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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가이드-완전정복3
1. 이런 곳은 피하라! (입지선정)
“살기 좋은 집”과 “보기 좋은 집“ “살기 좋은 집을 지을 땅은 어디가 좋은가?” 우리가 사는 집에는 “살기 좋은 집”이 있고 또 “보기 좋은 집”이 있다. 혹자(或者)는 보기 좋은 집이 살기도 좋다는 말들을 하지만, 만약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多幸)한 일인가! 그러나 필자는 보기 좋은 집은 역시 보기에만 좋은 집일 경우가 많다는 걸 자주 접(接)하고 본다. 우리가 전원주택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아주 예쁜 집들을 많이 보게 되고, “나도 저런 집에서 살았으면!”하고 부러워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도 찬찬히 뜯어보면 그냥 보기만 좋은 집인 경우가 많다.
우선 常住하지 않을 집이라면 이 범주(範疇)에서 빼셔도 좋다. 한달에 한, 두 번이나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만 사용한다면, 경관(景觀)이 빼어나게 좋은 곳을 우선적(優先的)으로 선택하면 될 것이고, 거리가 좀 멀면 어떻고 생활이 좀 불편(不便)하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상주(常住)할 집이나 자주 사용(使用)할 집이라면 필자의 경험으로 본 몇 가지 금기(禁忌)사항(事項)들을 나열(羅列) 해볼까 한다.
첫째, 물가(바다, 강, 호수, 계곡 등)에 너무 바짝 붙어 있는 집은 피하라!
물은 지자(智者)가 좋아하고 산은 인자(仁者)가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저희 업소를 방문하신 분들의 선호도(選好渡)를 종합(綜合)해 보면 산 쪽과 물 쪽을 선호(選好)하는 정도는 반반 정도인 것 같다. 이 세상엔 지자(智者)와 인자(仁者)가 비슷한 분포(分布)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속설(俗說)이지만 물을 좋아하면 물귀신이 잡아 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서울의 유수(有數)한 한강변 아파트들이 조망(眺望)권이란 이유로 많은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걸 보면 “그것도 옛말에 지나지 않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필자는 왜 물가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가? 드넓은 호숫가에 그림과 같은 예쁜 집을 짓고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는데 정말 예쁜 집 한 채가 나타난다. 만약(萬若) 우리가 드라이브를 하다가 이런 집을 보았다면 무척이나 부러워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러워 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다.
부정적(否定的)인 시각(視覺)에서 보면 그 예쁜 집도 여러 가지 문제점(問題點)을 내포하고 있는 집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울증(憂鬱症) 환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그 강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란 통계(統計)가 있다는 걸 신문지상(新聞紙上)으로 본 적이 있지 않는가? 왜 그럴까? 필자는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자주 물가엘 가 보기도 했다. (다음에 적는 것은 오직 필자 자신이 느낀 점을 피력(披瀝)할 뿐이라는 것을 양지(諒知)하시면서 읽어 주시길 바란다.)
처음엔 그렇게 속이 확 트이도록 넓고 광활(廣闊)한 호수(湖水)를 보고 있노라니 십년 묵은 쳇 증이 다 살아지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물가엘 갈수록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답답하다는 느낌마저 들었고, 머리까지 띵해 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확 트이고 광활(廣闊)한 호수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걸까? 내 몸에 무슨 이상(異狀)이라도 생긴 걸까? 그러나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을 여러 번 반복(反復)한 후에야 그 이유 중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 물이란 것은 항상 정체(停滯)되어 있는 것이 구나”하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알기 까지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신기(神奇) 할 정도로 아무런 변화(變化)가 없었다. 그 큰 호수(湖水)같은 강줄기가.... 겨우 변화(變化)가 있다면 얼음이 얼었을 경우와 녹았을 경우를 빼곤 항상(恒常) 모양이 같아 보였다. 지금까지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물은 동적(動的)으로 “흐른다!” “움직인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에만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인가? 물가에 앉아 물끄러미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錯覺)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고들 한다.
그건 그렇고 실제로 우리의 건강과 직면(直面)한 얘기를 하나만 하기로 하자. 호수(湖水) 주변(周邊)이나, 강가, 큰 개울가 주변은 우선 습기(濕氣)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안개가 많은 것도 습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증명(證明)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들이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主犯)들이다. 안개 속엔 우리 몸에 아주 해(害)로운 중금속(重金屬) 덩어리가 많이 포함(包含)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그리고 이건 들은풍월(風月) 이지만 물은 사람의 기(氣)를 빼앗는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너무 겁(怯)부터 내실 필요는 없다. 내가 사는 집에서 너무 가깝지만 않다면 그래서 멀리서 바라다 볼 수 있는 물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눈만 뜨면 보이는, 아니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位置)의 집을 피하라는 뜻으로 받아주시길 바란다. 계곡이나 시냇물이 흐르는 곳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라. 운치(韻致) 있어 보이고 풍광(風光)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강가나 호숫가 보다는 덜 할지언정 미치는 영향은 비슷하다. 그래도 물있는 곳이 좋으시다면 물의 흐름이 완만(緩慢)한 곳을 찾아라.
하천(河川)이나 구거(溝渠)를 낀 땅들은 하천부지나 구거 부지를 점용(占用)하여 쓸 수 있다는 이점(利點)도 있지만 그 반대(反對)의 상황(狀況)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念頭)에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 땅이 하천부지(河川敷地)로 나간 경우도 허다(許多)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周知)하셔야 할 것이다. 땅을 살 때는 땅의 경계(境界)를 측량해서 경계를 확실히 밝히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땅으로 하천이 흐른 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될 것 이고 알고 난 후에는 제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물론(勿論) 거기엔 찾을 수 있는 땅이 있긴 하지만 찾을 수 없는 땅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비가 올 때를 감안(勘案)하여 떠내려 갈 뚝은 없는가? 물이 넘칠 위험(危險)은 없는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데 물 흐르는 소리를 아는가? 어쩌다 한번 계곡으로 휴가(休暇) 가서 듣는 시원스런 계곡의 물소리와 전원주택에 생활하면서 비만 오면 듣는 그 요란스런 물소리는 많은 상이(相異)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 두셔야 한다. 언제까지 나를 동화(童話) 속으로 몰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疑問)도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둘째. 바위산 밑이나 경사도(傾斜度)가 심한 산 밑은 피하라!
물론 그 산이 바위산이라면 더욱 이 말을 강조(强調)하고 싶다. 언제 낙석(落石)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필자가 이곳에 와서 처음에 살던 집은 남향(南向)이고 뒤에는 완만 (緩慢)한 산이 있었고 그 산 밑의 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에서 살았으니 무척이나 그 집을 좋아 했다. 그런데 그 집에도 조그만 약점(弱點)은 있었다. 여름 장마에 온통 옷장에 든 옷가지들에 곰팡이가 피는 것이었다. 햇볕이 아주 잘 들어오는 집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너무나 의아스러웠다.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산과 집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도 통풍(通風)이 잘 안되어 그런 현상(現狀)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山짐승(그렇게 많이 있는 일은 아니지만)을 조심해야 하고 큰 산짐승이 아니라도 뱀, 오소리, 너구리, 들 고양이 같은 짐승들 때문에 집의 개들이 밤새 짖어대는 통에 하루 밤에도 몇 번씩이나 밤잠을 설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또 한 가지 주의 할 부분은 산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普遍的)으로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땅(背山臨水形)에는 거의 산소를 배경(背景)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등산로가 있어 성묘객이나 등산객이 자주 찾기 마련인데 성묘 시에나 등산하면서 부주의(不注意)로 산불이 가끔 발생한다. 어떤 불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지만 산불은 더욱 더 무섭다. 인적(人跡)이 드문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붙으면 겉잡을 수 없이 되고 만다.
셋째, 성토(盛土) 및 절토(切土) 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성토(盛土)한 토지는 지반(地盤)이 물러 건축 후 건물에 균열(龜裂)이 나타나기 쉽고 절토(切土)한 토지는 뒤편으로 옹벽(擁壁)을 쌓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앞 편으로도 축대(築臺)나 옹벽으로 보강(補强)해 주어야하기 때문에 토목(土木)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또 모양세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절토 지는 그것이 많은 부분이 아니라면, 잘 다듬으면 오히려 멋진 주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토 지는 대체적으로 원래 지반(地盤)이 낮은 토지를 높인 것이기 때문에 옹벽이나 축대를 쌓아야하고 흙으로 메꿔야 하기 때문에 구입하기 전에 공사비에 대한 충분한 사전(事前) 조사가 필요하다. 성토 지나 절토 지는 성토나 절토 후 3년 쯤 지난 다음에 건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 난 상처도 금새 아물지도 않을뿐더러 아문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피부와 같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理致)라 하겠다.
넷째, 될 수 있다면 북벽(北壁)은 삼가는 것이 좋다!
모름지기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적당한 햇볕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아는 것이라 설명을 삼가고 싶지만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시골은 대도시보다 눈도 많고 비가 올 때도 하수(下水)시설(施設)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도로는 온통 수로(水路)가 되거나 겨울이라면 얼음바닥(氷板)으로 변하고 만다. 특히 비탈진 길에선 더하고 그 곳이 북벽이라면 아주 심(甚)하다. 그래서 차량통행은 물론이고, 보행도 어려울 때가 겨울철엔 종종 있다. 일년에 며칠이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많은 불편을 우리에게 초래(招來)한다. 이런 현상들은 시골길을 달려가면서 조금만 눈 여겨 보면 금새 알 수 있는 현상들이다. 내가 가고 있는 한쪽 편엔 눈이 다 녹았는데 다른 쪽 편은 아직도 하얗게 눈 모자를 쓰고 있는 산이나 지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만큼 북벽은 추울 수밖에 없고, 또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계로 보면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밝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보다 건강이 좋지 않고 성격도 침울(沈鬱)하다고 한다. 아마도 햇볕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추우면 우선 우리는 웅크리지 않는가? 난방비가 더 들어 가는 것쯤은 차치하고라도...... 북향은 안 된다. 요즘은 조명이 발달해서 불 켜고 살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간혹 계시는데 북향집을 갖은 이들의 억지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벌써 오래전에 전원주택은 절대로(?) 남향이어야 한다는 필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특별한 경우(의뢰인이 원하는)를 제외하곤 남향집이 아니면 권하지 않는 고집(固執)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게 설명을 드려도 확 트인 전망(展望)이나, 호수나, 강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조망(眺望) 때문에 굳이 북향이라도 감수(甘受)하고 선택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권해 드릴 수밖에 없다. 이 부근의 그린벨트지역인 남종면 귀여리, 검천리, 수청리등이나 양평군 강하면, 강상면의 강이 보이는 곳은 거의가 북벽이고, 북향이다. 서종면 문호리, 수입리 등도 비슷한 환경이지만, 강이나 물을 선호(選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북향인데도 불구하고 지가(地價)는 만만치 않다. 보기 좋은 집의 일예(一例)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전원주택에서의 조망(眺望)권이란 무시(無視)해서도 안 되고, 또 무시할 수도 없는 아주 중요한 조건(條件)중의 하나다. 물론 북향 중에서도 남향과 비슷한 일조권을 누릴 수 있는 땅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想起)시켜 드리고 싶다.
다섯째, 주위(周圍) 환경(環境)을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된다!
필자의 친구는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몇 년에 걸쳐서 으리으리한 별장(別莊)을 마련했다. 많은 경비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몇 년여에 걸친 모든 조성(造成)작업(作業)이 거의 끝나가려는 무렵 아주 가까운 곳에 축사(畜舍) 두 동이 들어섰다. 그것도 무지 무지하게 큰 대형 축사(畜舍)가......
“집들이” 겸해서 도시의 친구들이 내려와 바비큐 파티를 하던 날. 쇠파리는 몰려오고 냄새가 진동하는 통에......그 다음은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친구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고민(苦悶)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이렇게 전원이란 내가 집을 지을 곳만 좋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주위환경을 예의(銳意) 주시(注視)해 보는 것도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주위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주위가 앞으로 어떻게 개발 될 것인지? 소각장이라던가, 오수(오물)처리장, 공원묘지, 공장, 짐승사육장등은 물론이고 하물며 주위에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 거는 사람은 없는지? 이런 것 들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로만 생각할 뿐 정작 전원주택이나, 전원주택 부지를 구입할 경우에 그냥 흘려버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꼭 챙겨야 한다고 부탁드리고 싶다.
