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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스크랩 초기의 세 연결주의자(파블로브+윗슨+손다이크)
너를사랑해 추천 0 조회 52 09.09.09 21:0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초기의 세 연결주의자

   

학습심리학 : Winfred F. Hill 저, 이영애 역, 을유문화사, 1998 원서 : Learning : A Survey of Psychological Interpretations, 5th ed, HarperCollins, 1990), page 51 ~ 74.

 

 

파블로프의 조건 형성

     흥분과 억제

     적용과 함의

윗슨의 행동주의

     학습에 관한 윗슨의 해석

     특수한 종류의 학습

     윗슨에 대한 평가

손다이크의 초기 연결주의

 

 

 사람들은 심리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 왔다. 적어도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철학자들은 지금은 심리학의 일부가 된 연구 문제를 많이 생각해 왔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학습하고 지식을 얻고 결정을 내리고 또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 철학사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19 세기쯤 되어서야 이 문제들이 실험에 의해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첫 심리학 실험실은 빌헬름 분트 (Wilhelm Wundt) 가 독일에서 1879 년에 창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리학 연구는 그 이전에도 계속되었으나, 이 때가 현대의 과학 심리학이 확고한 제도적 뿌리를 내린 시점으로 보통 간주된다.

 초기의 과학 심리학에 몸담고 있었던 분트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에게 영감을 많이 주었던 철학자들처럼 의식 경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각 (sensation) 과 사고 (thought) 와 감정 (feeling) 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들은 의식 자각 (conscious awareness) 의 지속적 흐름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성분들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기억 심상은 감각과 같은가? 감정은 한 특수한 감각인가? 감정의 강도는 그것을 산출하는 물리적 자극의 강도와 관련이 있는가? 이런 것들이 초기의 실험 심리학자들이 연구했던 질문들이다. 독일에서 발전한 이런 종류의 심리학이 대체로 유럽과 미국 심리학의 표준이 되었다. 심리학 시험실 연구와 심리학 교재의 논의도 주로 이 접근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코 완전히 수용되지 않았다. 러시아와 미국 모두에서는 의식 경험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항상 큰 관심이 있었다. 이런 경향은 행동 연구에 관한 두 주요 전통을 하나는 러시아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불러일으켰다. 이제부터 그들을 하나씩 보기로 하자.

 

파블로프의 조건 형성

 

1904년에 이반 P. 파블로프 (Ivan P. Pavlov 1849~1936) 는 소화에 관한 연구로 생리학과 의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연구를 하기 위해, 그는 개의 위벽에 구멍을 뚫는 어려운 수술을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하던 위액 분비가 처음에는 위에 도달하는 먹이 때문이 아니고 먹이를 씹거나 단순히 그 모습만 보고도 야기됨에 주목하고는, 이 예상된 분비가 소화과정에서 가장 흥미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연구하려고, 그는 소화 과정의 다른 부분에 해당하는 타액 분비에 초점을 두고 개의 타액선에 관을 설치하는 훨씬 간단한 수술을 통해 타액의 분비량을 측정할 수 있었다.

파블로프가 개의 뺨에 관을 설치한 후 먹이를 제시하면, 비커에 타액이 떨어지고, 비커 눈금으로 침의 양을 쉽게 측정할 수 있었다. 이 타액 방울은 먹이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실험실 내의 다른 여러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당시에, 이러한 분비를 다루는 표준 설명은 이 다른 자극들이 먹이와 연합되었다고 단순히 말하는 것이엇다. 파블로프는 이런 설명이 정확한 답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고, 그의 긴 생애의 나머지를 이 과정을 자세히 연구하는 데 바쳤다. 이 새로운 연구 분야 (Pavlov, 1960) 를 통하여, 그는 조건 형성의 아버지로서 훨씬 더 유명해졌다.

조건 형성의 기본 요소는 이미 1 장에 나와 있다. 실험자는 어떤 반응 (무조건 반응) 을 꼭 일으킬 만한 자극 (무조건 자극) 을 분비한다. 파블로프의 연구에서 무조건 자극은 고기였고 무조건 반응은 타액 분비였다. 조건 자극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종, 박자기, 큰 카드에 그려진 삼각형 등 매우 다양하였다. 만일 이 자극이 고기가 제시되기 바로 전에 제시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이 자극 역시 조건 반응인 침을 흘리게 하므로, 이 자극은 조건 자극이 되었다.

조건 형성이라는 말이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대문에, 이렇게 최초로 연구된 조건 형성을 고전적 조건 형성 (classical conditioning)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Hilgard & Marquis, 1940). 보다 최근에는 질병으로부터 측정 단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사람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매우 보편화되면서, 고전적 조건 형성을 보통 파블로프의 조건 형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파블로프는 이런 영예의 일부를 쉐크노브 (I.M. Sechenov) 와 베크테레브 (V.M.Bekhterev) 와 같은 러시아의 선배 학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의 연구는 분명히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고 찬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무조건 자극 (unconditioned stimulus) 과 조건 자극 (conditioned stimulus) 이라는 용어는 파블로프가 사용했던 러시아 말을 서투르게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고기가 무조건 자극(사전 훈련에 의해 조건을 부여 받지 않은)이고, 한편 종소리(또는 고기에 앞서는 자극은 어떤 것이든) 는 타액 분비에 대한 조건 자극으로서 고기와 함께 짝지워진다는 조건 관계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번역상의 어려움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심리학자들의 세대는 조건화된 (conditioned) 그리고 무조건화된 (unconditioned) 이라는 이상한 용어들로 부담스럽게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제 조건적 (conditional) 그리고 무조건적 (unconditional) 이라는 말을 쓰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랫동안 버텨 온 전통에 집착해서 덜 적합하지만 더 친숙한 용어를 사용한다.

