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해보니 성공하기가 어렵더라.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하려면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가능하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김 회장은 1일 충남 당진군 동부제철 아산만공장에서 열린 첫 열연코일 생산 기념식에 참석한 뒤,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시간20분 정도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국내 주요 그룹의 현 총수들 가운데 드물게 창업 1세대인 그는 이날 사업을 시작한 계기와 전기로 제철사업에 뛰어든 배경, 스스로 생각하는 기업인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현재 동부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9개 구조조정 대상 그룹 중 하나로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준기 회장은 이날 동부제철 전기로 제철소를 완공한 후 처음 나온 쇳물로 열연코일(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로써 국내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이어 제3의 쇳물 생산업체가 탄생했다. 지금까지 열연코일을 구입한 뒤 그것을 압연해 냉연강판을 만든 사업을 해온 동부제철은 전기로 제철공장을 완공하면서 직접 쇳물을 만들어 열연코일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동부제철의 전기로 제철공장은 연간 300만t의 열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단일 전기로 제철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다.
-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1일 충남 당진군 동부제철 전기로 제철공장에서 첫 열연코일 생산 기념식을 가진 뒤 기자들을 만나 제철사업에 대한 포부와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해얘기하고 있다./동부제철 제공
김 회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40년 숙원을 풀었다. 참으로 감격스럽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그곳에는 제철소·비료공장 2개가 있었다. 그걸 보고 자란 내가 이제 제철소를 하게 됐다."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나.
"나는 여유 있는 집(선친이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에서 태어나 받을 수 있는 교육을 다 받았다. 막살 수는 없고 나라를 위해 뜻있게 사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기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에 안 맞는다고 후회도 많이 했다. 배고프고 어렵게 자란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루면서 사업을 잘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항상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여기까지 왔다."
―전기로 사업이 고로(高爐) 사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전기로 제철은 혁신적인 제철 방식이다. 고로는 투자비가 많이 들고 환경오염 문제도 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혁신적인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이 풍부하고 원료로 쓰는 고철도 75% 자급이 되므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하나의 경쟁력 있는 제철 모델을 동부제철이 만들어내겠다."
―구조조정을 위해 알짜 회사인 동부메탈을 매각해야 하는데.
"고생을 엄청나게 해서 키운 회사다. 합금철 생산 회사 중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다. 적자가 계속 나는 것을 다른 곳에서 이익이 나는 것을 재투자해 버텨왔다. 그 과정에 일본, 유럽의 동종 경쟁기업들은 거의 다 문 닫았다. 아쉽지만 합리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반도체 사업 등 다른 사업도 적자 나는 것이 많다.
"비메모리 사업을 시작한 것은 국가에 기여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파운드리(반도체 설계·디자인을 위탁받아 생산만 하는 것) 전문 회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술과 설계 능력은 있지만 돈과 생산 공장이 없는 사람들도 창업을 할 수 있다. 이익이 계속 나지 않아도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지원해 버텨왔는데 작년 쓰나미(금융위기)를 맞아 문제가 생겼다."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주력사인 동부하이텍·동부제철이 대규모 누적적자를 기록한 탓에 동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고 보는데.
"그래서 동부메탈을 팔고, 동부하이텍의 유화 부문도 팔려고 한다. 부동산도 매각할 계획이 있다."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정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IMF 때는 정부가 강제로 기업을 빼앗다시피 하면서 잘했다고 했다. 우스운 일이다. 공무원들은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후에 대책을 세우고 뒷수습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업인은 미리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고시를 패스한 공무원들이 똑똑해서 기업도 잘 알 것 같지만 기업은 기업인이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망하지 않고 기업을 이끌어온 기업인을 존중해야 한다. 이 나라는 기업인과 기술자들이 키워왔다. 기술자들을 존중해 훌륭한 기술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지금 금융 당국과 채권단이 기술력이나 성장성은 무시하고 부채비율만 따져서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하고 있는데.
"위기가 왔다고 모든 기업을 똑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동부가 부채비율이 높지만 공장을 지으면서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위기의 성격이 다르다. 무차입 경영이 뭐가 중요하나. 기업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김 회장은 기업과 기업인의 임무에 대해 "선진국에서 선진기업들이 하는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너무 안전 위주로 나가면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방직·시멘트 기업들이 새 분야를 시도하지 않아 중소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든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김 회장은 "나 스스로 '산업 농민'이라 생각해왔다"며 "계속 일하면서 일한 만큼 보람을 느끼고 종업원들에게도 인정받고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고로(高爐)
용광로에 철광석과 유연탄을 넣고 뜨거운 열풍(熱風)을 불어넣어 쇳물을 만드는 제철방식.
전기로(電氣爐)
고전압의 전기로 발생한 아크(불꽃)로 고철 원료를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제철방식.
첫댓글 조선일보 데스크는 기사 내용보다는 선정적인 제목 뽑기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 기사도 내용보다는 제목이 너무 멀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용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말을 제목으로 뽑아 김 준기 회장이 한 말처럼 해 놓았네요. 황당하군요. 그나 저나 전기로 제철은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방식이라는데, 그 고철 값이라는 게 워낙 불안정하므로, 전기로 제철 사업은 기사에 지적된 것처럼 사업성 면에서 위험도가 높겠네요.
요새 모든 중앙일간지 인터넷판이 난리입니다. 어떻게든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아 조회수를 늘리려구요. 여긴 기자가 아니고, 그냥 인터넷팀이라 소속이 전혀 달라요. 인터넷팀이 따로 있어서 이 사람들이 장난을 많이 칩니다. 원래 신문에 보도된 제목 그대로 써야 하는데, 마음대로 재편집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