여섯째, 현재의 조건(條件)만으로 땅을 평가(評價)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지어놓은 전원주택을 보면 감탄사(感歎詞)를 연발하는 분들도 그 보다 훨씬 조건이 좋다고 생각되는 땅을 권해 드려도 시큰둥한 표정(表情)을 지으신다. 그 이유는 꼭 한 가지 있다. 개발후의 모습을 그려보는 審美眼(심미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화장을 안 하고도 예쁜 미인이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거의 모든 미인(美人)들은 화장으로 예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땅도 그런 면(面)에서는 인간(人間)과 다를 바 없다. 화장(化粧)하고 난 다음의 모습은 화장을 안했을 때와의 모습과는 천양지판(天壤之判)으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시고 땅을 보아야 되는데 의뢰인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꼼꼼히 생각하며 땅을 고르는 분이 적다. 눈 섶을 그린 모습. 화운데이션을 바른 모습. 볼연지(?)를 바른 모습. 아이라인을 그린 모습. 립스틱을 바른 모습.......... 이 모두가 틀리는 게 아닌가? 이런 모습들을 머리에 그려 보면서 땅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땅을 보는 안목(眼目)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되는 일이다. 모든 것은 얼마나 발품을 팔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발품을 많이 파시라는 말씀은 여러 번 강조(强調)해도 모자람이 있겠다. 판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네모반듯한 땅을 많은 분들은 선호(選好)하시지만, 그런 부지는 땅을 조금은 효율적(效率的)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재미있는 땅은 되지 못한다. 약간은 불규칙적(不規則的)이고 불균형적(不均衡的)인 부지가 오히려 재미있는 연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고(自古)로 멋이란 규격이나, 규칙을 벗어난 데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잘 빗질이 된 머리에 머리카락 몇 가닥쯤은 흐트러지게 하는, 목까지 다 잠근 Y-셔츠의 단추보다는 한 두,세 개쯤 풀어놓는 여유, 이런 파격적(破格的)인데서 멋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 땅을 사는 사람은 가격 면에서도 유리(有利)한 고지(高地)를 점령 할 수 있으니 머리를 써야한다. 그래서 전원주택단지로 꾸민 곳들을 가보면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지고 특징(特徵)이 없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마치 어린이 공원의 요술공주가 사는 집들 같이 그게 그거처럼 보인다.
일곱째, 길이 없는 땅(盲地)은 땅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길은 지적도(地籍圖)상의 도로(道路)를 의미한다. 지적도를 보며 축척(縮尺)자로 재어서 4 m가 안 되는 길은 일단(一旦) 의심하고 검토해 보아야 할 여지(餘地)가 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려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바로 이 길(도로) 문제이고, 또 이 길 문제가 가장 많은 분쟁(紛爭)의 소지가 있고, 송사(訟事)거리의 원인이 되기에 필자는 몇 번이고 되풀이 강조해도 모자람이 있다 하겠다.
현재 버젓이 쓰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허가(許可)를 얻으려면 그 도로의 현재 소유권자의 “영구 사용 승낙서”란 것을 받아야만 할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사용(使用) 승낙서(承諾書)란 것이 결국 땅을 사서 내가 써야하는 도로로 편입(編入) 시킨다는 것과 다름없는데, 부르는 게 값 일 수가 있다. 또 지적도상에 4m가 되는 도로가 엄연히 있다하더라도 그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주위의 밭이나 논으로 깍아 먹히고 지금은 아주 좁은 논두렁, 밭두렁 정도의 길만 남은 경우에도 그 원래의 지적도상의 길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不可能)하다 하겠다.
그러나 현재 4m가 안되는 도로라 할지라도 그 도로를 통하여 사람이 거주(居住)하는 주택이 있고 또 도로가 포장이 되어있다면 안심(安心)하셔도 좋다. 그런 길을 현황(現況)도로(道路)라 하여 인, 허가를 득하는 것이나,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서울의 A씨는 이차선 도로에서도 몇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또 차량도 진입(進入)할 수 있는 도로가 지적도 상에 있어서 땅을 구입했으나 그 지적도상에 있는 도로가 허가 조건에서 3평정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허가를 얻지 못한 딱한 사정에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물에 빠진 놈 더 밀어 넣는 세상이 된 걸까? 그 세평의 토지주가 2000만원을 요구해 우여곡절(迂餘曲節) 끝에 1200만원으로 합의(合意)하여 겨우 허가를 얻어 지금은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아직도 그 때 그 시절의 얘기만 나오면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든다. 결국 시골의 하잘 것 없는 땅 한 평을 400만원씩이나 주고 산 셈이 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도로의 소유주(所有主)는 집을 짓겠다는 사람의 목줄을 쥐고 있는 형상(形狀)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대로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요즘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알박이”가 된 형태라고나 할까?
그래서 기존의 도로가 있어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그 도로가 실제로 사용 할 수 있고 또 그 도로로 허가를 득(得)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를 면밀(綿密)히 따져 본 후에 계약하는 것이 최선책(最善策)이고, 부득이(不得已)한 경우 도로가 없는 땅을 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處地)라면 계약서의 단서 란에 진입로(進入路)에 대해서는 매도인이 책임(責任)을 지고 잔금(殘金)시까지 해결해 주는 조건을 걸어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만약 매도인이 그런 조건을 들어 줄 수 없다고 하면 제 아무리 마음에 드는 땅 일지라도 미련 없이 포기(抛棄)할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 부언(附言)하자면 현재는 길이 없어도 길을 낼 수 있는 방법에 확신(確信)이 선다면 싸게 구입하는 것도 재테크를 잘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 한다. 도시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러 내려온 J여사는 배산임수형의 아주 예쁜 집 하나를 구입했다. 구입 당시 지적도상에 도로는 없었지만 엄연(奄然)히 허가 난 주택으로서 10여 년간이나 사용하던 도로가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런 도로를“현황도로(現況道路)”라 부른다.
물론 씨멘트 포장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를 많이 따지긴 하지만 이 길은 포장(鋪裝)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도로의 좌측엔 하얀 담장이 그 집의 경계를 의미하고, 우측의 밭에는 쥐똥나무 경계목(境界木)이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도로였었다. 그런데 잔금을 치르고 이사 계획을 세우는데, 난데없이 하얀 담장을 한앞 집에서 자기네 땅의 경계측량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길로 담장을 내어 쳐 버렸다. 그것도 실제로는 50cm차이였는데 약70cm나 더 많이 내어 친 것이다.
J여사가 이사를 할 수 없었음은 기정사실(旣定事實)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허가 난 도로는 우측 편으로 50cm가 이동(移動)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토지 주는 바뀌었고 10여년이나 지난 일이라 그 토지엔 쥐똥나무 경계목이 많이 자라있어 마음대로 길을 넓힐 수도 없는 처지(處地)가 되어 버렸다. 더 더군다나 그 토지의 소유자는 그 토지를 구입할 당시에 도로 부분으로 공제(控除)받은 금액보다 훨씬 많은 땅을 절대로 양보 할 수 없다고 하니 허가 난 도로라 하더라도 남의 경계목을 뽑아 버리고 길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이라서 지금은 법(法)에 호소(呼訴) 중 이다. 벌써 8개월이 지나고 있는 일인데 아직도 해결(解決)이 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한(限)이 없는가 보다. 옛말에도 “쓰던 길을 막으면 삼대(三代)가 망한다.“는 말을 여기 이 두 집의 나이든 어른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나보다. 앞으로 살아봐야 10년이나 살까한 고령(高齡)들인데도 무슨 욕심(慾心)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한심스런 양반들이다. 이렇듯 전원주택을 구입하거나 짓는 과정(過程)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로(道路)라는 것을 독자들은 명심, 또 명심(銘心)하시기 바란다.
여덟째, 전원주택을 대체(代替) 주거지(Main House)의 개념(槪念)으로 보자!
이젠 전원주택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될 때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환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그냥 우리가 생활하는 또 다른 주거형태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의 개념으로 보면 전원주택은 새로운 주거형태이기 때문에 그냥 주택이라고 하지 않고 “전원주택“이라는 명칭이 탄생했지만, 수없이 많은 전원주택을 가진 서구(西歐)에선 “전원주택”이란 단어를 따로 사용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주말주택“”Second House"의 개념에서 “Main House"의 개념으로 생각의 전환(轉換)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교통(交通)수단(手段)의 발달과 도로의 신설, 확장, 포장과 대중교통(大衆交通)의 발달은 옛날 같으면 하루해가 걸려야 갈수 있는 먼 길을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으로 연결(連結)을 가능(可能)케 해 주고 있다. 그것이 출퇴근을 엄두도 못 내게 했던 수도권은 물론이요, 그 보다 먼 다른 지역 까지도 모두 서울의 일부분(一部分)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想起)해야 한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고속전철(高速電鐵) 시대가 열렸다. 이젠 마음만 먹는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좀 무리(無理)가 있다 하더라도 대전이나, 대구까지는 출퇴근이 가능(可能)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좋은 세상인고. 땡! 댕! 땡! 종을 울리며 가던 뚝섬 행 전차(電車)가 생각이 난다. 뚝섬이, 또 강나루가 예전엔 얼마나 멀었던가? 한강(제1한강교 밑)가서 수영하고 왔다는 것과 뚝섬이나, 강나루에서 수영(水泳)을 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많이 틀렸다. 뚝섬이나, 강나루는 아주 멀리 바캉스를 다녀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혹여 이렇게 말하면 기분 언찮케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지금의 강동구, 은평구, 강북구, 강서구,,.............하물며 지금은 로데오 거리니 하며 부자(富者)들의 대명사(代名詞)가 된 강남구 (옛날엔 이런 명칭도 없었다.)에 살던 친구들의 별명은 의레 “촌놈”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한 학년에 몇 명되지도 않았지만..... 불과(不過) 삼, 사십여 년 전의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곳의 미래(未來)를 꿈으로 그려보라! 그곳, 내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는 그 곳의 3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얼마나 희망(希望)차고 보람된 일인가!
아홉째, 우리가 꿈꾸는 저 푸른 초원(草原)위의 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한 전원주택이 “참 예쁘게 가꾸었구나.”하고 생각되는 집은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꿔 온 결과(結果)에서 얻어진 산물(産物)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고 믿지만 의뢰인들 중에는 가끔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런 예쁜 전원주택이 태어나는 걸로 착각(錯覺)을 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정원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정원 석 하나에도 주인의 정성(精誠)과 심혈(心血)이 깃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가끔 공원묘지(公園墓地)이나 공동묘지(共同墓地) 같은 곳을 찾을 기회(機會)를 갖는다. 이 분상(墳上)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는 분이구나! 아니면 돌아 가신지가 상당히 오래 되었구나. 등등을 묘지의 모양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묘지의 잔디 등의 관리(管理)상태(狀態)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잔디가 잘 가꿔 진 묘지는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는 의미 일게다. 이렇듯 우리가 꿈 꾸어온 언덕위의 하얀 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염두(念頭)에 두시길 바란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 가족의 손때가 묻은 사랑이 베어 들어 갈 때 진정(眞正)한 멋진 우리 집, 예쁜 우리 집이 탄생(誕生)하는 것이다.
끝으로 전원주택부지나 전원주택을 구입할 때는 큰 도로에 너무 바짝 붙어 있다던가, 울창(鬱蒼)한 나무숲으로 집이 가려져 있다거나, 허허벌판에 있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부지(敷地)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원주택 부지로 적합(適合)한 땅은 어떤 땅인가?
♤ “전원주택부지로 좋은 땅 열한 가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미 언급(言及)한 얘기들을 정리해 적어 볼까 한다.
1) 지세(地勢)가 남쪽으로 향한 땅.
2) 도로보다 지형이 높고 전망(展望)이 트인 땅.
3) 주변이 아늑하게 느껴지거나 편안(便安)함을 주는 땅.
4) 주변에 혐오시설(嫌惡施設)이 없는 땅.
5) 자연(自然) 마을과 너무 멀지 않은 땅.
6) 뒷산이 완경사로 된 땅.
7) 지적도상에 도로(道路)가 있는 땅.
8) 지하수(地下水) 개발에 어려움이 없는 땅.
9) 멀리 물이 보이는 땅.
10) 대로(大路)와의 접근성(接近性)이 용이(容易)한 땅.
11) 주변(周邊)이 새로 개발(開發)되고 있는 땅.
위에 나열한 조건에 100% 맞는 땅은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50%이상은 구비(具備)되어야 좋은 땅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소견(所見)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이유와 조건을 나열(羅列)해 보았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지을 부지 자체의 조건을 필자가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게 생각되지만 다년간(多年間)의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말씀드린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땅” “온화함을 느낄 수 있는 땅“ 을 구(求)하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다시 부언(附言)해 설명 드리자면 해당(該當) 부지를 보면서, 그리고 또 직접 부지 위를 내 발로 밟아 보면서, 또 주위를 살펴보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땅이라면 내가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그런 땅이 아닌가 싶다. 분명히 찾아보면 그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땅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本人) 자신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그곳이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명당(明堂) 터이기 때문이다. “ 내 느낌에 편안 한 땅!”이... 이것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근본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감히 생각해 본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으로 초대면(初對面)을 했을 때도 무언가 끌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마련 아닌가? 내가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과 나에게 무엇을 주어도 받기 싫은 사람이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힘들여 온 길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왜 돌아가는가?”
