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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이글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방이나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방은 아닙니다
다만 이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 여러분들 께서는 여러분들이 몰랐던 기독교의 역사를 접해보시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닮은것은 아닌가를 점검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욕설등을 사용하여 릴레이를 이어가시는분들은 릴레이에 참여하실 자격이 없는 분들입니다
유사 이래 최대,최악의 학살자는 과연 누구일까하는 질문에 대부분의 지구촌 사람들은 히틀러라고 답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듯 싶다.
우리는 교과서와 영화 등을 통해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음을 알고 있다. 나치스의 홀로코스크 만행은 이제 거의 종교적 외경으로 까지 보편화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해보기로 하자.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정말 “세계사의 전대미문의, 유일한, 최대의 대형 범죄”였을까?
물론 제2차 대전 때 나치스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살은 특출하게 끔찍한 것이었음에는 틀림없겠지만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제 필자는 홀로코스트 신화보다 더욱 끔찍하고 처참했던 비극의 현장으로 안내하고져 한다.
1)컬럼버스의 일기장
컬럼부스가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을 부터 인류 최대의 비극은 이미 예고되었다고 판단된다.
그가 남긴 항해 일지의 몇 귀절을 우선 인용하겠다.
["배에서 내린 유럽인들을 보고 타이노 원주민들은 호기심에 가득차 기뻐하며 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왔다." ]
["그들은 무기나 폭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칼을 처음 보았을 때 이 이상하게 생기고 빛이 나는 물체를 손으로 만져보려고 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하루 중 불과 몇시간만을 일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편하게 쉬고, 서로 어울리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창조하며 보낸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거나, 원할 때면 아무 때나 사랑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섬에서 나는 조그만 금조각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몸을 치장했다." ]
컬럼버스의 관찰과 고백이 진실하다면, 타이노 원주민들이야말로 유토피아에 살고 있었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원주민들의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컬럼버스의 질투심을 유발했을까?
그는 일기장에 아래와 같이 토로한다.
["50명의 남성만 있으면 원주민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서 그들이 가진 황금을 전부 빼앗아버릴 수 있다"]
2)컬럼버스의 만행
[백인들은 “야만적인” 타이노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수많은 원주민들을 고문하고, 노동을 착취하고, 그들의 부(富)를 약탈해서 유럽으로 가는 배에 싣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의 손을 도끼로 자르고, 여성들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임신한 배를 갈라내고, 아기를 공중에 던져서 땅에 떨어뜨리거나, 칼이라는 이름의 그 이상한 빛이 나는 물체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기독교, 문명화,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착취당했고, 원주민 대부분이 잔인한 폭력, 과도한 노동,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해버려, 종족이 전멸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댄 브룩(Dan Brook) 교수의 ‘학살을 경축하며(Celebrating Genocide!)에서 인용
컬럼버스는 원주민들의 친절과 비폭력에 대한 보답으로 칼과 살륙을 선물하였다고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컬럼버스의 꿈같은,성공적인 모험담은 무수한 유럽인들에게 전염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살륙의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3)메이플라워호 그리고 원주민 학살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대륙으로 종교적 망명을 했다고 한다.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피난을 선택했던 백인들이 이제는 박해자의 입장이 되어 종교적 명분이라는 변명하에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음은 역사의 또다른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컬럼버스의 만행 그리고 청교도들의 학살 이후 약 1세기에 걸쳐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숫자는 적게는 6천만명 많게는 일억명 정도에 이른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 한다.
오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의 숫자는 겨우 25만명 정도라 하니....미국인 선조들이 저지른 이 만행과 죄악은 누가 책임을 져야만 하나.....
매년 11월 넷째주 목요일은 미국인들이 최대의 명절의 하나로 꼽고 있는 추수감사절이라 한다.
그날 하루 동안 약 5,000만 마리 정도의 칠면조가 소비되고 있다하는데, 그들은 칠면조를 살륙하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원주민을 학살하던 그때의 향수를 맛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4)미국 위정자들의 인디언관과 정책
1776년 7뤌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날이다.
