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레프팅을 다녀와서
지난 7월 16,17일 하계캠프에 이어 8월도 산에 안 가고 강에 갔다.
대대적인 공지를 통해 우리 산악부에 한 발을 빠뜨린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고 싶어한 레프팅이었는데 그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출발하는 20일 토요일마저 도심 전광판에 호우주의보가 뜨서 정말 못가는 건 아닌가 싶었었는데 다들 엄청 가고 싶었던지 줄리 말고는 안 간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8월 20일 토요일 7시 30분 칠곡IC 근처에서 일부 만나 각자 출발하고 중간 지점인 군위휴게소에서 도킹했다. 구미에서 출발한 고문일행 두 사람, 등반대장 부부와 총무, 영익 커플의 차에 줄리네 세 식구가 묻혀와 참석인원은 총 10명.
회장은 모 대학의 공사 일을 챙기느라 아쉽게도 오지 못했다.
군위휴게소에서 대충 저녁들을 먹고 출발한 시각이 저녁 9시. 곧이어 의성 지나 남안동으로 내렸고, 안동 시내를 지나 안동댐 길로 가다가 도산서원 지나고 산길 비슷한 국도를 한참 달리니 청량산 표지판이 나오고 드디어 봉화에 도착했다. 곳곳에 레프팅이라고 써붙여 놓은 길을 지나 한 폐교에 도착한 시간이 거의 열한시 경.
학교 운동장엔 먼저 도착한 몇몇 팀이 진을 치고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고, 비가 내려 약간은 질척한 운동장에 우리가 타고간 차로 방호벽을 치고 텐트 다섯 동을 설치했다.
운동장 구석엔 교실에서 몰려나온 앉은뱅이 의자들이 잔뜩 있었는데 우리도 의자를 갖다놓고 둘러앉아 노가리도 굽고 복숭아에 포도에 술에 등등을 실컷 먹으며 자정을 넘기다.
이날 등반대장이 며칠 전부터 체해서 저녁도 못 먹고 일찌감치 차에 들어가 누운 탓에 회장까지 없어서 그랬던지 일찌감치 자리를 파하고 다들 각자 집으로 귀가.
옆 동에서 두른두른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운동장 저편에서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못 이루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뒤에 온 팀들이 어찌나 시끄러운지 잠이 깨어
이날 줄리는 거의 잠을 못잤다. 첨에는 너무 추워서 못자다가 새벽 다섯 시 넘어서는 비가 많이 와서 텐트 정비하고 빗소리 듣다 못자고 그담엔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는 사람들 때매 잠을 못잔 것. 아침 일곱 시 넘으니 잠도 안잔 사람더러 등반대장이 그만 일어나란다.
그날 이른 새벽에는 비가 정말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리더니 일어나보니 너무 쾌청한 날씨.
여덟 시 출발이라 해서 세수하고 채비는 했는데 이날 아침 식사는 아무도 자진 준비하는 사람이 없어 다들 굶었나보다.
회장이 없으니 백숙도 없고 섧다. 회장의 빈자리가 엄청 크게 다가왔다.
아침 여덟 시 지나 다들 옷 챙겨입고 안경 낀 사람은 팬티 고무줄 비슷한 거 얻어서 머리에 안경 고정시키고 관광버스에 다른 팀들과 섞여 출발하다. 어제는 밤이라 풍경을 못봤는데 태백, 명호 이런 지명들이 보이고 강을 끼고 이십 여분 달려 버스는 강기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조별 인원파악 후 주의사항과 구명조끼 장착법을 듣고 조별로 강사를 따라 배로 가서 드디어 레프팅의 세계로 .
이른 아침이라 공기는 제법 서늘했고 강물은 비 내린 뒤라 다소 탁했다. 그냥 배 타고 가는건데 뭐 어떠랴 싶었는데 배를 물로 옮겨가는 순간부터 종아리 부근이 물에 젖었고, 강사가 우리를 우현 5명 좌현 5명으로 나누더니 서로 물을 끼얹으라 하고 서로 정신없이 퍼붓다보니 본격적인 레프팅 전에 옷들은 이미 다 흠뻑 물에 젖었다.
나의 딸 지운이가 며칠 전 뇌진탕으로 심각한 검사도 하고 그런지라 강사에게 조금 주의 겸 협박을 하였더니 레프팅 내내 지운이만 배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고 나머지 우리 모두는 물 속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레프팅을 계획한 원래 코스는 강원도 정선 근처에서 출발하는 거였는데 비도 너무 내리고 내가 가니 못가니 하였더니 그럼 무난한 청량산으로 가자고 계획이 갑작스레 바뀐 거였었다.
