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 지나가는 미친놈=이명박? 이건 뭐 인신공격차원을 넘어선듯하네요..ㅠ
신안 염전의 소금은 달다? 역시 정치인이라는 생각...말이되는소릴 하시죠. 소금이 달다니...
개인적으로 정치인들 비호감이라 말하는것도 이렇것만 들리네요
자세한건 정리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정치인들과 사기꾼의 차이는 법이 보호해 주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뭐 딱히 다른 후보에게 관심있는것도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업데이트----------------------
분단 시대를 뛰어 넘어 한반도 시대로
- 용봉포럼 초청강연 -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남대학교하면 우리나라 민주화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명문대학입니다. 여러분 이런 유서 깊은 대학에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잠깐 5·18 기념관 전시실을 봤는데 제가 보면서 소중한 자료들을 많이 모아놨는데 그동안 광주시민 또 학생들이 이룩한 민주화의 역사에 비해 전시관이 너무 소박하다,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초라하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주화의 가치가 축소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잘 만들어서 좋은 교육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둘러봤습니다.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이 ‘분단시대를 뛰어넘어 한반도 시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여기 계신 학생들, 사회인사 등 여러 계층이 있기 때문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지만 제가 알아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 중에서 혹시 외국에 한 번이라도 갔다 온 사람 있으면 한 번 손들어보십시오. 꽤 여러 학생이 다녀왔는데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학생을 만났는데 “몇 학번이냐?”라고 물어보니 06학번, 87년생이었습니다. 87년이면 바로 우리 사회의 군부독재체제가 마지막을 고하던 해에 태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지금 2학년이니까 지금 학생들은 말하자면 87년 체제 이후에 성장한 학생들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87년은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박정희 군부쿠데타, 전두환 군부쿠데타가 87년 6월 항쟁으로 종식을 고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민주화 투쟁의 시대였다고 본다면, 87년 이후는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 학생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대의 소중한 인재라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 와 계신 분들 중에 앞에 계신 분들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청춘을 바치신 분들이 많고 중간에 있는 학생들은 그 성과 위에서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두 세대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좀 뜸해졌습니다만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린 분들도 있고 얘기를 나눈 분들도 있고 또 “화려한 휴가를 봤느냐?” 물어보면 안 본 사람이 마음이 무색해지는 이런 분위기가 한동안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5월, 6월, 7월 그 무렵에 있었는데 이 중에서 화려한 휴가 보신 분들, 학생들 한 번 손 들어보십시오. 거의 다 봤네요. 7백만 명이 봤다 그러니까 참 많이 봤죠. 저도 그 영화를 봤습니다. 제가 별로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는데 그 영화를 보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영혼결혼식 하는 장면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윤상원이라는 신랑이 바로 5·18 때 현장에서, 마지막 도청에서 숨을 거둔 투사였습니다. 들불야학을 했죠? 들불야학을 70년대에 하다가 마지막에 도청을 사수했던 동지였는데 그분을 추모하는 뜻으로 영혼결혼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우리 사회 민주화의 큰 밑거름이 돼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닐 때만 해도 대학교 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선 여행 허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여행 허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에 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또 많이 가고 있습니다. 전남대학교에도 외국 학생들이 400명 이상 와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바야흐로 개방의 시대이고 국제화의 시대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면서 민주화의 시대에서 민족 화해를 추구하는 평화 공존의 시대로 가고 있고, 폐쇄된 사회에서 개방적이고 국제화된 사회로 가고 있는 겁니다.
지역의 편차는 결국 분단시대 냉전체제가 근본 원인이었다.
저는 광주나 호남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목포에 가보면 목포가 왜 이렇게 왜소하고 빈곤할까 하는 것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목포의 눈물이란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참 이렇게 작고 아주 소박하긴 한데 빈곤하다 이런 느낌을 많이 갖습니다. 광주에 와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오늘 제가 노동조합 운동하시는 분들하고 오찬을 했습니다. 거제도나 이런 곳에 가면 한 달에 4백만 원, 5백만 원씩 받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거제에만 한 3만 명이 있습니다, 거제라는 섬 한 군데에. 조선소가 두 개가 있어 연봉이 한 5천만 원, 6천만 원 받는 사람들이 한 지역에 3만 명씩 모여 사는데 여기는 오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규모도 작고 임금도 낮기 때문에 더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없으면 안 되니까 노조 파업도 잘 안 해요, 여기는. 이렇게 지역이 차이 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될까 하고 저는 정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번 생각을 하고 연구도 합니다. 제 생각에 이 근원은 결국 분단시대 냉전체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우리가 고려사나 조선사를 공부해보면 한반도의 역동성, 교류, 문화 이 부분이 서해안 쪽으로 훨씬 더 발전돼 있었습니다. 신의주, 개성, 벽란도, 인천, 목포 이게 문화교류의 중심 항구들입니다. 그리고 동쪽에 부산이 있긴 했지만 일본과 교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제한된 교류가 있었습니다. 왜정 때까지도 그랬어요. 그러다가 5·16 군사쿠데타 나고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대체로 경부축으로 발전하면서 아까 말씀드린 지역 간의 산업구조의 편차도 생기고 인구의 편차도 생기고, 경제적인 집중의 편차도 생기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느냐면 결국은 분단체제하에서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을 하면서 모든 경제력, 돈, 권력, 정부의 정책결정권, 이런 부분들이 주로 군부를 중심으로 해서 경부축으로 산업화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냉전이 됨으로써 우리와 중국과의 교류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습니다. 48년 우리가 정부 수립 이후에. 그동안 주로 중국과의 교류가 이뤄지던 서해안에서는 교역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가끔 고려청자나 바다 밑에서 발견되는 이런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이 많은 교역 항이 다 막혀 버린 거죠. 한편으로 서해가 막히면서 교역이 막혀버리고 분단이 되면서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음으로써 경제개발의 축이 경부 중심으로 이뤄져 버린 겁니다. 그 최종적인 결과가 이 서남해안권이 낙후된 농촌지역으로 남다 보니 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서울로 상경하고 울산으로 가고 거제도로 가고 그렇게 돼 버린 겁니다.