전원주택은 우리가 생각하듯 무릉도원(武陵桃源)만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전원생활이 어린시절 읽은 동화(童話)나라에나 나오는 시골풍경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았던 도시와는 문화(文化)가, 정서(情緖)가, 그리고 모든 환경(環境)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나라고 못 살겠어” 하고 시작하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의 전원생활은 대체적으로 원만(圓滿)하다. 그 분들은 소시적(少時的)에 시골을 경험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의 사대문 밖은 다 시골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가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돌아가는가? 필자가 그동안 보고 느낀 점 몇 가지를 나열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론(反論)을 제기(提起)해 볼까 한다. 그러나 필자 자신도 보통의 젊은이들에겐 전원생활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는 일부 동감(同感)한다는 솔직한 고백을 전제(前提)로 한다.
1). 출퇴근이 용이(容易)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계산이 아닌 거리상(距離上) 계산으로. 사실 시간적으로 말하자면 그리 많이 걸리는 시간은 아니다. 물론 어디로 출퇴근 하느냐가 관건(關鍵)이긴 하지만 대개의 젊은이들은 시간상이 아닌 거리상으로 본 관점(觀點)인 것 같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명일동에 사는 필자의 동서는 마포 귀빈로로 출근 하는데 출발시간을 잘못 잡아 집을 떠나면 한 시간 삼십분에서 하물며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단다. 그래서 차량통행이 뜸한 새벽시간에 회사 근처로 가서 가까운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아침식사도 그 부근에서 해결하는 조금은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고, 지금은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하게 다닐 수 있지만, 차를 필요로 하는 직업인이라면 아직도 이 경우가 해당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다시 도시로 떠나려는 사람들의 말로는, 도시로 출, 퇴근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제일 불편한 요인(要因)이라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 에서는 가까운 거리라도 많은 시간을 버리고 다녀야 하지만 시골에서는 먼 길도 상당히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다는 잇 점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출퇴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말은 그냥 핑계일 뿐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멀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게다.
2). 편의 시설의 부족과 문화생활에의 갈증(渴症).
도시에선 츄리닝 차림으로도 편의시설(便宜施設)을 다니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었지만 전원생활에선 어디를 가나 거의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도시 생활에선 대문 밖에만 나서면 모든 편의시설들이 즐비했지만 전원생활에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꽤 오래전 일이다. 처음으로 미국에 갔을 때 친구네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식료품(食料品)을 산다거나, 꼭 필요한 생활용품(生活用品)을 구입하는 것을 주중(週中)에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주말(週末)을 이용하여 대형 마킷에 가서 적어 놓은 물품들을 차분히 구입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 생활이란 그렇게 편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살아보지 못했으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전원생활이 꼭 닮은 꼴이다.
전원에서 얼마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그 친구네 생활이 너무나 합리적(合理的)이고 긍정적(肯定的)이란 생각이 든다.
첫째는 많은 과소비(過消費)를 줄일 수 있어 좋고,
둘째는 참을성(忍耐)을 기를 수 있어 좋고,
셋째는 준비성(準備性)을 남모르게 키울 수 있어 좋은 게 아닌가?
지금은 많이 좋아 졌지만 필자가 이곳으로 처음 내려 왔을 땐 모든 것이 불편함 그 자체였다.
지하수의 모터가 고장 났을 때, 보일러가 작동을 안 할 때, T.V 안테나를 설치하지 못해 몇 개월을 시청 못 했을 때, 목재나 건축자재를 조금만 사려해도 먼 길을 가야 할 때 등등 수(數)도 없이 많이 있지만 생략(省略)하기로 한다. 도시 같으면 전화 한 통화면 만사가 O.K되던 일들이다.
그러나 편하지 않음이 발명을 낳는다고 했던가? 지금은 모든 일들을 거의 직접 처리 하고 있다. 전문적이거나, 잘하고, 빨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반풍수 노릇은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불편했었기 때문에 얻은 산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시골은 원래 그 지방에서 토박이로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거의 모든 걸 자급자족(自給自足) 해 왔었지만 근래(近來)에 와선 많이 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나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선 수도권 지방에선 모든 것이 많이 급변(急變)하고 있다.
참고로 12년 전 필자가 이 곳에 처음으로 이주해 왔을 때 이곳에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아주 조그마한 수퍼마킷이 하나 있었다. 아침엔 늦게 열고 저녁엔 공무원 일과(日課) 시간과 같이 문을 닫기 때문에 그나마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 개인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말 그대로 구멍가게다.)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곳을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잘 열리지도 않는 미닫이 유리문을 여느라고 얼마나 여러 번 손톱을 다쳤는지!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산 과자를 도시 아이들은 “불량식품(不良食品)”이라고 먹지도 않았던 일이 아직도 뇌리(腦裏)를 스치며 쓴웃음을 짓게 한다.
12년간의 세월 그 수많은 변화(變化)를 어떻게 글로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그 만큼 세월(歲月)이란 수레바퀴는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 모든 걸 변화 시키는 것이겠지만 요즘의 변화는 옛날의 변화와 비교하면 도무지 분간(分揀)조차 할 수 없이 빠르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 한다”는 말은 이젠 맞지 않는 얘기다. “일년이라도 강산은 변 할 수 있다”로 바꿔 써야 하겠다. 과연 닥아 올 12년 후의 여기는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 초점(焦點)을 맞춰야 된다고 본다. 아마도 많은 서광(曙光)이 보이지 않겠는가?
밤의 문화를 중요시(重要視)하는 요즘의 젊은이들은 밤 9시가 조금 넘으면 암흑(暗黑)천지(天地)로 바뀌는 컴컴한 시골의 밤이 마음에 들 리 없다. 도시 같으면 한창 떠들고, 마시고하며 저 나름대로의 젊음을 즐길 시간대인데.... 그러니 밤에는 더욱 갈 곳이 없는 현재의 전원생활이 불만이다.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은 물론이요, 체육시설도 부족하기 마련이다. 돈을 들여서 하는 운동이야 말로 진정 운동이라고 느끼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돈 들여 운동할 마땅한 자리도 마련 해 줄 수 없을 정도로 취약(脆弱)한 것이 지금의 전원생활이기 때문이다.
3). 전원생활이 비즈니스에도 지장을 초래한다고 느낀다.
대개의 젊은이들은 이 곳으로부터 가깝던, 멀던 떨어진 곳에서 생활전선에 임(臨)하여 돈을 버는데 총력(總力)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저녁시간이 되어도 일은 끝나지 않고 잔업(殘業)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바로 거래 선의 접대(接待)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저녁식사와 같이 반주(飯酒)를 권하는 거래처 분들의 호의(好意)를 무시(無視) 할 수 없어 몇 잔 받아 마신다거나 아예 술 접대(接待)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골에 살게 되면 해넘이와 함께 버릇처럼 찾아오는 게 있다. 집과의 거리가 멀다는 데서 오는 강박감(强迫感)과 거기에 따르는 초조(焦燥)함이 바로 그것이다. 식사가 맛있을 리 없고 접대가 잘 될 리 없다. 젊은이들은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참아 넘기기 어려워한다. 이 문제만은 필자도 변명(辨明)의 여지(餘地)를 만들 수 없는, 긍정(肯定)할 수밖에 없는 부분(部分)이라고 솔직(率直)하게 고백한다.
4). 도시생활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받는 스트레스!
주 5일 근무는 전원주택이나 팬션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팬션으로 놀러 가는 것에는 신바람이 나도 전원주택에서 상주(常住)하는 건 꺼려한다는 것이다. 전원의 생활은 거의 모든 집안일을 손수 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내(堪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은 안, 밖으로 할 일이 너무 많지만 젊은이들은 쉬는 날에도 마땅히 할 것을 못 찾아 무료함을 느낀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개의 젊은이들은 쉬는 날에 더 고민(苦悶)이 많다.
그렇다고 늙은 부모만 두고 여행을 떠나자니 너무나 속 보이고..... 편한 자세로 T.V나 VIDEO를 본다거나 오수(午睡)를 즐길 수 도 없다. 도시에서는 쉬는 날 리모컨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성가시게 생각했던 “편히쉬어!” 자세(姿勢)의 생활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밖에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몸살 나는 어른들이 이일 저 일을 분주(奔走)히 하고 계시고, 어른들이 손수 일하시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정서(情緖)가 아닌가?
이 기회에 어른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제발 자식들이 쉬려고 할 때 방해(妨害)되는 일은 하지 마시길 바란다. 거의가 어른들을 핑계 삼아 전원생활을 시작한 가정이 많으므로, 젊은이들에게도 너무 부담(負擔)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 오면 비설거지해야 하고. 비 오고 나면 뒷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눈 오면 눈 치우기. 얼음 얼 때면 얼음 깨기. 미끄러운 길 흙 뿌리기. 잔디 깎기. 가지치기. 나무 심기, 버팀목 해주기, 얼지 않게 새끼 묶어 주기. 씨 뿌리기, 거름주기, 김 메어주기, 추수하기.(고추 말리기. 우거지 만들기. 김장하기......) 짐승들 돌보기. (절대로 그냥 예쁘게 커 주질 않는다.) 낙엽 치우기. 잡초 뽑기. 어디 그 뿐이랴!
지하수 모터에 보온 덮개 하기. 기름보일러에 기름 넣기........... 모든 고장 난 것 고치기. 하고자 하면 일은 밤이 되어도 끝이 없는 게 전원생활이다. 이런 일들은 도시에 살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일들이다. 물론 단독주택에 사시던 분들은 조금은 경험하셨겠지만. 어른들이라면 소일(消日)거리가 있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젊은이들은 직장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을 쉬는 날에는 그냥 푹 쉬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할 일은 많고, 어른들은 그 일을 하고 계시고, 나는 쉬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기에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어른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을 피해서 하시라고 당부(當付) 드리고 싶고, 꼭 해야 할 일들이라면 젊은이들이 푹 쉬고 난 다음에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들도 푹 쉬고 나면 여기 저기 어슬렁거리며 무엇이던 할 일을 찾는 것이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들의 본성이기도 하지 않는가? 어른들은 이 때까지 참기 힘이 드시겠지만 참고 견디셔야 한다. 그리고 이 때를 이용하여 “나 이거 좀 도와줄래?”하고 청한다면 흔쾌히 그 일을 시작할 것이고 이렇게 자발적(自發的)으로 하는 일이야 말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취미나 관심(關心)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정(家庭)이라는 울타리는 모든 가족이 다 같이 편해야 되지 않겠는가?
5). 열악(劣惡)하다고 단정(斷定) 짓는 교육환경!
전원을 떠나 다시 도시로 U-Turn하는 젊은이들의 십 중 팔,구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삼는다. 교육열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로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은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양질(良質)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과는 많은 괴리(乖離)가 있다는 것을 부정(否定)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묻고 싶다. 양질(良質)의 교육이 같은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글자 하나 더 먼저 알고, 영어 단어 한자 더 외우고, 수학문제 몇 개 더 많이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내심(內心) 필자의 말에 동의(同意)를 하면서도 실제로 안 되는 것이 자녀들의 교육 문제인 것 같다. 더 더구나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면(面)단위에서도 공부 할 수 있지만 고학년(高學年)으로 올라갈수록 인근 도시로 통학(通學)을 해야 하는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뒤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점들이 젊은 부부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도시의 학교생활보다 훨씬 좋은 면(面)도 많이 있다는 것도 인정(認定)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필자가 보고 느낀 몇 가지의 장점(長點)들을 적어본다.
첫째, 전원생활을 하는 어린이들은 건강(健康)하다.
도시의 아이들 보다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전원생활은, “자연(自然)“이라는 아주 멋진 벗을 만나게 해준 시골생활은, 우리 아이들을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히 건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준다.
둘째, 저절로 하는 자연, 사회생활(社會生活) 공부.
계절의 변화(變化), 동(動), 식물(植物)의 성장과정 등등이 체험으로 얻는 자연 공부라면, 명절(名節) 때면 어김없이 치르는 동네행사인 척사대회나, 널뛰기, 그네뛰기, 제기 차기 등등의 놀이는 우리나라 민속의 산 역사를 배우는 사회교육장이다. 이 밖에도 이루 다 나열(羅列) 할 수 없는 저절로 얻어지는, 그 러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공부들이 수(數)도 없이 많이 있다. 도시 같으면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전원의 어린이들은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깍듯이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예의도 바르게. 착하기도 하지! 방학 때면 청학동으로 예절(禮節)공부를 떠나야하는 번거로움을 전원의 아이들은 실생활에서 터득하면서 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 편협하지 않는 아이들.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보단 마음이 아주 넓음을 우리는 본다. 신비(神秘)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그러나 한 번도 같은 것이 없는 자연은 우리 아이들에게 일상의 권태(倦怠)를 잊게 하고, 인내(忍耐)를 가르치며, 그것을 통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 진정한 사랑은 자연스레 항상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는 소박(素朴)하고 진정한 가족사랑에도 연결된다. 가족사랑을 깨닫는 것만큼 큰 보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얻은 진실 된 사랑을 이들은 자라면서 모든 것에 나눈다. 이런 사랑을 아는 아이들이 편협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 너는 너!” “나는 나!”식의 개인주의가 팽배(澎湃)한 도시아이들 보다 서로를 위하고 배려(配慮)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바로 전원생활 이다. 여기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넓지 않은 지역적인 환경 때문도 있을 것이다. 자주 만남이 이루어지면 서로를 더 잘 알게도 되고, 조금 사이가 안 좋았다하더라도 이내 풀리고 마는 것이 아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적은 인구와 좁은 동네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넷째, 상식이 많은 아이들.