 

 

흥분과 억제

 

 파블로프가 생리학자였으므로, 조건 형성을 생리학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조건 형성 법칙을 뇌의 주요 두 과정, 즉 흥분과 억제의 공동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흥분 (excitation) 은 각성 과정으로서 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으며, 한편 억제 (inhibition) 는 억압 과정으로서,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흥분과 억제는 서로 반대로 작용한다. 둘 중에 흥분은 조건 형성 유발에 큰 역할을 담당하지만, 억제는 조건 형성이 작용하는 여러 구체적인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

조건 형성의 한 구체적인 예를 보면, 조건 자극인 종소리가 무조건 자극인 고깃가루가 제시되기 바로 전에 개에게 제시된다. 이 두 자극 모두는 각각의 자극에 해당하는 피질의 어떤 지점에 흥분을 일으킨다. 먹이는 개의 생존에 필요한 어떤 것이고, 한편 종소리는 생리적으로 덜 중요한 자극이므로, 먹이에 의해 생기는 흥분이 더 강하다. 흥분은 종소리가 표상되는 피질의 부위로부터 먹이가 표상되는 부위로 당겨진다. 이 효과는 두 가지 일반 경향 때문에 생긴다. 하나는 더 약한 흥분이 더 강한 흥분 부위쪽으로 당겨지는 경향이다. 벨소리가 고깃가루 바로 전에 반복해서 제시되면서, 조건 자극에서 나온 흥분이 무조건 자극에서 나온 흥분 부위로 점차 당겨진다.

일단 이런 운동이 피질에 발생한다면, 종소리가 매번 울릴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길까? 흥분은 조건 자극과 관련된 피질상의 위치에서 뿐만 아니라, 무조건 자극이 표상되는 위치에서도 일어난다. 이 흥분은 이제 차례가 되면, 무조건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일으키는데, 심지어 무조건 자극이 그 시행에 제시되지 않을 때조차 그러하다. 그러나, 피질 바로 그 지점의 흥분이 무조건 자극이 직접 생성한 흥분보다 약하므로 반응 역시 무조건 자극이 생성한 반응보다 약하다. 이렇게 무조건 자극이 아닌 조건 자극에 의해 생성된 약한 형태의 무조건 반응도 역시 조건 반응이다.

조건 자극에 의한 흥분이 무조건 자극의 부위로 당겨지는 과정은 흥분이 피질 주변에서 이동하는 유일한 과정은 아니다. 흥분은 자동 방사 (iradiate) 경향을 가지고 있다. 즉, 원래의 초점으로부터 피질 표면의 모든 방향으로 흥분이 퍼져 나간다. 피질의 어느 지점과 조건 자극에 의한 흥분이 일어나는 중심점과 가까울수록, 조건 자극에 의한 흥분이 더 빨리 그리고 더 강하게 그 지점까지 퍼진다. 그럴 경우, 그 지점은 조건 형성을 공유하면서 무조건 자극이 자극한 피질 부위와 함께 연결 (다소 낮은 정도이지만)을 형성한다.

피질이 조직되는 방식 때문에, 피지에서 인접한 지점들은 보통 유사한 자극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예컨대, 조건 자극과 유사한 음조의 벨소리는 피질상의 조건 자극이 표상되는 부위 가까이에 표상될 것이며, 조건 자극과는 다른 음조의 벨소리는 더 떨어져 표상될 것이고, 부자 소리는 더 멀리 떨어져 표상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사한 벨소리는 조건 자극에서 가장 강하게 방사된 자극을 받고, 다른 벨소리는 덜 강한 방사를, 그리고 부자소리는 훨씬 덜 강한 방사를 받는다. 그 결과, 유사한 벨소리는 조건 자극과 동일한 효과(즉, 조건 반응)를 산출해 내는 가장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자극들은 그 정도가 덜하다. 이것은 1장에서 서술된 바 있는 일반화 현상을 초래한다. 억제와 흥분이 대립 효과를 내지만, 이 두 과정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예컨대, 흥분뿐만 아니라 억제도 피질 표면에 방사된다. 파블로프에 따르면, 이 두 과정의 상호 작용은 조건 형성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부분의 현상을 설명한다.

억제는 흥분 그 자체가 지나치거나 맞지 않은 효과를 낼 때 보통 나타난다. 한 예가 소거 (extinction) 이다. 만일 벨소리가 반복해서 울리지만 고깃가루가 전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억제가 조건 자극의 피질 부위에 쌓이게  되어 조건 반응을 약화시킨다. 또 다른 예는 지연 억제 (inhibition of delay) 로서, 이것은 조건 자극의 시발과 무조건 자극의 시발 사이에 상당한 지연이 있을 때 계속 쌓이게 된다. 처음에, 조건 반응은 조건 자극이 제시되자마자 발생하는 경향이 있지만, 오랜 훈련 후에는 무조건 자극이 나타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건 반응이 발생한다. 조건 반응이 점차 느리게 시작되는 이유는 지연 억제가 서서히 쌓이게 된다는 파블로프의 입장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예는 변별 훈련 (discrimination training) 이다. 원래의 벨소리 다음 계속해서 고깃가루가 제시되지만, 이와 유사한 벨소리가 고깃가루가 제시되지 않은 채 반복된다면, 유사한 벨소리에 일반화된 반응은 서서히 약해지는데, 이것은 두 벨소리간의 변별이 형성되었음을 뜻한다. 이 것은 고깃가루가 뒤따르지 않는 벨소리에 대한 피질 부위가 억제를 쌓아간 결과이다.

파블로프의 이런 아이디어들 중 그 어느 것도 직접적인 생리학 정보에 기반을 두지 않았음을 주지해야 한다. 피질 표면에 퍼지는 흥분과 억제의 방사 그리고 피질의 한 지점으로부터 다른 지점으로 흥분이나 억제가 당겨짐은 조건 형성 연구에 기반을 둔 추측에 불과하다. 생리학자들은 이제 개개의 뉴런이 서로 흥분하고 억제하는 방식에 관해 파블로프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이 지식은 그 자세한 내용면에서 파블로프의 입장을 지지 하지 않는다. 그가 서술한 특수한 흥분과 억제 과정은 행동 관찰에 기반을 둔 생리학의 추측에 불과하다.

