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승단
초기에는 승단이 남자들로만 구성되었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여자들이 승단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가여신도들 가운데는
세속을 벗어나 청정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신심깊은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싯닷타 태자의
양모였던 고따미 빠자빠띠를 설득하여 그를 앞세우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여인들의 출가 수계를 허용해
주시도록 탄원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전히 이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난다
존자가 나서서 부처님께 간청했다. 존자는 여인들의
열의에 감복하고 그리고 그들이 상심하는 모습에
동정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부처님께서 양보하셨으나 여인의 수계에 대해서는
8가지 제한조건을 더 첨부하셨다. 이렇게 하여 성불 후
5년째 되던 해에 비구니 승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역사상 초유의 일로, 일찍이 여인들의 출가생활을
위해 단체가 만들어졌던 적은 없었다. 비구니 승단이
탄생되자 갖가지 인생행로를 걸어온 여인들이 속속
승단에 들어왔다. 비구니 승단의 지도자는 케마와
우빨라완나 두 장로니(長老尼)였다. 이들 고귀한
비구니들이 해탈을 향해 노력하는 정경과 마침내 해탈을
이루고서 읊조린 환희의 찬가들이『장로니게송집』에
생동감 넘치게 기록되어 있다.
까삘라와투에서
라자가하에 계시던 중, 부왕께서 꼭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은 세존은 까삘라와투로 향하셨다.
그러나 까삘라와투에 이르자 부처님은 곧바로 궁전으로
드시질 않고, 관례대로 도시 밖의 숲에 머무셨다.
다음 날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들고 까삘라와투의 거리에
나아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여법히 탁발을 하셨다.
숫도다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부처님께
달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십니까?
왜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십니까? 우리 가문에서 일찍이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왕이시여, 대왕과 대왕의 가족들이 대대로 왕의
후예이듯이 나는 옛 부처님들의 후예입니다.
옛 부처님들은 음식을 구걸하며 언제나 탁발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법을 설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깨어 있으십시오. 마음을 챙겨 지니십시오. 법다이 사십시오.
법답게 사는 사람들은 이생에서도, 내생에서도 행복하게 삽니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왕은 확고하게 법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법을 이해한 것이다.
그런 연후 부처님께서는 궁전으로 향하셨다.
궁에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께 경배 드리러 나왔으나
야소다라 비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처님은 몸소 그녀에게 갔고, 부처님을 뵙자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전생담을 들려주시며 그 전생에 그녀의
공덕이 얼마나 위대했던가를 낱낱이 자세하게 밝혀주셨다.65)
이런 이야기를 듣자 그녀도 드디어 법을 이해하고 받들게
되었다. 후에 여성승단이 만들어지자 야소다라도 출가하여
최초의 비구니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부처님이 궁전에 계실 동안 야소다라 비는 아들 라훌라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세존에게 보내면서 일렀다.
“라훌라야! 저분이 네 아버지이시다.
가서 너의 상속물을 달라고 하렴.”
라훌라 왕자는 부처님께 다가가 그 앞에 서서 말했다.
“현자시여, 당신의 그늘은 즐겁습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궁전을 떠나자, 라훌라 왕자는
따라가며 말씀드렸다.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세존은 사리뿌따에게 일렀다.
“그래, 그럼 사리뿌따여, 이 아이를 승단에 넣도록 하시오.”
그러고서는 사리뿌따에게 수계하는 방식을 자세히 일러주셨다.
“먼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입힌다.
한쪽 어깨에 가사를 단정히 걸친 다음, 수계자는
스님들에게 예배한 후, 스님을 향하여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이 자세가 잘 안 되면 꿇어앉아도 된다.)
두 손을 올려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법에 귀의합니다.
승단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두 번째, 법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승단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세 번째, 법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승단에 귀의합니다.66)
5부경67) 중 하나인 [중부]경전에는 ‘라훌라에게 주는 말씀’
이란 제목의 경이 세 개나 실려 있다.(61, 62, 147경)
어린 라훌라에게 법을 가르치고 있는 이 경들은 한결같이
계율과 선정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마하 라훌라와다경」68)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라훌라야! 자애[慈]69)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자애로운 마음을 닦으면 나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아파함[悲]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닦으면 잔인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喜]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닦으면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평온함[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평온한 마음을 닦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70) 라훌라야! (육신의)
더러움[不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러움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애욕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무상의 개념[無常想 ]71)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무상의 개념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아만(‘내가 있다’,
‘나다’라는 생각 )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출입식(出入息)을 염하는 공부(sati)를 닦아라.