학교와 학원으로 분주히 이어지는 도시 아이들보다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보는 것이 많은 전원의 아이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상식들을 많이 배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산지식(知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섯째, 친구(親舊)가 많다.
자주 이사를 다녀 사귈만하면 헤어지고 마는 도시의 아이들보다 몇 명 안 되는 반 친구는 물론이고 같은 학년친구와 전교생이 모두 선, 후배의 돈독(敦篤)한 정을 나눈다. 도시에서 만나는 시골학교의 동창회를 상상해 보라! 필자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아직 초등학교 친구들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도시인들의 자주하는 이사(移徙)가 가지고 온 결과(結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 열리는 이곳 초등학교의 동창회에 가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어서 까지도 얼마나 많은 정(情)을 나누고 사는가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친구도 같이 얘기라도 할 추억(追憶)거리가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동기 동창생(同窓生)이라고 다 친구일 수는 없지 않은가? 도시의 학교에서는 많은 동기동창생이 있지만 과연 우리는 그 중에서 몇 명과 친교(親交)를 나누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在京 xx 鄕友會” “在京 yy 鄕友會”는 고사하고라도 “在京 S다리 초등학교 同窓會”라던가 “在京 H다리 중학교 同窓會”같은 “在京“이 들어가는 모임을 우리는 신문지상으로도 자주 접한다. 그러나 “在경기도 서울 미동초등학교 同窓會”라던가 “在 전라도 수송 초등학교 同窓會” 이런 얘기를 들어 보셨는가? 아마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린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많다는 것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좋은가는 부언(附言)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믿는다. 지금 대통령의 측근(側近)들을 상기(想起)해 보자!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결국은, 나의 이상향(理想鄕)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온 길로 돌아가고 만다. 지금까지 얘기한 몇 가지 이유를 극복(克服)하지 못하고 결국에 가선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있다.
2대가 같이 내려 온 가정이라면, 젊은이 들은 다시 도시로 떠나고 만다. 늙은이들만을 남겨 둔 채로.......... 그러나 이들도 1년 정도의 시간만 인내(忍耐)하고 전원생활을 계속했다면, 이런 여러 가지 불만이나 불편을 안고도 전원생활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불편, 불만보다는 만족하는 부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못 참고 떠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동안의 시간은 아니지만, 그들이 발견한 전원생활의 좋은 점을 인정(認定)하고 나도 아이들의 학교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전원으로 돌아오리라는 마음의 각오(覺悟)를 굳게 한다.
3. 전원에 살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웰빙)
첫째, 전원주택을 단기 투자(투기)의 대상으로 삼지마라!
전원생활이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윤기(潤氣)를 나게 하는 생활,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여유스러움을 가져다주는 생활, 나와 나의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 곧 요즘 유행하고 있는 Well-Being이다. Well-being이란 ? 건강(健康)하고, 안락(安樂)하고, 만족(滿足)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란다. 행복(幸福), 안녕(安寧), 복지(福祉) 등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用語)로서, 물질적 가치(價値)나 명예(名譽)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신체(身體)와 정신(精神)이 건강한 삶을 행복의 척도(尺度)로 삼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어쩌면 전원생활(田園生活)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다. 그래서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向上)시키고, 또 유지(維持)하는데 그 목적(目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比較)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복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거기에 투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가?
6개월만 살아보라.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사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얼굴이 좋아 졌다던가. 건강해 보인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담배를 끊는 이 들을 자주 본다. 필자도 어릴 때 배운 담배를 끊은 지 오래지만....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내 몸이 더러워지고 또 대기(大氣)도 더럽히는 담배연기를 내 뿜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한 달이면 몇 번씩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두 시간 정도로 정해 놓았다. 그것은 서울에 가서 그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눈이 찝찝해지고, 코가 막히며, 심지어는 마구 짜증까지 난다. 도시의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도 매연의 숨 막힐 것 같은 내음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젠 시골 공기에 푹 빠져 버렸나 보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지친 몸도 전원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생기가 나는 것은 웬일일까?
아주 오래 전 서울 살 때 일이다. 시골의 친지 어른께서 방문하셨는데 삼일도 체 되지 않았는데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내려가야겠다.”고 하신다. 그 때만해도 왜 그러시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젠 실감(實感)이 난다.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는 몸이 불편(不便)한 분들이 많은 있다. 처음엔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보이던 그 분들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는 걸 직접 우리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만큼 맑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 몸에 좋은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일면(一面)이다.
내친김에 우스개 소리를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잘 안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술을 끊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 끊기 어렵다는 담배도 끊었는데 말이다. 허기야 끊으려고 하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지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같이 숨을 쉬고 있노라면 술 생각이 난다. 그 자연을 안주삼아 마시는 몇 잔의 술맛이란 마셔본 사람들만이 아는 특별한 체험 일게다. 이런 얘기하니까 꼭 주태백이 같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독자들은 너무 걱정하실 건 없다. 도시에서 마시던 주량(酒量)보다 조금 과(過)해도 술이 깨는 속도(速度)는 도시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술이 빨리 깬다는 말이다.
가끔 야유회(野遊會)를 가서 술을 드셔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이것도 우리는 잘 느끼지 못 하지만 공기의 고마움 일게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오면 술이 안 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당에 모여 서서 삼겹살에 상추, 케일로 쌈을 싸고, 쑥갓과 마늘, 풋고추를 곁들여 입이 찢어지게 벌리고 먹는 맛이란?!!! 아! 여기에 어찌 술이 없을 소냐! 그러나 이것을 쓰면서 이젠 술도 더 줄여야겠다고 마음을 도사린다. 이 좋은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기에. 오래 못살면 어떤가? 건강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원생활을 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좋은 버릇 하나가 있다. 도시에선 그렇게도 안 되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가 저절로 된다는 말이다. 거리관계상 아침은 더 부지런해야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먼동이 트기도 전부터 움직이는 농사일하는 분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히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러니 일찍 자게 될 수밖에 없다. 일찍 일어나 텃밭을 손질하는 일이나 새벽에 뒷동산에 올라 약수 한 컵을 마시는 일. 이런 추억들은 죽을 때 까지는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얘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렇게 삶의 질(質)만 가지고 따지다 보니 전원주택은 전혀 투자가치가 없느냐하면 그렇지 않다! 농지(農地)를 사서 전원주택을 짓는 그 자체(自體)만으로도 투자가치는 급상승(急上昇)된다. 우리가 구입하는 토지는 대체적으로 농지나 임지일 경우가 많은데, 이런 토지들은 지목이 대지(垈地)인 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많이 저렴(低廉)하다.
그러므로 이 땅에 전원주택을 건축하게 되면 농지나 임지가 대지화(垈地化)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다른 것은 다 차치(且置)하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재산의 증식 효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더 더군다나 손해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건강을 위한 투자와 재산의 증식을 환하게 보여주는 투자라면 확실(確實)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두(序頭)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투기를 목적으로 한다면 전원주택을 선택하시는 것은 삼가시는 편이 좋을 것이다.
둘째, “집도 너무 크면 짐이다.”
“우와! 저 집은 식구가 많은 집인가 보다!“ ”저렇게 큰 집을 짓는걸 보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만큼 규모가 큰 집을 짓는 것을 흔히 본다. 온 식구가 다 와서 살 것처럼 1층, 2층에 60평 정도를 짓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단독주택의 경우는 아파트와 달라서 거의가 전용(專用) 면적(面積)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파트 80평형 정도를 상상해 보시라! 얼마나 큰지! 커도 너무 크다! 전원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대개의 경우 두 식구가 사는 것이 보편적(普遍的)일 경우가 많다.
전원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집을 크게 계획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같이 오겠다던 큰 아들네가 슬그머니 아이들 교육을 핑계 삼아 꽁무니를 빼고 안 따라왔고, 둘짼 애시 당초 그냥 콘도로만 쓸 생각이었으니까. 결국엔 아들, 손자, 며느리는 다 안 오고 늙은 노친네들만 내려왔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 건축을 하는데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이 면적이 늘어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처음엔 자주 찾아오던 친지들이랑 친척들의 발걸음도 전원생활 1년쯤 지나면 뜸해 지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 큰집엔 머리 허연 두 양주(兩主)만 덩그렇게 남는다.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래서 그런지 벽(壁)에는 커다란 거북이 껍데기도 와서 살고 있고, 또 호랑이 가죽도, 커다란 어항에는 눈이 툭 불거진 붕어 몇 마리도지느러미를 흔들며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 심지어는 청둥오리의 박재까지도 같이 사는 것을 많이 본다.
그래도 쓸쓸할 것 같은 노인네들을 달래려고 멍멍이 몇 마리가 털을 휘날리며 노인네들 발에 채이면서까지 자식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달팽이의 집”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달팽이의 집(껍데기)이 달팽이 알맹이보다 많이 크다고 가정해 보자. 먹이를 찾으려 움직이기도 버거울뿐더러 다른 놈들이 들어와 실례도 하고, 하물며 어떤 놈은 거기다 둥지를 트는 놈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달팽이한테는 지금의 그 집이 꼭 맞는 집이다.
이렇게 하찮은 미물(微物)마저도 과욕(過慾)은 부리지 않거늘......... 우리도 달팽이의 지혜(智慧)(?)를 배워야 한다. 식구들이 많은 가족이라면 몰라도 집은 너무 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다. 그 많은 일을 누가 감당 하겠는가? 며칠만 그냥 두어 보라! 집 꼴이 어떻게 되는가를! 실내는 실내대로, 밖은 밖대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잔디는 수북하게 자라있고, 잡초는 잔디보다 더 잘 자란다. 2층엔 언제 올라갔는지 먼지만 쾌쾌히 쌓여 있어 청소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겨울 난방비는 왜 이리 많이 드는지! 난방을 안 하면 배관(配管)들이 얼어 터질까봐 안 넣을 수도 없다. 아! 아! 너무 큰집이 원망(怨望)스럽다.
셋째, “텃밭도 30평 정도면 충분하다.”
전문 영농인도 아닌 도시민들은 전원생활을 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부터 텃밭에 대해 더러 욕심(慾心)을 내는 분이 있다. 도시민들의 전원생활에선 영농(營農)을 한다 해도 키우기 쉬운 밭작물이 대부분인데, 막 이주(移住)해 온 전원생활의 초보자들은 텃밭에 대한 욕심이 처음부터 대단해서 제법 큰 면적을 경작(耕作)하려고 시도(試圖)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영농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힘이 드는 노동이라는 건 물론이고 농사에 숙달된 농민들처럼 시간 맞추어 씨 뿌리고, 약도 주고,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고, 잎도 쳐주고 하는 등의 일들을 잘 알지도 못하려니와 안다고 해도 때맞추어 다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첫해엔 100평 정도를 고집하던 텃밭을 다음해엔 반(半)으로 줄이고 그 다음해엔 더 줄여야 했다. 도저히 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率直)한 고백(告白)이다. 그렇게 시행착오(施行錯誤)를 거듭하다보니 필자의 힘으로는 30평 정도가 적당하다는 걸 알았다. 이것도 영농(?)을 시작한지 3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봄에는 상추, 숫갓, 케일, 고추, 가지, 부추........등의 채소들을 심지만 이것들이 자라나서 먹을 수 있을 때가 되면 한꺼번에 크기 때문에 결국엔 다른 사람들이나 동기간들에게 처분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흐뭇한 보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뽑아 간 텅 빈 밭을 보면서 “무엇 하러 욕심을 냈는가?”를 후회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러면서도 다음 해가 되면 또 다시 마음은 변하고 만다. 힘만 닿는다면 많이 심어서 알고 지내는 친지들한테 골고루 다 나누어 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풍부해 지는 것이 전원에 사는 사람들의 풍요(豊饒)로울 수밖에 없는 마음일 게다.
넷째, “남이 만든 집이 나에게 잘 맞을 리 없다!
