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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자립(개척)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본문 : 대하 1:1-13
제목 :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서론
사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받아 누리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힘으로 순리대로 벌어서 모아 보려고 하지 아니하고 흉기를 사용하여 타인의 것을 빼앗아 모으려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때로는 실천에 옮기는 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랴하고 물으실 때에 때는 이 때라 하고 평소에 자신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글 다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빼앗기도 해야 되겠는데 거저 주시겠다는 데는 사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욕구 불만을 충족시키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고 오직 타인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칭찬과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1. 아버지와 약속한 것을 달라 하였습니다.
본문 9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로 나의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하였습니다(삼하 7:12-17).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것은 솥로몬을 왕으로 삼고 그 위를 튼튼히 하여 그로 통하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신다고 하셨으니 그것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질 줄로 믿고 이루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2.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공정하게 재판할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공정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책임 추궁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공정하게 재판을 한다고는 하지만 자연인 그대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말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지혜를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니고 지혜는 타인에게 억울함을 당하게 하지 아니하고 뇌물을 받고 재판치 아니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긍흘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3-18)하였습니다. 여하간 지혜는 깨끗함을 분별케 하고 치우침이 없기 때문에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3. 합당하게 구하여 받았습니다.
본문 11-12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구하는 내용을 보시고 기쁘게 생각하시며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것도 주셨습니다. 부도 주시고 영화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따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더 하시리라(마 6:3) 하신 말씀과 같이 된 것입니다.
결론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하나님 앞에 신앙적인 행위를 행하기 전에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본문 : 대하 2:1-10
제목 : 솔로몬의 결심
서론
솔로몬은 왕이 되고부터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불 일듯 하여 영광을 위하여 지혜를 구하여 창기들의 친자 찾기 싸움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명재판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전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사람이 잘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요 성도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솔로몬의 결심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성전 지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본문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전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기를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먼저 성전부터 짓고 그 다음에 자기가 거할 궁전을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집만 생각하고 성전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을 때에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들은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학 1:4-11). 누가 무엇이라고해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부터 건축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2. 분향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본문 4-6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하였습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계시도록 묶어두겠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성전을 잘 짓는다고 해도 그 성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는 줄로 알아서는 안 되고(행 17:24) 다만 인간들이(성도) 모여서·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장소로 지정하여 하나님의 전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정성껏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3. 아름답게 지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본문 3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 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이제 청컨대 당신은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또 레바논에서 백향목과 잣나무와 백단목을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알거니와 당신의 종은 레바논에서 벌목을 잘 하나니 내 종이 당신의 종을 도울지라 이와 같이 나를 위하여 재목을 많이 예비하게 하소서 내가 건축하려 하는 전은 크고 화려할 것이니이다"(7-9)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되 최대한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정치적인 권세와 예술로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데는 최고로 아름답게 하려고 결심을·하였습니다. ·
결론
사람의 결심 여하에 따라 생활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결심을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주력하기로 결심을 하였으며 성전을 짓되 최고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본문 : 대하 3:1-14
제목 :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서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에 자기 생각대로 무엇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려고 애를 썼고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누가 보아도 하나님 경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되어지게 지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 예루살렘에 건축하였습니다.
본문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하였습니다. 그곳은 이미 마련해 놓은 곳이며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불로 응답하신 곳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하였습니다(대상 21:18-26). 이와 같이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도 장소에 대하여도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뜰 따라서 할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이는 오늘의 성도들이 본받아할 점입니다.
2. 화려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본문 6-7 "또 보석으로 전을 꾸며 화려하게 하였으니 그 금은 바르와임(금을 캐낸 소재지를 말함) 금이며 또 금으로 전과 그 들보와 문지방과 벽과 문짝에 입히고 벽에 그룹들을 아로새겼더라"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는 정금으로 입히고 천장에도 정금으로 입혔습니다(3-4). 이는 성전내부를 화려하게 꾸몄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에 최선을 다하여 성전을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곳이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곳이요 백성들이 모여서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곳을 위하여서는 무엇도 아끼지 아니하고 많이 드려서 화려하게 꾸미려고 무척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 교회를 위하여서는 물질을 아낌없이 드려서 아름답게 꾸미는 정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건물에만 아름답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가 아름답게 꾸며지려면 사랑의 재료가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재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모양도 아름답게 하고 속에도 사랑으로써 아름답게 장식해야 할 것입니다.
