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9. 10.26 사태 의미 있는 사진 한 컷을 찍어보자
1979년 10.26일 저녁 8시경 갑자기 대기하는 명령이 떨어진다. 뭔가 심상치 않다.
연일 데모가 계속되는 상황으로 상당히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벽 4시 비상이 걸렸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정보는 장막이다.
아침 7시 케이비에스 라디오 뉴스는 박 정희 대통령이 유고라고 짤막하게 전한다.
그리고 7시 30분부터는 추모방송이 진행된다. 박 정희 대통령이 죽던 날의 내 기억이다.
고교 시절에는 육 영수 여사의 유고 소식을 8.15일 정오 뉴스로 들었다. 보충 수업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동명동 자취집으로 막 돌아와 라디오를 켠 순간이다.
박 정희 대통령 부부는 총탄을 맞고 숨진다. 박 정희 전 대통령이나 육 영수 여사가 최후에
모셔졌던 국군통합병원 앞을 지날 때면 뭔가 개운치 않다. 과거의 일이지만 세월의 빠름도
한탄 해 본다. 10.26 사태시 현장인 궁정동 안가에 함께 있던 가수가 심 수봉이다. 그녀는
명지대학을 다니던 78년에 엠비씨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한다. 그녀가 부른 「그때 그 사람」
을 박 정희가 좋아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 안가도 흘렸다. 최근의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그 뒤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지금은 안정된 감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추억을 되감는 작업이다. 가을이 오면 추억에 젖는다. 당시 사람들은
떠나고 빈 자리다. 홀로된 기분이지만 오늘은 그 날을 회상하면서 막걸리 한 잔, 정종 한
대포라도 마셔 줄련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나를 추스르는 기회다. 「과거 회고형」이
고 싶지는 않다. 적극적 삶을 살련다. 도전적 삶이다. 「미래 지향형」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가까운 사람을 불러 심 수봉의 「나는 여자 이니까」「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목청
경연대회도 열고 무용 시간도 가지련다. 인생에 있어 하루 쯤 쉰다고 낙오될까.
쉬는 것은 재충전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말이다. 의미 있는 날, 의미 있는 추억의 사진 한 컷을
또 남기자. 내 인생의 졸업 앨범과 성적표는 내가 만들어 간다.
「백만 송이 장미」(~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자기의 생명까지 다 준 빛처럼
홀연이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도 「사랑밖에 난 몰라」(~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주던 단 한 사람 커다란 어깨위에 기대고 싶은 꿈을 당신은 깨지 말아요 ~)도 좋은데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아 가을은
소리 없이 본 체 만 체 흘러만 가는데)가 더 어울릴 것만 같다.
긴~ 인생, 슬로우, 슬로우 하면서 자아를 발견하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해 보자.
2007년 10월, 박 균조/ 44회/ 대전면/ 서옥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