이것은 남의 옷이 나에게 안 맞는 이치(理致)와 다를 게 없다. 그 분들은 그 분들의 칫 수에 맞는 집을 지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남이 지어 놓은 전원주택을 고르기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전원주택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매물(賣物)의 숫자가 많지 않고 개인 건축업자(일반 집장사)가 지은 집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대개는 주인이 직접 살려고 지었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시 이주(移住)하는 분들의 집을 고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런 집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매물자체도 많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런 집이 있다 손 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원주택을 구입할 때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와는 많이 달라서 식구 수에 맞춰서 평형을 고르고, 구조를 선별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집의 구조뿐 아니라 외관(外觀)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란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 건축주의 가족의 수나, 취미 등으로 주택의 외모는 물론이고, 실내 구조가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너무나 부부 중심적으로 지어서 다른 식구들과는 생활하기가 어려운집. 식구는 적은데 쓸데도 없는 방의 숫자만 많은 집. 다른 구조는 다 조그마한데 거실만 너무 큰집. 땅의 넓이 보다 집만 덩그렇게 큰 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여튼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나와는 동 떨어진 그런 집들이 많다는 거다. 구조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인테리어는 더욱더 나와는 이질감(異質感)이 나는 그런 집들이 많다. 결국 이런 연유(緣由)로 전원주택을 내 집으로 맞이하기 위해선 나에게 맞게 새로 집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토지의 가격은 어떻게 형성(形成)되는가?”
보통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전원주택을 지으려는데 땅 값이 얼마예요?”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너무나 광범위(廣範圍)한 질문이라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전원주택을 지을 땅도 종류(種類)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류마다 값도 많이 다르다. 어떻게 그냥 시장에서 파는 물건 값 같이 쉽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땅값을 책정하는 몇 가지 요건(要件)들을 우선 말씀드릴까 한다. 토지의 가격(價格)산정(算定)은 “공법(公法)적인 요인”과 “자연(自然)적인 요인”이 복합적(複合的)으로 작용해 결정된다고 보겠다.
물론 여기에 경기의 좋고 나쁨, 또 정치적인 요인이나, 국제적인 정세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독자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분단국(分斷國)에선 북한의 태도(態度) 여하(如何)가 우리의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至大)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정치나 경제가 미치는 영향이 가장 민감(敏感)하게 작용하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라 하겠다.
공법적인 요인
1). 도시지역인가? 도시지역 밖(관리지역, 옛 준 농림지역)인가?
2). 도시지역이라면 일반주거지역인가? 녹지지역인가? 녹지지역이라면 자연녹지 지역인가? 생산녹지 지역인가?
3). 지목은 무엇인가? 대지인가? 전인가? 답인가? 임인가? 또 잡종지인가? 이루 다 열거(列擧) 할 수가 없다.
자연적인 요인
1).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2). 접근성은 어떤가? 주변도시와의 접근성은? 최소2차선 도로와의 접근성은? 승용차로서의 접근성은?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은?
3).주위환경은 어떤가? 주위에 혐오시설이나 주거를 방해하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아니면 들어설 예정인가? 어떻게 개발되어가고 있는가?
4).방향은 어떤가?
5).경관은 좋은가?
이외에도
소유권이전은 잘 될 수 있는가? 건축을 하기 위한 인, 허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도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규모(150평에서250평 사이)인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303평(1000㎡)이하인가? 이상인가? 원주민과 외지인의 비율은 어떤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직도 배타적인 원주민들이 있기에 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구(舊) 마을엔 외지인들이 땅 사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과 가까운 근교(近郊)에선 찾아보기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아직도 다 쓸어져가는 집이 더러 눈에 띤다. 의뢰인들은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저기, 다 쓸어져 가는 집하나 사 주세요!” 하는 분이 많이 계신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구옥(舊屋)이라 아주 싼 물건으로 오해(誤解)하시는 분이 많다. 그러나 그 구옥은 말 그대로 예전부터 있었던 집이라 그 땅의 지목이 “대지(垈地)”라는 점에 유의(留意)하시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값도 쌀 수 없다는 얘기다. 지목이 “대지“라는 것은 그 만큼 집을 짓는데 용이(容易)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그렇다면, 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땅은 어떤 땅인가?
우선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말하기 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방법부터 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 방법을 대별(大別)하면 땅을 사서 짓는 방법과 지어 놓은 주택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양분(兩分)할 수 있겠다. 요즘 같으면 전원주택 부지를 전문으로 개발하여 분양하는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여 짓는 방법도 있고, 또 완전히 지어 놓은 업체의 전원주택을 구입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들이 지어 놓은 집을 바로 구입 할 수도 있다. 농지(관리지역)를 사서 허가절차를 거쳐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고, 다 쓸어져 가는 옛날 집을 사서 리모델링해서 사는 방법도 있고, 농업용 창고나 심지어 축사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농지(農地)나 임지(林地)를 구입하여 전원주택을 건축하는 방법이 제일 보편화(普遍化)된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농지나 임지는 다른 토지에 비해 값이 싸다는 장점 대신에 땅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모든 인, 허가의 번거로움을 감내(堪耐)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생한 만큼 금전적(金錢的)인 면에선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많은 인내(忍耐)를 감수(甘受)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농지를 구입할 때에는 논보다는 밭을 사는 게 유리하다. 논은 대부분 낮은 곳이나 평지(平地)에 위치하고 있어, 집을 지으려면 성토(盛土)작업(作業)을 수반(隨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뒤편으론 인접한 야산이 있는 곳이라면 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조심하고 명심해야할 부분이 있다. 전원주택을 지을 부지를 조금 싸게 구입했다고 해서 전원주택 자체를 싸게 구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구입한 땅에 건축을 시작 할 때까지 들어갈 돈이 얼마인가를 잘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땅들은 절토를, 성토를, 축대를, 옹벽 등을 설치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들어가는 토목공사비가 만만치 않다. 이런 돈들이 추가로 들어가는 땅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애초에 그런 비용이 덜 들어가는 땅으로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일곱째, 이젠 도시민도 농지(農地)를 소유 할 수 있다.
정부는 2003년 1월 1일부로 “농지법 개정안”을 발효시켜 도시민에게도 일정규모 이하의 농지를 소유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까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법칙”이라 해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絶對)로 농지를 소유 할 수 없게 했었는데 그 법을 조금 수정하여 이젠 도시민에게도 “주말농장 용”이란 명칭으로 1000㎡(약303평)미만의 농지를 소유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처 들어오는 무역전쟁을 이길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농민들에게 농토를 매매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티어주어서 농민들의 원성(怨聲)을 조금이라도 피해보자는 당국의 얄팍한 속셈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 본다면 농민(農民)들을 위해서나,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서나 아주 고무(鼓舞)적인 변화(變化)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더구나 금년부터는 농가가 폐업을 희망할 경우 폐업보상금까지 지급 하겠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농지(農地)규제(規制)는 많이 풀릴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문제가 많다. 규제를 많이 풀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는 풀린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 손엔 사탕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엔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그런 형상이다. 요즘 연일 매스컴에 쏟아져 나오는 토지 정책들은 도저히 갈피(葛皮)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기 짝이 없다. 그럼 우선 확실하게 풀린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기로 한다. 예의 말씀 드렸듯이 도시민들의 주말농장용으로 약303평 미만의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한 것이 확실하게 풀린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규모의 농지는 거의 없기 때문에 빛깔만 요란한, 그냥 생색(生色)만 내는 그런 정책에 지나지 않다고 본다.
논밭이 한마지기 정도의 규모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래서 규모가 조금 큰 땅을 외지인들이 사는 방법은 여럿이 어울려 사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소유권이전을 하는데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렵게라도 사 둘 수만 있다면 다음 날 전원주택을 짓는데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처음엔 주말농장으로 이용하다가 시간이 되어 전원주택을 짓고 싶으면 그 때에 가서 모든 구비(具備)조건(條件)을 갖추면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중에 농림부장관이 아주 중요한 발표를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르면 내년부터 도시민의 주말농장용 농지의 구입이 900평까지 허용되고, 농지에 집이나 공장을 지을 때 면적제한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쌀 시장 개방과 더불어 농민들을 달래려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농지를 다른 용도로 이용 할 수 있게 함으로서, 도시자본을 농지로 끌어들이고 나아가서는 농민들의 일자리 창출(創出)을 돕겠다는 취지(趣旨) 일게다. 물론 이런 규제를 푸는 것과 농지의 전용과정에서 부동산 투기와 마구잡이식 개발이 우려(憂慮)되지만 죽어가는 농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니 숨은 뜻이 무엇이던 우선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면 무얼 하나?
온통 수도권은 “토지거래 허가지역”이란 걸로 묶여 있고 또 토지거래를 받아야 할 면적도 지금보다 반으로 더 줄인다니 정말 빛 좋은 개살구 정책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인 것을 당국은 모르는 걸까? 차제(此際)에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규모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도시민들에게 전원주택을 가질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조금 쉽게 전원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 물론 이것이 “투기”나 “난 개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先行)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97년부터 이 고장에 사는 C씨는 으리으리하게 큰 집에 농토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그런 분이다. 그런 C씨가 얼마 전 부근에 있는 농지를 구입했다. 물론 “토지거래허가“면적이 초과되어 허가관청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 허가는 반려(伴侶)되고 말았다.
두 자녀들이 아직 어리고 안 사람 되시는 분은 시골생활이 싫다고 하여 그동안 주-욱 C씨 혼자서 이곳과 서울살림을 병행(竝行)하고 살았었는데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주민등록이 같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 실제 생활하고 있고 재산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지인“이 아니라는 구실을 달아 ”토지거래허가“를 얻을 수 없었으니 이 얼마나 모순(矛盾)된 행정인가? 정말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또 이해 당사자는 얼마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겠는가? 상상을 해 보라! 결국 “토지거래허가”는 이 지역에서 가족모두가 6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득(得)할 수 없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오호! 통재라!
여덟째,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은?”
필자의 업소엔 만8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동호인주택을 지을 목적으로 방문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필자는 동호인 주택을 짓는 Team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 학교 동창들, 동문들, 직업이 같은 분들, 직장이 같은 분들, 형제, 자매들, 친목회 회원들 등등 마음이 맞는 사람들 끼리, 취미가 맞는 사람들 끼리, 지금도 이웃에서 같이 살지만, 전원으로 가서도 같이 살자고 모인 이웃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동호인 주택을 짓겠다고 찾아 왔었는데 지금까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라도 동호인 주택을 지었다는 소문을 들어 보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잖은가? 입지 선정에서부터 티격, 태격이다. 같이 모이긴 했어도 성격들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이기 때문에 쉽게 의견의 통일을 가져 올 수도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자금사정(資金事情)도 모두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일관성(一貫性)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추진력(推進力) 있고, 실력(實力) 있는 사람이 이 모든 일들을 기획(企劃)하고, 추진(推進)해야 되는데, 전문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거니와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러 가지 토지의 규제(規制) 때문에, 산림의 형질변경이나 농지의 전용허가가 까다로워서, 모든 일(허가, 건축 등)을 같이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이, 결국은 포기 하게 하는 줄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것 들 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아주 간단한 곳에 있었다. 어렵게 입지선정까지 마치고 부지의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다. 시골에서 주택을 지을 때는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산림은 형질변경을, 농지는 전용허가(개발행위허가)를 득하여야 하는데, 이 땅들의 면적이 들쑥날쑥 고르지 못하다보니 큰 것은 잘라야 하고, 작은 것은 붙여야 하기도 하고, 부지의 높고 낮음이 다르므로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필지가 나누어지게 되어서 이런 작업을 하는 자체도 어렵거니와, 억지로 작업이 끝날 시점이면,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필지와 나쁜 필지로 구분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친하던, 죽을 때 까지 같이 살자고, 옹기종기 모여서 천년만년(千年萬年)살자고 해놓고 이 문제에 봉착(逢着)하면 누구라도 일보(一步)의 양보가 없는 것이 우리 민족(民族)의 속성(俗性)인가 보다. 돈 많은 친구는 돈 많은 친구대로 좋은 부지를 갖고 싶어 하고,-돈을 좀 더 주더라도_ 돈 없는 친구는 오기(傲氣)로 라도 안 빼앗기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들의 본성(本性)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결국 어떤 모임은 이 일로 사이가 벌어져 모임마저도 깨어지고 마는 모습을 씁쓸하게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인, 허가와 건축을 거의 같은 시기(時期)에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모든 사정들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엔, 동호인 주택은 어느 한 사람이 주도(主導)하여 한 명씩 점차적으로 나누어 갖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업자들이 개발한 단지에 가서 서로 서로 마음에 맞는 부지를 고르는 방법이 현명(賢明)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홉째, “전용허가(개발행위허가)”나 “형질변경허가”를 득한 땅이라고 무조건(無條件) 좋은 건 아니다
농지나 임지가 많은 규제를 받으면서 전용허가(개발행위)나 형질변경허가를 득한 부지(敷地)들이 가격이 치솟았다고 매스컴에서 오르내리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1권역에선 더욱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보자.
“갑”(매도인)이 득한 허가(개발행위허가 또는 형질변경)를 “을”(매수인)이 바로 이전(移轉) 할 수 없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갑”이 득(得)한 허가를 “을”이 사용하기 위해선 “受 허가자 명의변경”이란 절차(節次)를 거쳐야 하는데, 이것도 처음 “갑”이 허가를 득할 때와 꼭 같은 과정(過程)을 밟아야만 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모든 자격(資格)과 조건(條件)이 맞는다면 그냥 검토(檢討)하여 명의(名義)를 이전(移轉)해 주는 것이 허가를 이전 하려는 사람이나 이 일을 처리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를 덜어 줄 수 있는 일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것은 허가를 이전 받는 사람은 “현지인”이라는 조건이 붙는데 이 “현지인”이란 조건이 아주 모순(矛盾)투성이 라는 것이고, 전원주택을 원하는 분들 중의 90%이상이 “현지인”의 범주에 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深刻性)이 있다.
