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온지 둘째일 남부지방 투어.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각 5시 30분.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을 얻어 먹고 테르미니 역 앞에 있는 무슨 호텔 앞에 가면 투어버스가 온다고 했다. 7시 10분 전에 그 곳에 갔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몇 번 이곳저곳 돌아다닌 후에 호텔을 찾았고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물어보니 남부투어를 간다고 했다.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와 한 모녀는 승합자를 타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가이드가 운전해 주는 승합차를 모녀 그리고 나 가이드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고속도로를 달려 나폴리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운전석 바로옆에 앉아 로마 외각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친절하고 아는 것이 많은 가이드의 일대일 가이드를 받아 언제 3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나폴리 를 거쳐 폼페이 유적지 까지 오게 되었다. 오는 길에 나폴리를 지나며 폼페이우스 화산이 본래 하나였는데 터져서 지금은 두 개의 산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들었다.
첫번째 사진은 바로그 모녀와 여행 한 조가 되어 덕택에 사진을 부탁해서 폼페이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찍은 사진이다. 이탈리아 남주 지역 전역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어 소나무 사진들을 몇 장 찍었다. 그들은 이 소나무를 삐냐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어와 비슷하다. 파인 트리. 삐냐. 이렇게 해서 나와 우리들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폼페이 화산 유적지를 구경하고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폼페이의 건물 기둥들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많은 기둥들이 시멘트로 만들어졌고 그것이 아직도 부서지지 않고 육중한 무게를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이 5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여기 콘크리트는 어째서 2,000년 넘게 버티고 서 있는지 너무나 궁궁하다. 베스비우스 화산은 AD 79년에 터졌다고 하던가. 유명한 지리학자가 그 광경을 보기 위하여 가까이 갔다고 죽고 그것을 그 조카가 기록을 넘겨받아 오늘날 그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다고 하니 로마 사람들의 기록정신은 정말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신라 시대와 그 이전의 역사를 알 길이 막막하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누군가가 그것을 고증하고 또 배우고 느낄 수 있고 배교할 수 있을 것이다.
폼페이시의 엣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판석을 깐 마차 도로와 보행자 도로, 그리고 납으로 된 수도관은 그대로 있었으며 거리 중간 중간에 남아 있는 분수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한 부잣집의 내부가 그대로 있었고 그 시대의 홍등가도 그대로 있었으며 그곳으로 가는 표지석과 그 문양이 그대로 있었다. 돌은 종이와 달리 영원히 그 때의 정보를 말해준다. 폼페이 시의 언덕에 오르리 포로 폼페이가 있었고 제우스 신전도 있었다. 역시 그들의 삶의 중심에 신전이 자리 했다. 무엇보다도 삶의 중심에 광장이 자리하는 것이 그들 문화의 특징이다. 이 광장은 어쩌면 휴머니즘의 극치요 자랑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여기서 재파닝 이루어지고 상업이 이루어 지고 만남이 이루어 지고 사랑이 이루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이런 만남을 좋아했으리라. 그래서 넓은 광장을 꾸몄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넓고 또 예술 작품으로 둘러싼 광장이 있어 사랑도 하고 만남도 갖고 예술도 감상하고 물건도 살 수 있으며 오래동안 앉아 지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지금이라도 이런 도시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을 듯 싶다.
포로 폼페이에 서면 저 멀리 베스비우스 산이 보인다. 그 산이 터져 다소 멀리 떨어진 이 곳 폼페이가 15미터의 화산재로 덮이게 되었고 그들의 그 때의 종교를 따라 볼케이노 신의 노여움이라 감히 그것을 발굴할 수 없었으며 그 덕분에 로마 시대의 사람들의 내밀하고 또 은밀했던 삶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으리라. 2,000년 전의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했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었고 또 불의의 재앙을 만나기도 했다. 아직 나의 시대는 그런 끔찍한 재앙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또한 그런 재앙이 올 수도 있으리라.
폼페이 유적을 둘러 본 후 이태리 식당에서 이탈리아 정통 점심을 먹었다. 파스타, 스파게티, 빵 그리고 한 잔의 와인. 이렇게 해서이탈리아를 경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차를 타고 그 유명한 소렌토로 가는 해변도로, 아말피 해안도로를 탔다. 지나는 길에 자주 차를 세워 해안의 풍광을 유감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 킅없이 펼쳐져 있었다. 따뜻한 바닷바람이 콧 속으로 그리고 얼굴 가득 느껴 졌다. 바닷가 절벽 위에는 유럽 특유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줄지워 서 있었다. 내려서 사진 찰칵. 이어서 미국인들도 휴가지로 꼭 와보고 싶다는 아말피 해안도로. 해안 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와 그 위쪽으로는 바위 산이 정말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 중에서도 포지타노는 최고 였다. 말로 표현이 안되는 바닷가 풍경과 그 위로 유럽 특유의 작은 도시가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 있었다. 바다에는 유람선들이 관광객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나폴리 만은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도시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유명한 섬이 나폴리 만에서 좀 떨어져 있었는데 누구나 가보고 싶은 카프리 섬이 저 멀리 앉아 있었다. 아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인데. 로마의 2데 황제 티베리우스의 은적이 그대로 묻어 있는 곳으로 알고 있는 환상의 섬, 휴식과 낭만이 섬일 것이다. 이렇게 해안도로를 차를 타고 보는 것 만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기억은 지금도 선선하다.
그 후에 소렌토 시네에 들어와 방금 전에 해안도로 멀리서 보았던 소렌토 해안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리고소렌토 시내를 가이드 분과 모녀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돌아 다니며 몇 몇 상점에 들러 쇼핑도 하고 한 케피 점에 들러 진한 이탈리아 정통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저녁이 다 되어 갈 무렵 소렌토를 시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중간에 점심 때 들러 에피타이저, 스파게티, 그리고 파스타를 먹었던 곳에 들러 이번에는 화닥에서 바로 구운 피자를 둘이서 한판 맛있게 먹었다. 써비스라고 했다. 가이드 분은 운전도 하면서 나에게 이탈리아 전반에 걸친 유식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로모 민박집 올때까지 열심히 들려 주었다. 나도 덩달아 내가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정말 많이 배우고 많이 듣기도 한 6시간의 투어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로마 남부 지역 투어였다. 가이드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두어서 혼자 맛있게 먹었다. 둘째 날이 지나갔다. 마음은 즐거웠지만 몸은 조금 피곤했다. 그 전날에는 사실 밤에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 너무 많이 걸어서 였을까 아니면 긴장했기 때문이었을까. 최근에는 다리에 쥐가 나지 않았었는데. 집에 가면 산보를 많이 해서 여행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둘째날 이탈리아 여행이 끝났다. 내일은 로마의 상징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갈 것이다. 어떻게 갈까? 걸어갈까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 갈까? 다리가 아파서 아마 지하철을 타야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