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행복한 미래
서울 서초동의 김모(65)씨 부부는 최근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개설한 노후준비관련 특강을 듣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자녀들은 결혼해 뿔뿔이 흩어지고 노부부만이 외롭게 살아가는 형편이지만 그동안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의 재산으로는 여생을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아파트를 줄이는 등 노후 생활계획을 다시 짰다. 그리고 건강유지를 위해 그 동안 미뤄왔던 아침 산책도 시작했다.
노인세대는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도 노후준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 대학의 사회교육원이나 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개설한 노후준비 관련 프로그램도 최근 인기를 더하고 있다.
서울 반포사회복지관의 경우 지난 5월부터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풍요로운 노후설계' 강좌를 열고 있다. 최근의 제3기 강좌는 15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건강계획과 재정, 여가생활, 주거환경, 가족관계 등에 대한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 복지관은 컴퓨터교육도 실시해 노인들의 '컴맹' 탈출을 도와주고 있다. 관악사회복지관도 '어르신취미교실'을 여는 등 각 복지관에서 노인강좌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선진 외국과는 달리 노인복지가 정착돼 있지 않은데다 노후생활을 더 이상 자식에게 의지할 수 없는 등 전통가족관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은퇴 이후는 고정수입이 줄어드는데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생계비도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노후준비는 사실상 장래의 생존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대부분의 노인은 노후전기(60∼74세)는 젊을 때 모아둔 재산이나 자식들에게 의지해 어느 정도 꾸려갈 수 있으나 문제는 의료비 등 생활비가 급증하는 노후 후기(75세 이후)"라면서 "노후 후기는 자식들도 그 동안 할 만큼 했다는 핑계로 외면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힘이 있을 때 대책을 세워둬야 한다"고 말했다.
<노후 준비없는 노인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신림7동. 생활보호대상자가 전가구의 10%에 이르는 이 곳은 살아가기가 막막한 노인가구가 상당히 많다. 15년전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곳에 찾아든 오모(75) 할머니는 두 명의 시집간 딸이 있지만 사위와 함께 살 형편이 못 돼 동사무소의 주선으로 무료양로시설에 입소했다. 이 동네에는 오씨와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생활보호대상자 600여가구 가운데 130여가구에 이른다. 노인단독가구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정부의 보조에 따라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전국의 노인단독가구는 1998년 현재 전체 노인거주가구의 46.8%. 84년의 22.6%에 비해 두배가 늘어났다. 이는 읍-면 지역으로 갈수록 늘어나 98년 기준으로 노인단독가구는 54.6%에 달한다. 결국 핵가족화 현상은 노인들에게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짐을 지운 셈이다.
이들 노인세대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98년 현재 근로능력이 없어 국가로부터 생계비 지원을 받는 생활보호대상자는 전국민의 2.1%였지만 노인생활보호대상자는 노인인구의 8.2%로 4배에 달한다. 결국 25만명의 노인들이 의지할 곳 없는 극빈자다.
나이가 많아 갈 곳 없는 이들 노인세대도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노후문제는 제쳐둔채 오로지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 뼈빠지게 일해왔다. 그러나 지금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허탈감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식도 떠나고 건강까지 잃어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자식농사를 위해 모든 재산을 털어넣지 않고 저축이라도 했을 걸 하는 후회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장애인정책개발센터 변재관 소장은 "급격한 고령화추세는 물론 자녀수 감소와 여성의 사회진출의 증가로 인한 가족의 노인부양기능의 약화 등 노인문제가 심각한 국가적 현안이 되고 있다"면서 "노인정책은 일부 저소득 노인 등에 대한 생계지원 차원을 벗어나 이제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전예방적인 정책개발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노후준비> 아름다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노후계획을 세울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또 현재 살아가기도 벅찬데 어떻게 미래까지 걱정하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30,40대부터 재정과 건강, 취미생활 등 노년준비를 서두를 것을 권한다. 역시 자식도 부모를 멀리 할 때는 남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아래 재산을 모두 넘기지 말고 무덤에 갈 때까지 가져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젊을 때부터 취미활동을 부부가 함께 하고,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이후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평소에 인생의 동반자로서 진솔한 대화시간을 자주 갖는 등 달라질 환경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길량 한국가족상담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노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은퇴 후에는 집안에 칩거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등 삶의 패턴이 바뀌는 만큼 젊었을 때부터 부부가 함께 노년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밝은 노후모임의 서혜경 대표도 "노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흥청망청 돈이 생기는 대로 낭비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라면서 "차세대 노인들도 노후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서두르는 것은 물론 노인문제 전반에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