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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골목길’이 사라진다
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00706/20070625/1378934.html | |||||||||||||
<앵커 멘트> 마을이나 동네, 그리고 이웃사촌. 정겨운 이 낱말들을 피부로 느끼십니까.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이 어울릴 공간을 찾기가 도시 주택가에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곳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골목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포트> 반찬거리 사러 가기도 쉽지 않은 산비탈 골목이 시끌벅적해집니다. <녹취> “두부 한 모 줘요. 저 위까지 좀 올라오지... 왜 안 올라와.” <녹취> “곧 올라갈 텐데 왜 내려오셨어요.” <녹취> “큰 걸로 줘요 큰 걸로. 아까 그 아줌마 건 크던데.” <녹취> “묵은 얼마야?” <녹취> “2천 원이요.” 집으로 가는 가파른 비탈길. 숨은 금방 턱까지 차오릅니다. <녹취> “장사가 이렇게 올라오면 수월하시겠어요.” <녹취> “여기 한 번 오고 안 오잖아요.” <녹취> “자주 오면 좋은데?” <녹취> “아래만 오고, 안 산다고.” <녹취> “여기 살아요. 아래 지하에.” <녹취> “장보기 힘들어서 맛있는 거 잘 못 해 드시겠어요? 아이고, 벌써 숨차시네…….” 한 말을 까서 만 원을 받는 밤 까기 부업도 골목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쌓이는 밤 껍질이 고스란히 일거리가 되는 미화원 아저씨는 결국 퉁을 놓습니다. <녹취> “제일 많네. 쓰레기가. 여기서 돈을 제일 많이 내야 되겠다.” <녹취> “밤만 없으면 내가 일할 맛이 나. 이거 밤 껍질 때문에…….” <녹취> “하하하 (밤 집어주며) 이거 하나 잡수셔.” <녹취> “그게 아니라. 이놈의 골짜기만 들어오면 ‘아이고 오늘을 어떻게 일을 하지?’ 진짜여... 아줌마네 거는 괜찮아. 이렇~게 있어.” <녹취> “알아 나도..” <녹취> “밤 까면서 봉지 저거 하나 안 아끼면 되는데…….” <녹취> “그럼! 내 허리가 휘청휘청해.” 어른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최상의 놀이터인 골목을 헤집고 다닙니다. <인터뷰> 베르나사세(전남 창평 거주 외국인) : “내가 좋아하는 건…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술을 좋아하시는군요?) 이거 알아요? (권주가잖아요.) 쓸쓸해진 시골의 골목을 지키고 있는 것은 뜻밖에 나이 든 외국인이었습니다. 젊은 한국인들도 마다하는 농촌마을에 독일인 사세 씨가 이사한 것은 석 달 전. 실용적으로 따져도 손색없는 살아있는 유산이 버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베르나사세(전남 창평 거주 외국인) : “한국 사람이 이상한 게, 우리역사 2000년, 5000년, 우리 역사 깊다, 우리 자랑한다 해요. 그게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 시골 보면 아우 못 살겠다 그러거든요. 이건 역사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역사는 같이 사는 거잖아요. 뭐 다행이에요. 그게 없었다면 난 여기 이사 올 수 없었을 건데…….” 포구 골목은 채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새벽 4시부터 부산합니다. 낚싯배와 해녀들이 탄 배가 아침 6시도되기 전에 모두 바다로 나가고 나면 골목에는 소소한 일상이 펼쳐집니다. 마늘을 까며 추억으로만 남은 포구의 풍요를 곱씹던 아낙은 이웃 일에 대한 참견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녹취> 안흥항 주민 : “아침에 일찍 나오면 돈도 몇 만 원씩 주워. 좋았는데, 경기가 좋았던 곳인데, 꼬막이 이제 안 나오고 하니까. 수출을 안 하고 하니까…….” <녹취> 안흥항 주민 : “그걸 박으려면, 똑바로 박아야지 에이으…….” <녹취> 안흥항 주민 : “저 사람이 마음이 삐딱한가보네” <녹취> 안흥항 주민 : “삐뚜루 박아야 햇빛을 가리쥬~” 하수도를 손보는 작은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저마다 훈수를 두는 통에 골목이 왁자지껄해집니다. <녹취> 안흥항 주민들 : “그래야지(먹을 것 사다줘야지)” <녹취> 안흥항 주민들 : “아저씨 거 맥주 좀 사 줘요. 구석구석 다 해주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녹취> 안흥항 주민들 : “그래서 불렀어? 그래야지. 맥주하고 뭐 실컷 사 주려고. 몇 병이면 먹겠나.” 골목에는 이웃이 있어서 정겨운 소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녹취>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요, 따뜻한 것 같아요. 골목을 찾은 여행자라는 느낌으로 색다른 서울의 풍경을 발견하면 좋을 거예요.”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되레 이국적인 풍경일 골목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터뷰> 도호연(문화기획자) : “이 안에서는 서로 돕지 않으면, 눈이 온다거나 비가 많이 온다거나 혹은 주차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할 때 서로 돕지 않으면 해결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특성이 사람 사리의 관계를 끈끈하게 맺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고요, 바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처마 때문에 정이 살아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골목에 널린 빨래나 화분에서 자라는 고추도, 심지어 처마 끝에 매달린 하늘이나 복잡한 가스배관도 새로 찾아낸 서울의 풍경입니다.