3. 경외할 마음이 생기게 건축하였습니다.
본문 10-13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좌편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전 벽에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우편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우편 그룹의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전 벽이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좌편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니 이 두 그룹의 날개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그 얼굴을 외소로 향하고 서 있으며"하였습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시중드는 천사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들의 얼굴은 경배자들을 향하도록 만들어 졌는데 이는 천사들도 더불어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전 안에 모든 장식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경건된 마음으로 섬겨야 된다는 마음이 우러나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부 치장에만 신경을 쓰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오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분위기 조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하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지어져야 합니다.
결론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에 자기 생각대로 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적당한 장소에 화려하게 지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지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교회를 건축할 때에 솔로몬처럼 여러모로 신경을 써서 건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교회다운 구실을 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야 하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세우며 자신과 후손에게는 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4:1-10
제목 : 솔로몬이 만든 성전의 기물들
서론
솔로몬 성전을 화려하게 건축하고 성전에다 기물들을 만들어서 비치하였습니다. 즉 성전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물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만들어 놓았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단을 만들었습니다.
본문 1 "솔로몬이 또 놋으로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십 균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십 규빗이며"하였습니다. 단은 제물 바치는 곳입니다. 풍성한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단을 만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한 때 일천번제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수양하려고 오는 수양의 장소가 아니고 위로를 받으려고 나오는 장소도 아니며 무엇을 받으려고 나오는 장소가 아니요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는 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여서 찬송드리고 기도드리며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일들이 기쁨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나오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2. 대야를 만들었습니다.
본문 2 "또 바다를 부어 만들만으니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하였습니다. "또 물두멍 열을 만들어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기를 위한 것이더라"(6)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씻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대야를 만들어 좌우편에 다섯씩 두고 부정한 것을 씻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깨끗하게 씻기우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께서 죽으심이 바로 더러운 죄를 씻기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손을 깨끗이 씻고 마음을 깨끗이 씻으며 모든 면에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에서는 씻는 일이 중요함을 알고 씻는데 필요한 대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도 회개의 대야를 만들어 주의 피의 물로 깨끗하게 씻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솔로몬은 씻는 것이 절대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 바다는 전 우편 동남방에 두었더라"(10)하였습니다. 성전 어디서라도 씻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3. 등대를 만들었습니다.
본문 7 "또 정식을 따라 금으로 등대 열을 만들어 외소 안에 두었으니 좌편에 다섯이요 우편에 다섯이며"하였습니다. 이는 빛을 비취기 위히여 만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말씀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즉 주의 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드리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 따라서 착하게 사는 빛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불을 켜는 등대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사회에 예수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면 교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빛 자체입니다(요 1:4-9). 그 빛을 받은 우리는 사회에다 반사시켜야 합니다.
결론
솔로몬이 성전 안에 기물을 만든 것은 성전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단을 만들었고 더러운 것을 씻는 대야를 만들었으며 어두움을 비취는 등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성도들이 많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 대하 5:1-14
제목 : 하나님의 전에 영광이 가득함
서론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고 성전 안에 기구들을 만들어 바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드리고 찬송을 드렸을 때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고자 하심이요(사 43:7, 21) 구속하여 주심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고자 하심입니다(엡 1:6-14).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 위하여 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10:31). 그리고 진리 안에서 착한 행실을 해서 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마 5:16).그럼 솔로몬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전에 영광이 가득하게 하였는가 알아보겠습니다.
1. 전을 위하여 만든 기구를 드렸습니다.
본문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그 부친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모든 기구와 물건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을 만들어 바치고 더러움을 씻는 대야를 만들어 바치며 빛을 비취는 등대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성전 곳간에는 재물이 가득하게 쌓이게 되어 풍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기구들로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교회에 바친 물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2. 언약궤를 메어 드렸습니다.