이날을 깃점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모든 원주민 학살은 미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면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인디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조지워싱턴: 우리의 당면 목표는 인디언 부락의 전면 파괴와 유린이다.기본적으로 토지작물을 파괴하고, 더이상 경작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지상의 문명인들을 위해서 저 미개인들을 근절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술(알콜)이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존 마셜 대법관: 이땅에 살았던 인디언부족들은 전쟁을 직업으로 삼고 숲에서 나오는 산물로 생계를 이어온 야만인이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법, 그리고 규정해야만 하는 법은 그러한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그 대륙을 매입하든 정복하든, 인디언의 점유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 독점권을 주었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창조주로부터 많은 사람을 도와 그 지역을 문명화시킬 운명을 부여받은 경우, 과연 소수의 야비한 미개인들이 거주하는 곳을 자연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공평한 분배일까?
*필립 셰리던 장군: 내가 지금껏 보아온 인디언 중 선량한 자라고는 죽은 인디언 뿐이었다.
5)인디언들의 절규
나름대로 자족하며 자연과 평화를 벗삼으며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그제서야 백인들의 정체에 대해 눈을 떴을거라고 추측된다. 인디언들의 대표적 절규 몇마디를 모아 보았다.
[‘이 땅에 들어온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그러나 지켜진 것은 단 하나,그들은 우리 땅을 먹는다고 장담했고 정말 우리 땅을 먹어치웠 다.’(수우족 추장 '붉은 구름') ]
[“백인들은 고유한 생활방식을 가진 우리를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가”. (샌태 수우족의 추장 ‘큰 독수리’) ]
[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이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만족하기를 바란다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 (네즈페르세족의 추장 ‘조셉’) ]
["백인이란 종족은 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는 봄 홍수와 같다." (수우족 대추장 '앉은소') ]....이상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서 발췌
그리고 이 책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충격적인 한 장면만 인용하겠다.
[1864년 시빙턴 대령은 “인디언의 머릿가죽을 모을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샌드 크리크 학살’이다. 미군과의 안전보장 서약에 따라 미국기와 백기를 올리고 있었던 샌드 크리크 지역에는 남부 샤이엔족 600여명이 있었다. “무차별 살육이 눈앞에서 벌어졌다.…여섯살 정도 된 어린 소녀에게 백기를 들려 보냈다. 그 소녀는 몇 발짝도 못가 총에 맞아죽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머릿가죽이 벗겨졌으며, 한 임신부는 배가 갈라져 있었고 태아가 옆구리에 놓여 있었다. 안전보장 서약을 믿었던 일흔다섯살의 추장 흰영양의 시체는 성기가 잘렸다. 나는 한 미군이 그걸 가지고 담배쌈지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6)아메리카 침략과 가나안 침공 사건
오늘을 살아가는 미국의 위정자들이 그들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나 그외 프랭클린같은 견해를 발표했다가는 언론의 뭇매에 의해 그들의 정치 생명 자체가 존립할 수 없으리라 본다.
대부분의 미국인들 그리고 지구촌 인류들은 미국의 옛 선조들의 만행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사과하기를 거절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성역화시켜 배상문제를 야기함으로 거액의 위자료까지 챙긴바 있는 미국인들이 왜 그들의 조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을까?
결국 그들의 마음 밑바탕에는 조상들의 행위에 이미 면죄부를 주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드는데, 이러한 합리화를 가능하게 하는 게 그들이 신봉하는 바이블 탓으로 보여 진다.
*즉,영국땅을 떠나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건은 출애굽쯤으로....
*그리고 그들 조상이 신대륙을 침략했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침공쯤으로....
*원주민 학살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나안 민족들을 몰살시킨 전례를 본받아서....
가나안땅은 야훼의 약속과는 달리 젖과 꿀이 흐르지 않는 그저 척박한 땅이었지만, 아메리카는 분명 젖과 꿀이 가득한 황금의 땅,약속의 땅이 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일까? 야훼의 은덕에 감사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유럽과 달리 아직도 야훼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아래에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침공 사건과 학살 장면을 간략히 정리해 두었으니, 청교도인들의 아메리카 침략과 어떻게 비슷한 지 비교해 보시길 바란다.