 

 

적용과 함의

 

 파블로프는 조건 형성의 원리들이 다양한 여러 현상을 설명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그는 이 원리들을 사람의 성격과 관련시켰는데, 그 이유는 개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흥분과 억제간의 균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흥분 성향인 사람은 지나치게 멋대로 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의심이 생기면, 무엇인가를 해라, 아무 일이든 해라!"), 한편 억제 성향인 사람은 반응의 기민성이 부족한 경향을 보인다. 끝으로 파블로프는 흥분과 억제의 갈등이 신경증 (neurosis) 의 기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개가 원과 타원간의 변별 학습을 할 때 타원이 점차로 원과 유사해짐에 따라, 궁극적으로 원과 타원의 변별이 완전히 깨어지는 지점에 도달함을 발견하였다. 이대 흥분한 개들은 두 자극 모두에 반응하여 했고, 억제된 개들은 그 어느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런 변별 실패는 단순히 두 자극에 대하여 같은 반응을 침착하게 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들은 짖어대고 실험실을 떠나려고 하였으며, 보통 걱정스럽고, 좌절되고, 혼란스러운 듯이 보였다. 이런 증상들은 힘든 갈등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증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으므로 파블로프는 이런 증상에 '실험 신경증'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파블로프는 그 업적 때문에 러시아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의 명성이 그가 연구를 시작한 제정 러시아 정부와 그 뒤를 이은 공산주의 정부 모두가 존재해 있던 시기에 계속 유지되었으나, 새 소련 정부에 대한 그의 반응은 별로 열광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블로프 이론 체계의 여러 특징이 그로 하여금 소련 정부 내에서 인기가 있도록 도와 준 듯하다. 즉 그가 '고등 심적 과정' 을 조건 형성으로 축소시켜 이를 강조한 점은 공산주의의 유물론에 호소한 것이고, 학습의 강조는 환경 결정론이라는 공산주의 철학과 잘 어울린다. 파블로프의 이론 체계는 공식 이론 체계로 되어서 논문마다 파블로프의 인용은 칼 마르크스의 인용처럼 충성에 대한 상징처럼 되었다. 다른 동구 심리학자들과 생리학자들이 파블로프의 체계에 많은 것을 첨가하였지만, 그의 기본 생각은 변치않고 남아 있다.

파블로프의 후기 이론 체계 중 많은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 무조건 자극, 조건 자극, 그리고 반응들로 쓰여질 수 있는가에 관한 발견들을 포함시켰다. 하나의 예는 내부 소용 (interoceptive) 조건 형성으로서, 조건 자극이나 무조건 자극, 또는 이 둘이 내장 기관 중 어느 하나에 직접 제시된다. 이런 내부 수용 자극에 의해 형성된 조건 반응은 역시 내장 기관이나 그 혈액 공급상의 반응이다. 예컨대, 무조건 자극인 찬 물은 위벽의 혈관 수축을 가져올 수 있고, 이 무조건 반응이 다음에는 어떤 조건 자극에 대한 조건 반응으로 훈련될 수 있다. 이런 조건 형성은 조건 자극의 통제로 위에 혈액 공급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무의식 신체 과정의 변화를 초래한다. 때때로 조건 자극은 사람이 말하는 단어일 수 있다. 이 경우에, 그 단어를 말함으로써 , 수의적 통제를 받고 있는 반응을 낼 수 있다. 내부 수용 조건 형성은 이처럼 다양한 무의식 신체 과정을 자발적으로 만드는 한 방법을 제공한다.

단어를 자극으로 사용할 경우 의미 조건 형성 (semantic conditioning) 이라는 또 다른 적용이 관찰된다. 파블로프는 생애 후반에 조건 자극으로서 단어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벨소리와 빛 그리고 이런 부류의 조건 자극들은 1 차 신호 체계 (first signaling system) 를, 한편 언어는 2차 신호 체계 (second signaling system) 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 2 차 신호 체계는 물론 복잡한 체계이지만, 단어가 조건 자극으로 사용되는 의미 조건 형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언어와 조건 형성의 관계는 간단한 실험으로 밝힐 수 있다 (Razran, 1961). 한 아이가 조건 자극 (S+) 으로서 "좋다" 또는 "잘했다" 라는 러시아 말을 들을 때마다 타액을 분비하도록 조건 형성되었고, "나쁘다" 또는 "서투르다" 라는 말에 대해서는 강화를 받지 못하였다 (S-). 다음에 그 아이는 반드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런 단어는  전혀 없는 여러 문장들로 테스트되었는데, 부정 문장보다는 긍정 문장에 대하여 더 많은 침을 흘렸다. 그는 "적군을 무찔러 패배시켰다" 라는 문장에 대하여 가장 많은  양의 타액을, 그리고 "학생은 교사에게 건방졌다" 라는 문장에 대하여 가장 적은 양의 타액을 흘렸다. 이 실험은 조건 형성의 성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소련 연방의 가치 체계에 대한 흥미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서방 세계는 파블로프의 연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미국인들은 조건 형성이라는 착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채택한 것은 그 착상에 불과하지 연구나 이론의 세부 내용이 아니었다. 파블로프 실험의 발견들은 광범위하게 인용되었으나 거의 연구되지 않은 편이었다. 어떤 미국인들은 타액 분비가 아닌 눈깜박임 반사 또는 피부 경련 반응의 조건 형성을 연구했으며, 대부분의 동물 학습 심리학자들은 고전적 조건 형성을 전혀 연구하지 않았다. 파블로프의 이론에 관한 한, 파블로프의 선구적인 연구를 찬양하던 서구인들조차 그의 이론을 저 버렸다. 뇌를 직접 연구하지 않고, 거의 전적으로 행동으로부터 추론된 흥분과 억제의 방사는 거의 모든 서구인들에게는 별로 쓸모 없는 이론으로 보였다.

