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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용주사 원문보기 글쓴이: 최재효
달빛 소나타(2)
- 여강 최재효
4명의 사내와 4명의 불나비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도심의 늦여름 밤을
달구고 있었다. 조 영진이 임시 사회자가 되어 나와 박 동철 그리고
윤 병수를 차례로 불러내어 노래를 시켰다. 테이블에는 수를 알 수 없는
고급 양주병들이 어지럽게 굴러 다녔다. 불나비들은 남자들의 허리를 꼭
안고 음심을 자극했다. 박 동철이 메들리로 김 수희의 멍에를 시작으로
블루스풍의 노래를 뽑자 갑자기 조용해 졌다. 각의 파트너들을 꼭 부둥켜
안고 무르익은 여체에 탐닉하는 공식적으로 허락 된 시간 같았다.
“자, 이제 너희 들은 나가 있어라. 오빠들이 아주 중대한 회의를 할 시간
이란다.”
조 영진이 아가씨들을 모두 내보내고 지난 3개월간의 미곡상을 운영
하면서 야기되었던 문제점에 대하여 간단히 토의를 하자는 제의를 했다.
“영진이, 어이 아우. 내일 하지. 나 무지 취해서 정신이 가물가물한데 말
이야.”
“형님, 간단한 내용만 토론 하고자 합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저하고
동철이는 철원으로 쌀을 보러 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우. 내 고향에는 쌀이 없나?”
“네에, 형님, 쌀이 유명한 고장이라서 쌀농사를 많이 짓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현지에 가 보면 예전처럼 대량으로 내다 파는
게 아니라 군에서 추곡수매를 하여 전량 수거하듯 해버리니까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좀 체로 품질 좋은 쌀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조 영진
은 내가 직접 지방으로 쌀을 구입하러 다니지 않는 것을 알고 자신의 입
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100% 신임했다.
“그래, 그럼 큰일이네. 나는 내가 터놓은 학교와 대형 사업체 요식업소
등에 저렴한 값에 여주 쌀을 공급하겠다고 큰 소리 벙벙 쳤는데 이거
큰일 이네.“
“형님, 너무 걱정 마세요. 내일부터 다시 철원을 들려 다시 형님네 고향
으로 가보죠.“
“그래, 그래, 난 자네를 부사장으로 알고 있으니까 자네가 알아서 해봐,
뒤에서 내가 무조건 지원해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아우님들, 우리 사무실에 여사원을 한 명두고 싶은데 누구 추천
할 만한 사람 있으면 말해봐.“
“형님, 왜요? 형님 혼자서도 경리 회계 업무는 충분하시잖아요.”
“아냐. 나도 사무실에만 있으니까 너무 다분해 나도 지방이나 아니면
시내로 돌아다니며 홍보를 하든지 아니면 내가 직접 영업상무가 돼야
하겠어. 수입은 지금처럼 하면 곧 우리는 곧 재벌이 될 것도 같어.“
그랬다. 모두가 사심 없이 발 벗고 뛴 덕분에 창업 초기에 고전 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매달 상당한 흑자를 보고 있었다. 명색이 사장으로
사무실만 지키고 있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나 한 사람이라도
현장에서 뛰고 싶었다.
“형님, 그럼 제가 한 사람 추천 할게요.”
“오, 그래. 동철이가 아는 사람 있어?”
“제 고향 동창인데, 몇 달 전 이혼하고 혼자 집에서 놀고 있는데
그 친구가 최근
까지 회사 경리부에서 일했거든요. 아마 그 친구 고용하면일당백 해 낼 겁니다.“
“그래? 물론 여자겠지?”
“그럼요. 당연히 여자죠. 인물도 삼삼해요.”