라훌라야! 출입식을 염하는 공부를 닦아 자주 익히면
얻는 바가 많아서 크게 이익되리라.”
불전에 나오는 여인들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바라문교의 영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때로는 남성의 예속물로서 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 여성들 중에도 철학적 문제와 같은 지적
분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예가 더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가 현저히 상승된 것은 역시 부처님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과 큰 도량으로 언제나 여성들을
자상하고 정중하게 대하셨으며 그들에게도 똑같이
청정 그리고 성스러움에 이르는 고귀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에 계신 친구요, 아내는 남편에게
최상의 벗이다.”72)
암바빨리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자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공양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올리는 음식을 다 드신 다음, 보답으로 법의
선물(법공양)을 주셨다. 그 가르침을 받고 깊이 신심을
일으킨 여인은 지금까지의 불성실했던 세속 생활을
청산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우 열심히 정진한 끝에 드디어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그 크신 자비심으로 여인들을 도와주신 예로서
끼사고따미의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감명깊은 일화이기 때문이다.
사와티 태생인 끼사고따미는 고따마족이었고 따라서
부처님과는 친척이 되는 셈이다. 너무나 몸이 야위고
연약해서 사람들이 끼사(말라깽이)고따미라고 불렀다.
여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결혼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걸음마도 하기 전에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 아기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을 안겨주었다.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향한 한없는
모정 때문에 어머니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슬픔에 가슴이 메어져 정신이 나간
여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기를
살려낼 약을 구하러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러나 사와티 성의 어떤 의사도 죽은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헤매던 끝에 마침내
부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세존의
발아래 내려놓으면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대비주(大悲主)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누이여! 좋은 영약이 있느니라. 내가 그대의 고통을
치유해 줄 테니 가서 겨자씨를 얻어 오너라.
그러나 고따미여! 겨자씨를 얻을 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라.”
그러자 고따미는 곧 마을로 쫓아가서 겨자씨를 구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에서
모두 겨자씨를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많은 집 중에 어디에도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던 고따미는
마침내 죽는다는 게 얼마나 보편적인 사실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이 덧없다는 것을, 또 모든 만남은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시체 안치장에 안치한 후 사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이 법,
이는 마을의 법도 도시의 법도 아니네.
이 씨족의 법도, 저 씨족만의 법도 아니네.
온 세상 아니 천상세계마저도
이 법에선 벗어날 수 없네.”73)
부처님의 지도하에 끼사고따미는 무상이야말로 모든 조건
지어진 존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첫 번째 성위인 예류과를 성취했다.
이 밖에도 부처님께서 삶의 간난신고로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신 예는 수없이 많다.
환자를 보살피시다
병든 사람들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심 또한 각별하셨다.
한 번은 뿌띠가따 띠싸라는 비구가 궤양에 걸려 더러운 침대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부처님이 보셨다.
그 즉시 스승께서는 따뜻한 물을 준비하시어 아난다 존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수 이 병든 비구를 씻어주고 자상하게
병구환을 해주셨다. 그런 다음 법을 설하시어 이 병자가
죽기 전에 아라한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주셨다.
띠싸 아라한이 입적하자, 장례식을 법에 맞추어 거행한 다음
부처님은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도록 조치하셨다.74)
그 외에도 여러 번 스승께서는 병든 비구들을 몸소 돌보아
주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촉구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를 시중들 듯 그 마음으로 환자를
시중들도록 하라.”75)
이렇듯 부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측량할 길이 없고 너무나
넓어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간곡히 가르치셨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자식을 그것도
하나뿐인 자식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듯이
너희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빠짐없이 감싸는 생각을
온전히 지키도록 하라.76)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자비로 넘치고 있듯 부처님의
행동도 한결같이 자비심으로 가득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눈을 뜨게 하고, 환희에 젖게
만들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편력하는
동안 부처님은 무지로 말미암아 삿된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신을 섬기기 위해 짐승을 도살하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셨다.
이들에게 부처님은 타이르셨다.
“생명이란
누구나 뺏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는 것.
모든 생물은 제 목숨을 사랑하여 지키려 애쓰네.