이처럼, 동유럽 밖에서, 파블로프는 선구자로서 널리 존경받고, 광범위하게 인용되었으며, 그리고 일반적 윤곽에서 많은 추종자를 내었으나, 그 의 이론 체계 중 대다수의 내용들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단지 비교적 최근에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그의 이론 체계의 내용을 주의깊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들은 그의 발견 중 어떤 것은 확인하고, 어떤 것들에는 도전하고,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은 여전히 점검하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그 까닭은 연구 보고서가 너무 짧거나, 대강 씌어졌기 때문이었다. 파블로프의 이론이 서양에서는 아직도 찬양받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그의 추종자들 중 몇몇은 서양인들의 이론과 흡사한 이론을 독립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블로프의 영향은 그가 받았던 지나친 아첨, 모순, 그리고 소외의 혼합물로 남아 있고 그는 여전히 학습 심리학의 위대한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윗슨의 행동주의

 

 파블로프가 러시아에서 연구하고 있었을 당시, 미국 심리학에서는 객관 행동을 연구하려는 경향이 독일 전통과 더 심한 갈등을 빚게 되었다. 전통의 틀을 깨고 솔직하게 객관 행동과 실제 유용성을 향해 심리학을 발전시키려는 압력이 커졌다. 정보를 달리하긴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므로 이제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하자!" 라는 외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운동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로서 존 B. 윗슨 (John B. Watson, 1878 ~ 1958) 을  들 수 있다. 전통 심리학에 대한 그의 세찬공격과 철저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려는 그의 시도로 미국 이론 심리학은 자신의 고유한 이론을 가지게 되었다.

윗슨은 1903 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수여하는 첫번째 심리학 Ph.D. 를 받았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쥐의 미로 학습에 관한 연구였으며, 동물에 관한 관심은 그의 초기 관심사를 잘 나타낸다. 그는 동물을 연구하면서 의식에 관계없이 동물이 무엇을 하는지 단순히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왜 똑같은 일을 사람들을 가지고는 할 수 없을까? 라고 물었다. 행동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이고 실제적이지만 의식은 공허한 주관의 세계에 속한다. 우리의 논의에서 의식을 폐지하고 행동을 연구하자! 시카고 대학에 있었던 윗슨의 교수들은 전통적 심리학에 대한 윗슨의 반대에 동의했지만, 그의 해결책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수많은 젊은 반역자들처럼, 윗슨도 나이가 들고 책임감이 생기면서 더 보수적이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윗슨의 경우에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1980 년에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로 합류한 후, 그 는 극단적 입장이 심리학 문제에 대한 답변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몇 년 후 (1913), 윗슨은 그의 공식 입장을 "행동주의자의 시각에서 본 심리학" 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간했으며, 바야흐로 행동주의로 알려진 심리학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행동주의 (behaviorism) 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분명하다. 윗슨은 의식 경험이 아닌, 행동에만 관심이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기계의 행동처럼 객관적으로 연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기계의 행동처럼 객관적으로 연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식은 객관적이 아니므로, 과학으로 타당하지도 않고 의미있게 연구될 수도 없었다. 윗슨이 뜻하는 행동은 소위 근육 운동 이상의 어떤 난해한 것이 아니었다. 말이란 무엇인가? 목구멍 근육의 움직임이다. 사고란 무엇인가?  혼자서 조용히 말하는 하위 음성 (subvocal) 언어이다. 감정과 정서란 무엇인가? 내장 근육의 움직임이다. 이처럼 윗슨은 심성론 (mentalism) 을 폐지하고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도 객관적인 과학을 옹호하였다.

이런 입장을 비꼬기는 쉽다 (예컨대, Estes 는 행동주의자가 "생각하라!" 라는 친숙한 좌우명을 "행동하라!" 그리고 최후에는 "근육을 움직여라!" 로 바꿀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 심리학의 발전에 있어 이 입장이 대단히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윗슨 이전에 행동에 관한 많은 객관적 연구가 있었으나, 그는 이런 부류의 연구를 거국적 운동과 철학으로 변모시킨 위대한 보급자로 부각되어 있다.

주관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 심리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입장은 의식의 연구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거부하였다. 그의 또 다른 표적은 동기를 본능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윗슨이 학문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어떤 형태의 행동이든 보통 본능의 결과로 설명하였다. 사회성은 군집 본능, 싸움은 호전성의 본능 등등에 기인하였다.이런 본능은 타고나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 주는지를 상당한 정도로 결정한다고 가정되었다. 그러나, 본능은 윗슨에게 있어서 상당히 심리적인 성질을 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반대로, 행동은 조건 반사의 문제로서-현재 고전적 조건형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학습된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제 사회성이나, 공격성이 타고난 본능 때문이 아니고, 조건 형성을 통해 그러게 하도록 배운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윗슨은 본능 이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심리 특징을 가정하는 이론들까지도 폐기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심적 능력이나 특성이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남을 부정했다. 사람들이 유전받은 모든 것은 신체와 몇몇 반사뿐이며, 능력과 성격의 차이는 단순히 학습된 행동의 차이이다. 이처럼 윗슨은 잘 알려진 자연-양육 (nature-nuture) 논쟁에서 유전에 반대하는 강력한 환경론자의 전형을 잘 보여 주었다. 사람들의 현재 상태 (분명한 해부학적 차이를 제외하고) 는 전적으로 그들이 배운 내용에 의존한다. 그리고 일단 배운 것이라도 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보통 사람이건 특수한 사람이건, 인간의 본질이 쉽사리 변할 수 있었음을 뜻했다. 한 사람이 제대로 조건 형성만 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윗슨의 이와 같은 입장은 다음의 인용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나에게 건강하고 잘생긴 아이 열둘과 그들을 키울 나 자신의 구체적인 세계를 준다면, 어느 아이든 그의 재능, 기호, 성향, 능력, 적성 그리고 조상의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의사, 변호사, 예술가, 사장, 심지어 거지, 도둑 중에서 내가 선택하는 유형의 전문가로 훈련시킬 수 있음을 보장한다 (Watson, 1966, p. 104).