그렇다면 “갑”의 이름으로 건축을 완료(完了)하고 등기를 필(畢)하고 다시 양도(讓渡)하는 방식으로 “을”에게 소유권이전을 해야 하는데 중복된 등기료(登記料), 파생(派生)될 수 있는 양도소득세는 어느 쪽에서 부담(負擔)할 것인가? 계약 당시에 이런 문제들을 자세하게 짚어 놓지 않으면 감당(勘當)하기 어려운 큰 문제를 야기(惹起)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이 중개업소 마다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어떻게든 마무리 되고 있긴 하지만.............
금전적(金錢的)인 고생은 물론 정신적(精神的)인 피로(疲勞)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 만큼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빨리 건축하고자 할 때는 부득이하게 기(旣) 허가를 득한 물건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허가를 득한 물건을 구입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마간의 편법(便法)이 가미(加味)되지만 안전하게 하려면 그래도 이 방법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소개 해 본다.
우선 계약과 동시에 주민등록 이전(移轉)을 현지(現地)에 하여야 한다. 집도 없는데 어디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겠느냐고 반문(反問) 한다면 필자도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위장전입”이란 불법적(不法的)인 것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허기야 우리나라 고관대작(高官大爵)들도 다 “위장 전입”으로 치부(致富)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라고 못 할리 없지만 준법정신(遵法精神)이 투철한 우리 민초(民草)들에겐 여간 꺼림직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허가를 담당한 공무원들이 실제(實際)로 거주(居住)하는가를 실사(實事) 한다고 하니 겁(怯)까지 왈칵 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행정(行政)의 모순(矛盾)의 일면(一面)을 볼 수 있다. 아직은 땅도 없고, 집은 더욱 더 없는데 주민등록을 옮기고 실제로 거주하여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 투기(投機)를 방지하고,
난개발(難開發)을 막겠다는 의도(意圖)에서 나온 졸속(拙速) 행정이지만 악법(惡法)도 법이니 우리는 지켜야 한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는 하여야하고 위장전입은 불법이라고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필자도 여기에서 자세하게 쓸 수 없는 것을 양해(諒解)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 뜻이 있으면 길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잔금(殘金)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잡아 계약하는 것이 유리(有利)하다. 보통은 한달정도의 계약기간으로 모든 거래는 끝나는데 조금이라도 날짜를 늦춰서 잔금을 치르는 것이 시간을 버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래는 끝났지만 소유권(所有權) 이전 등의 행정적(行政的)인 절차(節次)가 많이 남아 있으므로 될 수 있는 데로 그 사이를 좁히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거래를 알선한 중개업자가 가운데서 중재(仲裁)를 하니까 큰 염려는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만사(萬事) 불여(不如) 튼튼이라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건너야 실수(失手)가 없다.
그리고 잔금을 치른 후 건축공사를 시작하라. 물론 매도인의 양해(諒解)가 이루어 진다면 잔금 전에도 공사를 시작 할 수 있겠지만, 잔금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먼저 건축을 하는 것을 용납(容納) 안하는 매도인도 있을 수 있으니 계약 시에 짚어 두어야 한다. 이렇게 공사를 하다보면 6개월이란 거주(居住) 기간(期間)이 넘어 “현지인”으로의 자격(資格)을 갖추게 된다. 이때 “受 허가 자 명의변경”을 하면 된다. 아무 하자(瑕疵)가 없다고 사료되면 약20일 정도면 허가 자 명의변경을 받을 수 있고 그 허가증을 첨부(添附)하여 내 명의로 토지의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고 다시 건축 준공을 하여 등기를 필(畢)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조심하여야 할 것은 잔금을 치른 후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든 (허가 자 명의변경이나 소유권이전등기) 정리가 되므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매도인에게 받아둘 서류 및 취해야할 조치(措置)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구(長久)한 설명을 드렸지만 읽으시는 분들은 잘 이해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된다. 하여튼 이렇게 까다롭다는 사실만을 주지(周知)하시라는 뜻에서 장황(張皇)한 설명을 드리는 것이니 허가를 득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잘 따져 본 후에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열째, “농가주택(구옥, 폐가)의 리모델링”
얼마 전 다 쓸어져 가는 구옥 한 채를 依賴人에게 소개했다. 물론 그 의뢰인은 처음부터 그런 집을 원 했었다. 누가보아도 을씨년스러웠던 그 집. 여러 사람들이 보았건만 대책이 없던 그 집. 이렇게 옛날에 지어 지금은 낡아버린, 그냥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쓸어 질 것 같아 보였던 집을 보면 보통의 의뢰인들이면 거의 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번의 의뢰인은 달랐다. 본인이 꼭 원하던 물건이라는 거다.
그 동안 여러 의뢰인에게 이 집은 뼈대가 튼튼하여 리모델링만하면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집으로 변신(變身)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수(數)도 없이 했건만 도무지 용기(勇氣)가 안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요번 의뢰인은 쾌(快)히 구입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하여 쉽게 거래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내 공사를 시작했고, 벽채가 헐리고, 용마루와 기둥만 남았다. 너무 낮은 옛집을 그대로 뼈대를 키워 요즘 주택의 키로 변신시켰고, 차양(遮陽)이 있던 곳에 버팀목을 써서 평수도 늘렸다. 조그마한 창문을 큰 창문으로 바꾸었고, 지붕에는 예쁜 기와를 올렸다. 지금은 이 집이 얼마나 예쁜 집으로 변신을 했는가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이렇게 너무 낡아서 쓸모없어 보이는 시골집을 고쳐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로 지은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한 분위기와 투박한 질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이 없는 그냥 대지 값만을 쳐서 주고 샀으니 땅 값은 같다고 치더라도 집을 짓는데 평당 300만원은 든다고 생각하면 30평짜리 집이면 9000만원인데 단돈 3000만원에 고풍(古風)스럽고 아담한 흙집을 완성했다. 가장 중요한 집의 뼈대를 그냥 사용했기 때문이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살려서 쓰는 지혜(智慧)! 얼마나 멋진 생각이며, 얼마나 값진 투자인가? 사람의 머리는 쓸수록 빛이 나나 보다. 그래서 누가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제창 했던가?!
열한째, “토지거래 허가제”와 “규제법”들.
말 그대로 “규제법(規制法)”이란 “.......하면 안 된다.”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의 말이다. 필자도 자세히 모르던 토지규제법이 참여정부의 “토지규제를 과감히 풀겠다”는 정부의 발표와 함께 각 부처로부터 발표한 “토지 규제법”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건설교통부가 28개, 환경부가 18개, 산업자원부가 15개, 행정자치부, 농림부가 각각 10개, 국방부, 해양수산부가 각각 8개 ........등등 모두 112개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랄 사실은 이 법이 요술(?)을 부리면 자그마치 315개 정도의 중복된 규제로 둔갑(遁甲)을 한다는 말이다.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과감히 푼다고 하니 정말 반갑다.
우리의 어린 시절 어른들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물가에 가지마라!” “높은 산에도 가지마라!” “나무에 오르지 마라!” 등등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건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토지에 관한 법들이 그 때의 부모님들을 꼭 닮았다. 무엇을 해준다는 법이 아니라 이래서 저래서 못해 준다는 법이다. 모두가 네가티브한 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바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이건 여기까지는 되고 저건 저기까지는 된다”는 식으로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그래도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요즘 신세대 부모들같이 무엇이던지 다 O.K해서 아이들을 버릇없는, 공중도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하도 어렵고 가지 수가 많은 규제법들 때문에 정작 땅을 갖고 있는 땅주인도 자기 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작년에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의 값을 잡기위하여 투기지역, 투기과열지역을 정하고, 투기가 예상 되는 지역을 미리 공개하는 등으로 규제법을 발표하고 또 토지로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하여 토지에 대하여는 “토지 거래 허가 지역”이라는 것으로 발을 묶어 놓았다. 말 그대로 토지를 거래하는데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허가라는 것은 결국은 땅을 사는 목적이 투기냐? 아니냐? 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판단의 기준이 아주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현지(같은 시, 군, 구)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땅을 살 때는 모두가 투기로 간주하고 “토지거래허가”자체를 안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모순 덩어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전원주택 한 채를 지으려고 땅을 사는데 투기는 무슨 투기란 말인가! “자라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정부에선 서울의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니 수도권의 땅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미리 방패막이를 한 것이다.
“현지거주“나 ”현지인“에 대해선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토지거래허가지역“은 어디 어디인가를 탐구해 보기로 한다. 이 “토지 거래 허가 지역”은 수도권에서는 경기도 일원이 거의 포함되는데 더러 빠진 곳도 있다.“수도권”이란 서울특별시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그 주변지역을 말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주변지역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 일원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토지거래 허가지역에서 빠진 곳은 “남양주시의 일부” “용인시의 일부” “안성시의 일부”와 처음에 같이 지정되었다가 풀린 “양평군”이 있다. 그러나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서도 예외가 있다. 말하자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땅도 있다는 말이다.
주거지역- 180㎡(54평) 상업지역- 200㎡(60평) 공업지역-660㎡(200평) 녹지지역- 200㎡(60평) 농지 - 1,000㎡(303평) 임지- 2,000㎡(605평) 이하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지만 어디에서 요런 조그만 자투리땅을 찾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다 며칠 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허가를 받아야 살 수 있는 땅의 면적을 지금의 반(半)으로 줄이겠다니 또 기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이라면 주거지역 27평, 상업지역 30평....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정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보신 바와 같이 농지(관리지역)를 구입하여 전용허가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 가장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인데, 303평 이상의 토지는 “현지인”이 아니면 토지거래를 허가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不可能)하다. 이것은 곧 소유권이전 등기를 함으로서 얻어지는 권리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와 같다. 다시 말하면 토지의 거래 자체를 막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현지인이라면 얼마든지 토지를 구입 할 수 있는데 “현지인“이란 용어가 너무나 난해(難解)하고, 또 중요해서 여기에 옮겨 적을까 한다. 이 용어는 환경부고시 2000-120호에 의한 것인데, 여기서 “현지인”이라 함은 “세대주를 포함한 세대 원 전원(全員)이 당해(當該)지역(地域)에 주민등록이 되어있고 실제(實際)로 거주(居住)하고 있는 자를 말하고,“
“세대(世帶) 원(員)”이라 함은 “세대주와 동일(同一)한 세대별 주민등록표상에 있지 아니한 배우자와 미혼인 직계(直系)비속(卑屬)을 포함하되, 다만 세대주 또는 세대 원 중 취학, 질병요양, 근무지이전 또는 사업상 형편 등 불가피(不可避)한 사유(事由)로 인하여 당해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자만 제외(除外)된다.“ 고 되어있다. 참으로 어려운 단어 들이고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많은 것 같이 보인다. 누구나 불가피한 사정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해석하는 담당 공무원의 말씀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환경부의 고시(告示)는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지역 1권역에서는 건축허가 또는 건축허가를 위한 개발행위 허가 등의 인. 허가를 신청 할 경우에 많이 적용(適用)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법이다. 대체로 우리가 건축을 하려 했을 때 적용되는 법이 어마 어마하게 많은데 이곳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지역1권역에서의 규제법들은 다음과 같다.
한번 나열해 보자!
우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있고, 그 다음이 수도권 정비 계획법으로 큰 틀이 마련되면, 건축법, 농지법, 환경정책기본법,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그 외에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의 고시들, (환경부에서 정한 여러 가지가 있음) 상수도보호구역법, 한강수계 법, 수변구역에 관한 법, 개발 제한 구역 법 등등 중개업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도 솔직히 다 모를 정도로 많이 있다. 이런 규제법들이 전원주택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는 아직 지어보지 못한 분들은 도저히 이해하실 수가 없겠지만, 지어본 분들이 “다시는 안 짓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헤아려 짐작이 가시리라 믿는다. 얼마나 많은 행정적인 까다로움이 있었는가를.
여기서 ‘상수도 보호구역법“과 자주 혼돈되는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에 대하여 언급(言及)하지 않을 수 없다. “상수도 보호구역법“은 ”수도법”에 근거를 두고 대부분 “개발제한구역”과 중복 지정되어 있어 실제로 현지인이 이축권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건축을 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 상수원 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은 “환경 정책 기본법“에 의거하여 고시된 것으로서 넓은 의미로서의 제약은 받지만 전원주택을 짓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참고로 “팔당 상수원 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에는 “1권역”과 “2권역”이 있는데 여기에선 “1권역”이 어디인가를 살펴보자!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1권역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제외), 조안면
여주군 능서면 (구양리. 번도리. 내양리. 백석리. 왕대리), 흥천면,
금사면, 대신면, 산북면.
