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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택이는 미친듯이 책을 보고 답안지를 작성하는데, 한가롭게 옆에서 먹을 갈던 찬석이 옆의 접(接)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며 혀를 찬다.
“와 저것들은 뭐꼬? 남들은 죽을둥살둥 책보고 베끼느라 똥줄 타는데, 저것들은 포졸놈들이 답안지를 갔다주네?”
“신경 끄라, 저것들 안동 김씨 애들 아이가….”
“육시럴놈들! 신성한 과거 시험장에서 시험관을 매수하는게 어디있노? 적어도 책보고 베끼는 정성은 있어야제…. 어이구 저놈들은 또 뭐꼬? 상택아! 저것들 지금 밖에서 들어온기제?”
“신경 끄라 안카나! 저것들은 집에 가 답지 맹글어 오는거 아이가?”
“와~ 미치겠네, 대 조선의 과거 시험장이 이리 개판 5분전이었나? 집에 가서 답 베껴오고, 시험관 매수하고, 와 완전 돌아버리겠네.”
“확 쎄려삐까보다. 그 입 몬 다무나? 네나 내나 없이 사는 것들이라 협서(挾書 : 책보고 베끼는 것)나 하믄서 있지만, 내는 꼭 저노마들을 제낄끼다. 내 아부지 앞에 어사화 꼭 갖다 바칠끼다. 알긋나? 알았제? 알아 묵었나?”
“알겠다.”
상택 그렇게 답지 세장을 일필휘지로 다 써낸다.
“바통터치다. 인자부터 네가 욕봐라.”
“걱정말거라, 상주 근동 100리 안에서 내만큼 글씨 잘쓰는 놈이 어데있노? 가서 막걸리나 한잔 빨거라”
“앗! 그러고 보니 용가비 이노마 아직도 안왔제? 클났네 조정(早呈 : 답안지를 빨리 내는 것)할라믄 이노마가 필요한데, 후딱 베끼고 있거라, 내는 용가비 좀 찾아봐야겠다.”
“알긋다.”
상택이 그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막거리 파는 쪽으로 달려가는데, 멀리서 용가비의 꼬장 부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내는 마…. 딸꾹, 상주땅에서 급제할라고 왔다 아이가…내 친구놈들이 다 알아서 할끼다….”
“임마야! 이리 술주정 하면 우짜노? 아직 조정이 남았다 아이가!”
“아~마이 베스트 프렌드 김상택이 아이가? 어여 온나, 내 기분이 좋아서 한잔 했다 아이가. 어이 마담, 아니 주모 여기 막걸리 17년산 얼른 가져온나!”
“확 쎄려삐까 보다! 용가비 이노마야 정신 챙기라! 용가바!”
“와? 자리도 다 잡았고, 답도 다 쓴다 안카나? 인자 어사화만 꽂으면 되는거 아이가?”
“어사화는 X으로 꽂나? 답지 아무리 잘 쓰면 뭐하노? 빨리 내는 순으로 사람 뽑는데!”
“앗! 참말이가?”
“네한테 구라 쳐서 뭐할낀데? 와 이노마가 개념을 밥말아 묵었나? 야, 네 과거시험을 우째 보는지 아직도 몰겠나?”
“모른다. 내는 네가 시키는데로만 하면 급제 된다케서, 네 하라는데로만 할라고 했제.”
“와…미치겠네…. 용가바, 잘 들어라 지금 시험 보러 온 놈들이 한 10만 된다 안카나, 이 중에서 답지 내는 놈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만 정도 된다 아이가. 어떤 미친 채점관이 하루안에 그걸 다 보겠나?”
“하먼?”
“즉일방방(卽日放榜 : 하루안에 결과발표)할라믄 어케해야 겠노? 대충 보다가 빨리 낸 놈들거만 살펴보고 급제할 놈 뽑는다 아이가, 그 데드라인이 3백장이다. 3백번 안쪽으로 답지 내야지 합격된다 안카나!”
“와, 돌어버리겠네. 그런게 어데있노?”
“여기있지 어데있노? 빨리 정신차리고 답지 내러 가자! 찬석이가 열라게 베끼고 있다!”
용가비를 데리고 찬석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데, “찬석아 답지 다 베꼈나?”
“지금 끝냈다!”
상택이는 답지 세장을 받아서 그대로 용가비에게 건넨다.
“용가비 다리는?”
“백만냥짜리 다리!”
“달려라!”
용가비는 다시 한번 괴력을 발휘하며, 답지를 제출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답지를 제출하려는 다른 접의 선접군들을 개패듯이 두들겨 패고는 그대로 3백장 안쪽에 세이브 시키게 된다. 길었던 과거 원정대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가게 되는데….
“상택아, 내 인자 과거에 급제하는 기가?”
“돌았나? 네 지금 뭐했는데?”
“과거 안봤나?”
“와 이노마 진짜 개념을 물말아 먹었구만…. 네 지금 본게 생원시다, 생원시. 지금 소과(小科)시험 본기다. 소과 합격해서 생원 되야지, 그 담에 대과를 본다 아이가.”
“대과? 그라믄 이런걸 또해야 하나?”
“생원달고, 대과 보러가서 경학이라고 면접시험보고, 그 담에 문장 시험봐야지 합격이다. 책문이라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1,2,3등 등수 가리는 거니까 상관엄따.”
“생원이라고? 생원되면 뭐 있나?”
“생원 달면, 앞으로 네 다음으로 4대 지날 때까지 양반인기다. 네는 가문에 영광인기고, 대과까지 안가도 소과만 합격해도 가문의 영광 아이가?”
상택과 그의 친구들은 초시와 복시를 무사히 합격해 생원(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는데, 생원시는 사서삼경을 진사시는 문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다)자리를 따게 되는데…. 작년 수능부정 때문에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난리가 났었던 것 처럼, 조선시대의 과거와 비교한다면 양반이라 해야겠다.
어쨌든 상택과 그의 친구들 처럼 과거시험을 ‘단체’로 보는건 조선중기 이후의 하나의 ‘문화’가 되었던 걸 보면, 조선이란 나라가 왜 망했는지 그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 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