객관성이 학습의 힘에 관한 신념과 혼합되어 미국 심리학을 휩쓸었고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학습에 관한 몇몇 구체적인 생각과 결합되어, 학습은 자녀 양육, 교육, 광고, 그리고 사회 조직에 상당한 함의를 가졌다. 윗슨의 생각이 기회 균등, 실용성의 강조, 그리고 진보적 신념에서 미국인의 신념과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생각해 볼 때 행동주의가 미국 심리학 무대의 중앙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물론 윗슨을 행동주의를 갑자기 제시해서 그것이 재빨리 보편적으로 채택되도록 한 사람으로 볼 수 없다. 윗슨이 <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 을 출판했을 때, 객관성과 환경론으로 그 추세가 이미 진행중이었다. 본능론의 폐기는 윗슨보다는 버나드 (L.L. Bernard) 와 쿠오 (Z. Y. Kuo) 의 연구 때문이었다. 더욱이, 윗슨 자신의 많은 생각들을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John Locke) 의 박식함과 러시아의 이반 파블로프 (Ivan Pavlov) 의 새로운 생리 심리학에 돌렸다. 끝으로, 대안적 입장을 계속 방어해야 했으므로, 윗슨은 많은 반대에 직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에 미국 심리학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났고 윗슨이 이 변화에 관한 논의에서 항상 중추 역할을 하는 핵심 연설자였다. 그는 행동주의에 명칭을, 가장 큰 목소리를, 그리고 사명감을 주었다.

 

 

학습에 관한 윗슨의 해석

 

 그러면 윗슨은 학습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앞서 보았듯이 그는 모든 학습을 고전적 조건 형성으로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은 반사라고 불리는 자극-반응의 연결을 부여받았다. 그 예로서 코에 자극을 주면 재채기를 하고 무릎을 세게 치면 굴근 반응을 일으킨다. 윗슨에 의하면, 이 반사들은 우리가 물려받은 전체 행동 레퍼터리이다. 그런, 조건 형성 과정을 사용하여 수없이 새로운 자극-반응 연결을 생성시킬 수 있다. 만일 새로운 자극이 반사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과 함께 계속 짝지어지면, 새로운 자극 하나만으로도 그 반사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파블로프가 처음으로 보고한 이 조건 형성 과정은 원래 반사 목록에 있었던 반응이 이 반응을 유발시켰던 자극 이외의 새로운 자극에 의해 유발될 수 있도록 만든다. 윗슨에 의하면, 이 과정이 바로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학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 형성은 학습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반응도 학습해야 한다. 재채기, 무릎 굴절 등만으로는 복잡한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새로운 습관은 어떻게 학습되는가? 윗슨에 의하면, 일련의 반사들을 지속적으로 쌓아 나가면 된다. 예를 들면, 걷기는 몸무게를 한 발에 두기,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기, 몸무게를 한 발에서 다른 발로 옮겨놓기 등등 여러 반응의 연속이다. 이런 여러 반응이 적당한 순서로 일어나면서 걷기라는 숙련된 동작을 구성한다. 이런 연속된 반응을 쌓아올리기는 각 반응이 다음 반응을 위한 자극이 될 수 있도록 근육 감각을 생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처럼 새롭고 복잡한 행동은 간단한 반사가 연속적으로 결합되어 습득된다.

 이런 종류의 학습을 좀더 자세히 보기로 하자. 연속 반응에서 다리를 앞으로 내미는 반응 하나를 보자. 원래 이 반응의 자극은 아마 걷는 방향으로 나 있는 장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몸무게가 다른 발에 있을 때만 다리를 앞으로 내밀 수 있다. 그러므로, 다리를 앞으로 내밀 때는 항상 몸무게가 다른 다리에 있음을 감지하는 신체 감각이 있을 대이다. 따라서 이 감각은 다리를 내미는 반응과 짝짓게 되고 반복된 짝짓기를 통해 이 감각은 다리 내미는 반응을 유발시킨다. 이처럼 잘 학습된 걷기 습관에서, 몸무게가 어느 한 발에 있다는 감각이 다른 다리를 자동적으로 앞으로 내미는 조건 반응을 유발시킨다. 이 반응이 연속된 다른 반응들과 융합되면서 각각의 반응이 다음 반응을 위한 자극으로 제공되는 셈이다. 이렇게 연속된 반응이 궁극적으로 매우 잘 통합되므로 실제적 목표 때문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아가는 전체의 과정이 실제로는 복잡하게 연결된 자극-반응의 연결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걷기라는 단 하나의 반응으로 말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이 복잡한 학습에 관한 윗슨의 설명으로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구체적인 자극-반응 연결의 연속을 결정하는가? 라고 찬찬히 물어보자. 앞서 언급한 윗슨의 저서 (<행동주의>, 1924 년에 초판되었으며 1930 년에 개정되었음) 를 읽어 보면 그가 여전히 이 문제의 답을 추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두 개의 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았고, 그리고 두 답의 관계도 여전히 불확실하였다. 한 가지 답은 숙련된 행위를 구성하는 자극-반응 연결을 조건 반사라고 보았다. 각각의 반응은 다음 반응에 대한 조건 자극이 되는 감각을 생성하고 , 이렇게 해서 전체적인 조건 자극-반응 연결의 연쇄가 형성된다. 이런 식의 형식화는 복잡한 습관을 조건 반사라는 간단한 건축용 벽돌로 축소시킴으로써 윗슨에게 만족을 주었다.

