미 갖고 있다.
(3) 끝으로 기득기업들은 사업성장에 필요한 재무적 자원을 갖고 있는
데 소규모의 선구자들은 이를 따라갈 수 없다.
III. 선발기업을 능가한 모방기업: 드라이 맥주
수십년 동안 외국기업들은 미국의 기술혁신의 열매를 다 가져가
버린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개발된 기초기술을
복사해서 재빨리 상업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드라이 맥주
의 경우를 보자. 드라이 맥주는 일본에서 일본 기업이 만들어내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파고든 후, 해외에서도 똑같은 성공을 거두겠다는
희망을 갖고 미국에 수출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주요
미국양조업체들, 특히 앤호이저 부시사가 드라이 맥주를 내놓아 이 제
품군을 석권하게 되었던 것이다. 드라이 맥주는 미국기업이 어떻게 일
본의 기술혁신을 복제했는지에 대한 흔치 않은 교훈적인 사례다.
이야기는 일본맥주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아사
히 맥주사와 함께 시작된다. 1906년에 설립된 아사히 사는 맥주산업
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되었다. 그
중 하나는 아사히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각각 기린, 니폰으
로 불리게 되었다. 아사히의 매출은 40년 동안 계속 줄어들었고 아사
히로부터 분리된 기린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일본의 맥주산업에는 규모가 각기 다른 4개의 기업이 있다. 1980
년대 후반까지 기린은 일본시장의 거의 60%를 장악하고 있었고, 매출
액 면에서 세계 4대 양조기업 중 하나였다. 삿포르가 20%의 점유율로
2위였고, 아사히와 산토리는 약 10% 정도씩 차지하면서 훨씬 뒤쳐져
있었다.
네 경쟁사의 맥주맛은 모두 비슷했고 포장과 판촉경비만이 달랐
다. 시장 주도자인 기린은 경쟁사들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을 들였
다.
아사히는 자신의 위치를 반전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맥주맛 실
험에서 아사히의 실험적인 맥주 중 하나가 맛이 아주 뛰어나다고 소비
자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소비자들은 특히 이 제품이 뒷맛이 없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더 높은 알콜도수(10%)의 효과도 더 빨리 느낄
수 있었다. 아사히는 이 맥주를 '드라이 맥주'라고 불렀다.
드라이 맥주는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옛날의 아이
디어를 새롭게 나타낸, 오래된 양조기법의 현대판이다. 한 전문가는
이를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전적 형태의 흑맥주(stout)"라
고 불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것이 진정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사
기에 가까운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드라이맥주는 특유의 맛 때문에 보통의 맥주와는 구분된다. 드라
이 맥주는 전통적인 맥주보다 오랫동안 발효시키고 효소도 다른 종류
를 사용한다. 또 칼로리도 더 적다. 그러나 이 점은 제조업체들이 라
이트 맥주의 매출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렇
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떤 드라이 맥주는 , 특히 일본에서 팔리는 것
들은 전통적인 맥주에 비해 알콜도수가 높다. 그리고 사실 유일한 드
라이 맥주기법이라는 것은 없다.
아사히는 1987년 3월에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일본 시장에 내놓
았다. 이 혁신적인 맥주는 순식간에 전체시장의 20%를 장악했다. 그렇
게 빨리, 그렇게 높은 점유율을 보인 맥주는 일찌기 없었다.
이 현상이 업계 내에서의 아사히의 위치에 미친 영향은 놀라웠
다. 아사히의 시장점유율은 1985년의 9.6%에서 1989년에는 25%로 치솟
았다. 3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아사히는 4대기업 중 3-4위에서 2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점유율이 20%에서 18%로 떨어진 2위 삿포르는 쉽게
제압했다.
그러나 아사히의 점유율 상승은 대부분 오랫동안 산업내의 주도권
을 쥐어온 기린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기린의 점유율은 60%에서 49%
로 떨어졌다. 1988년까지 드라이 맥주는 일본맥주 시장의 40%나 차지
하게 되었다.
아사히가 일본에서 드라이 맥주로 성공한 것은 밀러가 미국에서
라이트 맥주로 성공한 것과 거의 비슷한 면이 있다. 2위의 자리로 쾌
속 항진한 것이다. 그러나 밀러의 경우와는 달리 아사히의 성공은 거
의 전적으로 신제품에 의존했다. 드라이 맥주는 아사히 매출액의 95%
를 차지했다. 아사히의 운명은 드라이 맥주의 계속적인 성공과 밀접
한 관계가 있었다.
드라이 맥주의 성공이 너무 엄청나서 아사히는 수요를 제대로 맞
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공급확대를 위해 자사 종업원들이 드라이 맥주
를 사지 못하게 했다. 또한 다른 맥주를 생산하던 공장들, 예를들면
라이센스 하에 일본에서 쿠어즈 맥주를 생산하던 시설을 드라이 맥주
생산으로 돌렸다. 생산능력을 급속히 늘리기 위해 많은 투자도 했다.
