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스, 그리스어의 '죽음thanatos'와 '항해자nautes'를 합친 말, 저승을 항행하는 자, 영계 탐사자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인생을 헐뜯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인생을 상품에 비유하지면, 3백만 년 전부터 700억 이상의 사람들이 시험하고 인정한 상품과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그 무엇과조 바꿀 수 없을만큼 훌륭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聖 크리스토프, 기독교 전승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 아기 예수를 어깨 위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 자체가 '그리스도를 건네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여행자들을 지켜주는 성인인데, 오늘날에 운전자들을 돌보아주는 성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자에게서 살구 냄새가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교는 주로 특정한 종족 집단을 위한 단결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하지. 행동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하고 말이야. … 세계가 그렇게 복잡할 때는 간단히 선택하는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하느냐고? 동전으로 하는 거야. 동전은 아무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착각에 빠지지도 않고 그럴싸한 궤변에 넘어가지도 않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지. 따라서 용기가 안 날 때는 동전을 던져 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것이 너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바보들하고 싸움을 벌이는 일이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야. 그자들에게 최소한의 분별력이라도 있어야 싸움이 가능해.
·그에게는 일기장 따위는 없었다. 형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조차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삶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그냥 살기만 하면 될 만큼 그는 행복했다.
·우리 가문의 격언에, <건강하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언제나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빌어먹을 발톱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은 삶의 갖가지 자질구레한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처방이었다.
·거울에 붙은 비누 방울처럼 덧없는 게 인생이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대통령의 삶이라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인생의 종착역은 먼지. 재, 아니면 구더기 뱃속일 뿐이다. 그대 먼지로 돌아가리라. 그대 한 줌의 재로 돌아가리라. 그대 육신, 구더기 뱃속으로 사라지리라.
·종교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가상의 미래에 천국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 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쓰디쓴 알약을 더욱 쉽게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저승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곰을 본 사람을 보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람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는 임사 체험이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엄연히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임무가 그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그 일은 무신론자에게 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라거나 채식주의자를 신봉하는 광고업자에게 육식의 장점을 홍보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내는 그가 회의에 빠져 있을 때마다 적절한 도움말로 힘을 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까운 조언자였다.
·자네 이런 중국 격언 아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잠깐 동안 바보처럼 보이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로 남게 된다'는 거 말일세.
·자네 원과 원의 중심을 연필을 떼지 않고 그릴 수 있겠나?
·나는 용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종류의 소식을 두세 가지 더 듣고 나니 콩라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커지는 것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행복을 과시하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비위 상하는 일은 없다. 하물며 그 사람 때문에 나의 실패가 두드러져 보일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나의 직업은 결국 나에게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윗사람들로부터 도타운 신임을 받고 있지도 않았고, 아랫사람에게서 존경을 받는 편도 아니었으며, 동료들과도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할머니는, 착하고 말 잘 듣는 개가 주인을 바라보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휑뎅그렁한 아파트에서 추억이나 되새기며 혼자 사는 삶으로 되돌아가야 해, 그건 너무 끔찍해."
·'갈릴레이도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어.' 저번엔 콜롬부스를 들먹이더니 이번에는 갈릴레이였다. 불쌍한 갈릴레이, 이제 넋 나간 자들이 너나할것없이 자기들의 상상력을 변호하는 수단으로 그를 이용할 판이었다. 약방의 감초 신세가 된 갈릴레이 …
·천사 같은 모습도 닮았고, 살결과 살구 냄새까지도 비슷했다.
·노자, '누가 너를 모욕하더라도 앙갚음하려 들지 말라. 강가에 앉아 있노라면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리니.
·황소는 더 이상 암소와 흘레붙지않고,
남자는 더 이상 여자와 合(구합)하지 않네.
·금과 은이 가득한 동굴이 아니라 유쾌한 느낌으로 가득한 동굴이었지요. 아늑하고 따뜻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웠소. 마치 어머니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소.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 죽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내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려면 그 문장을 적어도 20페이지는 써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인생이 하나의 연속극 같은 것이라면 그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될지를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단 훨씬 나을 듯 싶었다.