“그럼, 내일 당장 출근하라고 해. 아우가 보증을 서는데 무슨 의심할
일이 있겠어? 안 그런가? 영진이”
“물론입죠. 당연하고말고요. 제가 한번 그 친구를 보았는데 상당히 미인
인걸요? 형님 괜히 호랑이 새끼 키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 하하
하.......“
“예끼. 이 사람. 하하하하....... 호랑이면 어떻고 사자면 어때? 다 우리
사업을 돕기 위해 일할 사람인데.“
“물론이지요. 형님.”
“그럼, 우리 이사 아우님들의 100% 찬성으로 내일부터 우리 사무실에
여사원을 한명 고용하겠네. 임금은 월 150만원 정도 주고 사업 실적에
다라 그때그때 보너스 형식으로 주면되지?“
“하이고, 형님, 역시 형님은 통이 크세요. 그 친구 내가 말하면 그냥
나와서 도와 줄 여자에요. 집에 있는 거 보다 백번 낫지요. 암튼 고맙
습니다. 형님.“
그렇게 해서 미스 홍이 다음날부터 사무실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미시를 부르기 좋게 미스로 하기로 하였다.
미스홍은 서울이 고향으로 이지적이면서 차분한 성격으로 뇌쇄적인
눈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남자 서넛은 눈빛으로 압도할 수 있는 당차
면서 똑똑한 여자였다. 미스 홍이 사무실에 출근 하면서부터 사무실
분위기는 확 변해버렸다. 화분이 생기고 매일 아침마다 싱싱한 생화가
꽂혔고 방향제가 뿌리지는 등 영업에 일대 혁신이 일어 난 느낌이었다.
또한 나의 눈빛을 보고도 미스홍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를 가는지
거의 알아 맞혔고 상당히 싹싹한 행동에 나는 물론 주변 고객들로부터
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나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거나 며칠씩
사무실을 비울 때면 통장과 인감도장등 모든 것을 맡기고 다녔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판단한 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
했다. 소규모로 차떼기로 양곡을 구입해 판매하는 것 보다 규모를 크게
확대하여 큰이익을 보고 싶었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양곡업자 몇몇
과 거래선을 트면서 나는 눈코 뜰 사이 없어 바빠졌다.
“형님, 양곡판매만으로는 수익성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물량도 한정돼 있고요. 제 고향 친구 놈이 양주와 미제물
품을 무자료 거래로 짭짭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데 한편 알아볼까요?“
조 영진은 나에게 귀가 솔깃한 제의를 했다. 그러나 나는 양곡 한 종류
에 한해 사업을 하고 싶었다. 초창기부터 너무 사업을 크게 벌려 놓으면
사업 경험이 없는 나에게 큰 부담이 될 듯싶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잖아, 만약 세무서에서 조사라도 나오는 날에는
사법기관에 고발을 당하거나 벌금을 물텐데......“
내가 난색을 표하자 조 영진은 그 친구에게 노하우를 배우고 시작하면
안전할 것이라 하며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을 그냥 보고 넘긴다
는 것은 너무 아깝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럼, 아우가 그렇게도 원하니 아우가 알아서 해, 나는 그 분야를 잘
모르니까 . 그리고 외부 다른 누구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해야 돼 조심하라고.“
“걱정 마십시오. 형님, 제가 누굽니까?”
“잘 생각하셨어요. 사장님, 서울서 외제물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제 고
등학교
동창이 있는데 그 애는 사업 수완이 얼마나 좋은지 벤츠를 타고 다니며
매일 골프
나 치러 다닌대요. 두 딸 모두 미국에 유학 보내고 남편과 떵떵거리고 사는데
무자료 거래는 그야말로 누워 떡먹는 것 같아요. 엄청 이익이 많이 남는
것 같더
라고요.“
미스 홍이 조 영진의 말에 지원사격을 하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조 영진은 사무실과 창고에 수입양주를 대량으로 쌓아 놓고
미곡상이나 제법 규모가 큰 주점이나 고급식당을 대상으로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무자료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불공정거래를 하는
자체에 나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조 영진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나는 못 본체 하였다.
나는 오로지 미곡판매망 관리에 전력을 기울였다. 사업 시작 1년 정도가 흘렀다.
