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와 히틀러
절규의 화가 뭉크, 단명하거나 요절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네요. 그는 평생을 관절염과 열병에 시달리면서도, 당시 평균 수명의 3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과연 장수의 아이콘 이라고 할 만하네요. (조 원재 지음, 방구석 미술관)
그는 노르웨이 어느 농장에서 태어났고, 선천적으로 류머티즘을 앓아 평생 관절염과 열병에 시달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열네 살 먹었을 때 한 살 위인 누나 소피 마저 같은 이유로 사망을 한다. 하나뿐인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은 평생 그를 쫓아다니는 죽음의 망령이 된다. 숱하게 병치레를 했던 그에게‘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의 사망 이후 우울증을 보이고 고립된 생활을 자처하며 가족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어린 뭉크의 운명은 가혹했다. 병마와 죽음, 정신적 불안정 등 이 모든 것들이 쓰나미가 되어 들이닥쳤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조원재, 방구석 미술관)
그의 그림 절규(아래)를 보면 그의 상처가 오롯이 그려져 있다. 그 이후의 그의 그림, 뒤바뀐 흡혈귀, 나에게는 사랑도 죽음이었다. 등등, 마음의 상처, 피로 얼룩진 상처들이 그대로 들어난다. 그는 그림을 통해 자가 미술 치료를 했을 까, 그의 최후의 주제는 ‘시계와 침대 사이에 있는 자화상(아래) 세상을 떠나기 4년 전부터 홀로 집에서 그린 그림인데, 그의 방은 아주 잘 정돈되어 있다. 심령과는 다르게 그의 방은 잘 정돈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1번 유형의 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는 적어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 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다가올 죽음을 그저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라고 작가 조원재는 표현하고 있다.
장수 아이콘이라면 떠오르는 유형이 바로 1번이다. 그들은 과식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소중한 생명, 소중한 신체를 괴롭히는 일이 절대 없다. 항상 매일의 기초대사량을 비교적 잘 지키고 마른 체형으로 장수하며 산다.
히틀러에 대해 잠깐 소개하면 어린 시절 히틀러의 가정은 지방 세무서장인 아버지 덕에 엄청난 부잣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히틀러를 귀족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 보낼 만큼 중산층 중에서도 잘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가족을 홀대하며 걸핏하면 아내와 자식을 때리고 폭언을 일삼는 난폭한 가장이었다(나무위키) 결국 그는 전쟁광이 되어 많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냈다. 또한 그의 생에 마감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 2010년 5월 7일 러시아에서 옛 소련 의무병들이 히틀러가 1945년 4월 30일 청산가리 캡슐을 먹고 숨진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혹은 청산가리 캡슐을 입 안에 넣고 깨무는 것과 동시에 총을 쏴서 확실하게 죽으려고 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히틀러가 죽기 전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크게 고민하고 집착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두 인물을 비교해 보면, 뭉크의 경우 죽음의 대한 공포를 그림 작업을 통해, 상담언어로 미술 치료를 통해 모두 쏟아내고 말년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벗는 안정을 찾은 반면, 히틀러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폭력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면의 폭력성이 치료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고 그 폭력성이 그대로 수많은 유태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유대인의 죽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에 대한 형벌로 구약, 신약 몇 곳에 예언되어 있고 그의 성취라고 들은 바 있다.
우리도 역시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자신의 유형을 알게 되어도 자신 만 아는 내면의 상처들 때문에 말 못 할 고민을 하게 되는데, 자기분석, 정신분석, 미술치료, 음악치료, 무용치료, 독서치료, 영화치료 등 여러 가지 상담기법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뭉크처럼 상처를 벗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 기도의 삶, 회개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삶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선한도구로 쓰인 받기를 간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