목숨은 경이롭고, 소중하고, 즐거웁다네,
비록 하찮아 보이는 미물에게도.”77)
실로 당시는, 사람들이 신에게 자비를 구한답시고 무자비한
짓을 서슴지 않던 시절로, 제멋대로 신을 상정하고는
그 제단에 무고한 동물들을 희생으로 올림으로써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끔찍한 짓거리를 자행, 전 인도를 피로 얼룩지게
만들던 시절이었으며, 고행자와 바라문들의 그릇된 의례
의식 때문에 인간은 재앙을, 동물들은 단말마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절에 자비의 화신인 부처님이 나타나서 일찍이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가셨던 그 옛길,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정의로운 그 길을 다시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평온과 침착
득과 실, 호평과 악평, 찬탄과 비난, 고통과 행복78)
등등의 온갖 생의 우여곡절이 부침하는 와중에 처해서도
부처님은 조금도 흔들리는 일이 없으셨다.
단단한 바위처럼 그분은 요지부동이셨다. 행복한 일이
생겼다 해서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았고,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았다. 물론 언쟁이나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은 더욱이나 없으셨다.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지 않노라. 세상이
나를 두고 싸우려들 뿐이노라. 법을 설하는 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노라.”79)
또 제자들을 이런 말씀으로 훈계하고 계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여래를 헐뜯고, 법을 헐뜯고,
승단을 헐뜯는다 해서 그 때문에 난처해하거나 적대심,
악의 따위를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그 때문에 못마땅해 하거나 성을 내면 정신적 향상에
방해를 입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 옳고
어디까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너희들은 그런 때에 사실이 아닌 것은 해명함으로써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주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또한 남들이 여래를 추켜올리고,
법을 추켜올리고, 승단을 추켜올려 말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우쭐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들의
내면의 성숙에 큰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런 때는 옳은 말은
옳다고 인정하고 그 옳은 까닭을 설명해줘야 한다.”80)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반대자나
적대자에게까지도 불친절한 언사를 쓰신 경우는 한 번도
없으셨다. 부처님과 그 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부처님은 결코 그들을 적으로 보지 않으셨다.
남들이 격렬한 어조로 비난해 올지라도 부처님은 성을
내시거나 혐오감을 품거나, 불친절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장에서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견뎌내듯
그처럼 나는
남들의 비방과 적대적 안색을 참아내리라.”81)
데와다따
부처님의 위와 같은 인욕정신은 데와다따와의 관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데와다따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승단에 들어와 범부의
신통력을 얻은 사람이었다. 뒷날 그는 승단의 지도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되면서 부처님과 두 수제자 사리뿌따,
마하 목갈라나에 대해 시기심과 악의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데와다따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 젊은
아자따사뚜 왕자에게 접근하여 교묘히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웰루와나 정사에서 왕을 비롯한 많은 대중들에게 법문을
설하시고 계실 때 데와다따가 부처님에게 다가와
인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제 연로하시어 기력도
쇠잔해지셨습니다. 스승님은 모든 근심, 걱정을
벗어나 은거생활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승단은 제가 이끌어 가겠습니다.”
부처님이 이 제안을 거부하시자, 데와다따는 당황하여
화를 내면서 부처님에게 증오와 악심을 품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 길로 그는 못된 흉계를 품고
아자따사뚜 왕자를 찾아가 왕자의 감춰진 야심에
불을 붙이는 말을 했다.
“왕자님이여!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기 전에 언제 지배자가 되어 보겠습니까?
나는 세존을 죽이고 승단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아자따사뚜가 아버지인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데와다따는 불한당들을 매수하여 부처님을 해치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실패하자 다시, 부처님이 라자가하에 있는
기자꾸따 언덕을 오르고 계시는 기회를 틈타 그 자신이 직접
바위를 세차게 던져 굴렸다. 바위는 굴러내리다 둘로
쪼개지면서 조그만 파편이 부처님에게 튕겨 발에 가벼운
상처를 내었다.
그 후에 다시 데와다따는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부처님을 향해 내몰았다.
그러나 이 짐승은 부처님의 자애의 힘에 눌려 부처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버렸다.
다시 데와다따는 승단 내에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일으킨 불화도 길게 끌어지지를 않았다.