저를 수행하던 비서 중에 해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서 나훈아 수행비서 하던 친구가 하나 있어요. 이몽성이라고. “왜 왔느냐” 그러니까 다섯 살 때 먹고 살길이 없으니까, 해남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먹고살 길이 없는데 아무리 그곳에 있어본들 해결책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굶어 죽더라도 서울 가서 굶어 죽는 게 나으니까 일단 가야겠다.’라고 해서 올라왔답니다. 그때가 12살이니까 이 집 저 집 심부름을 하다가 나훈아 노래가 좋아서 나훈아를 찾아가서 아무거나 시켜주면 좋겠다고 해서 옷가방 들고 다니는 걸 했어요. 그래서 나훈아 밑에서 커가지고 노래를 잘합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지금 울산에 가도 20%가 호남사람입니다. 호남에 산업이 없으니까 울산으로 취업하러 간 겁니다.
87년 6월 항쟁, 분단시대 세력을 교체할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
이런 현실 속에 경제력 차이가 커져서 지역주의가 나올 정도로 근본 원인이 됐는데,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우리가 이걸 극복해야 되는 겁니다. 그동안 분단시대에서 권위주의시대, 군부정권시대의 결과를 이제 고쳐나가는 시대로 변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87년 6월 항쟁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분단시대에 주도권을 잡았던 세력들을 교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는 군부독재체제가 들어오지 못하게, 군부쿠데타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아주 민중항쟁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올라가면 역시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 군부 쿠데타의 재발을 근원적으로 막는 자기의 희생이었다고 보입니다. 87년에도 군부가 학생들 시위를 막으려고 동원을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하려고 했습니다. 하려고 했는데 또 다시 군부가 학생들의 시위와 충돌을 전국 시도에서 하게 되면 광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광주에 있었던 참극이 서울, 부산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데 따르는 사태를 감당할 수 없다, 이게 최종적으로 당시의 권력 핵심들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군을 동원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주 핵심에 있던 사람에게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지금도 한나라당의 핵심에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 청와대 핵심에 있던 사람인데. 그 얘기를 제가 듣고서 80년 광주의 민중항쟁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역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계 때문에 87년에 집권을 못했습니다만, 그걸 토대로 해서 92년에 반쪽짜리 문민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군부 노태우 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왔습니다. 그 문민정부는 온전한 정부는 아니죠. 3당 야합을 통해서 집권한 정부이기 때문에. 특히 김종필 총리가 기반으로 하는 충청도, 노태우 대통령의 경상북도, 김영삼 대통령이 기반으로 하는 부산경남 지방을 연합해서, 호남을 고립화시켜서 집권한 세력이기 때문에 정통성에 있어서 인정할 수는 없는 정권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인정할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중에 전두환, 노태우를 내란음모로 사법처리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은 저는 인정해줘야 된다고 봅니다. 집권 과정에 정통성은 없어도 앞에서 있었던 군부독재자들, 그 사람들이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대통령으로서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것을 하루 저녁에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잡아넣었습니다. TV 중계를 해가면서. 전직 대통령을 TV중계를 해가면서 잡아넣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성과는 저는 인정해줘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반쪽을 거쳐서 97년에 드디어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서 집권했습니다. 비로소 정통성이 확보된 거라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에는 IMF 사태가 막 터져있을 때입니다. 아마 IMF 사태가 안 터졌으면 집권을 못 했을지 몰라요. 제가 당시 선거기획본부장을 했는데 10월만 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안 보였습니다. 11월 중순 들어가면서 IMF 외환위기가 오면서 역전되기 시작했어요. 그걸 우리가 선거전에 잘 활용해서 당선이 되긴 됐는데 당선되고 나서도 기쁘지가 않은 겁니다.
부도나는 국가를 맡아서 다시 살려놓은 국민의 정부
다 쓰러져 가는, 부도가 나는 국가를 떠맡은 겁니다. 외환 보유고가 37억 불밖에 안 남아있고 한 달에도 50만 명의 근로자들이 해고돼서 나오고 있고 서울역, 이런 모든 기차역에 노숙자들이 흘러넘치는 겁니다. 그런 상황을 우리가 떠맡은 겁니다. 언제 나라가 아주 파탄 날지 모르는 그때 정말 북쪽에서 남침이라도 했으면 다 붕괴됐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누가 책임질 사람도 없어요. 그 상황을 김대중 대통령이 떠맡은 겁니다. 맡더라도 좋은 상황에서 맡았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다 무너져가는 상황을 맡은 거예요.