*예리고 점령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 버렸다. (여호수아 6:21) >>
*아이 점령
<<광야 벌판에서 이스라엘을 쫓던 아이 주민은 그 광야 벌판에서 다 죽었다. 그들이 한 사람 남김없이 칼날에 쓰러지자 온 이스라엘은 아이로 돌아 가 그 백성을 도륙하였다. (여호수아 8:24) >>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하다
<<그들은 그 날로 그 성을 공략하고 주민을 칼로 무찔러 숨쉬는 것이면 하나도 살려 두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이렇게 라기스를 해치운 것처럼 해치웠다. (여호수아 10:35) >>
*가나안 북방을 정복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성들에서 취한 전리품과 가축을 마음대로 가졌지만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칼로 쳐 쓸어 버렸다. 이렇게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은 하나도 살려 두지 않았다. (여호수아 11:14) >>
*가나안 정복을 끝내다
<< 그 때에 여호수아가 출동하여 산악지대에서 아나킴이라고 하는 거인족들을 전멸시켰다. 유다 전 산악지대에 있는 헤브론, 드빌, 아납 그리고 이스라엘 전 산악지대에서 그들을 전멸시켰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성읍째 없애 버렸다. (여호수아 11:21) >>
7)남미와 북미
WASP가 주류인 북미와 혼혈 민족이 주류인 남미는 역사에 대한 인식도 그 피부빛만큼 차이가 다르나 보다.최근의 두 보도는 인디안 문제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잘 시사해 주고 있는 듯하다.
[“콜럼버스 원정대가 처음 도착한 이후 150여년 동안 스페인, 포르투갈,영국 등 서방 침략자들이 10분에 1명꼴로 원주민을 학살했다”면서 “그결과 원주민 인구는 1492년 1억 명에서 1640년대 300만 명으로 절멸되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침략자들은 히틀러보다 더 악랄했다”고 비난했다.]
[차베스는 지난 해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섬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과 일부남미 국가에서 제정한 이 날(‘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는 대통령령을공표한 바 있다.그는 특히 35만 원주민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저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과이카이푸로(스페인 침략자에 저항한 원주민 추장 이름) 계획’을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2003,10,13 한국일보
["(인디언들과의) 화해 이전에 인정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것이 화해를 위한 출발점"]
["몰살,낙태,강제 이주, 전통종교 불법화, 성지 파괴 들을 자행한 협정 위반 및 잘못된 연방 정책 등을 인정하고, 모든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미국민들이 저지른 폭력, 학대, 방치 등에 대해 미국민을 대표해 사과한다. ]....샘 브라운백(공화.캔자스) 상원의원/2005,5,26 프레시안
미국은 아직까지 최소 6천만명에서 최고 1억명으로 추산되는 인디언 원주민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저 일부 의원들이 공식 사과하자는 결의안 정도로 왈가왈부하는 중이라 한다.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인들의 행동 패턴은 너무나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들은 처음엔 포장된 예수의 사랑으로 접근한다.
이부분에서 포장된 사랑이라는 말에 혹시라도 신성 모독이라 하실분들에 대해서
예수의 언행이 불일치 하는 사례를 하나 예로 들겠습니다
세계 4대 성인이 예수,석가,공자,마호멧인지 소크라테스가 포함되고 공자 혹은 마호멧이 삭제되는 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어쨋던 우리는 상기 인물들을 성인으로 추앙한다, 반면 그 성인들의 흠집잡는 것 또한 즐겨한다.
*석가는 부귀를 단념했지만 자신의 처와 자식을 포기했다더라....즉 사회 생활 도피자라 할 수 있지 아니한가?
*공자의 마누라는 악처로 유명했다더라....공자와 그 자식은 둘다 본처를 버렸다더라....
*마호멧은 돈많은 유부녀의 도움을 받아 출세했다더라....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를 경멸했으며 욕을 입에 달고 다녔다더라....
그러하다.
아무리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하더라도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의 철학,인생관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할 뿐이며 그러한 행위야말로 우리가 이성과 오성을 가진 존재임을 뜻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예수는 어떠한가?
이상하게도 예수에 대한 험담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기독인들의 처절한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예수가 완벽한 삶의 본보기를 실제로 보여 주었는지....
사람들은 사실 유무의 진실 여부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는 듯 한데,
진실한 예수의 삶에 대해 오해를 하게 만드는 또하나의 공로자는 간디가 저질렀다고 판단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당신들이 믿는 신은 이웃사랑을 가르치는데 당신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그 나라 백성을 괴롭히는가?"
과연 그러한가?
혹시 진실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니한가?