일본의 경쟁사들은 드라이 맥주가 순식간에 성공을 거두는 것에
완전히 넋을 잃었지만 아사히의 조기진입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히 움
직였다. 1988년 2월 기린, 삿포르, 산토리는 아사히의 혁신제품을 모
방한 제품을 내놓았다. 기린이 '기린 드라이'와 함께 내놓은 '이치
방'은 출시 첫 해에 3,500만 상자가 팔린 독특한 제품이다. 그러나 대
부분의 모조품들은 아사히의 슈퍼드라이에 대항해서 시장 점유율을 크
게 얻지 못했다.
곧 미국시장으로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아사히는 일본시장에서의
성공을 미국시장에서도 재현하려 했다.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 전
체 일본제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 이하였다. - 아사히는 기막힌 제
품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혁신기업인 아사히와 그의 모방경쟁사들은 언론의 주목을 별로 받
지 못한 채 미국시장으로 진출했다. 대부분의 일본 브랜드는 처음에
는 주로 일식집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한정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진
출했다. 그러나 드라이 맥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통경로도 다양해
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불경기를 겪고 있던 미국맥주산업에서 '불티나
는' 제품이 되었다. 이 때문에 1억 2,900만에 이르는 미국의 맥주애호
가를 놓고 경쟁사간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국내양조업체들은 일
제수입품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재빨리 대응했다.
앤호이저 부시사가 가장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기린이 일본시장
에서 당했던 전철을 밟고 싶지도 않았고, 자동차와 가전산업처럼 수입
품의 침투로 미국시장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
다. 1988년 9월 앤호이저 부쉬는 5개의 시험시장을 선정해서 '미켈롭
드라이'의 시험판매에 들어갔다.
일본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앤호이저 부쉬의 성공은 너무 고무적
이었고, 이 제품은 불과 몇 개월 후인 1988년 11월에는 전국시판에 들
어갔다. 미켈롭 드라이로 앤호이저 부시는 드라이 맥주를 만드는 최초
의 국내기업이 되었다. 매출은 급증했고 1989년 1월에는 제품이 동나
서 소비자들에게 사과해야할 정도였다.
또 다시 비평가들이 이 제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주장
을 내놓았다. 어떤 산업 전문가들은 50년대에 이미 뉴욕의 라인골드
나 세인트루이스의 스텍 같은 지역 양조업체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드
라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일본에서 아사히의 뒤를 이어 드라이 맥주에 뛰어든 기린이 이제
는 자기들이야말로 혁신기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기린의 캐나다
지사의 한 간부는 뻔뻔하게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원조이
고 거기에는 고유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온 진짜 드라이 맥주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
다."
'진짜' 모조품과 '원조' 모조품이 후발기업인 미켈롭 드라이와 한
판 승부를 벌일 태세를 하고 있었다.
미국시장에서의 경쟁은 뜨거워졌다. 1989년까지 20개 이상의 드라
이 맥주가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경쟁하게 되었다.
1989년 3월 앤호이저 부시는 113년의 역사에서 단 한 번밖에 취
한 적이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다른 맥주에다 '버드와이저'의
이름을 쓰기로 한 것이다(첫 번째는 '버드 라이트'였다). '버드 드라
이'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그리고 위스콘신에서 시험판매되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버드 드라이는 1990년 4월까지는 전
국적으로 팔리게 되었다. 매출액 신장률은 1982년 버드 라이트가 세
운 기록에 필적할 만했다. 이 신제품에 따라다니는 광고문안은 '이유
를 묻지 마세요(Why ask why?)'였다.
일본의 미국시장침입에 대한 앤호이저 부시의 초기대응은 성공적
임이 드러났다. 버드 드라이와 미켈롭 드라이는 재빨리 선두에 나서
서 일본 기업의 공격을 제압해 나갔다. 수십 종의 다른 드라이 브랜드
들이 계속 서로간에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버드 드라이와 미켈롭 드라
이가 지배하고 있다.
앤호이저 부시가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첫째, 앤호이저 부시는 혁신기업의 위협에 재빨리 대응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혁신제품과 모방제품들이 거점을 확보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둘째, 미국제품이 가격면에서 확실한 우세에 있었다. 미켈롭과 버
드 드라이 모두 '최상급' 제품으로 팔렸지만 가격은 6개들이 한 박스
에(일제보다 거의 2달러나 싼) 3달러 29센트였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앤호이저 부시가 뛰어난 기존의 유통체
계를 갖추고 있어서 자사제품을 재빨리 슈퍼마켓 진열대 위에 올려 놓
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앤호이저 부시의 유통상의 이점은 시장에 최
초로 진출하지 못한 불리함을 메우고도 남았다.
넷째, 앤호이저 부시가 (1)광범위한 고객들에게 판촉활동을 벌일
수 있는 자원, (2)이미 자리잡은 브랜드명 등 다른 기업이 따라오지
못할 마케팅상의 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일본기업
의 브랜드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수입품을 찾는 소규모
구매자 집단에게 호소하는 시장의 틈새를 이용한 브랜드였던 것이다.
Ⅳ. 맺음말
드라이 맥주의 사례는 새로 부상하는 시장에서 모방기업이 선발
기업을 능가한 28개의 사례중의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제
품들이 후발 제품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마케터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 본다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제품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라고 사
료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선발기업이 모방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 어
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 참고 문헌
Steven P.Schnaars : Managing Imitation Strategies
손근상 옮김 : 모방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