본문 2-7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레위 사람이 궤를 매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드렸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구를 드리는데는 큰 의식이 필요치 않았으나 법궤를 메어 드리는데는 큰 의식을 치르고 들여왔습니다. 제사장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과거에 다윗은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오려고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게하여 법대로 옳겨왔습니다. 그리하여 언약궤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 궤 안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본문 12-14 "노래하는 레위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제물을 바쳤을 때가 아니고 찬송을 드렸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찬미의 제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다는 좋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하였습니다. 찬송은 성도들의 입술의 열매입니다(히 13:15).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쁨의 찬송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구원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송을 드려서 하나님의 교회에 영광이 가득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6:34-42
제목 : 솔로몬의 기도
서론
솔로몬은 자기 욕심에서 벗어난 기도를 드린 사람으로 유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였지만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를 죽이겠다는 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백성들을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는 칭찬과 아울러 부와 영화도 함께 받았습니다. 본문의 기도도 정욕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본문 35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그 무엇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야지 상달이 되지 아니하면 기도는 하나마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사 1:15) 하였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느냐 듣지 아니하시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듣지 아니하는 기도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 6:33).
2.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본문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득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기도할 것은 그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는 길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회개하여도 용서받지 못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마나입니다. 그 뿐만 아니고 회개도 하나마나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일단 용서하여 주실 것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 살 길은 바로 회개하고 용서 받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70×7=490 이라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솔로몬은 용서해 달라고 구합니다. 이는 회개를 겸한 간절한 기도라고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끔찍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솔로몬처럼 죄를 용서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3. 얼굴을 돌이키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본문 42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하였습니다. 얼굴을 돌이킨다는 것은 외면한다는 말인데 외면한다는 것은 상하지 아니하겠다는 마음의 표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기도하기를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시 80:7-19)하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신다면 이는 끝장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지 마시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등을 돌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일단 하나님께서 자기와 가까이 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결론
솔로몬의 기도는 정욕을 위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로서 자신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와 가까이 있어주십사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들도 그의 나라와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하 7:1-7
제목 : 솔로몬의 기도 응답
서론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았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기쁜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한나도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고 히스기야 왕도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는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 이행이요(렘 33:3) 구하면 주시겠다는 약속 이행의 증거인 것입니다(눅 9:11). 기도의 응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의심없이 기도하는 것이 응답을 받는 비결 중에 비결입니다.
1. 불로 응답하였습니다.
본문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하였습니다. 이는 응답하시는 방법을 기록한 것입니다.엘리야도 갈멜산에서 기도를 드릴 때에 불로 응답하여 제물을 태웠습니다(왕상 18:38). 하나님께서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은 그 제물을 불태워 재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하간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신 것은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응답하시든지 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고 기도를 드려서 믿음대로 응답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다만 기도의 응답이 나타나는형태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2.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본문 1-2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하였습니다. 생각을 해봅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웠으니 제물 뿐만 아니요 그 외에 사람을 비롯해서 다른 것도 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사 33:14)하였습니다. 여하간 하나님은 영광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기도하는 것이나 응답을 받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고전 10:31).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도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엡 1:6-14).
3. 백성들이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본문 3-6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넓고 얇게 뜬 돌)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1이에 왕과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솔로몬 왕의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들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케 하던 것이라. 제사장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섰더라"하였습니다. 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감사와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겻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해주셨으니 응답을 받은 편에서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감사와 찬송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하는 것보다는 드리는 향내나는 제물로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계 5:8).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시켜 자신의 욕구불만을 채우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제물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양 각색으로 응답이 나타났다고 볼 때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본문 : 대하 8:11-18
제목 : 바람직한 생활
서론
사람으로 태어나서 짐승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이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자 같이 사는 것은 더욱 바람직한 생활입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생활인 것입니다(엡 4:1). 그런데 솔로몬은 왕으로서 바람직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생각하면서 바람직한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거룩한 것을 구별하였습니다.
