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천
우선 자천의 정의부터 내려보자
자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왜 해야하는지도 생각 해야 한다..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어떤 곳 어떤 방식으로 사는 곳이든 내가 있어야 한다면 그 존재방식이 있게 된다.
이건 나에게 자아를 강요하는데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하고..
이런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말이 이렇지만 쉽게 말하면 편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내 존재방식이고 누구나 같다.
자천하는 이유도 더 나아지고 싶고 바라는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주관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객관과 이타적인 것은 주관성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한다.
애초부터 이 세상은 나와 별개이거나 별개가 아니거나 이다. 이런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객관세계는 내가 치열하게 생을 이어가야할 전제로써
가장 근원적 바탕이 되지만 내 의지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해낸 것이 내 주관이 된다.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적극적 욕망을 하게 된다.
절대 객관을 내 주관으로 성취한만큼 난 절대에 다가가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할 수 있으면 주관이고 없으면 객관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줄다리기 하며 더 주관을 확대하기위해 자천하고 노력한다.
영어를 잘해서 좋은직업을 구해 돈많이 벌고 윤택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이것이 자천의 목적이며 이유가되고 그러기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원을 다니면 이것이 자천이다.
알통을 만들고 남 앞에서 멋진 근육을 보이고 건강해지고 싶다면
이것이 자천의 목적이 된다.
그럴려고 헬스를 다니고 아령을 든다면 그것이 자천이다.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익히는 것도 같다.
이렇게 우리는 나아진 삶을 위해 노력하며 꿈을 꾸고 산다.
그러니 누구나 자천하고 공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영어하고 자격증이 있으면 우리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 자유로워진다.
우린 자유로워야 한다.
도덕이나 윤리에서도 우린 자유로워야 한다.
과거의 잣대나 학문과 관습 사고로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어떤일이든 타인을 통제하거나 지배하려 해서는 안된다. 가장 가까운 나도 내게는 타인이 된다.
나의 이런 설명도 폭력이 된다.
도학이라는 분야가 있어 이것만 자천인양 알고 이해하는데
소위 말하는 불교, 도교, 선, 참선, 명상, 도, 기체조... 하도 많아 알기도 어렵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난을 해야하는데
어쩌겠나 자기가 뭐라도 알아낸 것은 없고
앵무새마냥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아는체 하는데
어쩌다 타존재의 말이라도 들으면 앞뒤 따지지도 않고 굴복하는 노예근성이 있다.
이런건 일고의 가치도 없고 항상 보수적 무지가 세상의 발전을 막는 것이다.
재미 있는건 본인이 이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개그가 따로 없다.
이들은 눈이 없다. 근원을 뚫어보는 힘이 없다.
눈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자유로운 만큼 보인다. 무엇이 마음을 가리고 있는지....
자천은 우선 내 자유의 확대이고 내가 커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주위와 세상에 이로움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