그때 제가 정책위 총괄 간사를 했습니다. 정책위 총괄 간사를 하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돈 10억 불, 20억 불만 꿔준다면 장관이고 총리고 쫓아갈 판입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일본에 어떤 갑부가 있다, 10억 불 정도 빌려주겠다, 이자는 불문이다 이러면 쫓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사기도 몇 번 당할 뻔했어요. 국제금융 시장을 우리가 전혀 몰랐어요, 그 전까지는. 누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한 번은 한 아랍 부호가 30억 불을 꿔준다고 해서 장관을 급파시켰어요. 가보니까 사기꾼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결국은 이 돈 저 돈 꿔다가 심지어 35%짜리 이자를 주고 돈을 꿔다가 부도를 막느라고 했습니다. 그냥 둬서 부도가 나면 모든 결제가 다 끊어지니까. 우리는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인데 부도가 나면 완전히 국제사회에서 거덜나는 겁니다. 물건을 사올 수도 없고 팔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온 국민이 다 손가락을 빨아야 되는 상황이 돼서 별 수 없이 이 돈 저 돈 꾸러 다녀서 겨우 막았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가 “그래도 몇십 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했고 저녁 만찬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국민이 굶어 죽을 판인데 무슨 놈의 저녁 만찬이야”라고 해서 제가 혼이 났습니다.
좋은 것도 때를 가려서 해야 되는데 그만큼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청와대 들어가 보지도 못한 때입니다, 야당만 쭉 해서. 청와대 옆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청와대 옆에 별관이 하나 있는데 경호원실에서 쓰는 별관입니다. 그 별관을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받았습니다. 받아서 매일 저녁에 가서 그날그날 상황을 보고 드리는데 피가 마르는 겁니다. 다시는 그런 상황이 안 와야겠다는 걸 저는 절감했습니다. 광주에서 시민들이 피를 흘려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러면 간호사들이 그냥 피를 대충 닦고 꿰매고 그 자리에서 수술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기업이 막 부도가 나니까 그저 해고만 안 시킨다고 한다면 돈을 막 밀어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해고가 되면 그나마 어려워지니까. 그렇게 겨우 수습을 해서 응급수술을 한 것이 국민의 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좌우지간 국가 부도 안 내고 기업 부도 안 내고 그저 고용만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였습니다.
6.15 정상회담, 10월 정상회담이 한반도 혈로 뚫어 유럽까지 나아갈 발판 마련
그렇게 위기를 겨우 수습했습니다. 그런 후에 이룩한 것이 6·15 정상회담입니다. 6·15 정상회담이 왜 그렇게 의미가 있느냐 하면 우리가 혈로를 뚫을 때에는 그냥 ‘정상 간의 만남이고 남북 간의 만남이다.’로 했지만, 10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가셔서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합의 선언을 하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서쪽은 중국과 수교가 돼서 풀린 것처럼 북쪽도 풀립니다. 우리를 가로막았던 두 개의 장벽 중에서 서쪽은 중국하고 1992년에 수교를 해서 풀려서 지금 교역량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우리가 300억 불 가까이 흑자를 봅니다. 중국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우리 기업들도 중국에 진출해서 잘하고 있습니다.
서쪽은 풀렸고 북쪽은 막혔었는데 이번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들어서면 북쪽이 뚫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일본에서 부산으로 물건을 실어다가 거기서 기차에 실어 경의선을 통해서 중국으로 해서 유럽으로 수출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물건들이. 이렇게 경제에 활로가 뚫려서 한반도가 대륙의 끝머리가 아니고 대륙에 진출하는 첫 관문이 되는 겁니다. 지도를 거꾸로 보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전환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냉전이 풀리고 분단이 풀리면 이제 우리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성과와 경제 발전의 성과를 가지고 대륙의 관문으로 바뀌는 겁니다. 이제 우리 앞으로 지나가려면 다 세금 내야 돼요. 옛날 산도둑들이 장 보고 고개 넘어가려고 하면 딱 지키고 있다가 통행료 내라고 한 것처럼 일본이 물건을 만들어서 유럽에 수출하려면 부산에 딱 앉아서 물건 개수만큼 돈을 세면 되는 겁니다. 이게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이런 전환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질적인 전환을 가져옵니다. 사고방식에서 큰 전환을 갖고 오는 거죠. ‘이제 꼬랑지가 아니고 머리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다음에 평화가 돈이라는 게 보이는 겁니다. 한반도 평화가 돈이 되는 겁니다, 안보 부담이 아니고. 그 다음에 마음이 개방되는 겁니다. 우리는 외국에 나가려면 으레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이제 기차로 다니게 됩니다. 광주에서 KTX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에 가서 평양온반 먹고, 그 다음에 심양으로 가서 중국 음식 먹고, 거기서 기차 타고 몽고 가서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까지 쉬엄쉬엄 가면 되는 거예요. 기차에서 내려서 놀고, 또 그 기차 타고 가고. 여기서 유럽까지 바로 비행기로 갈 필요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럽 간다면 비행기로 가지 않습니까? 유럽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바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놀면서 가는 거예요. 파리에서 기차 타고 스위스까지 가면서 중간에서 하룻밤 자고 그 동네 구경하고 또 기차 타고 그 다음 동네 가서 구경하고 유레일패스 하나만 가지면 그렇게 다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철로가 뚫리면 유럽까지 1주일 동안 그렇게 다니는 겁니다. 이렇게 갇혀 살던 사회하고 그렇게 열린 사회하고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주는 미래의 꿈이 전혀 달라지는 겁니다. 여행의 기본 개념이 달라지는 거예요.