결론 부터 내리자면 간디는 오해를 하였고
그는 바이블을 한번도 읽었지 않았음이 틀림없었다...가 되겠다.
예수는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기독인 즉 영국인들의 잔인함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간디의 말은
간디 자신이 예수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간디의 간단한 이 격언이 인구에 회자되어
예수의 성인화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한 셈이 되어 버렸는 데
오늘 현재도 목사들은...기독인들은....나를 모욕해도 예수를 욕보이는 짓은 하지말라고 절규하고 있으며 보편적 일반인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음이 현실이 되겠다.
자 그러면 간디를 감동시켰다는 예수의 이웃 사랑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1)예수는 원수를 사랑했는가?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마태 5:40) >>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
그 유명한 산상설교 중의 한 귀절이 되겠다.
자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절규 이전에 원수라는 단어의 정의 부터 내려야 하겠다.
불행하게도 바이블에는 원수에 대한 한계 혹은 그 정확한 뜻을 설명한 바 없다.할 수 없이 일반적 견해 즉
사전의 도움을 받기로 하자.
사전에는 [자기 또는 자기 집이나 나라에 해를 끼쳐 원한이 맺힌 사람]이러고 명시되어 있는 데 그러면 그 당시 예수의 원수는 누구였을까?
*예수의 가족에 대해 누군가가 해를 끼쳤다는 내용은 바이블에 전혀 기록이 없으므로 일단 제외하자.
*예수의 히브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시 유대를 통치했던 로마는 그의 원수 목록에 들 수 있겠다.
*그 다음은 예수 자신에 해를 끼친 사람을 정리하는 순서가 되겠는 데 이 경우....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리스트에 등재되겠다.
*우선 예수를 배반한 유다 그 다음엔 예수의 포교를 방해하고 대적한 바리새인,사두개인 등 유대교 율법학자와 제사장들....그외 헤롯 왕가의 사람들....등등
*사람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사탄,마귀,귀신 등도 예수의 원수임에 틀림없을 터이고...
이제 예수의 원수라고 진단내릴 수 있는 그 대상은 대개 정리를 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그 원수들을 사랑했을까?
불행하게도 필자는 예수가 그 원수들을 사랑했다는 흔적들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원수들에게 악담을 퍼 부었으며 증오만 겨냥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고져 한다.
바이블에 묘사된 예수의 육성을 인용하겠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태 26:25) >>
*예수는 유다의 배신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는 유다에게 충고 한마디하지 않았으며 자살로 이어지는 그의 불행한 죽음을 그저 방관하였을 따름이다. 예수는 유다를 사랑하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 되겠다.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 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요한 18:22,23) >>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고 설교한 예수,그러나 정작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쳐하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고 항의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 주고 만다.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누가 6:24) >>
*왜 예수는 부유한 사람들에 이렇게 증오를 퍼부어야만 했을까?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누가 11:42) >>
*바리새인에게 악담과 저주를 퍼 붇는 내용은 너무나 흔하게 발견되는 예수의 일상사였다.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화 있을찐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 11:51,52) >>
*율법사도 마찬가지....이제는 그 당시 시대 사람에게 조상의 책임까지 전가하고져 한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누가 13,31,32) >>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하는 예수의 천박한 표현도 확인하자....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태 8:32) >>
*예수에게 동물 사랑을 기대함은 넌센스가 되겠다.
*그냥 귀신을 쫓아 내면 될 것을 예수는 왜? 애꿎은 돼지들을 몰살시켜야만 했을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 23:33) >>
*소위 성인의 입에서 독사의 새끼라는 험악한 욕질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물론 지옥에 떨어져라는 말은 양념이 되겠고....
그러하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그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를 따라야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누가 예수를 사랑의 화신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묘하게도 예수에게 정작 해를 끼친 민족의 원수...로마에겐 너무나 관대한 예수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마가 12:17) >>
*비록 자신과 신앙관이 틀렸다고 해도 같은 민족이었던 바리새인 등에게 그렇게 악담을 퍼붇던 예수가 실질적인 민족의 원수인 로마에겐 왜? 그렇게 관대했을까?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한 그 격언의 유일한 실천 사항은 로마에 대한 것 뿐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예수의 원수 사랑은 오지 로마에 한정되었을 따름이었다.