 이제, 행동주의자들이 조건 형성을 설명했듯이, 그는 생리학자들에게 왜 조건 형성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윗슨은 실제로 이것을 자세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만일 왼쪽 발의 몸무게 느낌이 자극이고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기가 반응이면 조건 형성이 발생하도록 반응이 일어남을 항상 보장하는 무조건 자극은 무엇인가? 이 중대한 질문에 대하여 윗슨은 답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복잡한 행동 패턴을 조건 반사의 연속으로 환원시키는 작업은 내용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겉치레가 되었다.

윗슨이 이런 학습을 달리 설명하는 두 원리는 빈도 (frequency) 와 최신성 (recency) 이다. 빈도 원리는 제시된 자극에 대하여 어떤 반응이 더 빈번할수록, 그 자극이 또 다시 제시될 때 그 반응을 할 가능성이 더 많음을 뜻한다. 비슷하게, 신근성 원리는 제시된 자극에 대하여 보다 최근에 한 반응일수록, 그 자극이 또 다시 제시되면 그 최근의 반응을 할 가능성이 많음을 뜻한다.

윗슨은 이 원리를 세 살짜리 남자 아이가 캔디가 들어 있는 문제 상자 열기를 학습한 예로 설명한다. 아이는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바닥에 대고 탕탕 치기도 하고, 쓸모 없는 여러 행동을 한다. 나중에는 우연히 상자의 단추를 누르는데, 이 반응은 문을 열고 캔디를 가질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상자가 열려 있고 캔디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는 계속 작업을 요하는 자극이 없어진 셈이다. 이런 자극이 있었을 때 최종 반응은 단추 누르기였다. 다음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상자에 캔디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 아이는 전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시행 착오 (trial and error) 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우연히, 그는 새 반응을 시도하게 되고 옛 반응 중 일부는 없어진다. 그러나 또 다시 그가 행하는 최종 반응은 단추 누르기인데, 그 반응반이 자극 상황을 바꾸기 때문이다. 매번 그가 상자를 가지고 놀 때, 단추 누르는 반응은 하지만, 다른 반응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단추 누르기가 빈도상 최우위를 차지 한다. 그 결과, 단추 누르기는 상자와 지속적 경험 중에 더 빨리 발생한다. 단추 누르기가 문제를 해결하므로, 다른 반응이 상자와 지속적 경험 중에 일어날 기회는 더 줄어든다. 닫혀진 상자라는 자극에 대해 누르기 반응이 학습된 것이다.

이 예는 단추 누르기와 같은 한 반응이 학습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제는 상자를 열기 위해 연속 반응이 요구되었으며 반응할 때마다 상황이 바뀌면서 다음 반응을 생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예컨대, 단추를 누르면 바깥쪽 뚜껑만이 열리고 여기에  드러난 지렛대를 옆으로 이동시켜야 안쪽 뚜껑을 열게끔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단추 누르기와 지렛대 이동 모두는 같은 방식으로 학습되는데, 각각의 반응은 자극을 변화시키므로 옛 자극에 대한 최종 반응이 된다. 이런 연속된 반응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복잡한 일련의 연속에서 특정 지점의 자극에 대하여 다른 반응이 아닌 한 특정한 반응이 발생하는가? 윗슨은 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한 자극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반응들이 발생하지만 앞서 언급된 과정에 의해 그 대부분은 떨어져 나간다고 답한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반응은 자극이 제시되자마자 그 반응이 곧바로 발생하기까지 그 빈도와 신근성을 더해간다. 복잡한 연속 과정에서 특정한 자극-반응 단위는 이렇게 해서 완성된다.

새로운 반응의 학습에 관한 이러한 진술 모두는 윗슨의 설명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미흡한 채 남아 있다. 조건 형성, 빈도의 원리, 그리고 최신성의 원리는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학습자가 처음에는 맞는 반응보다는 틀린 반응을 더 많이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결국 맞는 반응을 배운다는 사실이 빈도의 원리와 잘 들어맞는가? 윗슨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복잡한 학습이 간단한 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데 자신을 가졌지만, 그가 시도한 설명은 잠정적이었고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이론으로 결코 발전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윗슨이 학습의 원인으로서 강화, 보상  그리고 처벌을 등한시하였다는 점이다. 학습에 대한 진정한 행동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 개념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대신에 그는 단순히 자극과 반응 두 사건이 근접 (contiguity) 해서 같이 발생하므로, 사람들이 이 둘을 연결해서 학습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윗슨은 근접론자 (contiguity theorist) 로서 강화가 없이 근접 하나만으로 학습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수한 종류의 학습

 

  정서 반응은 어떻게 학습되는가? 윗슨은 그가 타고난 반사의 존재를 이미 인정한 것 이외에, 유전을 용인하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 패턴의 타고난 정서 반응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원리상, 이 반응 패턴들은 반사와 같은데, 이들이 어떤 운동 (내부 기관의 운동을 포함해서) 을 포함하며 어떤 자극이 이 반응 패턴들을 유발하는지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서 반응들은 보통 반사의 의미보다 더 복잡하다. 세 정서 반응 패턴은 편의상 공포, 분노, 그리고 사랑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윗슨은 이 명칭들이 의식적 느낌이 아니라, 운동 패턴을 지적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아이 가까이에서 징을 울린 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면, 큰 소음 자극이 공포 정서를 생성했다고 이 사건을 서술한다. 하여간, 아이의 느낌은 언급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행동에 단순히 그 명칭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정서 학습은 새 자극에 대하여 이런 세 가지 패턴의 정서 반응을 조건 형성시킨다. 타고난 공포에 관한 앞의 예는 윗슨의 유명한 실험을 인용한 것으로서, 조건 형성된 공포를 예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11개월 된 어린 알버트가 흰 쥐와 함게 놀도록 하였는데, 알버트는 기분이 좋았으며 공포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뒤에서 망치로 쇠막대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알버트는 깜짝 놀라서 옆으로 넘어졌다. 이렇게 갑작스럽고 큰 소음이 몇 번 반복될 때마다 곧바로 알버트에게 쥐를 보여 주었으며, 매번 그는 똑같은 반응을 하였고, 때때로 훌쩍훌쩍 울기도 하였다. 이 반응들은 소음이 공포의 무조건 자극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훈련 후에, 소음을 제시하지 않고 쥐만 보여 주었다. 알버트는 넘어져서 계속 울면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기어서 쥐로부터 멀리 떠나가 버렸다. 윗슨에 의하면, 이런 조건 반응이 무조건 반응이 모든 정서를 설명한다.