새로운 정부는 분단과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 주체
이런 시대로 우리가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환하는 때에 맞춰서 다음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다음 정부는 건국 60주년이 되는 정부입니다. 환갑이 지나고 새 출발하는 정부인데, 이 정부를 이끌어갈 새로운 권력 주체를 12월에 선택하게 됩니다. 새로운 정부라고 하는 것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비로소 분단과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여 경제 발전을 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권력 주체이기 때문에 굉장히 축복받은 정부가 될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민의 정부에서는 응급 수술을 했고, 참여정부에서는 그 환자의 체질을 강화시켰습니다.
응급 수술한 환자가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우니까 진통제를 달라는 아우성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2003년, 2004년이 그랬어요. 그때 우리가 체질 재생훈련을 안 시키고 아픔만 잊게 하려고 진통제를 줬으면 재생훈련이 안됐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지 체질을 강화해야 했기 때문에 재활훈련을 해야 된다, 구조 조정을 해야 되고 생산성을 높여야 되고 훨씬 더 연마를 해야 된다는 차원에서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안 했습니다.
제가 총리 할 때 여러 차례 국회 나가서 한 얘기가 “절대로 인위적인 경기부양 안 합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해놓으면 2, 3년 후에 다시 거품이 돼서 더 악화됩니다. 아프더라도 지금 여기서 재생, 재활훈련을 해서 근육을 단련해야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높이고 정경유착을 끊어야 경제가 바로 서기 때문에 견디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욕도 참 많이 먹었어요. 아픈 사람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매정할 수 있느냐, 서민경제한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느냐고.
서민경제를 키우려면 돈 10조 원만 뿌려 버리면 많이 큽니다. 그런데 2년 후에는 그게 인플레로 돌아옵니다. 오히려 서민들한테 더 부담이 되는 거예요. 그것을 할까 말까 하고 참 노심초사 많이 했지만,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나 저의 판단은 우리가 욕을 먹더라도 원칙대로 하자, 경제를 잘 살려놔야 나중에 우리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어금니를 굳게 물고 그때를 견뎠습니다.
올해 들어오니까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수출은 잘 되고 있고, 내수도 이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내년에는 내수가 더 잘 될 겁니다. 요새 기업들 전망이나 연구원 전망을 보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최소한 0.5% 내지 1% 정도 더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4.5% 성장하면 내년은 5% 내지 5.5% 정도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까 말한 평화체제가 이뤄지고 북한과의 경제 교류협력이 확 터지면, 추가적인 경기 상승효과를 또 보게 됩니다.
그리고 광주라든가, 여기에 보낸 기업도시, 혁신도시들이 모두 내년부터 착공에 들어갑니다. 오전에 박광태 시장을 만나보니까 연말 중에 한전을 중심으로 해서 혁신도시를 나주에 착공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건설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2008년, 2009년 가면 내수가 눈에 띄게 나아지는 그런 경기 전망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을 고스란히 다음 정부에게 우리가 체계화시켜 넘겨주게 됩니다.
경제 체질 개선하여 투명한 경제, 정경유착이 없는 경제로 탈바꿈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데 참여정부에 대해서 많은 비난이 있다 하더라도 경제 체질을 강화시켜서 주가를 2천 가까이 만들어놓고, 외환 보유고를 2,500억 불로 만들어놓고, 물가를 안정시킨 역대 정부가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의 응급수술과 참여정부의 체질개선, 이것을 통해서 우리 경제는 정말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 겁니다. 옛날에는 시장경제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관치경제였죠. 뇌물만 주면 허가해줬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뇌물을 주거나 아니면 혼인을 맺어가지고 대기업 허가받아서 지금도 큰 재벌 된 곳이 한두 군데입니까? 여러 군데가 그렇잖아요. 그런 경제 행태가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말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기업가는 붙잡혀 가도 기업은 산답니다. 가령 옛날 같으면 기업이 망하기 전에 돈을 빼돌려 놓고 숨겨놓으면 금융실명제가 안 돼 있으니까 그냥 가지고 있으면 돼요. 그 기업은 부도내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근로자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전형적인 경우가 한보철강 같은 데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 와서는 김우중 회장이 운영을 하다가 대우건설이 망하게 됐지 않습니까? 김우중 회장은 감옥에 보내고 대우건설은 잘 키워가지고 6조 7천억 원에 금호건설한테 팔았지 않습니까? 금호건설이 자기보다 더 큰 대우건설을 샀어요. 대우건설 근로자들은 해고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렇게 바뀐 겁니다. 경제의 시스템이 바뀐 겁니다. 그것은 정경유착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정경유착이 돼 있으면 대우 김 회장이 ‘너 나한테 돈 받아먹고 이럴 수 있어’ 대들면 뭐라 그럴 겁니까? 이렇게 투명한 경제, 정경유착이 없는 경제로 바꾸기까지 10년이 걸린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경제를 이제 다음 정부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정말 다음 정부한테 다 넘겨줘야 하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넘겨주면 이걸 이어서 제일 잘할 것이냐? 이제 고민해야 됩니다. 이렇게 잘 만들어서 깨끗하게 해놓고 길 닦아 놓았는데 이상한 사람이 먼저 지나가면 그거 안 되는 일이거든요. (웃음) 옛날에 그랬어요. 옛날 신작로 소설을 읽어 보면 신작로 잘 닦아놨는데 아침에 미친놈이 먼저 지나간다는 거 아닙니까. (웃음)
다음 정부는 일자리 창출로 양극화 해소하고,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해야
이제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고 남북이 경제 공동체를 만들고 완전히 투명한 경제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제도화시키고 이렇게 해놨지만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 외에도 우리 정부가 못한 일들이 있어요. 160조가 넘는 공적자금을 기업을 살리는 데 투입하다 보니까 때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자영업을 하다 많이 망했습니다. 서민금융을 제대로 못 쓰고 있어요. 노숙자가 돼있습니다. 비정규직이 돼있습니다. 양극화가 97년, 98년 아주 심화됐어요. 이걸 아직 못 줄이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과 시장경제는 만들었고 경제 체질을 강화했지만, 거기서 일을 해야 할 우리 서민층, 근로자들은 많은 혜택을 주지 못한 겁니다. 이제 다음 정부는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되고, 비정규직 줄여야 되고, 사회복지기반을 더 튼튼히 해야 되고, 노령화되어 사회로부터 퇴출당하는 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되고, 노령연금을 지급해줘야 됩니다. 이것이 다음 정부가 해야 될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하나는 평화체제를 만드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만들어지면 이 평화체제를 더욱 확장시켜서 동북아에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북아는 20세기에 수없이 전쟁을 치른 지역입니다. 노일전쟁, 청일전쟁, 6·25전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 내내 전쟁을 치렀습니다. 수백만 명이 그 전쟁 속에서 희생됐습니다.