본문 11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성에서부터 저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르러 가로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궁에 거하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왕후를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히나님의 궤가 있는 신성한 곳에서 속된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신성한 곳과 속된 곳을 구별하여 하나넘의 궤가 있는 곳을 신성시 하여 거룩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는 바람직한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세상과 교회를 구별되게 취급하는지요 아니면 구별 없이 취급하는지요. 우리는 반드시 세상과 교회는 구별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서 좌지우지하면 안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2-13 "솔로몬이 낭실 앞에 쌓은 여호와의 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모세의 명을 좇아 매일에 합의한 대로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절기 곧 일 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더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은 명예나 권세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성전이나 건축해 주면 자기 할일을 다한 것으로 알지 아니하고 자신이 그 곳에서 기도 드리며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건물을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요 내부 장식을 화려하게 하여 보는 이들로 즐거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여서 마음과 뜻을 모아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장소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교회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즐겨하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인 것입니다.
3.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본문 14-15 "솔로몬이 또 부친 다윗의 정규(정해진 규칙과 규약)를 좇아 제사장들의 반차(반열)를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에 합의한 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로 그 반차를 좇아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하였음이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왕의 명한 바를 다 어기지 아니하였더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법에 정해진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지를 감독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할 일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서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잘 되는지는 다윗이 일일이 감독하여 간섭하였습니다. 왕의 직분으제사장 직은 행할 수 없으나 제사장이 자기 임무에 충실한지 감독하는 것은 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을 하나님의 영광 나타나게 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자기들이 맡은 일에만 충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결론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전이 결점 없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은 거룩한 대로 구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생활이 성도로서의 바람직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9:1-12
제목 : 소문만 잘 나면
서론
요즈음을 피아르(P. R. )시대라고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선전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상품의 인기 및 판매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지만 타인의 입을 통하여 그의 지혜의 말씀이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을 만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교회 소문을 잘 내게 만들고 목회자에 대한 소문을 좋게 내며 성도들에 대한 소문도 좋게 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과 발전이 아니될 수 없는 것입니다.
1. 스스로 찾아오게 됩니다.
본문 1-2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솔로몬을 시험코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원이 심히 많고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을 약대에 실었더라 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솔로몬이 은미하여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좋은 것을 아낌 없이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또한 물질로 환산할수 없는 지혜를 주셔서 그 지혜의 말씀의 소문이 널리 퍼져서 그 지혜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 중의 한사람이 바로스바 여왕이었습니다. 스바 여왕은 누구의 초청이 아니라 소문을 듣고 스
스로 찾아왔습니다. 오늘의 교회들도 이와 같이 좋은 소문을 퍼뜨려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 양적 부흥은 전도하는데 있고 질적 부흥은 봉사하는데 있습니다. 좋은 소문은 희생적인 봉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외부적인 활동이지만 봉사는 내부적인 활동입니다. 내부적인 활동이 알차야 좋은 소문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본문 8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그 위에 올리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왕이 되게 하셨도다 하고" 하였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을 들은 스바 여왕이 한 말입니다. 교회가 좋은 행위를 보여주고 성도들이 착한 행실을 보여주면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마 5:16).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 :31). 그래서 성도들이 행동을 조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내는 생활이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교회는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로 소문을 내고 타인이 그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 와서 보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3. 경제도 풍족하게 됩니다.
본문 9-10 "이에 저가(스바 여왕) 금 일백 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께 드렸으니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께 드린 향품 같은것이 전에는 없었더라 후람의 신복들과 솔로몬의 신복들도 오빌에서 금을 실어 올 때에 백단목과 포석을 가져온지라"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있는 왕궁을 중심하여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지니 그 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물질도 주고가니 재정은 더욱 쌓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교회들도·졸은 소문을 퍼뜨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내고 많은 헌금도 하여 그 헌금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데 사용한다면 더욱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고(겔 37:36-37) 평안한 교회로 소문이 나며(행 9:21) 칭찬받는 교회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행 2:47). 그렇게만 되면 교회는 저절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을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남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잠 8:17). 솔로몬이 ·지혜롭고 부요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땅에도 많은 교회가있고 교회 안에는 좋은 목사와 좋은 장로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방법대로 해서 좋은 교회 만들어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헌금도 해서 더욱 부흥되게 해야 합니다.
본문 : 대하 10:1-19
제목 : 순간의 선택이
서론
상품 선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10년이 아닌 평생을 좌우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순간의 선택을 잘못함으로 자손 만대까지 사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백성들의 요구인 선처와, 늙은이들의 의견인 선정과, 소년들의 의견인 폭정을 놓고 삼일간 생각하다가 폭정을 선택하여 백성들에게 배반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1. 백성들의 요구는 선정입니다.