지식은 어떻게 획득되는가? 예컨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배우는지를 조건 형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히 그렇다고 윗슨은 말하는데, 이런 지식은 단순히 어떤 단어들을 말하거나, 혼자서 중얼거리면 되기 때문이다. "정복자 윌리엄은 1066 년 헤스팅스에서 색슨인 헤롤드를 패배시켰다" 를 말하는데 포함되는 반응의 연속은 방을 가로질러 걷는 데 포함되는 반응의 연속과 원리상 다르지 않다. "노르만인은 양국을 어떻게 정복했는가?" 와 같은 질문은 그 자체가 연속된 단어들로 구성된 진술문을 유발시키며 각 단어는 다음 단어에 대한 조건 자극이다. 지식 획득은 질문 또는 다른 조건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단어들을 알맞은 순서로 나타내는 학습 과정이다.

윗슨은 모든 행동이 몸 전체를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마루 위를 천천히 걷거나, 이마를 찌푸리기도 한다. 의사 표시를 할 때는 말 뿐만 아니라 미소를 짓거나 팔을 흔들면서 한다. 그러므로 정말로 정서가 내장 반응 또는 사고가 음성 반응만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반응들이 지배적이지만 유일한 반응들은 아니다. 사고하거나, 느끼거나, 또는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정도가 다소 다르지만, 몸 전체의 활동을 포함한다. 이것이 아마도 행동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신조일 것이다.

 

윗슨에 대한 평가

 

 심리학 발전에 있어 윗슨의 위대한 공로는 신체와 마음의 구분을 거부하고 객관 행동의 연구를 강조한 데 있다. 이 전투가 매우 효과적으로 승리를 거둔 결과, 적어도 1950 년대까지 미국의 학습 이론 대부분은 행동주의라는 말로 통용되었다. 그 후 이 분야의 많은 이론들이 이제 행동주의적이라고는 불려지지 않는 방향으로 가 버렸지만, 여전히 그들은 행동주의의 유산을 나타낸다.

이 책에서는 행동주의의 주제를 다소 변형시킨 몇몇 이론 체계들을 보려고 한다. 이 체계들의 공통점은 객관 행동에 대한 관심, 동물 연구에 관한 강한 흥미, 자극-반응 분석에 대한 선호, 그리고 심리학의 중심 주제로서 학습에 대한 전념이다. 이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윗슨을 여기서 고찰하려는 이론 체계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 지적 아버지 또는 조상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윗슨은 학습의 세부 문제들을 다룰 만큼 철저하지 못했다. 그가 다룬 복잡한 학습에서 불완전성과 비일관성을 이미 보았다. 객관 심리학을 구축하려는 그의 열성 때문에, 논리적 철저성은 다소 결여되었다. 만일 자신의 이론을 더 오랫동안 연구했다면 그의 체계는 이런 문제들을 다룰 수 있을 만큼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을 주관성과 타고난 성향에 관한 신념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열의는 고된 작업을 요하는 이론 완성과는 부합하지 못했다. 하여간,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당시의) 이혼 스캔들 결과, 1920 년에 학문 세계를 떠났으며, 그 후 얼마 안 있어 행동주의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머지 생애 대부분을 광고라는 응용 심리학에 바쳤다. 윗슨은 이제 세부적인 이론 체계 구축보다는 눈부신 그의 철학적 발자취 때문에 주로 추앙된다. 행동주의 틀 속에서 더 완전한 학습 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졌다.

손다이크의 초기 연결주의

윗슨의 이론에서 눈에 띄게 결여된 것은 강화 개념이다. 특정 반응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강화와 소거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무강화는 그의 생각 (또는 그의 언어 행동이라고 말해야 할까?) 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러나,객관 행동 분석을 강조한 그와 의견을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은 윗슨이 강화를 빠뜨린 데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였다. 그들은 어느 반응이 학습되는가에 관한 물음은 각 반응의 결과가 보상인지 또는 처벌인지 눈여겨보면 가장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심리학의 역사에서 행동의 결과로서 쾌락과 고통이 행동의 주요 결정 인자라는 생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8 세기 벤담 (Jeremy Bentham) 은 이 생각을 발전시켜 영국 철학자들이 채택한 심리 쾌락주의의 기반을 형성한다. 이 견해는 사람들 모두는 자신에게 쾌락을 주는 일은 하고 고통을 주는 일은 피한다고 주장한다. 하여간, 손다이크 (Edward L. Thorndike, 1874 ~ 1949) 는 학습 심리학의 중심이 되는 행동주의적 입장을 이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손다이크는 실험 동물 심리학의 선구자였다. 동물들의 이런 저런 지적 묘기에 관한 이야기에 매달리기보다, 그는 동물들을 실험실로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표준화된 문제들을 제시하고, 그들이 문제들을 어떻게 푸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동물의 지능" (Animal Intelligence, 1898) 이라는 그의 논문은 이 분야의 고전 중 하나이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그의 연구는 문제 상자의 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다. 배고픈 고양이는 밖에서 생선 한 토막이 유혹하는 우리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고양이는 우리 안에 매달려 있는 끈의 고리를 잡아당기면 문을 열 수 있었다. 고양이는 보통 우리의 주변을 걸어다니거나, 벽면을 발로 긁거나, 다른 쓸모 없는 행동을 거친 후, 비로소 끈의 고리를 잡아당겨서 우리를 떠날 수 있었다. 우리 안에서 여러 번 테스트를 반복한 결과, 고양이가 끈을 잡아당기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졌다. 그러나,이런 향상은 매우 점진적이었다. 끈을 잡아당겨 문을 여는 경험을 여러 차례했는데도 불구하고, 각 시행에서 고양이는 다른 행동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후에 비로소 끈을 잡아당겼다. 이 발견은 손다이크로 하여금 고양이가 끈을 잡아당기는 학습이 끈을 잡아당기기와 문 열기의 관계를 단순히  '지적으로' 파악했다기보다는 끈을 보고 그것을 잡아당기기 간의 자극-반응 연결을 서서히 '압인하기' (stamping in) 를 포함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손다이크가 이 연구들을 발표한 무렵, 두 과격한 입장이 드러났다. 즉, 통제된 조건에서 동물 행동에 관한 면밀한 관찰과 자극-반응 연결의 점진적 강도 증가에 관한 관심이었다. 이 연구들은 동물들이 추론으로 문제를 푸는지 또는 본능으로 문제를 푸는지의 논란에 대한 손다이크의 답변이었다. 손다이크는, 추론이나 본능 그 어느 것도 아니고, 정확한 반응을 점진적으로 학습한 결과라고 밝혔다.