모든 것이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고 세 아우들도 나에게 충성을 하면
서 각자 성심성의껏 뛰었으며 미스홍은 우리들의 꽃처럼 나름대로 향기를 발산
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와 아우들이 믿음직스러웠다.
봄이었다. 지난해 두세 번의 큰 태풍으로 강원도와 충청 전라지역에 쌀
작황이 좋지 않았다. 쌀 가격이 한 달 만에 소폭으로 오르더니 계속해서
상승
세를 유지할 것 같았다. 나는 저녁에 회식을 하자며 세 아우들과 미스 홍
을
참석토록 했다.
“미안 합니다. 그동안 서로 바쁘다 보니 어떤 날은 얼굴도 보기 힘들더라
구요. 그래서 내가 아우님들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우리 주식회사 서해물산
단합을 겸해서 또한 최근 미곡시장의 동향과 향후 대책에 대하여 나의 구상을
여러분께 전해 드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청취하고 싶어 오늘 자리를 마련했습
니다. 많이 드시고 허심탄회 각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 동철
아우가 건배 제의를 해보지?“
“큰형님의 눈부신 사업경영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우리 주식회사 서해물산의
무궁한 발전과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건배“
“건배……”
박 동철은 그럴 듯하게 건배사를 하며 싱겁게 웃었다.
“사장님, 제 잔 받으세요.”
미스 홍이 잔을 비우자마자 나에게 잔을 내 밀었다.
“오, 그래. 미스 홍. 고마워.”
“사장님, 이런 자리 자주 만들어 주세요. 사무실 분위기 전환에도 좋고
서로
우애를 다지기에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미스 홍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에게 눈을 맞추었다.
“자, 진영이 내 잔 받게.”
“네에, 형님.”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앞으로도 우리 세 형제 일치단결하여 사세(社勢)
를 더 넓혀 보자고. 그리고 양주 무자료 거래는 잘 되어 가고 있지?“
“그럼요, 형님. 곧 그 동안 총 실적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형님.”
“아냐,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나중에 미스 홍한테 천천히 보고받으면
될 텐데, 뭐. 그건 그렇고 작년에 우리나라 쌀 작황이 좋지 않아 요즘 쌀
가격이
뛸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이번 기회에 무리 서해물산이 제2의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해.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이번에 대규모로 지방에서 쌀을 구입해 한두
달
정도 저장하고 있다 일시에 팔아버리면 그 차액이 만만치 않으리라 봅니다.“
잠자코 술잔만 만지작거리던 윤 병수가 확신에 찬 얼굴을 했다.
“그래, 자네 생각도 좋은 생각일세. 또 다른 사람 의견은 없나?”
“형님, 이번에는 운송비용을 제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번 해 보죠.”
“운송비용을 제외한다?”
“현장에서 대량으로 쌀을 구입해 인근 창고에 저장하였다가 때를 보아서 방출
하는 겁니다.“
“음, 좋은 방법 같은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게.”
“예를 들어 부산을 중심으로 김해나 울산 또는 부산 주변 지역에서 쌀을 구매해
부산인접 지역에 창고를 한두 달 대여하여 임시로 저장해 놓는 겁니다.
굳이 많은
량의 쌀을 수도권으로 수송하다 보면 쓸데없이 수송비용이 들어가니까
현지에서
구매하여 현지에서 전량 판매하는 방식이지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위험이 커. 지방에도 우리 같은 생각을 하는 상인
들이 있을 거란 말이야. 그리고 현지에 창고를 가지고 있는 작자를 알고
있지도
못하잖아.“
소주잔을 홀짝거리던 박 동철이 입을 열었다.
“형님,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물류창고가
반 이상은 텅 비어 있고 제가 지방에서 개인 창고업을 하는 사람들을 꽤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염려 마세요. 제가 내일부터라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그건 그렇고 어느 지역을 찍어서 우리의 야심작품을 만들어 볼까?”