동북아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까지 열강이 다 가세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거기에 우리가 조그만 반도로 붙어가지고 용케도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삐걱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길을 비켜라 하고 안 비키면 때리고 침략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왜 명나라 가는 데 길 막고 있느냐, 왜 꼭 명나라를 한반도로 가야 돼요, 배 타고 가도 되지. 이렇게 만만쟁이가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잘 지켜서 살아온 우리 선조들만 해도 침략도 당하긴 당했지만 그래도 생존해왔다는 게 대단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생존 차원이 아니고 우리가 동북아 평화체제를 주도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됩니다. 남북이 평화체제가 되면 네 나라에 동북아 평화 안보체제 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지금 6자회담을 그렇게 전환시키면 되는 겁니다. 6자회담 이름을 바꿔서 동북아 다자 안보협의회 이렇게 만들어서 사무국을 한국에 가져오면 되는 거예요. 북경에 두지 말고.
원래 다자안보기구 사무국은 제일 약한 나라에 줍니다. EU도 브뤼셀에 있지 않습니까? 제주도에 갖다 놓으면 돼요. 그러면 제주도에 다 모이면 되는 겁니다. 거기서 군비축소 회담을 하면 되는 거예요, 군비통제 회담을.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300억 불 정도 되는데 그걸 갖고 다른 나라하고 군비경쟁에 들어가면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 중국이 400억 불을 이미 넘어서기 시작했고, 일본도 600억 불 정도 되고, 러시아도 400억 불을 넘었습니다. 미국은 전체 6천 7백억 불 중에서 아시아 지역에 쓰는 돈이 2,000억 불 가까이 됩니다. 우리가 경쟁 구도에 들어가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은 1%만 늘려도 400억 불에서 800억 불이 돼요. 일본도 언제든지 필요하면 늘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러시아는 기름만 팔아서 1년에 2천억 불을 버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들하고 우리가 군비경쟁에 들어가면 감당을 못합니다.
우리는 동북아 안보체제를 만들어서 이 지역을 군비를 축소해 나가는 지역으로, 공격용 미사일을 없애나가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군비 축소의 명분을 딱 거머쥐고 EU처럼 만들어 나가자고 해야 합니다. 유럽대륙이 전쟁을 그렇게 많이 치렀지만 지금은 EU가 되어서는 전쟁이 없는 대륙이 됐지 않습니까? 동북아를 그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 주도권을 누가 쥘 겁니까? 일본이 할 수 있습니까, 중국이 할 수 있습니까, 러시아가 할 수 있습니까, 미국이 할 수 있습니까? 유일하게 우리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을 주도하는 정부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정부가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 경제공동체로 공동 번영하며 새로운 경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남북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에는 양질의 노동력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자원도 대단히 많아요. 금도 많고 무연탄도 많고 철강석도 많고 흑연, 니켈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걸 지금 하나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없고, 도로가 없으니까. 산에 있는 나무는 베서 땔감으로 때는데 무연탄을 잔뜩 쌓아 두고도 그걸 우리처럼 옛날 십구 공탄으로 만들어서 나눠주면 될 텐데 이동할 길이 없고 차량이 없어서 그걸 못하는 겁니다. 이런 딱한 지경에 지금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3월에 평양 가서 이제 그러지 말고, 당신들이 지금 아시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가 됐다, 70년대 초반까지만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였는데 30년 만에 제일 못 사는 나라가 됐다, 군비경쟁 하여서 도저히 일본하고 미국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성장을 하자, 경제개발을 하자고 했습니다.
미국에 가서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북한이 뭐가 위험하다고 북한을 공격하려 드느냐, 먹고살기도 어려운 나라를.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니까 북을 공격하지 마라, 단독으로 전쟁을 미국이 치를 수 있겠느냐,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 한다. 단독으로 당신들이 어떻게 전쟁을 치르겠느냐. 그러니까 북을 인정해주고 핵무기를 비핵화시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 접점을 맺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한국의 역할이에요. 그걸 통해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 마무리되는 단계가 온 겁니다.
