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쪽 바위에 앉아 커피향을 즐기며 삶의 시름을 잊어본다. 헌데 이분 오늘따라 복장이 초라해 보인다.
아니 고리땡 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자켙도 일반용인 것 같고 배낭도 간이용처럼 작게 생겼다. 오늘같이 산행을 하려면 최소한 제대로 된 등산화는
필수적인데.....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자동차에 두었는데 아드님이 차를 몰고 나들이 나가 그만 운동화 신고 오셨단다.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용기만은 대단하다. 아직까지 패기가 넘쳐흐른다. 우리들은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준비 않된 황무지 땅에 맨발로 들어가
육탄전을 벌려 끝내는 다리도 놓고 터널도 만들고 시원하게 뻗어가는 고속도로도 만들지 않았는가.
그뿐이랴 기후조건이 열약한 열대지방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오로지 삶의 풍요를 위해 우리의 청춘을 불사르고 그 결과 오늘날 가족들이 편히 쉴만한
집도 마련하고 아이들도 성년으로 키워내지 않았는가.
우리들 50대는 이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대들, 안되면 되게 하라고 하며 직장생활방식도 군데식이다. 특히 건설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우리는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쓸쓸한 나날을 보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는 자랑스러웠다. 가슴 뿌뜻함도 있었다.
이제부턴 편히 조국산하를 찾아다니며 쉴 만도 한데 이제부턴 캉가루 가족 걱정으로 마음 고생해야 하니 어찌된 일인가.
맞은 편 봉우리에 계신 거북이님께서 신세타령 그만하고 빨리 오라하신다.
오늘 같이 올라온 이 분은 20년만에 처음 찾는 다니 거북이님께서 무척 반길 판이다.
바위능선길을 올라 가깝게 다가가니 우리를 먼저 보고 집에서 달려 나와 머리를 내밀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그 분도 거북이님을 뵙자마자 넓죽 큰 절을 올리고 거북이님과 함께 기념사진 찍으며 잠시 소원을 빌어본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계신 거북이님! 어느새 2004년도 한해가 5일 밖에 아니 남았습니다. 봄이 온다며 좋아했던
때가 엇그재인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단풍 노래도 잠시 겨울의 문턱을 지난다고 했는데 벌써 연말이 되었습니다. 특별나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무사히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는 온갖 생활고를 겪으며 불행중에 일찍 떠나가시는 분도 계셨고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끔찍한 사회 사건들이 우리를 놀라게도
했지요. 내년에 또 찾아 뵙겠다며 거북이님과도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하고 소나무향이 가득한 능선 길을 달려간다.
갈림길을 지나 마당바위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산님들의 힘찬 발걸음으로 한가할 틈 없이 잔잔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IMF이후로 산님들의 발걸음이
무척 많아졌다. 혹자는 웰빙이다하여 여유를 즐기신다고 하는데....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대다수는 우리들처럼 되는 것이 없으니 산으로 달려 왔을 것이다. 제품 판매도 중국산에 밀리니 공장 가동율은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농산물도 그렇고 상업에 종사하시는 분 역시 판매가 저조하니 전기료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니 너도 나도 도시락 짊어지고 산으로 달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산에 오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편이 아닌가.
나 역시도 예전엔 산을 자주 찾지 못했지만 심신이 괴로울 때부터 많이 찾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산객의 증가율은 매년 곱배기이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
유명하다는 마당바위엔 역시 수많은 분들이 간식을 즐기며 쉬고 계신다.
이곳에 더 이상 쉴만한 공간이 아니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정상에서부터 서울대로 뻗어 내린 능선과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며 조망이 일품이다.
완만한 능선길 끝부터는 깔닥고개라하여 역시 호흡이 가빠지지만 능선 좌우로 조망이 시원해서인지 쉬지 않고 헬기장까지 오른다.
부근 양지쪽에는 여기저기 많은 분들이 쉬고 계시길래 우리도 소나무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쉬어간다지금까지 올라온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만치
관악문과 정상도 가깝게 보인다.
안부 갈림길을 지나 관악문으로 가는데 정상까지 워낙 급경사인데다 아무런 보호조치가 전무해서 훼손상태가 말이 아니다.
완전히 깍길데로 깎여 바위가 뼈처럼 드러나 보이고 군데군데 급경사지에서 뿌리를 드러낸체 죽어가는
나무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런 곳엔 평계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은데....
매년 연말이면 예산집행이다하여 멀쩡한 보도 블럭도 들어내고 쓸데없는 공사판도 여기저기 벌이면서 정작 해야 할 이런 일은 서로가 관할지역을 핑계삼아
못 본체 하는지....
그 사람들도 언젠가는 현직에서 물러나 우리들이 오른 이 길을 그들도 걸을 것인데....... 한가로운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 하여 예산 들여가며
신경 쓸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자연을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나만 편하게 오르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마구 짓밟고 다니며 훼손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니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혹자는 아무리 사람발로 깎아 내려도 봉우리는 그대로 있을 거라고 할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훼손이 진행된다면 언젠가 봉우리도 무너져 내릴 판이다.