모든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자, 데와다따는 실의에 빠져
물러났다. 얼마 안 되어 그는 병이 들었고 병상에서
자신의 어리석었던 짓을 뉘우친 끝에 부처님을
친견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들 것에 실려 부처님께 가던 중 운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 그는 참회의 말을 하면서 부처님에게서
귀의처를 구해마지 않았다.82)
마지막 나날들
세존의 입멸을 그린 『대반열반경』83)은 부처님 생애의
마지막 몇달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빠짐없이 소상하고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세존께서는 팔십의 고령에 다다르셨고, 그의 두 수제자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는 이미 석달 전에 입적했다.
고따미 빠자빠띠, 야소다라, 라훌라도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때 부처님은 웨살리에 계셨다. 우기가 닥쳐오고 있었으므로
많은 비구대중과 더불어 우기를 나기 위해 벨루와로 가셨다.
거기서 중병이 부처님을 엄습하여 심한 통증을 일으켰으나
세존께서는 침착한 가운데 정념을 유지하며 이를 견디셨다.
바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지만 승가대중에게 유훈도
남기지 않고 입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엄청난 의지력으로 병과 싸워 이겨내심으로써 생명의
가닥을 이어 나가셨다. 점차 병환이 호전되어 마침내 완전히
회복되자 그는 시자인 아난다 존자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고 나이도 찼다. 내 여행은 이제
막이 내려지고 있다. 내 수명은 다 되어 이제 여든에 접어들었다.
아난다야! 낡은 수레를 굴리려면, 가외로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것처럼 여래의 육체도 의지력을 많이 기울여야
간신히 지탱할 수 있다. 여래의 육신이 편안하려면 여래가
바깥 경계에 마음을 써서 속세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이 고된 일을 그만두고 무상정(無相定)84)에 들어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아난다여! 따라서 그대 자신을 자기의 섬으로 삼을지니라.
그대 자신을 자기의 의지처로 삼을지니라. 남을 의지처로
기대서는 안되느니라. 법을 섬으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법을 의지처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다른 어떤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지금도,
내가 간 다음에도, 누구든지 자신을 섬으로 삼아야 할지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할지며, 어떤 바깥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될 것이니라! 다만 그들은 모름지기 향상하려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어야 하느니라.”
벨루와를 떠나 부처님께서는 마하와나로 여행을 하셨고,
거기에서 웨살리 근처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을 모두
모이게 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내가 깨친 대로 법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대들은 법에 정통하도록 노력해서
이를 닦고, 이에 대해 명상하고, 널리 이를 펴도록 하라.
이 세상에 대한 연민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선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다.
“내 나이 이제 가득 차서 생은 바야흐로 끝나려 한다.
나는 너희들을 떠난다, 오로지 나 자신에 의지하여
나는 가노라!
비구들이여! 부디 방일하지 말고 힘써 마음 챙기며
계율을 잘 지켜라!
결의를 굳건히 다져라! 네 자신의 마음을 빈틈없이
지켜보라!
이 교법과 계율85)을 싫증내지 않고 단단히 붙드는
사람은 생의 바다를 건너가 비탄을 끝내게 될 것이다.”
이제 병에 지쳐, 허약해진 몸으로 세존께서는 힘들게
여행을 계속하셨다. 아난다 존자와 수많은 대중들이
그분을 수종했다. 이렇듯 길고 피곤한 마지막 여행
중에서도 부처님은 남을 보살피는 마음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마지막 공양을 올린 대장장이 쭌다에게
법문을 설하여 제도하시고, 또 도중에 만난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 뿌꾸사를 위해서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일일이 질문에 대답하여 제도함으로써 그를 부처님과
법과 승단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발심시켜 주셨다.
세존께서는 드디어 꾸시나라 (또는 꾸시나가라)의 말라
족들의 살라나무 숲에 도달하셨다. 바로 그의 길고
먼 여행의 종착지였다. 이곳이 마지막 휴식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피곤하구나. 아난다여, 눕고 싶다. 저 두 그루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여 자리를 펴다오.”
그러고서는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이루신 채 한
다리를 다른 다리에 포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자리에 누우셨다. 다시 아난다 존자에게 일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는 사람,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값진
경의로 여래를 올바로 존경하고, 예배하고, 경모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난다여! 그대는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도록 성실하라.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살도록 하라. 아난다여, 이와 같이 노력할지니라.”