“형님, 대구지역을 노려보시죠.”
“영진이, 대구지역에 특별히 추진할 만한 무슨 이유라도 있나?”
“그 지방역시 역시 작년에 쌀 작황이 좋지 않아 지금 쌀값이 여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뛸 조짐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제 친구들이 많이 있고
다행히 창고 임대업을 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오오, 그거 다행이구먼. 그럼 자녀 의견대로 해 보자고.“
“고맙습니다. 형님. 제 의견을 채택하여 주셔서요.”
“내일 그럼 나하고 대구에 한번 다녀올까?”
“그렇게 하시지요.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조 전무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미스 홍이 빨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해요. 미스홍도 함께 가지. 대구에 들렸다가 부산에 가서 회도
맛보고
오자고.“
“아이 좋아라. 사장님, 고맙습니다.”
“자자, 아님들들. 다음번 우리의 프로젝트가 정해졌으니 자축하는 의미
에서
축배를 들자고. 이번에는 미스 홍이 축배사를 해봐요.“
“우리 사장님의 훌륭한 판단력과 서해물산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서 건배!”
“건배!”
다음날 나는 조 영진과 미스 홍을 대동하고 대구를 찾았다. 미리 조 영진의
연락을 받은 창고임대업을 한다는 윤 사장과 이 지역 유통업에서 큰손
으로
알려진 최 사장이라는 사람이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윤 창석 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
에서
조그마한 창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영이하고는 군대 동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 홍민이라고 합니다. 지는 마, 진영이하고 고등핵교 때
동문수학한 사이 아닝교. 저 녀석 일이라몬 지일처럼 생각한다 아임니꺼. 이번
에 최 사장님께서 크게 사업을 벌이신다고 하시는데 지 친구를 생각해서도
있는 지가 힘을 다해 협조해 보겠심더.“
“아이고, 이런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면부지 대구에서 이런 인
두 분을 만나다니요.“
나는 일행과 함께 윤 창석의 소유라고 하는 창고를 둘러보았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아 보였다. 세 동의 창고는 수만 가마니의 쌀을 저장하고도 남을 정도로
커 보였다. 최 홍민은 조 영진이 내 듯을 전해 듣고 우리 일행을 부산으로
안내 했다.
“최 사장님, 지는 경주 최가인데 최 사장님은 어디인교”
“아, 저는 해주가 본이고 좌랑공파 입니다.”
“그라몬 지와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지에. 안 그런교?”
“맞습니다. 해주나 경주나 같은 집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아무튼
반갑
습니다.“
태종대의 어느 횟집을 찾은 우리 일행은 약간 들떠 있었다. 마치 사업상 새로
운 파트너를 만난 기분이 들었고 멀리 나와 바닷가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술 한 잔 한다는 기분에 마음이 풀어져버렸다.
인천으로 올라온 우리 일행은 다음 날부터 각자의 임무를 새로이 배정
했다.
조 영진과 윤 병수에게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 까지 대구에 상주하면서
창고를
확보하고 인근 김천, 영주, 안동, 경주, 예천 지역을 다니며 쌀을 구입하는 임무
를 부여하고 박 동철에게 그동안 깔아 놓은 상품들의 미수금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하는 일을 맡겼고 미스 홍에게는 그날그날 자금 사정에 대하여 보고
하도록 했다.
대구지역에 상주하는 조 영진에게 매일 오후 5시쯤 전화로 현지사정에
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친구들 덕분에 대구 인근 지역에서 상당량의
쌀을 구매하여 창고에 저장하였다는 내용과 상세한 내용은 그날그날
패스로 보내왔고 미스홍은 나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결재를 받고 장부
에 기록하였다. 조 영진이 지방으로 내려가 있으면서 주류에 대한 일은
박 동철이 전담하다 시피 했다.
