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민주적 시장경제론'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절합은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이념이다. 이해찬 교육부 장 관도 취임 직후 "교육에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를 도입해 대학들이 경쟁을 거치면서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삼 정권의 교육개혁위원회가 교육개혁안을 제출한 이후, '문민정부'에 이어 '국 민의 정부'도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을 전면화하고 있다. 물론 교육정책을 수립하 고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계속성과 안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방향은 이미 교육개혁위원회가 만들어 놓았다'는 이 장관의 발언에서 도 확인되듯이,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교육정책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평가 도 없이 대체로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IMF의 관리 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에, 민영화, 개방화, 자유화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 혁정책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대학부문에서 민영화는 4년제 대학 수의 17.3%(150개 가운데 26개)에 불과 한 국공립대학마저 국내 기업이나 외국대학에 매각하거나 경영을 위탁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방화는 성급한 교육서비스 시장 개방이며, 학사행정의 자유화 와 대학 증과, 증원의 자유화는 때늦은 조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고 효율 적인 정부론의 구호아래, 교육과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재정지원 축소를 강조하는 신 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오로지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교육을 재단하고 탈상품적 속성 을 가진 교육을 시장 경제의 경쟁논리에 종속시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국정 100대 과제 가운데 5가지 교육관련 과제는 학생위주의 교육, 사교육비 부담 절감, 교원 근무여건 개선, 교육부문 효율성 개선, 산업교육체제 구 축이었다. 이 과제를 평가없이 그대로 이어 받은 '국민의 정부'는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실적에 따라 지원을 차등화하는 시장원리의 도입만을 첨가하였다.
이 과제들의 최종 목표는 교육의 자율성 제고와 교육의 국가경쟁력 제고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율성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 특히 창 의력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자율성 제고 정책이 정부 주도로 '위로부터' 강제되고 있 다는 점이다.
대학의 자율성 제고 정책은 학사운영의 자율화, 정원 자율화, 입시제도의 자율화, 학부제 등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위해서 제안 된 학부제는 교육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위로부터의 개혁' 형태를 대표하고 있다.
1998년 3월 1일 부터 발효된 새로 제정된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이 학부제 실 시를 거의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행·재정 차등지원을 외면할 수 없는 전 국의 대학은 내년부터 학부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학 부제는 특성 없이 획일화되고 지나치게 전공이 세분화된 분과학문 체제를 재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학부제가 교수·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 구성원의 반대 의사가 지배적인 가운데, 학부제는 한 지붕(학부) 밑 세가족(기존 학과 틀 유지) 형태로 또 다시 대학을 획일화하고 있다.
또 대학교육의 국가 경쟁력 제고 정책은 '현재 등록금 수준과 재정 여건상 모든 대 학을 지원할 수는 없어 일부 우수대학을 연구중심 대학으로 육성하고 나머지 대학은 직업교육 중심 대학으로 키우는' 대학육성 이원화 정책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핵심 정책은 소위 세계 '20위'권 대학으로 키우려는 3∼4개의 연구중심대학(내년 1천200억원 지원)과 지방대학의 수준 향상을 위해 이공계를 중심으로 한 8∼10개의 지역별 거점대학(내년 800억원 지원)의 선정과 지원으로 전면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학을 선정하기 위한 정량분석에 치우친 대학평가도 각종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설치 기준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되는 '옥상옥'과 같은 대학종합평가인정 제는 대학의 자율을 침해하고 대학을 지적인 면보다는 재정적인 면에서 평가하여 서 열화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물론 대종평이 열악한 교육환경을 일정 수준까지 강제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평가위주 의 파행적 학교운영은 대학 자율의 근본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편 교육재정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확정된 당초 교육예산(19조8천억원)이 추 가경정예산 편성을 거쳐 1조3천여억원이 삭감된 17조5천억원으로 계상되었다.
여 기서 우리는, 영국 경제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정부가 지난 7월 그 동안 유지해 왔던 긴축정책을 허물고 앞으로 3년에 걸쳐 교육분야에 약 40조원을 투자하 겠다고 발표한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사회에서는 지식생산 이 최고의 부가가치를 가져오고, 교육분야에의 투자 정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민영화, 개방화, 자유화를 앞세운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 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재정 삭감으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전체 교육재정을 축소하면서도 소위 세계 '20위'권 대학 만들기를 위한 소수(재벌)대학 집중지원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 의 구조조정 보다 더욱 시급하고 근본적인 일은 국공립대학의 방만한 운영과 비리의 틀을 개혁하고, 사립대학의 족벌·세습체제로 인한 구조화된 학교 운영 비리를 척결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개혁은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전근대 적인 체제를 타파하지 않고는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대학사회의 민주화만이 대학의 자율성과 자치를 담보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대학의 지식생산력이 높아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근본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할 의지가 있다면, 교육부 자체의 비리척결을 필두 로 재단에게 전권을 주고 있는 현행 사립학교법을 무엇보다도 먼저 민주적으로 개정 하여 교육 자치의 토대를 강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사립학교 법 개정안과 교수계약제는 허약한 대학자치를 여전히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현정권에게 무엇 보다도 중요한 일은 소위 세계적인 일류 대학 몇개를 단 기간에 만들려다가 공공영역인 그 나머지 대학을 황페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 이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발원국들 수준으로 교육재정을 늘리고, (지역)대학간 경쟁 이 아니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 결과에 의해서만, 국제적 수준의 대학교육이 가 능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오히려 대학을 획일화하는 경향을 가 진 학부제 실시와 대학원중심의 대학운영과 같은 학문정책은 개별 대학의 결정에 맡 기고, 대학의 전근대적인 운영과 비리구조를 혁파할 수 있도록 대학에 대한 감사( 또는 대학에 대한 감독은 감사원으로 그 권한을 옮기거나)와 지원기능 확대에 더 많 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