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국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수천 년 이어져오던 절대 왕조 체제는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졌지만 뿌리도 내리기 전에 중국 각지에서는 군벌이 할거한다. 지역 군벌인 후걸(유덕화) 사령관의 오른팔인 조만(사정봉)이 군사들을 이끌고 총칼을 앞세워 소림사로 쳐들어온다. 조만의 군사는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마지막으로 소림사를 장악한 것이다. 소림사의 무승들은 주지 스님을 보호하랴, 이곳까지 밀려온 백성들을 보호하랴 정신이 없다. 이때 등장하는 후걸 사령관. 후걸은 <천하무종-천하 무림의 본가>라고 쓰인 소림사의 현판에 ‘불외여시’(不外如是-별 것 아니잖아)’라는 오만한 낙서를 하고는 득의양양 물러난다. 후걸은 소림사가 있는 등봉(登封) 일대를 손에 쥐었지만 자신의 상관인 송호에게 불만이다. 송호가 언젠가는 자기를 처치하고 자신이 모아놓은 금은보화를 다 차지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걸은 연회를 준비하고 오른팔 조만을 믿고 기회를 잡아 송호를 암살할 음모를 꾸민다.
연회날. 후걸이 송호를 처치하는데 성공하지만 믿었던 부하 조만이 자신을 제거하는 쿠데타를 벌인다. 후걸은 눈앞에서 딸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겨우 살아남은 호걸은 소림사로 숨어들어가 그곳에서 주방 일을 하는 오도선사(성룡)를 만난다. 전쟁과 살인, 복수와 배신을 일삼던 후걸은 그제서야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 아내는 딸을 잃고 떠나버린 상태. 후걸은 죄책감에 고민하다 결국 머리를 깎고 소림사 승려가 된다. 야심에 불타는 조만(사정봉)은 제국주의 서양세력과 손잡고 철도부설 등 이권을 넘겨주는 등 만행을 거듭하더니 소림사까지 공격해온다. 조만(사정봉)은 후걸(유덕화)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게 되고, 서양 군대는 소림사를 깡그리 날려버리려고 멀리서 소림사를 향해 집중 포사격을 시작한다.
소림사는 중국 하남성 등봉현에 있는 절이다. 무려 1,500여 년 전에 세워진 사찰이다. 이 절은 역사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규모도 엄청나다. 원래 서기 495년 북위(北魏) 연간에 세워진 소림사는 중국 불교선종의 큰절이다. 인도의 달마대사가 이곳에서 면벽수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나라 이세민이 진왕(秦王)으로 있을 때 죽을 고비를 만나지만 당시 소림사 무승들이 그를 도와주어 왕권을 잡게 된다. 이후 대대로 소림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중국의 최고 대표사찰로 인정받아온다. 물론 소림사 고유의 권법 소림무술 또한 날로 번창했고 말이다.
지금 소림사의 주지(방장)는 석영신(释永信)이란 인물이다. 중국 사람의 상술은 대단한데 이 석영신 주지의 재간도 보통이 아니다. 소림사를 종교의 성지로만 키운 것이 아니라 ‘애플’에 버금가는 ‘소림사제국 주식회사’로 만들어가고 있다. 당연히 ‘소림사’는 최고의 관광명소로 꾸며졌고, 상상(想像) 가능한 ‘소림’ 상품이 나왔다. 소림무술? 그건 기본이다. 지금도 하남성 등봉에 가보면 소림사 가기 전에 숱하게 들어선 ‘소림 무술학원’을 볼 수 있다. 그냥 우리나라의 태권도장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엄청난 규모의 무술학원이 줄줄이 들어서서 신입생을 뽑고 있다. 이곳에는 ‘제2의 이연걸’, ‘내일의 성룡’이 되려는 수만 명의 무술희망자가 몰리고 있다. 도를 닦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림쿵푸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희망사항이 ‘아이돌 스타’가 되는 것이라면, 이곳의 많은 젊은이들은 소림무승이 되는 것이 꿈이다. 학교에서 공부하여 출세하는 것보다, 군대에 가서 인민의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소림무승이 되어 출세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소림무승이 출세하는 것이라고? 놀랍게도 소림사에는 소림무승단이 있다. 소림사를 보러오는 관광객들 앞에서 소림무술을 보여준다. 이 규모도 엄청나다. 몇 년 전 러시아의 푸틴이 소림사를 방문했을 때 그에게 소림무술을 펼쳤다. 세계 VIP급이 방문했을 때 공연하는 무술단부터, 각국의 단체관광객들이 왔을 때 공연하는 무술단까지. 물론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공연하는 무술단까지 급수나 실력 면에서 다양한 레벨의 소림무술단이 조직되어 있다. 소림사 밖에 줄지어 있는 사설 소림무술학원에서 기량을 닦고는 그 일부가 소림사 무술학원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각고의 수련과정을 거쳐 선발되어 공연단에 끼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 극소수만이 영화판에 캐스팅되어 이연걸 같은 리얼 액션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게 그들의 꿈이다. 영화 속 소림사는 1920년대의 고색창연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유명 영화세트장인 횡점(横店,헝디엔)에 소림사(세트)를 하나 더 지은 것이다. 2천만 위엔을 들여 만든 소림사 세트장은 나중에 깡그리 불태워버린다.