- 쌀 매 입 량 : 1540가마(80Kg)
- 총 매입가격 : 1,540 x 135,000원 = 207,900,000원
- 총 잔고금액 : 200만원
조 영진으로부터 물량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지니고 있는 총 자금확금액은 5억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자산을 투자해 누워 떡 먹기식 사업은 곧 나에게 황금 알을
낳는 사업이 될 것이 뻔한데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주변의 큰손들에게 자금 확보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채시장
에서 고율의 단기자금을 끌어 들였고 고향에 있는 내 명의로 된 문전옥답에
근저당을 설정하여 최대한으로 자금을 끌어 모아 10억이 넘는 자금을 조 영진
에게 내려 보냈다. 거의 만 가마니의 쌀을 확보하게 되었다.
- 총 쌀매입량 : 9928가마(80Kg)
- 총 매입가격 : 1,340,280,000원
- 총 잔고금액 : 0원
“형님, 이제 마음 푹 놓으시고 때만 기다리면 됩니다. 한두 달 정도면 투자금액
에 반 이상은 반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안심하시고 약주나 하시면서 기다리
세요. 매일매일 이곳 상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영진이, 내일 대구에 내려 가보고 싶은데 시간 되지?”
“아, 이런 내일하고 모레는 제가 이곳 친구들과 사전에 약속이 잡혀 있는데
어쩌지요? 형님. 글피 쯤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글피에 나하고 동철이 하고 내려 갈 테니 그리
아시게.”
전화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조 영진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며 좀 이상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미스 홍 장부 좀 이리 가져와봐.”
한두 달 정도 버틸 운영자금만 남겨 놓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창고에 쌓여 있는 막대한 쌀이 곧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장부정리는 미스 홍 꼼꼼하게
기록 해 놓았으며 단 돈 1원도 틀리지 않았다.
한달 보름 만에 내가 대구에 내려갔을 때 조 영진은 먼저 소개한 윤 창석의
창고가 아닌 다른 곳의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갔다. 윤 창석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창고 인데 먼저 보여준 창고보다 시설이 좋고 교통편이 좋아서 창고를 변경했
다고 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사전에 허락도 없이......’
나는 기분이 좀 찜찜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쌀은 크고 작은 다양한
포대에 담겨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40Kg짜리 일반 수퍼판매용 종이용기에
담을 경우 이만 포대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것 같아 보였다. 조 영진은 나에
게 그동안 반입된 쌀의 내역이 기록된 장부를 보여주며 대략적인 보고를 했다.
“영진이, 병수 정말 고생 많이 했네.”
“아닙니다. 형님이 즉시즉시 자금을 보내 주셔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아냐, 현지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물건 사느라 자네들이 고생이 많았지.”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 알아주시니.”
“자, 어디 가서 한잔 하지 내 그동안 자네들 노고를 달랠 겸 한잔 걸쭉하게
사겠네.“
“형님, 사무실일은 잘 되고 있으시죠?”
“응, 미스 홍이 다 알아서 잘하고 있어. 우리 사무실의 보배야, 보배.”
“형님,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이곳 대구지역 쌀값
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요. 두 달 전 보다 상당히 올라서 지금 비축해 놓은
물량을 이곳이나 가까운 부산지역에 풀어도 상당한 이윤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자네들이 고생한 덕분이지, 자 노을은 그런 이야기 하지 말고 술이나
푸세.“
“저희는 형님과 서해물산의 번영을 위하여 분골쇄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를 위하여 위로 차 내려 오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조 영진이 잔을 높였다.
“형님, 형수님하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시지요?”
“여행은 무슨 여행? 난 우리 집 사람하고 신혼여행 다녀 온 것 말고는 어디
손잡고 다녀와 본 적이 없네. 참으로 힘든 세월이었지. “
“그러게. 이번에 제주도나 태국을 다녀오세요. 두 분이 오순도순 손잡고
말입니다. 하하하하......“
조 영진은 난데없이 여행이야기를 꺼내면서 화제를 돌렸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다녀오지 뭐, 여행이 뭐 그리 급한 것은 아니
니까 말일세.”