<녹취> “우리가 골목골목 다니면서 자신의 생각, 추억 있잖아. 어렸을 때 기억이라든지 지금 우리 동네 있었던 추억 같은 것을 한 번 상상을, 다시 회상해 보는 거야. 기억을 되돌려서...”
서울 용두동 골목길을 아이들이 돌아봅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한쪽에서는 벌써 철거가 시작된 골목을 아이들의 추억 속에라도 남겨두기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어릴 적 경험과 어른들이 전해준 설화는 하나하나 작품으로 태어났습니다.
<인터뷰> : 김민혁(답사 어린이) : “예전에는 그저 그랬는데요, 지금은 뜻을 알고 나니까 더 신기한 것 같아요. 왠지 신비로워요. 한옥집 같은 데 두드리면요, 옛날 사람들이 나올 것 같아요.” 골목은 원래 모습을 잃더라도 아이들의 추억 속에서나마 살아 숨 쉬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래환(조각가) : “공동 작업도 하고 협동심도 기르고 또 아이들이 추억을 만들어서 이 추억은 이 지역이 개발되고 나서도 영원히 아이들의 맘속에 간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녹취> “용두동의 어제와 오늘, 파이팅!!”
보존을 말하기에는, 가치 있는 근대 유산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왠지 초라해 보이는 도시의 골목. 하지만 죽어 있는 듯하다 미로가 현대 건축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인터뷰> 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 “한 걸음에 달려갈 어떤 길도 좀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또 직접적으로 이 방과 저 방이 부딪히는 사이에도 어떤 다른 루트를 또 끼워 넣기도 하고……그래서 결국은 문제는 목적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될까....”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바로 곁에 있는 이웃들과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상회 뒤에 있을 골목 잔치를 위해 집집마다 한 가지씩 음식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웃 간의 정은 더할 나위 없는 조미료. 음식은 더욱 맛깔스러워집니다. <인터뷰> 박문옥(평창빌라 주민) : “지난번에 한 번 바깥에서 했을 때 보니까 아주들 다 맛있게 잘 드시고, 다 이렇게 각각 해 오신 거에 대해서 너무 맛있다. 그러고 이건 누가 해왔느냐고 물으시고 방법도 알려달라고 하고 뭐 그러더라고요.” 묵직한 나팔소리와 함께 ‘단오 맞이’ 골목 잔치가 시작됩니다. 숯불 위에서는 고기와 소시지가 익어가고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습니다. <녹취> “저는 호루라기만 불었을 뿐 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 가지고 있으셨죠? 여러분들도 다 꿈꿔왔던 거잖아요.” 단오 음식인 수리취떡을 수북이 쌓은 쟁반이 돌고 웃음꽃도 더불어 번져나갑니다. 음식을 가져와 나누는 것은 물론 저마다 가진 장기로 어우러집니다. 반상회 뒤풀이를 잔치로 만들면서부터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이웃 사이의 벽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조영현(평창빌라 반장) : “인사도 안 했던 분들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러던 것이 이 반상회를 거치면서 가까워지고 인사하고, 또 이제 사업을 같이 하고, 우리 동네 관련된 그런 사업을 같이하는 걸 터놓고 얘기하는 그런 사이가 됐죠. 굉장한 발전이죠.” 동네잔치는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개발에 밀려 고층 건물 숲 뒤로 사라지고 있는 골목. 몇 동 몇 호 주민일 뿐 정작 옆집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서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일상.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여러분의 골목은,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은, 오늘 밤 안녕하십니까. | |||||||||||||
[사회] 범기영 기자 입력시간 : 2007.06.25 (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