양평군 양평읍, 옥천면, 강상면, 강하면, 서종면, 양서면, 개군면.
광주시 광주읍, 오포면, 초월면, 퇴촌면, 남종면, 중부면, 실촌면,
도척면.
가평군 설악면(천안리. 방일리. 가일리), 외서면(하천리. 청평리.
대성리. 삼회리)
용인시 모현면
지금 이 지역은 특수(特殊)한 몇 곳을 빼고는 토지 거래 자체를 허가 받아야하는 것 (소유권 이전)외에도 집을 지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허기야 이렇게 규제가 많기에 청정(淸淨)지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만약 여기에 이런 규제들이 없었다면 벌써 “자연보전권역”은 난 개발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필자가 달포 전에 직접 겪었던 씁쓸한 경험담(?)을 소개 안 할 수 없어서 여기에 옮기려고 한다. 그것은 이만큼 어려운 일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얼마 전 조그마한 상가(商家)를 하나 지으려고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그런데 현지인의 요건(要件)에 안 맞는다고 서류 보완 통보를 받았다. 이유인 즉 필자의 두 아들이 현지에 같이 거주하지 않아 “현지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 왜 같이 살지 않는가를 복명(復命)하는 증빙서류를 보완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일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 관련부서에서 원하는 대로 두 아들의 재직증명서를 첨부하기로 했는데 불행하게도 작은 놈은 작년 봄 유학을 가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지나간 재직증명서를 제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계부서는 엄격했다. 지금은 취업준비생으로 다니지도 않는 직장의 현재의 재직증명서를 첨부(添附)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다 복명하고 충분히 작년의 재직증명서(在職證明書)로도 가족이 떨어져 사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反問) 했으나 막 무가내였다. 필자는 1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부터 우리 두 아이들은 서울에 그냥 있어야만 했다. 학교 문제로... 그러다가 군복무로, 또 취업으로..... 그러다 보니 지금 나이가 만으로도 29, 30세 이다.
“결혼 안한 자녀들은 나이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란 질문엔 담당자들도 머뭇거리면서도 환경부고시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법대로 하라는 식이다. 필자는 내 이름으로 건축허가를 내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싫었다. 건축허가를 얻는 일보다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시작 했다.
우리 시에선 많은 얘기를 들었으므로 관계부처인 환경부로 질의를 했다. 그러나 어렵게 한 질의에 학수고대(鶴首苦待) 기다리던 답장은 너무나 간단했다. “2003년 4월 며칠자 민원 몇 호를 참조 하시오”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어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참조하라는 곳엔 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은 환경부고시2000-120호의 내용만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민원인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답변이 아니라는 것도 담당 공무원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소신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런 자리에 앉혀 놓고 일을 할까? 참을 수 없는 분노보다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 질의(質疑) 중이다.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처리 중“이라는 단어만 뜰 뿐이지만 언젠가는 정말 양심 있는 담당자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렇게 상식(常識)으론 풀이가 안 되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전원주택을 짓는데도 이 범주(範疇)에서 벋어 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
* 이 글을 쓰던 중 “국민고충처리위원회”로부터 답변이 왔다. 그러나 그 답변은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 같은 소시민(小市民)이 관(官)을 상대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져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 시켜주었을 뿐이다. 실망 또 실망이지만 어떻게든 이렇게 그냥 물러서진 않겠다. 다음은 “신문고”를 두드릴 차례다.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해서라도 꼭 바로잡겠다는 생각뿐이다. “악법(惡法)도 법(法)“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아는 일이지만 그것이 악법이라는 것을 알고도 바로 고치지 않는 행정관청이 원망스러워서라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열두째, “시골에서 살려면!”
1).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두드려 주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먼저 열어라“는 말 대신 필자는 ”열고만 있지 말고, 직접 가서 두드려라” 라고 외치고 싶다. 전원에 와서 생활을 시작하다보면 예전부터 그곳에 살던 분들의 살가운 정(情)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배타적(排他的)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지금 와선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이곳 원주민(단어 표현이 좀 이상 한 것 같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지인 대신 이 단어를 쓴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도시 사람들한테 너무 많이 속아서 그렇게 무뚝뚝해 졌단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하고, 거들고 싶어 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도시 사람들이 많이도 괴롭혔나 보다. 최소한 이 곳 사람들이 느끼기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저리도 마음의 문을 안 여는걸 보면...... 사실 무뚝뚝하단 표현은 좀 나은 표현이다. 아주 냉정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건방지다고나 할까? 사실 말투 자체가 위, 아래가 없는 말투고, 외모로 봐서 나이 차이가 비슷하게 느껴지면 그냥 맞먹고 놀자는 투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唐惶)스럽다 못해 황당하기 까지 했다. 옛날에는 순박(淳朴)하고 정(情)이 많았던 시골 사람들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고도로 발달된 매스미디어는 도농(都農)간의 격차(格差)를 좁히는 구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도시인에 비해 때가 묻지 않았다고 생각하다가 실제로 겪어본 시골 사람들의 배타적이며, 도시인들 뺨칠 정도로 똑똑한 것에 많이들 놀라곤 한다. 아니! 시골 사람들이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기 보다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無視)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나 부동산과 관계된 일에 대해선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다. 최소한 도시인들 보다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선 말조심, 입 조심하라고 당부 드리고 싶다. 알아도 모르는 척, 조심하시고 그 분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 또 도시인들은 대체적으로 사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생활한 사람들에 비해 시골사람들은 비사교적이고 약간은 폐쇄적(閉鎖的)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필자도 처음 내려왔을 때, 보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 보려고 여러 번 노력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반응은 “왠 놈이 인사를 하는 거야?” 식으로 의아스런 표정들뿐이었다. 나이가 한 참이나 적은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많고 깍듯한 인사를 했던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 위, 아래를 찾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은 필자가 이곳에 처음으로 이주했을 당시의 대화 내용의 일례이다. 부근에 사는 아저씨께 “고추는 언제 심으면 되죠?“하고 물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이 심을 때 심어!“가 그 대답이었다. “남이 똥 장군 지면 너도 지라”는 그런 뜻일 거라는 건 알겠지만, 그리 기분 좋은 답변(答辯)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오래 살다 보니까 그 말뜻을 통감(痛感)하게 되었다. 그 말뜻을 다시 한번 잘 음미(吟味)해 보자!
얼마나 함축성(含蓄性) 있는 대답인가! 고추는 몇 월 며칠쯤에 심으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어떨 땐 기후 탓으로 며칠 차이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경험 있는 우리가 심을 때를 눈 여겨 보고 있다가 심으라는 그런 뜻이었을 텐데, 그 때는 무척이나 불쾌(不快)하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시골 사람들은 책임지는 말을 잘 하려들지 않는다.
공연히 안 해도 될 말을 했다가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럴게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나다 보니 “너는 너!” “나는 나!” 서로가 시큰둥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심중(心中)을 조금씩 알게 되고부터는, 도타운 정(情)으로 변해갔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이 고장에 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 발작 닥아 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겠다.
2).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아라!
또 시골에 살려면, 반드시 마을 공동체(共同體)의 구성원(構成員)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마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獻身)이라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볍게 생각하면 토지나 전원주택을 취득(取得)할 때, 또는 처분(處分)할 때를 위해서도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가져오는 불이익(不利益)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리라. 집을 지었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땅을 구입한 후라도 곧 바로 돼지 한 마리쯤 잡아 (돼지가 값도 싸고 여럿이 먹을 수 있어 좋다.) 동네잔치를 벌이면 좋다. “어떻게 돼지를 잡느냐?”고 물으실 필요는 없다. 그런 것쯤은 큰 돈 안 들어도 다 해결할 수 있고 마을 분들 중에는 그 방면(方面)에 전문가가 꼭 한, 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을 분들의 경조사(慶弔事)에도 될 수만 있다면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紐帶)관계를 넓히는데 많은 기여(寄與)를 한다는 것도 명심하시길 바란다. 전원생활에는 이른 아침 마을 확성기에서 “이미자씨”노래나 “주현미씨”노래가 귀가 따갑게 흘러나올 때가 한달에도 여러 번 있다. 그것은 분명 마을 “이장님”께서 마을의 공지사항(公知事項)을 안내하려고 하니 주민들은 들을 준비(準備)를 하라는 예고(豫告) 방송이다. 여름철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시간이라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나 위치에 따라 띄엄띄엄 들리는 곳도 있고, 그것이 문을 닫고 생활하는 겨울에는 더욱 잘 안 들릴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있는 날 방송을 잘 듣지 못하였다면 꼭 마을 회관이나 이장님한테 물어서라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시길 바란다.
그 방송은 필경(畢竟) “오늘은 동네 어떤 어른의 생신이니 아침 드시러들 오라”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을의 대동회 날이니 점심을 같이하자”라거나, “정월 대보름날 척사대회를 하는데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방송이거나, “비료나, 씨앗을 타가”라는 방송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원생활을 하는데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우리는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에서 많이 접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전원생활을 시작해 보니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땐 간단한 선물(先物)이라도 가지고가서 예를 갖추는 것이 전원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지 독자도 아시게 될 것이다.
“박카스‘한 상자면 어떻고 싼 ” 소주“몇 병이면 어떤가? 모든 것이 다 성의(誠意)가 아니겠는가! 옛말에도 “코밑에 진상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렇게 하찮은 조그마한 선물이, ---필자는 선물(膳物)이란 표현보다는 관심(關心)이라 하고 싶다.-- 얼마나 많고 커다란 인정(人情)이 되어 돌아오는 가를 여러분은 곧 실감(實感)하게 되실 것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3). 전원생활은 품앗이 생활이다.
“품앗이”란 국어사전에 이렇게 설명 되어 있다. “힘 드는 일을 거들어 주어서 서로 품을 지고 갚고 함” 전원생활은 아파트생활하고는 많이 달라서 이웃과 어떻게 융화를 잘 이루느냐가 전원생활의 필수 관건(關鍵)이 될 수 있다. 아파트에선 조금 섭섭한 일들이 있다 해도 서로 문 닫고 들어가면 에레베이터 안에서나 가끔 마주칠 뿐, 별로 크게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정(情)이 그리운 전원생활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집도 띄엄띄엄, 사람도 띄엄띄엄 그래서 시골은 적적하기 마련이다. 우선 이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먹한 감정을 오래 지니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외롭다. 또 무거운 짐을 들거나 가구를 옮길 때, 특히나 농사를 지을 때는 이웃의 아쉬움은 말 할 수 없이 크게 닥아 온다. 이렇게 전원생활은 서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어 사는 맛이 난다. 새로 담근 김치를 맛보라고 가져다주는 인심(人心)에 “요번에 동해안에 갖다가 사 왔다”고 아직 덜 마른 오징어 몇 마리를 건네는 풍부한 인심이 있는 곳이 시골이다.
시골에선 한해에 적어도 서너 차례 정도는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그런데 사실 외지(外地)에서 이주(移住) 해온 분들은 “남의 집 불보기”다. 그러나 이젠 이렇게 동네의 많은 분들이 모이는 장소에도 자주 참석하여 작은 성의(誠意)라도 표하면서 서로의 사이를 좁히는데 노력하는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 내 가족만 살려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면 잘 못 시작한 전원생활이다. 시골사람들과의 사귐이 없다면 전원생활을 하더라도 반쪽 전원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의 멋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 “말이 잘 안 통 한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버리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풋풋한 시골 인심을 맛볼 수 있어서 좋고, 또 여러 가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知識)도 얻을 수 있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반쪽 생활임에 틀림없다.
4). 담장을 낮춰라!
처음 전원생활을 시작한 분들의 대부분은 담장을 높이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철옹성(鐵甕城)을 만든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방범문제이고, 둘째는 사생활(私生活) 침해(侵害)를 이유로 드는 것이 대부분의 말씀들이다. 그렇다! 다 옳은 말씀들이다. 그래서 이사 오기도 전에 벌써 “X콤”을 단다, “Y”콤을 단다. 난리 법석도 아니다.
허기야 낮에는 남자들도 거의 집에 없는 시간이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선 부부싸움만 크게 해도 온 동네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그러나 전원생활에선 소리, 소리 질러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어찌 겁이 안 나겠는가? 그러나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X콤, Y콤 하던 물건들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돈이 아까워서도 작동(作動)시킬 수가 없다. 하루, 하루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겁(怯)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좀도둑 하나 들었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담장을 높이 친 그 다음부터 그 집과 이웃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壁)이 그 담장의 높이만큼 만들어 진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事案)이다. “지가 서울에서 왔으면 왔지.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저리도 높이 담장을 쌓아!“ “시골 놈들은 다 도둑놈인 줄 아나보지!” “지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몰라도 나도 땅 좀 팔면 지깟 놈 정도는 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사실 그렇다. 돈으로 따지자면, 요즘 시골 사람들이 어지간한 도시 사람들 정도는 된다. 땅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논 몇 마지기나 밭 몇 떼기만 있어도 몇 억대는 실(實)히 간다. 시골 사람들한테 돈 얘기 잘못하다간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꼴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얘기들은 이렇게까지 비약(飛躍)하고 만다.