가장 주목할 점은, 윗슨이 근접론자였음에 비해, 손다이크는 강화론자였다는 것이다. 윗슨의 빈도와 신근성 법칙은 자극-반응 연결이 단순히, 자극이 존재할 때 발생하는 반응에 의해 강화된다고 진술한다. 손다이크는 이 입장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고, 이것을 연습의 법칙 (law of exercise) 이라고 요약하였다. 그러나 그가 으뜸으로 여긴 학습 법칙은 효과의 법칙 (law of effect) 이었다. 이것은 자극-반응 연결의 압인이 자극과 반응이 반드시 함께 발생해야 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반응 후에 뒤따르는 효과에도 의존함을 말한다. 만일 자극 다음에 반응이 뒤따르고 그 뒤에 만족 인자 (satisfier) 가 따르면 그 자극-반응 연결은 강화된다.그러나, 그 자극 다음에 반응이 따르고 곤혹 인자 (annoyer) 가 따르면 그 자극-반응 연결은 약화된다. 반응의 만족스런 또는 곤혹스런 효과가 자극-반응 연결의 압인 여부를 결정한다.

만족 인자 그리고 곤혹 인자라는 용어는 자극-반응 결합의 기계적 압인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론에서 보면 대단히 주관적으로 들린다. 이 말은 행동주의 심리학자의 말이라기보다는 쾌락주의 철학자의 말과 더 흡사하다. 손다이크는 학습에 관해 이런 식으로 말하여 행동주의자들로부터 세찬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이 두 용어를 객관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일의 만족스러운 상태란 동물이 피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그 일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일의 곤혹스러운 상태란 동물이 아무 일도 계속하지 못하고 하던 일을 중단시키는 상태를 뜻한다 (Thorndike, 1913, p.2).

손다이크는 동물의 감정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동물이 무엇을 하는지 에만 관심을 가진다. 이처럼 그는 행동주의의 관심사인 유기체가 무엇을 하는지 에만 집착한다. 그의 언어가 주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가 뜻하는 바는 윗슨이 뜻하는 것처럼 객관적이다. 행동주의 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손다이크는 그의 강경파 지지자들과 의견을 달리했으나, 실제로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관심과 목표에 있어서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손다이크는 확실히 행동주의자였다. 그의 생애 후반에, 손다이크는 만족 인자를 곤혹 인자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기 위하여 효과의 법칙을 수정하였다. 그는 보상은 연결을 강화시키지만, 처벌은 그 연결을 직접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만일 처벌이 무엇을 하게끔 만드는 경향을 약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면, 그 이유는 처벌이 다양한 행동을 일으키므로 어떤 새 반응이 강화를 받을 기회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수정한 결과, 효과의 법칙은 이제 만족스러운 결과가 자극-반응 결속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는 낯익은 진술이 되었다 (그러나, 손다이크가 이 법칙을 제안했을 당시에는 전혀 낯익은 진술이 아니었다).

손다이크는 실용적인 면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교육 심리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였다. 그의 교수 생활 중에, 인간과 동물 피험자를 다룬 그의  '순수' 학습 심리학 연구는 교육에서 응용 심리학 연구 중간 중간에 끼여 들어 갔다. 그가 강조한 학습의 구체성과 자극-반응 연결의 기계적 압인은 여러해 동안 교육자들의 칭찬도 받았고 비난도 받았다 (연결주의, connectionism 이라는 말은 정말로 그의 공헌으로 돌릴 만한 용어이다).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손다이크의 연구 특징은 윗슨의 연구와 너무 유사하서 여기서 더 언급을 할 필요가 없다. 손다이크는 윗슨과 버금가는 객관 심리학의 선구자이며, 그의 원래의 기여는 윗슨의 기여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자신의 객관적 학습 심리학에 효과의 법칙을 통합시켜 실제로 최초의 강화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손다이크의 학습에 관한 입장-강화의 조작을 통해 자극-반응의 결속을 수반하는 학습 - 은 미국 학습 심리학에서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다. 학습론자들의 대다수가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다소 변형되기는  했지만, 이런 입장을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입장을 취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많은 에너지를 손다이크의 접근에 찬성하지 않는 데 소모하였다. 에드워드 톨만 (Edward Tolman) 이 나중에 썼듯이(1938), 손다이크의 입장은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든 그의 이론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학습에 관한 어떤 논의에서건 손다이크의 입장은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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