소림무술은 무(武)를 통해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경건한 육체고행(종교행위) 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진짜 20세기 초 군벌시대에 소림사 무승 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이 영화 개봉 뒤 많은 논란이 있었다. 당시 소림사는 영화에서처럼 백성을 돕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 소림사는 군벌에 결탁하였다. 그래서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나서는 당연히 소림사도 문을 닫을 수밖에. 실제 소림사의 그러한 변절, 매국 행위를 영화로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석영신 방장의 영험한 솜씨는 그런 소림사의 역사도 이렇게 ‘애국애족’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술수를 부린 것이다.
유덕화는 2003년에 두기봉 감독의 <대척료>에서 스님 역할을 맡아 진정한 고뇌를 보여주었었다. 이번에도 과감하게 자신의 머리를 깎으며 영화에 대한 투지를 불태운다. 한때는 반항기만 보이던 사정봉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제 자신의 아우라를 내보이는 중견배우가 되었다. 극중에서 사정봉은 친형처럼 떠받들던 유덕화를 한 순간에 배신하고, 비열하게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악역을 맡았다. 유덕화의 부인 역으로 출연하는 범빙빙은 물론 예쁘게 나오긴 하지만 꼭 출연해야할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중국 영화에서는 이런 캐릭터를 꼭 넣는다. 흥행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이 영화에는 진짜 ‘리얼 액션스타’가 등장한다. 오경과 우해, 웅흔흔이다. 물론 성룡의 무술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에서 소림사 주지(方丈)로 등장하는 인물 우해(于海)도 무술인이다.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힌 그는 당랑권의 고수. 1960년대에는 중국무술대표단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중국무술을 선보였던 인물이다. 이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무술솜씨를 보여준다. 이연걸이 출연한 영화 <소림사>에도 나왔던 배우. 이번에는 소림사 주지 역으로 출연했다.
소림사 무승의 리더 격인 정능(净能) 스님 역의 오경(吴京)도 유명 무술인 출신 배우이다. 원래 무술집안에서 태어난 오경은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혔다. 이연걸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사부에게서 무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이연걸과는 사형사제 관계인 셈이다. 역시 이연걸을 발탁한 <소림사>의 장흠염 감독 눈에 띄어 연예계에 진출하였다.
소림사 무승 무리 중에 조금 다혈질로 생긴 정공(净空)스님 역으로 나온 인물을 석연능(释延能,스옌넝)이다. 소림사 32대 제자란다. 12살에 소림사에 들어가서 소림무술만 10년을 익힌 인물. 주성치 눈에 띄어 <소림 쿵푸>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한다. 이후 <도화선>, <엽문> 같은 영화에서 리얼 액션을 선사한다.
극중에서 사정봉의 호위대장 격으로 출연한 배우 웅흔흔(熊欣欣 슝신신)은 홍콩 액션영화에선 이미 유명한 무술인. 홍콩쿵푸/액션영화계에선 없어서는 안 될 유가량의 유가반의 멤버로 수많은 액션영화의 스턴트맨으로 활약했다. 이연걸의 <황비홍>시리즈에서는 ‘귀각칠’ 쿵푸를 선보였던 인물이다. 주성치와 이연걸의 대역배우로도 알려졌다. 그리고, 소림무승 중에 눈에 띄는 배우 중 한 사람인 여소군(余少群, 위샤오췬). 여소군은 진개가(천카이거) 감독의 <매란방>으로 영화에 데뷔 했다. 여명이 연기한 매란방이란 실존인물의 소년시절 역이었다. 최근 중국의 대작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고 있는 블루칩. 엽위신 감독의 <천녀유혼2011>에서는 영채신 역을 맡기도 했다. 여소군은 여기서 쿵푸를 배우지 않은 배우.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이 영화는 올해 1월 19일 중국에서 개봉되어 2억 2천만 위앤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액션 영화에서 진면목을 선보이고 있는 진목승 감독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1920년대 군벌시절 소림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특이한 설정 때문에 보게 되었지만 결국 홍콩영화의 액션기술을 흡수한 중국영화의 최대강점을 엿볼 수 있는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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