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아마도 온천과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분수에 넘게 "확대 재생산률"운운하는 이야기로 나아갔던 것을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이 얼만큼 걸리든, 남이 듣던 안듣던 끝까지 마치는 약간 고지식한 타입의 이야기꾼이라 말꺼낸 것은 마치겠다는 일념하에 다시 이 이야기를 이어보려한다.
온천탕의 요금은 1 사람 당 400원에 불과하다. 시설도 영세하기 그지없어, 온천 수가 뿜어 나오는 땅 주위에 울타리를 구축하고, 판자 집을 하나 세워서 약 6칸 정도로 구획을 나누고 한 구획당 좁은 가정용 욕조 2개씩을 설치한 아주 단촐한 2인용 욕조를 만들었을 따름이다.
이곳까지 가는 동안 쉼없이 약 10분간의 농촌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데...마치 작은 미국의 축소판이라고 할지, 끝없는 황무지에 도로역시 끝 간데 없이 뻗어 있어, 차량이 없이는 이 나라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살았다고 할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산하고 넓직하다.
온천 요금보다, 이곳까지 오는 기름값이 더 드는 것이 이 간이 온천탕의 언밸런스한 부분이다. 시설 투자를 해서 사람들이 오게 만들 정도의 기획력이 없을리는 없으나 시설에 비해 타산이 맞지 않을 정도로 알마티 거주인구와 소비수준은 턱없이 낮다.
칸막이 너머에 들어온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오고, 이중에 이성의 목소리가 끼워져 있는 경우에는 그쪽이 아주머니이건 할머니이건 야릇한 기분이 감도는 것은 내가 젊기 때문인지, 또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칸막이는 플래스틱 슬래이트 판과 비닐로 세워진 조악한 것이다. 뚫려 있는 두어개의 구멍으로 뭔가가 스쳐지나가는 것마저 보일 정도이다.
30분정도 몸을 담그고 나면, 이제 때와 몸의 노폐물은 어느정도 자정되었다는 기분이 들고, 거칠어졌던 피부에 윤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머님이나 아버님을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다.
이에 비해 사우나는 이슬람 건축 양식을 빌어서 만든 말 그대로의 초대형 멀티컴플랙스 타입의 건물이니 한국과 그 어휘의 사용방식이 역전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소비에트 연방시절, 알마티의 최적 기후 조건 덕에 연방 최고의 사우나를 이곳에 지어놓은 것이 바로 이 언밸런스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롯데월드만한 사우나가 도시 복판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구획에 따라서 요금이 차등되나 (물론 이곳은 남/여 사우나 구별이 확실히 되어 있다.) 대중들을 위한 3층짜리 사우나 구획의 사용가격은 1,600원이다. 한국과는 달리 욕탕이 없지만, 2층에는 원형 수영장, 각층마다 20-30명이 함께 들어가는 대형 "러시아식 사우나(기차 화차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어떤 사우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사우나는 뜨겁고 따끔따끔하고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좀 더 뜨거워야 한다고, 석탄을 넣는 곳에 물을 끼얹기까지 한다. 나는 물 붓기 전에 벼락같이 도망나올 수 밖에 없지만...)"
그리고 "핀란드식(뜨거운 편으로 알고 있으나 러시아식에 비하면 장난수준...)"사우나가 각 층마다 2개씩 있고, 수많은 샤워기가 벌집처럼 배치되어 있다.
사우나가 이렇게 화려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될 정도다. 1층과 3층에 있는 휴게실에서는 보통 레스토랑 수준의 식사와 주류가 비치되어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동양인과 서양인의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이 등장하기 마련인데...한번 훤히 활보하고나니...세계인은 하나다라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생각이 다시금 머리 속에 제대로 자리잡힐 수가 있었다. 좀 더 파워플하고, 에너지가 충만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우열비교의 원천은 되지 못한다.
하라싼 사우나...그리고 노천 온천을 오가다보니...이 땅은 뭔가 일목요연하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비한국적인 상식으로 덮혀 있는 곳임을 절절히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이들은 소비에트 였고, 동시에 유럽의 일부이기도 하나, 사는 방식은 동양...아시아의 정서를 강하게 갖고 있다.
서양과 동양이 명확히 교차하는 지점을 어쩌면 우리는 동북아시아...일본이나 중국, 한국으로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 대륙에서 정말로 중심의 위치를 잡고 살아온 이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번지기 시작한다.
난 이 땅의 모습과 이땅의 생리를 아직, 노천 온천탕의 욕조만큼도 알지 못하였다. 섣불리 생각한 것들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속보"수준의 글은 이 칼럼에선 좀 적당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당분간은 숙성시키고 발효시킬 기분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피부가 때밀기 좋게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듯이...(^^;;; 약간 더러운 문장이라 대단히 죄송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