·미국인들이나 일본인들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세. 우리들은 이미 항공 기술 분야에서 그런 씁쓸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네.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이 클레망 아데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인데, 라이트 형제가 나타나 자기들이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노라고 주장했었지.
·삶은 잠을 통해서 우리를 죽음에 길들이고, 꿈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사막에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코요테처럼 마구 소리를 치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형은 얄망궂게도 내 약점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다친 자리를 칼로 찌르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행동은 모기보고 칼 빼는 격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천천히 쉬었다. '제 화를 돋우러 우신 거라면, 두 분을 더 이상 붙잡아 두고 싶지 않아요. 제가 불행할까봐 걱정사시는 건지, 행복할까 봐 걱정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저에게 고통을 주러 오신 거예요?'
·나는 노자가 자기 가르침을 대중화하기 위해…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성공과 영광의 열기에 취해 있던 그 순간에도, 어쩌면 죽음은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호숫가 마을 아이들이 판자대기를 얼기설기 엮어서 임시 변통으로 다이빙대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남미의 사나운 물고기 피라냐들이 흙탕물 속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오해하고 있다네. 그 오해는 애초에 누군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한 것이지. 가는 귀를 먹은 예언자 하나가 <하느님은 위무르(익살)이시다>라는 말을 <하느님은 아무르(사랑)이시다>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걸세. 모든 것 속에 웃음이 있다네. 죽음도 예외는 아니지. 나는 내가 소경이 된 것을 하느님의 익살로 받아들인다네. 어떻게 그것을 달리 받아들일 수 있겠나? 세상에 우습지 않은 것이 없네.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어야 하네.
·농담 아닐세. 우리 인생의 모든 행위가 다 성스러운 거라네. 먹고, 마시고, 숨쉬고, 성교하는 게 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방법이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방법일세.
·따지고 보면 종교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보기엔 모든 종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똑같은 지혜를 각기 다른 비유와 말로써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작가는 자기의 목표를 <더 멀리 꿈꾸게 하는 것>에 두어야한다. 종이의 이면을 꿈꾸게 하는 것, 죽음의 이면을 꿈꾸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작가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문학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당연히 그 점을 활용해야 한다. 나는 단지 글을 쓰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다른 차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나는 이제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물음들, 즉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시간, 공간, 지식,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이 내부에 있음을 안다. 만물은 중심에 있다. 외부에는 그저 반영(反影)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지닌 신성을 어떻게 처리할 지 그 방도를 말하마. 그것을 인간들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기로 하자. 그곳은 신성이 감추어져 있을 거라고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유일한 곳이니라.
전설에 따르면 그 후로 사람들은 신성을 찿아서 세계를 온통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은 산에도 올라가고 물에도 들어가고 땅도 파보면서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으면서도 정작 자기들 내부에 있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신들은 신들을 흉내내려고 했어요. 그러나 인간은 인간들 자신의 방식으로 진리를 깨달아야 해요. 하늘의 지식은 땅의 지식이 될 수 없어요.
·아까 로즈가 하던 대로 나도 빛의 산을 넘는다. 보인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다. 일곱 천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것이 있다.
문득 나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사실과 먼 것이었던가! 아무도 그것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것은 아주 당연하다. 터무니없다, 정말 터무니가 없다.
블랙홀 깊은 속, 그 속의 속, 다시 그 속의 속이 보인다.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다. 그것을 전혀 내가 생각하던 것이 아니다. 격한 감동으로 내 영혼이 전율한다. 이제 나는 안다. 저승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거기에 있는 것은 ….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둘 다 오만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들은 인간이 신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라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똑같이 주제넘은 일이다. 우리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굳이 말한다면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확실한 대답이 없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죽는다는 걸 모르고 무심코 죽기를 바란다. 그 대신에 죽은 다음에는 관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땅 속에 묻히기를 원한다. 내 육신이 평생 나를 먹여 준 이 지구에 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 육신이 포도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비료가 되어, 죽은 다음일지라도 사람들이 즐겁게 취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죽음 너머를 여행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아직은 해야할 일이 많은데 죽음 이후나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지만 ..... 작가의 천재적인 상상력이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살아가는 일의 분주함 때문에 소설을 읽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런 소설을 원없이 읽고 이런 소설을 한 권 쓰고 싶다. 평생의 희망이 될 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