이것도 이웃과 친교를 나눌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원래 시골에 사시던 분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 자체를 건방진 놈들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짓들이 더욱 더 그 분들과의 사이를 벌려 놓는다. 또 실제로 자기네들은 대문은 물론 방문도 잠그지 않고 다닌다. 가지고 갈 것도 없거니와 혹여 가지고 갈 것이 있다고 해도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意識)이 없다.
그런데 별 볼일도 없는 도시 것들이 내려와서 건방을 떤다.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를 걸어댄다. 이렇게 되면 전원생활의 첫 단추를 잘 못 낀 경우가 되니 조심하여야 한다. 대개의 도시 사람들은 주위와 조그만 불화(不和)만 생겨도 “법대로 하라!”는 식이지만 전원생활에선 법보다 훨씬 빠른 것이 순수(純粹)한 마음이고, 서로 의논하고, 타협(妥協)해 나가는 것이 일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따지기 좋아하는 도시사람들은 쉽게 해결 할 것도 그 좋아하는 “법“이고 ”따지는 것“ 때문에 망치는 것을 자주 본다. 서울서 내려온 K씨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원래 지목(地目)이 “대지”인 곳에 구옥(舊屋)이 있던 것을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하는 것이라 허가과정에선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다음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중장비(重裝備)가 들어와야 그 날의 공사를 하는데 골목길을 경운기(耕耘機)가 버티고 있고, 그 경운기 위에는 촌 노인네가 앉아서 “이 길은 내 길이니 못 간다.”고 하니 아연실색(啞然失色)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여기서 잠시 부언해 둘 말이 있다. 시골의 골목길들은 예전엔 다 논두렁, 밭두렁이던 것이 사람들이 살면서 차츰 넓어져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바로 이 노인네는 지금 이 길이 자기가 옛날에 내놓은 땅이니 다니지 말라는 생 떼(?)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땅값을 내어 놓고 길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어떠한 보상(報償)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 길을 통해서 몇 집이 새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도로에 문제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K씨는 우선 버럭 화(禍)부터 냈다. 그리고는 파출소에 연락하여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니 노인네는 파출소로 끌려가는 사태로까지 진전(進展)되고 말았다. 그러기를 두, 세 차례. 그러나 경찰관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같은 관내(官內)의 어른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법(法) 이전에 옳은 말이기도 하다. 법(法)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K씨만 속 터지는 일이 되었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중재(仲裁)에 나서서, 노인네 댁의 담장을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타협(妥協)이 일단락(一段落)되었고, 그 후 순조로운 공사로 전원주택에 입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K씨는 이런 말을 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요구였다면 그런 난리법석 떠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골에 처음 내려온 K씨로서는 우선은 겁이 났고, 그 다음은 이 참에 아주 혼을 내 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골생활은 법(法)으로는 문제없이 이길 것 같은 일들도 많은 시간과 정력(精力)과, 돈만 낭비 할뿐 소득(所得)은 없는 경우가 많다.
5). 오물(汚物)은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쓰면서도 필자는 겁이 난다. 시골 사람들을 오물로 표현한건 아닌데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오물이란 표현은 외지인이 집을 지을 때나 그 밖의 다른 일에도 사사건건이 시비를 걸어오는 예전부터 그 고장에 살았던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 큰일이 아니라면 아니꼽고 더러워도 참아내는 법(法)도 배워야 하겠다. 결국엔 그렇게 싸움을 하고 나서도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때의 앙금(鴦衾)은 쉽사리 가시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 웃으면서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을 배우게 된다. 될 수 있다면 내가 한 발 양보(讓步)하는 미덕(美德)을 보인다면, 그들도 다정한 마음으로 내게로 닥아 온다는 진리(眞理)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이런 분들의 대부분이 신고식(?)을 치르지 않은 분들이다. 땅을 구입했을 때, 아니면 건축허가가 났을 때, 그 때도 못했으면 건축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돼지 한 마리쯤 잡아서 막걸리라도 이웃에게 대접했다면 그분들의 자존심이 풀려서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는데. 결국 텃세를 톡톡히 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 돼지 한 마리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러나 그 돼지 한 마리가 시사하는 뜻은 크고도 많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필자가 시골 사람들한테 아첨(阿諂)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란다. 필자 자신이 못한 모든 것들이 후회(後悔)로 쌓여 이렇게 피력(披瀝)하는 것이라고 보아 주길 바라고, 불화(不和)로 시작하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도 풀리기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냥 시골에 살면서 느낀 바로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다. 처음부터 웃음으로 지나면 친할 수 있는 이웃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매일 매일을 등 돌리고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얘기다. 이웃주민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실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또 반대로, 간섭도 받지 않으므로 편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것은 요즘 아이들 말로 “천만의 말씀,만만의 콩떡”이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시골사람들과 어울려 우리가 지금껏 모르던 시골의 풍습이나, 농사짓는 방법, 들이나 산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정(情)을 쌓아가는 재미를 모른다면 전원생활의 많은 재미중 가장 큰 재미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전원의 생활이 은둔(隱遁)의 생활, 나만의 생활을 도모(圖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의 사회생활과 같은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우리는 사고(思考)할 수 있어야 하겠다.
4. 전원주택관련 간단한 용어 해설
“배산임수(背山臨水)란?”
말 그대로 앞내와 뒷산이 있는 곳. 의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땅이 이 배산임수형의 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급증(躁急症)은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야 하고 또 바로 앞으로 물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땅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배산임수(背山臨水)란 그런 것이란다. 그러나 풍수지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집 뒤편 저만큼 떨어져 산이 있고 또 집 앞 저만큼 물이 흐른다면 100점짜리 배산임수 형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런 말을 꼭 드리고 싶다. 뒷산이 버티고 있고 앞 내가 흐르더라도, 뒷산의 산세(山勢)가 온화(溫和)할 것이며, 내(川)의 물이 흐르는 속도(流速)가 너무 빠르지 않은 곳이 참으로 좋은 곳이라 하겠다.
前低後高(전저후고)란?
대체적으로 집을 지을 때 주 건물인 주택은 뒤편 높은 곳에 짓고 거기에 따른 부속사(附屬舍)나 정원(庭 園)은 낮은 부분에 위치하게 하는데, 풍수에서는 이런 모습이 상하좌우(上下左右)의 기상(氣像)이 조화(調和)를 이룬다고 하여 좋은 형상이라 부른다.
前搾後寬(전착후관)이란?
이것은 집으로 들어가는 데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도 풍수에서는 많이 따지는 것 중의 하나이다.
“한계(限界)농지(農地)란?”
경사도가 15도 이상이거나 집단화(集團化)(농지의 모여 있는 규모) 정도가 2㏊ 미만인 농지를 말한다. 풀어 말하자면 아주 산골짜기 같은 곳에 있는 농지로서 비탈지고 그 주위에 농지를 전부 합쳐도 6000평 정도도 안되는 그런 농지를 말하는데 아주 후미진 곳이 아니면 없다. 그렇지만 한계농지는 일반적으로 평지에 있는 농지보다는 값이 저렴하고도로만 있다면 개발하는데도 조금은 용이할 수 있고, 또 이런 곳에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산 밑의 아담한 집이 될 것이다.
“농지조성비(造成費)란?”
농지를 다른 용도(用途)로 바꾸는 사업자에게 정부가 징수(徵收)하는 부담금(負擔金)으로 2002년부터 “농지 전용 부담금” 이란 것과 “대체 농지 조성비”가 통합(統合)되어 “농지조성비”라고 부른다. 결국 나라에서는 이 돈으로 다른 농지를 조성(造成)하는데 사용한다는 뜻이다.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지정리가 안 된 농지를 전용(轉用) 하는 데는 ㎡당 10,300(평당 약34,0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농지취득(農地取得) 자격증명(資格證明)이란?”
농지를 구입하여 취득하려면 “농지 취득 자격 증명서”란 것을 발부(發付) 받아야 하는데 일종의 “영농 계획서(營農計劃書)”라 생각하면 착오(錯誤)가 없겠다. 그러나 이것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토지거래 허가구역 내에서의 농지는 1,000㎡미만은 이 증명서를 발부 받는데 그리 큰 문제가 없지만 이보다 큰 토지는 토지거래허가를 득하지 못하면 “농지 취득 자격 증명서”도 받을 수 없다고 보면 틀림없겠다.
참고로 토지거래허가는 시청이나, 군청의 민원실에서 받게 되고 “농지취득 자격증명서”는 읍, 면사무소의 농지담당부서에서 받는다. 그래도 지금은 취득하는 사람이 직접 농지관리위원 두 사람을 찾아다니며 확인을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지고 읍, 면장 등에게 직접 신청, 발급 받을 수 있어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거기에서도 얼마간의 부조리(不條理)가 있었으니 말이다.
“관리지역(준농림지)이란?”
지금까지 난 개발의 주범(主犯)이었던 준농림지가 2003년7월1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시행되면서 그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관리지역”이란 단어로 새로 태어났고 그 관리지역은 계획관리, 생산관리, 보전관리지역으로 세분화(細分化) 된다. (2007년까지)
“농지전용허가” 업무는 그동안은 “기초 자치 단체”의 “농지계”가 담당하던 것을 “개발행위 신고제”로 바뀌면서 담당부서도 “도시계”로 바뀌었으며, 농지를 전용하기 위해서는 기존(旣存)의 전용절차와 건축허가도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건축행위 규제도 더욱 강화(强化)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수변구역(水邊區域)이란?”
이것도 환경부에서 수립(樹立)한 “팔당호등 한강수계상수원 수질관리 특별대책”의 일환(一環)으로 팔당호와 남. 북한강 및 경안 천(川)의 양쪽 1Km∼500m이내 지역을 수변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지정, 고시하고, 상수원수질관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장, 축사, 음식점, 목욕탕 등 오염(汚染)물질을 많이 배출(排出)하는 시설은 새로 들어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팬션(Pansion)이란?”
프랑스어 빵숑에서 유래된 팬션은 호텔식으로 운영되는 고급 민박을 의미한다. 주로 경치 좋은 곳의 농장이나 산, 강, 호수 등 자연(自然)환경과 어우러져 고급 별장처럼 짓는 게 보통이다.
“호텔의 합리성(合理性)과 민박의 가정적 분위기를 갖춘 새로운 숙박시설”이라고 정의(定意)된 팬션은 주 5일 근무제와 더불어 엄청난 유행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너무 비싼 가격, 태마 없는 무의미한 숙박시설들로 전락(轉落)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자연환경을 백분(百分)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냥 숙박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볼거리, 먹을거리, 만질 거리, 알 거리, 배울 거리, 들을 거리, 움직일 거리, 하물며 느낄 거리라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팬션 업은 그리 밝다고 할 수 없겠다. 결론적으로 테마가 없는 팬션은 그 경쟁력에서 낙오되고 말 것이 확실하다고 하겠다.아울러 팬션 업을 하려는 분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지도를 보며 방위를 아는 방법”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아는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지만 지도를 자주 접하지 않는 분이면 볼 때마다 헷갈리기 일쑤이다. 모든 지도(지적도, 임야도, 지도책, 세계지도 등등)를 볼 때 지도의 글자나 숫자의 윗부분이 眞北 방향이라고 알면 간단하다. 그렇다면 글자(숫자)의 아랫부분은 正南이며, 오른쪽은 東, 왼쪽은 西쪽이라고 생각하면 착오가 없다. 北과 南은 금새 구별할 수 있는데 東과 西는 잘 구별을 못하신다. 이점 유의하시기 바란다.
“오동(東)잎이 왜 서(西)쪽으로 굴러 갈까?”라고 기억 하시면 어떨 런지? 오른쪽은 동쪽이고 왼쪽은 서쪽을 가리킨다.
“별장이란?”
상주(常住)하지 않는 전원주택으로 연면적 100평 이상의 주택, 20평 이상의 풀장이 있는 주택,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주택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분류하나 시골에서의 분류(分類)는 좀 다르다. 외지인이 새집을 짓거나, 아니면 농가주택을 구입하고, 실제로 와서 살지 않는 주택은 별장으로 분류되어 높은 세금을 물린다.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담당 공무원들의 실사(實事)에서 사람이 없을 때 공무원은 상주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고 만다. 물론 실사 때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별장으로 분류되고, 취득세 7.5배, 재산세나 종합토지세가 5배에서 25배까지 높아진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란?
도시 계획법상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을 말한다. 도시 주변에 자연환경을 보전해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을 보호하거나 안보상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을 때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정한다. 그린벨트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14개 권역,35개 시, 35개 군에 16억 4천 6백만 평(전 국토의 5.4%)이 지정 되었으나, 문민정부로 들어오면서부터 주민들의 반발 때문인지, 아니면 정권유지를 위해선지, 그 면적이 차츰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