그렇게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만나서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의 개성공단 하나가 아니고 그 옆에 해주에도 만들고, 남포에도 만들고, 신의주에도 만들고, 원산에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한 공단에 30만 명씩만 취업을 해도 5개 공단이면 150만 명이 취업합니다. 150만 명이 취업하면 북한은 그때부터 가는 겁니다. 자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자원을 갖다 이용하고 그 대가로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진출하면 된다 말이죠.
우리 기업들이 가면 됩니다. 아니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그리 오면 됩니다. 중국보다 북한이 인건비가 더 쌉니다. 반밖에 안 됩니다. 중국에 가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또 우리 국내에서 임금 때문에 허덕이는 기업들이 진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달에 불과 75불이면 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7만 원입니다. 여기 하루 일당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 좋은 노동력을 북한은 이용 못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평양 갔을 때 북한사람들한테 얘기하면서 약 오르라고 한 얘기가 파키스탄에서 말도 안 통하는 근로자들이 와서 한 달에 천불 벌어간다. 방글라데시에서 말도 안 통하는 아가씨들이 와서 한 달에 천 불을 벌어간다. 당신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들이 두 시간만 차 타고 남쪽으로 오면 천 불을 벌어 가는데 개성에서 75불 받고 일하고 있다. 그러니 속으로 얼마나 약오르겠습니까? (웃음) 그래서 평화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평화체제가 되면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40만 명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또 2백 불, 3백 불 주고 쓰는 노동자를 찾아서 중국으로 기업이 2만 개, 3만 개 나가 있잖아요. 남북 간에 동포로 살면서 왜 그렇게 해야 되냐 말이에요.
저는 그 사람들 만나면 싫은 소리도 많이 하는데 저보고 그만하라는 거예요. 다 좋은 줄 아니까. 자기들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제발 미국 가서 자기들 협박하지 말라는 얘기를 꼭 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또 미국 가서 그 얘기를 합니다. 북쪽을 아무리 협박해도 북쪽은 거의 신앙화가 돼 있기 때문에 거꾸로 작용한다. 김정일 위원장을 흔들려고 오히려 그 쪽 사람들은 더 뭉친다. 협박이 약화시키는 게 아니고 오히려 결집력을 만드는 거니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결과가 다르다. 이런 얘기를 또 미국 가서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사 단계에 왔고 마무리 단계가 왔습니다. 그래서 경제 공동체가 이뤄지면 아까 말씀드린 새로운 경제 활로가 생기게 되는 거죠. 수출이 현재 잘 되고 있고 내수가 회복되고 있는데다가 한반도 경제 공동체가 이뤄져서 새로운 북한 특수가 생기면 이제 경제가 안정되게 꽃을 피워 나가는 겁니다.
땅만 보는 좁은 시각의 후보로는 발전할 수 없다.
이렇게 다 만들어놨는데 이걸 이제 누구한테 줘야 합니까? 이명박한테 줄까요? (웃음) 이명박 후보가 경제 얘기를 전혀 안 하고, 정상회담도 하지 말라고 하고, 북한에 대해 냉전적 발언을 많이 하더니 요즘에는 신한반도 경제공동체론 이렇게 나왔어요. 우리가 쓴 것에다가 앞에 신자만 하나 더 썼습니다. (웃음)
꼭 옛날에 지도책 보면 증보판, 신 증보 이렇게 하듯이, 간판 앞에다가 ‘신 원조’ 붙이듯이 그렇게 붙이고 나왔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까 그대로 우리 것을 베꼈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이걸 어떻게 넘겨주겠습니까?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땅밖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땅밖에 관심이 없으니까 눈을 늘 밑으로 까는 사람이에요.
넓게 보란 말이죠. 넓게. 10년을 바라보고 20년을 바라보고. 땅장사 하려면 미국이 알래스카 사듯이 하려면 그렇게 하란 말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알래스카를 러시아 사람들한테 싸게 샀지 않습니까? 거기가 엄청난 보물이 됐잖아요. 거기에 석유가 엄청나게 매장돼 있습니다. 가스가 태워버려야 할 정도로 매장돼 있습니다. 알래스카에. 그걸 거저 먹었지 않습니까? 돈 몇 십만 불에 먹었습니다. 땅장사를 하려면 그 정도를 해야지, 옥천에서 하고 도곡동에서 하고. (웃음) 우리나라를, 그런 사람한테 줄 수 없는 거예요. (박수)
요즘에 하시는 언행을 보십시오. 전라북도에 가서는 전라북도 지사에게 말조심하라고 하셨더군요. 거의 협박이 시작된 겁니다. 대통령한테는 뭐라고 그랬느냐면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임기가 끝나도 임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임기가 8월하고 10월에 끝납니다. 끝나면 임명하지 말라는 거예요. 다음 정부가 임명해야 되니까. 거의 자기가 대통령 된 줄 알아요. 지금. 아직 선거가 시작도 안됐는데. 세상에 360일 대통령 했다가 마지막 날 떨어진 사람인 이회창 씨가 있지 않습니까? (웃음, 박수) 마지막 날 떨어진 거예요. 또 5년 동안 자기가 다 된 줄 알고 있다가 돈도 천억씩 끌어들인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다가 12월 19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또 떨어진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도 이회창이란 말이에요. (웃음) 10년 중에 9년 8개월을 대통령 하고서 두 달만 못 한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이명박 후보도 제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어요. 국민이 얼마나 민주화 과정 속에서 단련됐고 조작하는 언론에 대해서 얼마나 단련이 돼 있는데, 그런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이 그렇게 만만하면 지금도 전두환 독재체제에서 살죠. 그러나 극복한 지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옛날처럼 방송에서 전두환 땡전뉴스 나오던 시대가 아니란 말이죠.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죠? 땡전뉴스가 뭔지. 저녁 9시가 되면 KBS하고 MBC가 9시 땡하고 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땡전뉴스라고 했어요.