마지막 귀의자
그때 마침 수밧다라는 떠돌이 고행자가 꾸시나라에
있던 중 부처님의 입적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평소에 고뇌하던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부처님께
여쭈어보려고 급히 살라나무 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이 가시는 마지막 순간을
번거롭게 해드리기를 원치 않아서 친견 기회를 좀처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들 간에 오고 가는 얘기를 등
너머로 들으신 세존께서는 수밧다가 순수한 구도심에
차있으며, 몇 마디만 일러 주어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바로 아시고는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들여보내라고
이르셨다.
수밧다의 의문은 다른 여러 사상유파의 지도자들,
즉 뿌라나 까사빠, 니간타 나따뿌따 등등이 과연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세존께서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어떤 교법과 계율이든지 그 안에 팔정도가
없으면 어떤 성위(聖位)도, 그것이 첫 번째 성위이든
두 번째 성위이든 또는 세 번째이든, 네 번째이든 그 어느
단계의 성위도 바르게 얻은 사람이 있을 수 없노라.
수밧다여! 어떤 교법이나 계율이라도 팔정도가 거기에
있으면 그 교단에는 첫 번째 단계의 진정한 성인도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단계86)의 진정한
성인도 반드시 있는 법이니라. 나의 이 교법과 계율에는
팔정도가 있으며, 또한 그 모든 단계의 성위를 각기
바르게 이룬 사람들이 있느니라.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에는
팔정도도 진정한 성인도 찾아볼 수 없느니라. 수밧다여!
이 교단에서는 수행자들이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느니라.
그 덕으로 이 세상에 아라한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니라.”87)
세존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자 수밧다는 신심이 우러나
부처님과 법과 승단에 귀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승단에
들어오기를 원하였고,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받아들이도록 이르셨다. 이리하여 수밧다는
부처님께서 손수 귀의시킨 마지막 개종자이자,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애써 노력한 결과 오래지 않아서
최고의 성위인 아라한위를 성취했다.
마지막 정경88)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스승 없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느니라.”
“내가 간 후에는 내가 설한 법과 내가 정한 율을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비구들이여! 어떤 형제들은 마음속에 붓다나, 법이나,
길(magga)이나, 길을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의심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마음 놓고 물어라.
다음에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즉 ‘그때는 스승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세존께
여쭙지 못하고 말았다’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잠잠히
침묵을 지켰다. 두 번, 세 번,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고 비구들 역시 똑같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저는 실로 여기 모인 비구들
가운데 붓다와 법과 길과 길을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의혹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믿습니다.”
세존께서도 아난다 존자의 말을 승인하시면서,
덧붙여서 여기 모인 모든 대중은 수행이 가장 뒤쳐진
사람까지도 반드시 구경의 해탈을 장차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는 잠시 후 세존께서는 지금도 또
미래에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어 하는
이 대중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셨다.
“그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간곡히 이르노라.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壞法].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유훈(遺訓)이셨다.89)
그러고서 부처님께서는 아홉 단계의 선에 차례대로
드셨다. 먼저 네 가지 색계선에, 다음에는 네 가지
무색계선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상멸처정(受想滅處定)에
드신 것이다. 그런 다음 거꾸로 이 모든 단계를 거슬러
내려와 초선에 이르신 다음 다시 제4선에까지 올라가셨다.
평온에 기인하여 정념(正念)의 청정을 이룸을 특징으로
하는 제4선에 다시 드시자 거기서 곧바로 반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마침내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90)을 실현하신
것이다.
역사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부처님처럼 카스트, 계급,
또는 신앙에 관계없이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신 분은 달리 또 찾아볼 수 없다. 깨달은 그 시간부터
생을 마친 그 순간까지 그 분은 인류를 향상성숙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온 힘을 쏟으셨다. 그분은 공익을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춘 적이 없었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본
적이 없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항상 건강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또렷이 깨어 있어
활기에 넘치셨다.
이제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지 2,500여년이 지났지만
그 분의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는 인류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순수한 그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는 매일같이 꽃이 숲을 이루며
바쳐지고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나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거듭 외우고 있다.
그 분의 위대함은 약한 불빛을 흡수해 버리는 태양과도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명을 발하고 있고,
그 분의 법은 여전히 세파에 지친 순례자들을 열반의
안전과 평화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 동안 강의를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원광합장
첫댓글 원광스님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수고하신 도우미님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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