*군중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라는 예수의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그들은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는 데 그 뜻이 이해되시는가?
2)그러면 이웃은 사랑했을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태 19:19) >>
우리는 예수가 원수들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러면 그의 가족 사랑,이웃 사랑은 어떠했을까? 예수는 말로는 정말 근사한 격언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흔하게 뱉어낸다.
우선 예수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행한 모습을 묘사한 바이블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마태 12:48) >>
*최소한 8명 식구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가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을 대하는 그 냉정한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마태 13:57,58) >>
*예수의 가장 가까운 이웃 사람들은 역시 그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예수가 진정 이웃 사랑 실천의 모범을 보여 줄 의향이 있었다면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던 그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배척하자 그 반응은 역시 냉랭하였다.
*그는 고향 이웃 사람들에게 전혀 사랑을 베풀지 않았음이 너무나 확연하게 묘사되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겠다.
그러하다.
예수는 가족들을 외면했으며
고향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애정도 표명하지 않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기술인가"에서 사랑의 대상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a. 형제애
b. 모성애
c. 성애
d. 자기애
e. 신에 대한 사랑
예수는 형제애도...성애도....자신에 대한 사랑도 몰랐으며 더우기 실천에 대해서는 흉내도 내지 못하였다.
그저 신에 대한 사랑만을 자신 나름대로 실천하였을 뿐이었다.
그러하다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했으며 원수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에게만 온정을 베풀고 능력을 과시했을 뿐이다.
간디는 예수에 대해 너무나 엄청난 오해를 했음에 틀림없다.
간디는 아래와 같이 그의 말을 수정했어야한다.
크리스챤도 싫지만 예수는 더 더욱 싫다.
예수는 말로만 원수 사랑 이웃 사랑을 외쳤고
크리스챤은 예수의 행위를 그대로 모방했었다....라고.....
사족:예수의 사랑 이야기는 표절이었음도 확인하자. 혹은 너무나 흔한 경귀였음도 확인하자.
*산상설교가 유대인의 또다른 경전 "12족장의 경서" 그리고 샴마이와 함께 바리새파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세운 "힐렐"의 가르침에 거의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던가
*혹은 불경 『열반경 범행품』『아함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내용을 찾을 수 있으며
『슛타니파아타』『법화경 안락행품』『법화경 서품』등에서 빛과 소금에 대한 경귀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사족 하나 더:말로는 무엇을 못하겠는가?
하늘의 별도 따다 줄 수 있는 게 말만의 약속이 아니던가?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만 한다....知信行이라는 경귀를.....
출처는 cafe.daum.net/antidogma 이드님의 계시글중 간디의 엄청난 오해 입니다
*그다음 차례는 피에 굶주린 야훼처럼 학살과 살륙을 즐긴다.
구약의 시기에 야훼께 바치는 모든 제단에는 동물의 피였건 사람의 피였건 수많은 피들이 사용되었지요 신약의 시기로 넘어와서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바뀐듯 합니다만....
*모든 변명과 합리화는 바이블 책임으로 미루어 버리면 너무나 간단하게 해결된다.
기독교는 피와 증오를 닥치는데로 삼키는 불가사리 정도가 아닌가 한다.
*2,000년 가까이 유럽 대륙에서 야훼가 포식한 핏물의 양은 얼마나될까?....십자군전쟁,30년전쟁,마녀사냥 등으로....
*500년 정도 야훼의 입맛을 돋워주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은 언제까지 그 핏물을 공급할까....
*아마,다음 차례로 선택된게 아시아 대륙이고 그 전초 기지로 선택된게 우리나라가 아닌가 추측되는데, 이제 우리 인류는 당연히 거부해야만 한다. 야훼의 재단에 바쳐지는 그 피의 공양물들을.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허용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컬럼버스가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으로 이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만약 컬럼버스가 제대로된 항해를 하여 인도에서의 후추 직수입 성공을 자축하는 장삿꾼으로 남았더라면....
*만약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행복한 삶에 감화를 받아 그곳에서 생을 마쳤더라면....
미국인들 그리고 기독인들에게 불편한 책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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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시애틀 추장의 편지]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나?