지금은 그러던 시대가 아닙니다. 인터넷이 발달해 있고 UCC가 흘러다니고 얼마나 인터넷이 활발하게 돌아갑니까? 그래서 댓글 달아서 전부 논평하고 반박하고 다 하고 나서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게 신문 아니에요? 그 다음날. 신문이 아니고 완전히 구문이 돼서 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은 전부 다 신문 안 보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보고 휴대폰 이걸로 다 보지 않습니까? 또 나이 든 사람들은 TV로 다 보잖아요? 이제는 옛날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국민을 속여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린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평화체제, 국가경쟁력 강화, 양극화 해소, 지역주의 해소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 도덕성을 가진 정부, 책임이 있는 정부, 역사적 사명감을 가진 정부에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디다 맡길까요? 국민중심당에 맡길까요? (이해찬! 박수) 민노당한테도 맡길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국민중심당한테도 맡길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대통합민주신당한테 맡기든가 아니면 한나라당한테 맡겨야 되는데 한나라당은 50년 동안 이렇게 나라를 망친 당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개인적으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수준의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이 나라를 맡기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국민의 정부가 뿌린 씨앗, 참여정부가 키웠고, 다음 정부에서 꽃 피울 것
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국민의 정부에서 씨앗을 뿌렸고 참여정부에서 키웠습니다. 이제 제3기 민주정부가 이것을 수확을 해서 결실을 맺어야 되는 겁니다. (박수) 이걸 맺기 위해서 새로운 제3기 민주정부의 대선후보를 지금 선출하고 있습니다. 경선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9명이 시작을 하여서 여섯 분이 중단을 하셨고 3명이 남았는데 한 사람이 왔다갔다해요. (웃음) 또 산으로 가신 모양이에요. 어제는 집에 계시다가 산으로 가신 모양인데 그래서 어제 SBS 방송에 가서 저하고 정동영 후보하고 둘이만 토론을 했습니다. 원래는 셋이 토론하는 구도였는데 둘이 하다 보니까 핀트가 안 맞고 싸움이 잘 안 돼요. 싸움이 안 되고 그래서 어제 시청률이 높이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다가 또 대리접수니 동원선거니 그런 얘기 나오다가 당권 거래니 이런 얘기까지 나오니까 국민한테 저희가 얼굴을 들 면목이 없습니다. 잘해도 찍어줄까 말까 하는데 하는 것마다 모양새가 없고 지탄을 받을 일 이 생기니까 말씀드리기 참 어려운 심정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안 하면 한나라당한테 가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없고. 참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어서 여러분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면목이 없고 우리 스스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런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일어나서 다시 해야지, 여기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광주에 왔습니다. 여러분한테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박수)
오는데 인터넷을 아침에 보니까 광주 학생 518명이 이해찬 지지선언을 했어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박수) 다니면서 꽃은 제가 많이 받아봤는데 518명 대학생이 지지선언을 해준 데는 광주가 처음입니다. 역시 광주는 다른 데하고는 남다른 우리 민주화에 대한 애정과 역사적인 책임감 이런 걸 가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명문을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런 내용이 실려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참 부족합니다만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이번 경선을 잘 끝내고 이명박 후보하고 당당하게 붙어서 반드시 이겨서 여러분이 염려하는 그 걱정을 깨끗하게 씻어 드리겠습니다. (박수)
저는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감옥살이부터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정책위 의장을 세 번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 번째 하라고 할 때에는 그만 좀 부려먹으시라고 그랬어요. 저도 선수가 벌써 4선이나 됐고 정책위 의장을 두 번 했으면 됐지, 다른 사람들은 다 최고위원 한다고 대통령 후보 한다고 하는데 저는 맨날 정책위 의장만 하다 보니까 제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아 국가를 위한 게 중요한 거지 개인 영달이 중요한 거야?’ 그래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쭉 정책을 했는데 그게 참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러면서도 장관도 하고 다 했어요. 생산적 복지도 그때 만들었고 기초생활수급도 그때 만들었고 의약분업도 그때 만들었고 다 했습니다. 그런 정책을 가지고 혜택을 보는 분들을 재가 요즘 만납니다. 그때 기초생활수급제도를 만들어서 가구당 얼마씩 받고 있구나, 의약분업을 하여서 얼마 받고 있구나.
이런 결과를 보람으로 정책을 다루고 정치를 해오는 건데 참여정부에 와서는 집행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책임총리가 되어서. 그래서 광주에는 한전을 비롯한 15개 공공기관을 전라남도하고 묶어서 보냈죠. 올해에 나주에서 착공을 합니다. 2010년경 되면 서울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다 내려옵니다. 한 달에 5백만 원씩, 6백만 원씩 받는 고급 월급쟁이들이 4천 명~5천 명 가까이 내려옵니다. 그래서 혁신도시를 만들어요. 최대의 공기업인 한전이 오면 줄줄이 따라서 관계기업들이 같이 오게 됩니다. 한전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공기업입니다. 그러면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이 지역 대학들에 한전과 연관된 분야, 교수들은 프로젝트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학생들은 한전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기업혁신도시를 만드는 제 목적입니다.
