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전에 카페에 쓴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려 봅니다. 글이란 열정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쥔장께서 넘치는 애정을 보이셔 전공자로서 반성하고 있습니다ㅡ,ㅡ 모두 건필하시길~!
*지금도 길을 걷다가 문득 헌책방을 발견하면, 그곳이 어디든, 혹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과감히 삐거덕거리는 헌책방의 문을 연다.
낡은 책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물론, 새책의 새책다운 풋냄새 또한 좋지만, 헌책은 헌책 나름대로 풍기는 내음이 좋다. (혹자는 곰팡내라 했다. 사실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을 회고해보자.
마침, 우리집 곁에는 허름한 헌책방이 하나 있었다.(지금도 내 지론은 그렇지만, 헌책방은 조금 지저분하고 허름해야 제 맛이다.) 그 헌책방에는 주로, 만화쪼가리나, 아이들 교과서 내지 참고서가 대부분이였지만, 때론 그럴 듯한 책도 있었다.
그럴 듯한 책이라봤자, 지금 생각하면, 삼중당 문고같은 문고본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을 만났고, 이솝을 만났다. 어린 시절, 엄마 몰래 올라갔던 다락방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턴 헌책방과의 인연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글쎄... 핑계같지만, 치열함이 없어진 걸까? 관조적 거리가 생겨버렸다. 한참 새것에 민감한 나이라 그랬다 할까?
그러다 내가 다시 헌책방을 찾게 된 것은 대학에 가고부터다. 지도교수의 꼬장꼬장함이 이미 절판된 책을 교재로 구해오라는 엄명에서였다. 보통 대학에서 필요했던 책들은 시중에도 나와있는 것이 많았지만, 대개는 절판 위기에 있거나,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것도 많았다.
그런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청계천 바닥을 2시간 넘게 뒤지고 다녔지만, 그놈의 책은 우리 교수만큼이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학교 근처 헌책방에 그 책이 2권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항상 그러하지만, 내가 당도했을 땐 '혜안'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이미 빼앗겨버리고 난 후다... 그후에는 살짝 맘을 흔들었던 선배와 헌책방 데이트를 하며 비법도 많이 전수 받았다. 그래서인지, 헌책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무심코 넘긴 책장에서 곱게 말린 낙엽을 발견했을 때처럼, 추억이란 그런 거부할 수 없는 희열이리라.
늘 그러하듯, 헌책방에서 자신이 목적한 책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꽤 오랜시간 버티며, 모든 책을 훑어내려가기를 반복하다보면, 진흙속에 숨은 진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은 필요하지 않다해도, 언젠가는 필요해질 책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짜릿한 성취감을 준다. 난 도박의 위해성에 공감하는 사람이지만, 아마 포카에서 조커를 쥐었을때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내가 헌책방을 자주 찾는 이유중의 하나는 희귀본이나, 초판본을 찾는 기쁨이다. 속물적인 취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또한 내게 더할 수 없는 유희였다. 때로는, 책의 저자가 누구누구에게 사인하여 증정한 책을 얻는 일도 드물지 않다.(주로, 대학교수들이 그 책을 판 사람이다.)
책을 아는 헌책방주인을 만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개중에는 고물상을 하다가 헌책방으로 업종을 전환한 '책무지렁이' 부류의 주인들도 있지만, 대다수 헌책방주인들은 우리나라 지식산업에 한 몫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않아, 섣불리 책값을 깍으려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단기간에 승부를 보기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나도 책을 볼 줄 안다' '당신의 안목을 존중한다'라는 듯한 눈길로 친숙함을 더해야 앞으로의 헌책방 나들이에 마음 편히 임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책을 당장의 경제적 이유로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경우, 후에 책이 판매되어버릴 우려가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내 경우, 좀 비겁한 짓이긴 하나, 문학분야의 책을 신앙이나, 과학같은 전혀 엉뚱한 서가에 꽂아두거나, 몇 개의 책을 뽑아내고 그 뒤에 감추어두는 방법을 사용하곤 했다. 후에 그책을 어떻게 발견하냐고... 그건 나만의 비밀이므로 감추어 둘밖에...
대학가앞의 헌책방은 대부분 책의 유동이 빠른 편이다. 나같은 얼치기 헌책방매니아는 찜져먹을 고수도 무지 많다.
그래서 매일같이 들르는 정공법을 쓸 수 밖에 없다. 대학가앞의 책방은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다는게 흠이다. 헌책방을 찾는 매력중의 하나에 가격을 빼놓을 수 없는데, 휘귀본, 혹은 절판된 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정말 맥이 탁 풀린다.
그럴때는 속는 셈치고 청계천을 나가보자. 별로 영양가없는 순례가 될 지도 모르지만, 청계천또한 헌책방 역사가 만만치 않는 곳이다.
지금이야 예전같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진 않지만, 노천에 좌판을 벌여두고 파는 수많은 책은 헐값이라는 큰 매력과 함께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
청계천 헌책방은 아무런 정리도 안 되어있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는 점에서 옛날 헌책방을 연상시킨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더욱 향수를 자극한다. 가격 또한 아주 저렴하다. 대부분 그들이 책을 매입할 때도 책의 종류나 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게로 사오기 때문에 그러한 듯하다.
책의 아래나 뒷부분에 보면 연필로 희미하게 적어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장사꾼들끼리 통하는 숫자(가격)를 한자로 적어놓은 것이다.
정말 고수들은 그것또한 간파하고 살짝 고쳐놓기도 한단다. (절대 나는 그런 짓은 해보지 않았다.) 얼핏 쓰레기 같아 보이는 그런 데서도, 간혹 좋은 책을 찾아내는 기쁨이 있다. 그경우 즐거움과 기쁨은 배가 된다.
예전 만큼의 열정은 생기지 않더라도 잊지는 않고 있다. 익숙함이 전해주는 안락과 낯선 희망으로 들뜨는 감정은 권태의 늪을 벗어나게 해준다. 한동안 접어두고 있던 열정이 그리울 때면 가끔 들러본다. 그 빈자리를 넉넉함으로 지키고 있는 잠깐의 시간여행이 좋다.
지금까지 나의 헌책방 순례기에 대해 아무런 관념없이, 두서없이 자유롭게 기술하였다. 이번가을에는 한번 헌책방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지...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많은 글들로 소중한 지면대화를 이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분발합시다. 글쟁이들 홧띵!!!
이 소묘는 명확한 명암과 체계적인 구도와 터치가 빛나는 멋진 작품이군요(ㅡ,.ㅡ;;;) ~최상의 아부^^;;;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시와요^^
흠 헌책방을 찾아보는것도 좋은것 같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