이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반짝이는 소나무 잎, 바닷가 모래밭, 짙은 숲속의 안개, 수풀과 지저귀는 곤충들 모두가 우리 민족의 기억과 경험속에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핏줄속을 흐르는 피처럼 나무속을 흐르는 수액을 잘안다. 우리는 이 땅의 한 부분이며 땅 또한 우리의 일부다. 향기나는 꽃은 우리의 자매다. 곰과 사슴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 수풀의 이슬, 조랑말의 체온, 사람 이 모든 것이 한 가족이다.
시내와 강을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다. 우리 조상의 피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땅을 팔면, 이 땅이 신성하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호숫물에 비치는 모든 것은 우리 민족 삶속의 사건과 기억을 말해준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목소리다.
강은 우리의 형제다. 우리의 갈증을 달래주고 우리의 카누를 옮겨주고 우리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니 당신들은 형제를 대하듯 강을 친절히 대해야 한다.
우리가 땅을 당신에게 판다면, 기억하라.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는 모든 목숨있는 것들에게 정신을 나눠준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쉬게 해 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의 정신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거든, 이 땅을 신성하게 세속에서 분리시켜둬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꽂향기로 달콤해진 바람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칠건가?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땅에 일이 생기면 땅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생긴다.
우리는 안다. 땅은 사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사물은 우리 몸을 연결하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인생의 직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 한가닥일 뿐이다. 이 직물에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우리의 신은 당신들의 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땅은 신에게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땅을 해치는 것은 땅의 창조주를 경멸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운명이 어떨지 모르겠다.
들소가 모두 몰살당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야생마가 길들여지면 어떻까?
숲속의 신비한 구석이 사람들 냄새로 가득하고 말하는 데 쓰는 전선(전화줄)으로 언덕의 전망이 얼룩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귀뚜라미는 어디에 거할까? 사라져버린다.
독수리는 어디 사나? 가버린다.
잽싼 조랑말에게 인사하고 사냥에 나서는 것은 뭔가? 삶의 종말과 살아남기 경쟁의 시작.
마지막 남은 빨간 사람(인디언)이 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 그래도 해안과 숲은 여전히 여기 있을까? 우리 민족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게될까?
갓난 아이가 엄마의 심장고동 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면, 우리가 했듯이 사랑해주라. 우리가 했듯 돌봐주라. 이 땅을 받았을 때처럼 땅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땅을 보존하고 사랑해주라.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땅의 일부이듯 당신들도 이 땅의 일부다. 이 땅은 우리에게 소중하며, 당신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안다. 신은 하나란 것을. 빨간 사람이든 흰 사람이든 사람은 나뉠 수 없다.우리는 결국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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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cafe.daum.net/antidogma 제일 마지막 계시판인 기독교와 권력에서 발췌 |
다음은 모세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나 이제 내려 가서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 가고자 한다. (출 3:8) >>
분명히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그들을 데려가려 합니다 신의 말씀이라 정당화를 시키면서....
그곳이 원래 이스라엘민족의 땅이었다구요?
다음을 보시죠 ...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거쳐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 성소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창 12:6) >>
아브라함이 이주하기 이전부터 가나안에는 다른민족이 살고 있었노라고 바이블이 증거하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 ... ...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왕이 아직 일어나기 전에 에돔에는 이미 그 땅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래와 같다. (창 36:31) >>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왕이 일어나기 이전에 라는 문장과 이미 그땅을 다스리던 왕들이 있었는데... 라는 문장이 똑똑히 눈에 들어 오십니까?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그땅을 차지하게되는 근본적인 명분은 하나님이 시키셨다 입니까?
콜럼버스와 청교도들의 인디오 학살과 다를게 없어보이는군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중에 분명히 기독인 여러분들의 신앙의 주체이신 신에 대하여 모독에 가까운 몇가지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인정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는것 역시 기독인 여러분들께서도 인정을 해 주셧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의 의도는 신을 모독하는데에 있는것이 아니라
기독인 여러분들과 그외의 지식인 사용자 여러분들께 우리가 몰랐던 기독교의 다른 얼굴을 알리려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실재하지 않는다라는것을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라 하는존재가 결국은 범신론적인 의미의 관념적인 신화속에서의 존재일 뿐이라는것을
성경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될수 없음을
기독인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실겁니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이슬람과의 종교 전쟁과 그외의 기독교의 대표적인 피의 역사에 대해서도 재조명해주실 지식인 여러분들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