“제 여동생이 서울서 여행사 과장으로 있는데 이번에 저 보고 여행을 다녀
오라면서 이 티켓을 주지 않겠어요? 난 시간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하였더니
그럼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도 보내라는 겁니다.“
조 영진은 속주머니에서 티켓 두장이 든 봉투를 나에게 내 밀었다.
“형님, 기간은 다음 주까진데 기간이 넘어버리면 그냥 휴지가 됩니다. 형수
님과 한번 다녀오세요. 제가 드리는 선물이기도 하고요.“
“일단은 고마우이. 정 그렇다면 제주도라도 며칠 다녀올까?”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조 영진이 건네 준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형님, 접니다. 영진이요. 여행은 재미있으신 거죠?”
내가 아내와 함께 제주도여행 이틀째인 밤 프린스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구의 조 영진에게 전화를 걸었으 때 조 영진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시세가 좀 어떤가?”
“네에, 형님, 가격은 어제와 마찬가지인데 다음 주 정도면 재미 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부산이나 이곳 그리고 주변 시장을 다니며 시세를 조사해
보았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형님. 너무 걱정 마시고 형수님이랑 푹 쉬시고
오세요.“
“알았네, 암튼 고마우이. 자네 덕분에 여행까지 다 해보고 고마워. 나도 이곳
에서 쌀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네.“
“에이, 형님은 놀러 가셔서 까지. 형수님께서 속으로 욕하세요. 여행 와서 까지
그러신다고요. 헤헤 헤헤......“
“알았네, 암튼 고생들 하시게.”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게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조 영진을 못 미더워서가
아니고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물가에 아이들을 내 보낸 부모의 마음 같은
것이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여보, 왜 그래요? 놀러 왔으면 기분 좋게 놀다 가면 되지?”
“으응? 아무것도 아녀. 우리 나가서 술이나 마시자고.”
“당신, 속이 불편해서 그래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래요?”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래, 지금까지 잘 되어 왔던 일이 일주일 만에 어떻게 되겠어? 이왕
마누라랑 놀러왔으니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다가자.‘
5박6일간 제주도 여행은 마치고 온 다음날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가
보았지만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또한 사무실 문은 다른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근처 편의점에 들려 커피
를 마시면서 미스 홍이 출근할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보통 8시 정각이면 출근하는 여자 였다. 8시 정각에 사무실에 가보았
지만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미스 홍에게 휴대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생각
하고 사무실 앞에서 30분을 넘게 서성거려도 박 동철도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어제까지 휴가인줄 모르나?”
박 동철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박 동철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대구에 있을 조 영진에게 전화를 걸었
더니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아, 영진이. 나야. 어제 제주도에서 와서 오늘 아침 사무실에 나오니 아직도
문이 안 열려 있어서. 자네한테 전화 했네. 혹시 동철이하고 미스 홍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나? 두 사람 모두 전화를 받지 않으니 말이야. 어찌된 일인가?“
“아, 최 사장? 앞으로 전화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아니, 이 사람 영진이 그게 무슨 말인가? 나야 나. 최 사장이야?”
“알아, 잘 안다고. 이 사람아. 이 시간 이후부터 내 얼굴 보기 힘들 거야.
박 동철이 윤 병수 그리고 미스홍도 말이야. 그러니 우리 찾을 생각하지 마.
그동안 아주 고마웠어. 최 사장 잘 있게.“
“아니, 이봐 영진이 시방 무슨 말을 하는 거여?”
그러나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나는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정신이 멍멍했다.
‘내가 분명히 조 영진이하고 통화 했는데? 내가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안 깬나?’
나는 수첩에서 조 영진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조 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았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열 번을 걸어도 ‘고객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만 나왔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열쇄장이를 불러
사무실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다.
“아아, 이럴 수가?”
