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 淸州宋門의 中興期-
대종중 문화교육부회장, 향토사학자 八甫 송 춘복
보잘것없는 내가 2005년 정암(수복)형님의 추천으로 종중의 문화교육부회장으로 활동해온 지 10년이나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양반자손이란 말씀과 청주송가 송정파란 말을 입에 습이 들도록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장년이 될 때까지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었다.
나이 마흔 즈음에 선친으로부터 선조들이 남기신 여러 서적과 문적들을 넘겨받으면서 야릇한 감정이 일기 시작했고 한자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동네방네 묻고 다니면서 어느 듯 선조들에 대한 대단한 경외심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사 최초의 의병장으로 인정받아야 할 참판공을 비롯한 선조들의 훌륭한 업들이 우리 일부 종원들의 자긍심에만 머물러 있었고 대외적으로 평가는 홀대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유감스러웠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그 내용조차 심하게 왜곡된 상태로 각종서적이나 인터넷을 타고 범람하는 중이었다.
이후로 나는 틈이 있을 때마다 종중대소사에 참여하면서 이미 너무 희미해진 실체의 족적을 찾아가며 이의 대책에 골몰하던 중 그 무렵에 우리 가문의 석학이신 송복 교수께서 [한국민족 문화대사전] 인물 편에 참판공 송빈을 임진왜란 첫 의병장으로 기록한 것을 계기로 김해읍지, 김해인물지, 사충실기, 송담서원지, 환여승람, 역대 발간 세보 등 사적자료가 일천하지만 관계서적들을 모조리 찾아 섭렵하며 진실규명에 애써 왔다.
그 후 정암(수복)형님의 제안으로 “청주송씨 정사위원회”를 구성하여 1년여의 활동에 그 동안 줄 곳 시비꺼리였던 한 씨족 두 시조 문제를 말끔히 불식하는 보고서를 발표(다음카페 청주송씨에 게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종문인 진주 교육대학 문학박사 송희복 교수의 논문 [눈 속의 외솔에도 봄기운이 감도네]가 대종중의 자금지원으로 출간 배부되었으며 뒤이어 사천공문중의 원고료지원으로 역사소설의 권위자이신 소설가 김인배 선생에 의해 송창, 송빈, 송정백, 정남의 3대로 이어지는 장편소설 [오동나무 꽃 진 자리]가 푸른 사상사 출판으로 금년 10월에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또 창원대 역사학자이신 문학박사 송종복 교수께서 퇴임 후 (사)경남향토사 회장을 맡아 나에게 참판공 송빈에 대하여 논문을 제출해 보란 권고로 2014년도 [경남 향토사 논총 24집]에 “임진란 최초의 의병장 송빈에 대한 소고”를 게재하여 그 동안 왜곡된 사충신의 행적을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를 근거로 김해시청 문화공보과, 관광과 등 김해시의 홍보물을 대거 수정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2015년 7월 김해뉴스에서 발간한 [김해인물열전] 사충신 편도 애초 기사에서 대폭 수정되어 바른 사실이 수록되게 되었다.
외에도 송종복 교수의 [경남매일] 기고문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전투는 김해시다” 등 여러 게재문과 특히 대종손 유장씨는 연세도 잊고 후손들을 위해 십 수 년을 포털 [다음카페 청주송씨]를 개설하여 가문 알리기와 자긍심 고취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지역 언론과 관공서를 망라하며 대대적인 활동과 저술의 결과 최근 지역의 한 언론 기자께서도 직접 나에게 ‘지금 김해는 청주송씨의 시대’ 라고 한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 가문 역사 부흥의 정점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활동들이 우리 선조들의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아 대외에 알리는 천명(闡明)이었다면 앞으로는 위상을 공인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김해 연지공원에 “조선의 첫 의병장 송빈 공”이라 새겨진 우람한 동상이 서고 해마다 10월 성황리에 송상현 공을 기리는 동래읍성 축제보다 더 웅장한 김해 사충신 정신문화제가 열리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런 소박한 꿈은 멀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란 말처럼 이미 종중의 전 지도자들과 석학들이 공감을 하고 있고 지역의 일부 역사 문화계 인물들도 이를 적극 지지하며 장차 학술대회 등을 연구,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모처럼 조성된 이런 분위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향안 입록자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조선 300년 김해의 교육, 정치를 주도해 왔던 대표적 향반가문이 근대 100년 사이에 긴가민가 하는 후손들로 전락해 버렸다.
더 이상 “나는 잘 모릅네!” 하고 뒷짐만 짓지 말고 관심과 지지를 보내자!
또 나의 자식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송희복 저 [눈 속의 외솔에도 봄기운이 감도네]나 김인배 저 [오동나무 꽃 진 자리]를 한 번이라도 읽게 하자.
호랑이 새끼를 고양이로 키워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