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은 궁궐 답사를 할 때면 늘 마주치는 것으로
궁궐의 지붕이 내림 마루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동물 상과 같은 것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잡상을 먼저 좀 봅시다.
이 잡상이 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잡상에 대해서 일반적인 견해로는 중국 송나라 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봉궁 근정전 잡상에서 보듯이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잡상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부터 대당사부(삼장법사),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등등이 그들입니다. 잡상은 장식효과와 잡귀들이 이 건물에 범접하는 것을 막는 벽사 의미를 갖습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잡상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모두 살(煞)을 막는 신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신임관료가 부임해 선임 관료에게 첫 인사를 할 때 대궐 문루 위 이 잡상들의 이름을 단숨에 외워야지만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서유기의 인물일까요. 당나라시대 때 현장법사가 인도 여행을 하기 위해 험준한 천산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날 때, 그 여로에는 수많은 도적떼들이 출몰하여 순례자와 상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무사히 인도에 도착하여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고 수행을 마친 후 수도 장안으로 돌아와 '대당서역기'를 집필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명나라 오승운이 현장법사르 삼장법사로 바뀌고 그의 여정에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등이 등장시키면서 '서유기'로 개작했습니다. 손오공은 인도의 <라마자야> 라는 대서사시에 나오는 원숭이나라의 장군 하누만에서 따온 캐릭터지요. 신과 인간을 돕는 힘 센 원숭이지요.
따라서 이런 초능력을 지닌 인물이나 동물들을 지붕 위에 세워놓은 데에는 악귀들이 감히 궁궐에 함부로 드나들 수 없게 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취두, 용두, 잡상은 아무 건물이나 두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품격이 높은 건물만 설치됩니다.
즉 대궐의 모든 '전.당.합.루.각'을 비롯하여 '릉.원'의 정자각.종묘.성균관.궁궐의 정문.도성의 성문 등으로 한정됩니다.
자. 그런데 청나라 자금성 중화전의 것을 좀 볼까요.
여기에는 손오공이 없습니다. 하긴 명나라 때 만든 서유기를 보고 조선초기나 고려시대에도 서유기의 주인공을 모델로 잡상을 만들 수는 없겠지요.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한 것은 저도 기억이 좀 불확실한데, 조선의 어떤 임금(중종이던가?)이 꿈에 서유기 꿈을 꾸고 잡상을 그것으로 만들라고 한 이후로 잡상에 삼장법사 등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기거하는 건물엔 11마리의 잡상이 있고, 세자의 경우는 9마리, 그 외에 격이 낮은 경우는 7마리로 정해져 있지만, 조선에서는 특별히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는 않고 있어 숭례문에 9마리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에는 7마리이지만, 경회루에는 11마리가 놓여 있습니다.
서유기가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라 사찰 건물에 잡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대접이 낮은지라, 사찰 건물에 잡상을 설치하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수원 용주사에 한 마리의 잡상, 즉 손오공이 그 건물을 지키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용주사의 격을 높여준 셈이지요.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은 잡상은 명칭과 순서도 일정하지는 않지만, 숫자는 항상 홀수입니다. 짝수는 음의 성질을 갖고 있어 귀신이 범접하기가 수월하여 쉽게 재앙이 따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잡상은 건축물을 물과 불의 재난으로부터 수호해주는 화(火), 수(水)의 수호신입니다.
조선의 대법전인 <경국대전> 공전의 기록에는 공조 속아문(소속관청)인 와서에 와장(기와 기술자) 40명에 잡상장 4명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조선시대 초기, 또는 그 이전부터 잡상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자, 그럼 조선초기에는 어떤 잡상이었을까요. 서유기의 모습이 아닌 잡상. 우리는 그 단서를 이성계가 세운 양주 회암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회암사는 이성계의 별장이라고 할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 최대의 사찰이었습니다. 수년째 발굴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잡상이 여러 개 출토되었습니다. 얼마전 저도 그곳에 가서 잡상을 보고 왔습니다.
이 잡상은 서유기와 달리 신선이나, 장군 등으로 보입니다. 즉 재래의 전통이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혹은 송나라의 것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이것의 계통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고려시대 잡상을 볼까요. 고려 황궁에서 나온 잡사 모습입니다.
자, 고려시대의 잡상은 조선시대 경복궁에서 보는 것과 확실히 다릅니다.
신기한 새와도 같은 것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경주 식리총에서 나온 신발에 새겨진 새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잡상의 형상에서 어떤 재래 종교의 단서까지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면서, 아직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한 잡상에 대해서 글을 남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