나는 그만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아냐, 이건 꿈이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사무실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다시 한번 (주)서해물산이라고 쓰인 간판을 확인했다. 밖에 내 걸린 간판에는
분명 (주)서해물산이라고 쓰여 있었고 전화번호도 적혀있었다. 나는 휴대전화
로 내가 대표 이사로 있는 서해물산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사무실에 전화기가 없는데 어느 누가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니 간밤에 함께 잠자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집이 몽땅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 홀로 사막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꿈을 꾸어왔단 말인가? 내가 내 혈족보다 더 믿었던 그들
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했단 말인가? 천하에 똑똑하기로 소문났던 내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허무하게 적수공권이 되었단 말인가?‘
나는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인정 할 수 없었다. 내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보았지만 통증만 전해졌다.
‘도대체 지금 내가 어디에 서있는 거지?’
나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서너 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나는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여보, 나에요? 여보? 듣고 있어요? 아까부터 전화를 걸어도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수화기에서 아내의 화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보, 나요, 나......”
모기소리만큼 작은 내 목소리는 아내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간신히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하여 지금 즉시 이곳
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일년 이상 사업을 운영해 오 던
사업장이 증발해 버린 이 기막힌 현실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2년간 결과란 말인가?’
조 영진, 박 동철, 윤 병수 그리고 미스홍의 웃는 얼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냐, 그들이 잠시 어디에 모여 회의를 하거나, 나를 놀래켜 줄려고 짜고
숨바꼭질을 하는 걸 거야.‘
내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형님, 접니다.”
고향 후배 봉산이가 땀에 젖어 나타났다.
“아아, 보, 봉산아. 지금이 몇 시지?”
“형님, 11시 인데요? 그리고 사무실이 왜 이래요? 어디로 이사 가셨어요?”
“글쎄다, 나도 모르겠다.”
“네에? 아니 주인이 모르면 누가 안데요?”
“봉산아, 지금부터 너는 네가 하는 일을 잠시 접고 나를 도와 다오.”
“형님,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해요?”
“봉산아, 우선 네가 가장 믿을 만한 친구 두세 명을 불러라.”
“네에? 제 친구들은 왜요?”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라.”
나는 봉산이에게 지금까지 전개해 왔던 이야기를 모두 전해 주었다.
“형님, 그럼 먼저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다. 우선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 한 뒤에 신고해도 늦지않어
그러니 우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한 시간 만에 후배의 친구들 세 명이 사무실로 모여 들었다.
“형님, 이쪽은 영식이, 저쪽은 경식이, 얘는 태식이 입니다. 모두 세탁소를
운영하는데 10년 전부터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모두 믿을 만 한
사람들이니 형님이 시키실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평소 봉산이게서 사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체를 다른 장소로 이사하신 모양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앞으로 1주일간만 내 일 좀 도와주세요. 일단은 섭섭지 않게 쳐 드릴 테니
친구 봉산이를 도와주는 셈 치고 나를 좀 두와 주세요.“
나는 다시 봉산이에게 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대한민국
에서 버젓이 일어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요.“
봉산이 친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세요. 모든 연락은 내 휴대폰으로 주시고
이 사건이 어느 정도 윤곽이 파악 될 때 가지 이곳을 임시 사무실로 쓰겠습니다.
먼저 태식이 에게는 조 영진, 윤 병수, 박 동철 그리고 미스 홍의 거주를 알려
주고 빨리 현장에 가서 파악해보고 보고하라는 임무를 주고 영식이 에게는
주 거래처를 알려주면서 쌀과 주류 판매대금 수금여부를 확인하게 했다.
“봉산아, 너는 나하고 지금 즉시 대구로 내려가자.”
“네에, 형님, 그런데 형수님에게 우선 알려야 하잖아요?”
“아니다, 집 사람은 무슨 꿈같은 이야기를 하느냐고 되레 나에게 반문 할 거야.
나중에 어느 정도 사건이 파악되는 대로 이야기해도 되니까.“
나와 봉산이가 오후 5시쯤 대구에 먼저 찾아보았던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