산을 사랑한다는 것이 산을 자주 찾아 마음껏 즐기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도 계시는 것 같은데 정작 그런 것일까? 산행을 체력단련이나 체력 경쟁장으로
생각하는지 보다 높은 산을 보다 빨리 오르며 기록을 세우는데만 열중인 분도 계시는 것 같다.
요즘에는 산악자전거도 등장하여 등산로에서 자신들의 독특한 멋이나 체력을 자랑하려는 것 같고 한마디로 못마땅한 모습들이다. 수많은 산악회는 오늘도
산 사랑을 외치며 조국산하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모두가 못 본체로 일관하며 자신의 소욕만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경사지 암반에서 간신히 연명해 가고 있는 소나무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그만 뿌리가 드러나고 온통 상처투성이로 이젠 더 이상 생존이 어려울
지경일데 어떤 산꾼인지 그런 뿌리에 로프까지 매달아 놓았다.
우리들의 산행편의와 체력증진를 위해서는 자연의 아픔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산을 사랑하자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같은 표현이라도 의도하는 바가 달라 지는가 보다.
이런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졌는데 바로 앞에서 아주 예쁜 코끼리 새끼 한마리가 넙죽 고개를 숙이며 반갑게 맞아 준다.
정상이 바로 앞인데 암봉위의 아주 멋찐 노송 한그루가 자신의 품안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 하신다. 들어가 앉아 있으니 노송의 그윽한 향기를 뿜어
주시며 수많은 산꾼들이 자신에게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정상에만 관심이 있는것 같은데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속세에 찌든 경쟁의식이 무의식중에 발동돼서 그렇한가 보다라고 말하니 헛된 세상 욕심을 버려야 자연의 정기를 넣어 듬뿍 넣어 줄텐데 하시며 무척
아쉬워 하신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급경사지에는 로프에 의존한 체 수많은 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정상사면에 있는 자연석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관악산 해발 629m라고 새긴 멋 찐 글귀도 보인다.
연주대를 둘러보는데 멋진 사자 머리상을 한 바위가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정상을 빠져 나와 암능 길을 따라 아래로 보이는 연주암과 주변의 멋찐 풍광을 눈 사진 찍고 디카에도 담아낸다.
서울대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다시 암릉을 올라 맞은편에 보이는 삼성산과 안양 유원지쪽 풍광을 감상하고 평소에 자주 찾아 갔던 양지쪽 비밀 쉼터를
찾아간다.
혹시 먼저 오신 산님이 계신가 했는데 다행이도 쉴 만한 한 곳이 우리를 반겨준다. 앉자마자 시원한 곡주 한잔씩 건배하니 역시 산중의 곡주 맛이다.
이번에도 더덕막걸리인데 예봉산 더덕막걸리와 달리 끈끈하지도 않고 향과 맛이 일품이다.
연거푸 3~4잔씩 몽땅 마시며 그때의 기역을 되살려 보는데 변질된 더덕주를 놓고 한참을 갸우뚱했던 우리들이 참으로 우숩기도 하다.
저 아래 연주암에서는 보름을 알리는 특별한 불경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부턴 하산코스가 궁굼하신 모양이다. 인덕원 전철역까지 능선따라 종주한다고 하니 과천방향으로 하산 했으면 하신다. 처음 오신 분이고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중계탑을 좌로 우회하여 모노래일을 따라 남쪽에 위치한 헬기장으로... 어느덧 연주암 위로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마당에 가득히 모여 있는
장독대가 정겹다.
우리 조상들은 장독을 애용했는데 오늘날의 우리들은 김치냉장고다 하여 저마다 자랑하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장독을 홀대하다니 경제적으로나 맛으로나
그 옛날 장독만큼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인위적인 것은 반드시 치러야할 대가를 요구한다.
케이블카 오가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배가 불룩한 두꺼비 한마리가 능선에 불쑥 올라와 우리를 반겨주는데 배와 머리부분이 워낙 통통해 복어같기도
하고.......
우측 건너편 육봉 능선은 지는 해로 윤곽만이 보이는데 과천시와 청계산은 이곳저곳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하다.
이곳 능선길도 역시 온통 바위길이라 아기자기하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한참을 내려와도 바위길의 연속인데 평탄한 길이 조금 이어지다가 소나무숲을
지나니 이내 구세군 흰색 건물이 보이며 포장도로와 만난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삶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의 삶이 나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표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월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흘러가는 데로 무난히 흘러갈 수 있어도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명예와 부를 보다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현자들은 오늘도 빠쁜 나날을 보내지만 우리처럼 곡주한잔으로 시름을 달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것도 진정
행복이 아니겠는가.
성장할 때가 따로 있고 열매 맺는 때가 따로 있듯이 우리도 한땐 그런대로 성장 했고 열매도 맺었다고 볼 수 있으니 이제부턴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처럼 살아가면 족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