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피는 언덕
_ 최명주
억새들 서걱서걱, 가을바람이 물결로 출렁이며 언덕으로 불렀을까요 오늘도 저는 들국화 피어 있는 언덕에 올랐지요 그 언덕에 서면 옛이야기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리지요 그러다 문득, 이제서야, 왜 당신의 속내를 잘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까요 당신의 나이쯤 되고 나서야 당신을 이해하는 그런 것 말이에요
십수년 전 당신이 편지지에 적어 내려간 시를 보았지요 그리고 시집 제목을 ‘들국화’라고 정하던 당신에게 저는 ‘들국화 피는 언덕’을 고집했었지요 들국화보다 당신의 삶이 온통 자리했던 그 언덕에 더 무게를 두려고 했던 탓이었지요 그 고집에 결국 ‘들국화 피는 언덕’은 시집으로 나와 이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지요
해마다 그 언덕에는 숱한 바람이 지나갔을 테죠 무시무시한 태풍도 몇 번은 몰아쳤을 것이고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칠 때는 말 그대로 폭풍의 언덕이 되었겠구요 하지만 한여름 장대비 쏟아져도 들국화 여린 잎들, 잘 버티고 견디어 냈겠지요 그래서 이 가을에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겠죠 들국화, 그들에 오랜 눈길을 주던 당신이 정말 보고파지네요
그래요, 당신이 그 들국화였지요, 그 들국화가 바로 당신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