계곡 레프팅은(?) 도로로 달려가면서 보는 풍경보다 바위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물과 어우러진 바위랑 산 풍경이 너무 좋았다. 급류라고 특히 부를 만한 곳은 없었지만 다들 즐거워했고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슬쩍 다가와 노로 물을 퍼붓고 배를 뒤집을려고 하는 등 마치 바다에서 해적이라도 나타난 듯 굴었지만 아무도 탓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다들 아이처럼 웃고 복수하고 난리였다. 계곡을 타고 내려가다 폭포도 만나고 작은 이벤트로 배를 뒤집어놓고 미끄럼도 타고 높다란 바위 밑에 배를 끌어다 대고 다이빙도 했다. 용감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배를 타는 도중에 주최측이 무료 사진을 찍어주어 그나마 건진 사진 세 장을 <사진>에 올렸고요.. 사진 촬영 후 그곳에 출장 나온 오뎅 감자떡 삶은 계란 등이 있는 뷔페에서 따뜻한 오뎅 국물이랑 등등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봉화쪽 레프팅은 들은 대로 조금 싱거운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강사들이 여러 가지 물놀이 행사를 기획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물에 빠지는 그림들을 연출하였다. 어깨동무하고 우루루 빠지기, 배 난간에 올라서서 밀다가 균형 잃어 물에 나가떨어지기, 일명 타이타닉이라고 해서 타이타닉 포즈를 취한 두 배우(윤서 부와 모)를 다들 노를 저어주며 빙빙 돌리다가 물에 자빠뜨리기 등등 이렇게 환자 지운을 빼고는 다들 수차례 물에 빠졌다 구조되었는데 유독 한 번도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구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 수영을 못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버틴 건지 아님 신발바닥에 본드를 바른 건지 정말 대단했다. 그래서 레프팅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서 다들 합세하여 물에 밀어넣다시피 해서 그녀를 청량산 계곡물에 빠뜨렸다. 막상 물에 빠지더니 즐거워 보였다.
작은 다리가 놓여진 여울목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다들 조금은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차에 올랐다. 내내 강 옆으로 버스가 달리는데 우리가 배를 타고 지나간 풍경을 보며 다른 팀들이 물에서 노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대충의 짐만 싸고 텐트다 뭐다 다 그대로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와 여자들이 샤워하러 간 사이에 밥한 사람, 고기 사온 사람, 야채 구해온 사람, 숯 준비한 사람 다들 고마웠다. 우리 산악회 생긴 이래 내 생각엔 한데 섞여(남녀구분) 목욕한 건 이때가 첨인 것 같다.
사실 가조 의상봉 갔을 때 저녁에 내려오면 온몸이 땀에 젖고 고단해서 그 밑 가조온천에 대개 가고 싶었는데 다들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것 같아(특히 회장이) 말조차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목욕 후 이제 서로 볼 것 다 보았으니 앞으로는 자주 함께 목욕하고 그럼 될 것 같다. 사람이 밥 같이 먹으면서도 정이 들고 목욕하면서도 정이 들고 그런 것 아닌가...
맛있게 된 밥에 각자 가져온 반찬을 꺼내놓고 게다가 등반대장 빽으로 돼지고기 숯불 석쇄구이까지 - 찬이가 말하길 고기 3만원 어치가 원래 그렇게 많은 거냐고? ...
암튼 이날 고기 실컷 먹었다. 우리 산악회는 고기 구워 먹는 거 잘 안하는데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이날 더운데 불 가에 서서 연기 마셔가며 고기를 구워준 사람은 등반대장, 미술학원 여원장님.. 영익네 부부였다.
점심 먹으며 남은 고기 안주 삼아 커다란 플라스틱 병에 든 맥주를 실컷 마시는 바람에 시간은 조금 늘어졌지만 생각보다 빨리 봉화를 출발했다. 물에서 논다는 것이 뭍에서 노는 것보다 좀더 피곤한 것 같다.
참석 못한 회장이 우쨌든지 뒷풀이라도 참석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지만 다들 각자 스케줄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안동 지나 군위휴게소에서 잠깐 만나 떡볶이랑 아이스크림이랑 나눠먹고 공짜 당구 한 게임 치고 헤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과묵해서 아직 의견을 못 들었지만 찬이는 정말 오길 잘했다고 했고 지운이는 나도 물에 빠지는 건데 라고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레프팅 후 개인 감상을 말하라면 호우주의보에도 무리해서 온 우리들에게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과 청량산의 아름다운 암벽과 강물을 제공한 자연에 감사드리고, 다들 맛있는 거 많이 싸갖고 와서 즐겁게 놀고 같이 목욕도 하고 옷가지도 나눠 입고 한 가족처럼 보낸 이 여름 마지막 캠프 너무 너무 너무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내년에는 아그들 떼어놓고 강원도에 가서 정말 제대로 된 급류타기 한 번 해보고 싶고
9월부터는 으랏차 산악부 열심히 암벽타고 이번 여름처럼 가을에도 겨울에도
서로 정 내면서 살갑게 재밌게 신나게 활동합시다.
첫댓글 비가 많이 와서 어쨌나 걱정이 좀 됐었는데 모두들 잘 다녀오셨군요.
잘놀았구먼...... 모두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