기업혁신도시의 목표, 지역과 대학, 기업 유기적 관계로 상호 발전하는 것
175개 기관을 전국에 나눴습니다. 기업도시로 해서. 그리고 무안에 기업도시 허가를 해줬고 무안에 중국기업들이 옵니다. 그리고 해남 영안에 기업도시 허가를 해줬습니다. 그게 발전하면 서해안 시대에 관문이 되는 서해안 개발 사업이 됩니다. 지금 국회에서 서해안 개발 특별법이 계류 중에 있는데 그 법이 빨리 통과돼야 됩니다.
그 법을 빨리 통과시키려고 했는데 탈당들을 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니까 우리가 과반수가 안 돼요. 빙빙 돌다가 돌아오긴 다 돌아왔는데, (웃음) 넉 달 동안에 당명이 네 번 바뀐 사람이 있어요. 민주당에 있다가 통합신당하다가 다시 민주당으로 갔다가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온 사람도 있어요. 이렇게 어지럽게 해서 곤란했었는데 이제 다 모였기 때문에 법 통과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원내대표 보고 꼭 통과를 시켜야 한다고 약속을 받고 왔는데 그 법안이 통과되면 이른바 서해안 시대의 개막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분단과 냉전 속에서 소외돼왔던 이 지역이 새로운 서해안 시대의 중심, 단순히 옛날과 같은 제조업이나 공예 산업이 아니고 소득이 2만 불이 넘는 시대에 맞는 R&D, 선진 복지사회에 맞는 서비스 산업, 이런 것들이 발전하는 중심지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다음 정부가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 지역이 경제가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라서 사람이 나가는 지역이 아니라 여기로 취직하러 오는 지역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잘 계획을 세운 이해찬이 제일 잘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박수)
제가 싱가폴 정부하고도 협의를 했고, 중국 광동성 사람들하고도 협의했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이 S프로젝트입니다. S프로젝트하고 광주에 혁신도시를 묶어서 서해안 개발 사업을 하는 것이 제가 총리로 있을 때 가장 역점을 뒀던 사안입니다. 이것을 저는 훤히 다 알고 있어요. 이것을 만들어 내야만 이 지역이 아주 품격이 있고 친환경적이면서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되고, 그래야 무안국제공항이 제 기능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조량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신안, 영암 해안 그쪽이. 태양열 발전이 유일하게 가능한 지역입니다. 천일염도 세계에서 제일 좋은 소금이 나오는 지역입니다. 한 번 신안에 가서 소금을 드셔보십시오. 답니다. 달아요. 새우도 잡아서 말려서 먹어보면요 새우가 달아요.
앞으로 우리가 선진복지사회에 들어가서 아주 쾌적하게 휴양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신안 앞바다 섬에 가보니까요, 원체 섬 해안선이 완만하여서 어떤 사람이 못 살겠다고 자살하려고 바다로 막 쫓아가다가 빠져 죽기 전에 지쳐서 쓰러진답니다. (웃음) 완만한 해안선 300m가 뻗어있으니까 자살을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이 와서 휴양하고 해수욕하기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자연의 보고가 신안 앞바다에 깔려있습니다.
이런 것을 훼손을 하지 않고 고급 휴양지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레저산업, 문화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석양도 아주 황홀합니다. 맑은 날 석양이 떨어질 때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이런 자연의 보고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건 손을 안 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거든요. 저소득일 때는 자연에 손을 대면 망칩니다. 그러나 고소득일 때는 잘 살려서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곳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은 저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총리 하면서 헬리콥터 타고 다 둘러봤어요. 지난 3월에도 배 타고 다 둘러봤어요. 이런 서해안 시대를 열어가는 것을 제가 책임지고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는 걸 약속을 하겠습니다.
광주전남 시민들의 수준 높은 결단이 역사를 발전시킬 것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대선은 아까 말씀드린 그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정부의 첫 시대라고 봅니다. 그 시대를 이끌어가려면 결국 이번 경선에서 한나라당한테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여러분이 선출해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결국은 전국에서 표를 골고루 얻어야 대선에서 이깁니다. 역대 선거가 다 그랬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선에서 오늘 박광태 시장을 만나러 인사하러 갔더니 박광태 시장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본선에서 이길 사람을 광주사람들은 찾고 있다 이거예요. 그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한국일보에서 한나라당 의원들 1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자기들 상대하기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가 누구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해찬 후보가 40 몇 명으로 제일 껄끄러운 상대라고 합니다. 제일 어려운 상대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손학규 후보가 30 몇 명으로 두 번째 어려운 상대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정동영 후보가 9명으로 제일 쉬운 상대라는 겁니다. 그러면 게임 끝난 거 아닙니까? (박수)
이런 광주의 마음을 저는 읽습니다. 실제로 2002년에도 광주는 지역 연고나 대세론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 그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정책, 그 사람이 지금까지 보여준 진실한 태도 이걸 가지고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를 계승할 수 있는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광주전남 시민들이 수준 높은 결단을 할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내가 선택한 게 옳으면 내가 이익을 보는 것이고, 내가 선택한 게 잘못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겁니다. 바로 역사는 자기 선택에 의해서, 결단에 의해서 발전하고 잘못된 선택에 의해서 퇴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60년 동안을 끊임없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시키고 남북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면서 끊임없이 결단하고 선택을 하며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선택과 결단이 여러분의 운명, 이 나라의 운명, 국가의 운명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평화체제까지 만들 수 있는 그런 선택이 되리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