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이 권태로울 때 바람을 등에 업고 새소리 벗삼아 굽이진 산길을 걸어보자. 그곳엔 밝은 햇살에 용트림하는 삶이 있다.
겨울의 햇살이 나뭇가지 위에 나른하게 내려앉는 박달재 구비진 산길을 베낭 하나 달랑 메고 타박타박 걸어본다, 간밤에 소리없이 찾아온 소나무 위의 하얀 눈이 인기척에 놀라 은가루마냥 우수수 나부낀다. 모롱 가지 돌아나자, 서리서리 가슴속의 염원이 많기도 한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나는 객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조그만 암자 앞 돌탑은 오늘도 말이 없는걸 보니 묵언 수행 중 인가 보다. 천둥산 박달재의 노래가 시냇물처럼 흐르는 박달재 정상에 이르니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 닮은 사랑 앞에 보기에도 익살스러운 장승들이 십 년 지기인양 헤벌쭉 웃으며 맞아준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친 바 있고, 1268년 고려의 별초군이 또한 몽고의 군사를 막아낸 유적지이기도 한 박달재.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옷이된다./만약 천둥산 꼭대기에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절절한 사랑이 녹아있는 시 한편만으로도 두 사람의 곡진한 사랑을 짐작해 본다. 조선조 중엽 과거를 보러 가던 박달이와 금봉이의 만남은 천상의 인연이었던가, 금봉이에 취한 박달이의 애틋한 사랑은 급기야 박달이를 낙방거사로 만들고 돌아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죽게 되니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이곳의 지나는 객들에게 가슴저린 연민으로 되살아나나 보다. 뽀드득 거리는 눈의 마찰음을 경쾌하게 흘리며 구 도로를 따라 박달재의 솟을대문을 빠져 나오니 참나무 숯의 알싸한 내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산허리를 감아 돌고 있다. 마치 불꽃 놀이를 즐기듯 형용할 수 없는 푸르다 못해 은빛으로 반짝이는 불꽃이, 가마 속을 휘돌고 이미 숯을 구워낸 또 다른 빈 가마에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흰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찜질이 한창이다. 슬그머니 틈새에 끼어 땀 한번 흘리고 나니 아~ 이 상쾌함이라니…. 가마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기관지천식이나, 신경통, 피부병, 산후통에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알려 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숯가마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데 한겨울 설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음이온의 체험을 만끽해 보니 이 또한 한겨울의 색다른 맛이다. 땀으로 흠뻑 젖은 아주머니들의 달게 먹는 미역국을 보니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먹거리를 찾아 박달재 터널아래 자연휴양림으로 발길을 돌렸다. 휴양림을 끼고 아래로 내려가니 집안을 휘감고 도는 잔잔함 음악과 함께 아담한 송림식당이 출출한 나그네를 반겨준다, 집에서 직접 담았다는 된장찌개가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구수함이 각별한데 주인 아주머니가 손수 캐 왔다는 냉이무침이랑 고들빼기 무침, 그리고 여름내 시랑 산에서 뜯어 말린 갖가지 산채나물이 정갈하니 엄동설한에 때아닌 호사를 누려본다. 숭늉 한 사발로 입가심을 한 뒤 쉬엄쉬엄 휴양림에 오르니 통나무로 지어 다람쥐 집처럼 앙증맞고 예쁜 팬션이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새로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숲속의 집으로 명명한 이곳은 통나무집17동과 황토방 8동이 있다는데 갑자기 저 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 받으며 군밤을 굽다 보면 신선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이곳은 제천시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데 크고 작은 모임들을 오붓하게 즐길 수 있어 참 좋겠단 생각을 해 본다 청아하면서도 은은한 풍경소리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깍아 지른 듯한 도덕암의 기암괴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지스님의 중생에 대한 배려인가. 아름드리 소나무를 뒤로하고 마당에 나그네를 위해 준비해놓은 통나무의자가 다소곳이 몸을 내어주고 있다. 솔 향 은근한 절간 마당에서 바라보는 시랑 산이 눈 속에 갇히어 한 폭의 한국화를 들여 놓으니 나그네 예서 부처님 전에 심신을 내려놓고 노닥노닥 즐겨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휴양림을 시적시적 걸어 나오니 케이비 타운이란 팻말이 눈에 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눈길 밟으며 가다 보니 추수를 끝낸 들녘에 허수아비 홀로 외로워 날아가는 새떼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나그네의 경솔함을 탓하는 듯 꽁꽁 얼은 빙판에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흰털 뽀송한 억새풀이 반겨주는 케이비타운과 다랑과 인촌에 도착해 보니 조그만 팬션이다. 옛 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배산임수라 했던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산과 들을 한아름 끌어 안고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이곳의 주인인 53세의 수원대 김인동교수님은 6년 전 관광차 들렀다가 이곳의 산수 수려한 경관에 반해 눌러 앉아 지금은 이야기가 있는 팬션을 운영하고 있단다. 수원대에서 근근막통증후근을 전공한 그는 팬션을 찾는 손님들중 척추나 근육계 질환이 있는 손님들께 간단한 치료와 처방도 내려준다. 산과 들이 주는 풍성함과 아늑함에 홀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서산 마루에 걸터앉아 귀가를 재촉한다. 오늘은 안 먹어도 부가 부를 것 같은 포만감이 전신을 감싸고 돈다, 여행은 이렇듯 참 좋은 삶의 보약이기에 삶이 권태롭다 싶으면 잠깐의 시간 틈내어 훠이 훠이 산촌의 어느 마을을 휘저어 보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