본문 3-5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하였습니다. 솔로몬과 같이 지혜로운 왕이라도 백성 전체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반정부 데모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가 바로 백성들의 시위요 항변인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말년에 가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아니할 때에 그에게서 지혜가 떠나 백성들을 폭정으로 다스렸던 것입니다. 거친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도 모세에게 원망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하였는데 폭정을 했다만 가만히 있을리 만무합니다. 당연히 일어나서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니 백성들이 소리를 모아서 선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삼일이라는 시간적인 여유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충분하게 생각하고 검토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2. 노인들의 의견을 수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6-7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회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하였습니다. 노인들은 선하게 권고하였습니다. 왕이 백성을 후대하십시요. 그리고 기쁘게 하시고 선한 말로 다스리신다면 백성들은 영영히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른 권면이요 좋은 제안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즉석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아니하고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선한 충고는 듣는 것이 덕이 되고 유익한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그 태도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성품은 우유부단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끊을 것은 냉정하게 끊고 할 것은 과감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자다운 면모를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소년들의 의견을 수락하였습니다.
본문 8-11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소서"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노인들의 교도(가르쳐 지도함)를 버리고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았다고 하였습니다(13-14). 이것이 불행의 시초가 되어 결국은 백성들이 왕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과격한 처사는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르호보암은 폭정을 택하여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선택은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무엇이나 할 수도 있고 하지 아니할 수도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 결과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직업의 선택 등 어떠한 선택에든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11:1-12
제목 : 침략보다 방어를
서론
르호보암 왕은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젊은 아이들의 말만 듣고 폭정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시고 나라를 둘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이는 르호보암의 죄때문 만은 아니고 솔로몬의 죄까지도 누적되다 보니 그와 같이 민족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전쟁을 해서라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고 계획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싸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싸우지 아니하고 방어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침략보다는 국력을 길러서 이웃 나라가 침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순리에 합당합니다. 침략은 죄악입니다. 방어는 정당 방위라 죄가 되지 아니합니다.
1.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본문 5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거하여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으니"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각 성을 건축하여 국방을 튼튼히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겠다는 호전적인 잔인한 인간보다는 내 나라를 빼앗기지 않게 하는 방비가 더욱 좋은 것입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나 국가나 언제든지 미리 준비하는 것이 후에 사고를 막는 비결입니다. 특히 국가는 국력을 키워놓지 아니하면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양육 강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약하면 강한 자에게 먹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으로 남의 나라는 빼앗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나라는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강하게 해둘 필요성이 있습니다. 자위를 위해서입니다.
2. 더욱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11 "르호보암이 이 모든 성읍을 더욱 견고케 하고 장관을 그 가운데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고"하였습니다. 방어를 하되 물샐틈 없이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도 감히 침략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6· 25동란을 만난 것은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가 되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족의 아까운 생명이 무수하게 죽어간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전에 준비 없는 나라의 참혹한 현실을 입증해주는 산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준비하여 제2의 6 · 25와같은 불행은 초래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준비 여하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 다.
3. 강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12 "각 성읍에 방패와 창을 두어 심히 강하게 하니라 유다와 베냐민이 르호보암에게 속하였더라"하였습니다. 전 국토를 요새화하고 백성들이 무장화하여 어느 나라도 침략해 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르호보암은 공공의 안녕와 평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국력을 키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가 남의 나라만 침략하지 아니하고 자국의 방위를 위하여 군사를 모집하고 국방비를 지출한다면 굶어 죽는 자들이 속출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여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통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무수하게 죽어간 사실을 알 수 있고 사막에 버려진 탱크 한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일년 이상 먹여 살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있음에도 국가예산 중에 국방비의 점유율이 높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을 방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결론
르호보암은 전쟁을 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셔서 그는 나라의 방위를 위해 성을 건축하고 그 성을 견고하게 하여 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이 민족들도 이와 같은 면은 본받아야 할 것으로 압니다.
본문 : 대하 12:1-8
제목 : 교만하면 매를 맞아야
서론
속담에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성공하면 옛적 일을 잊어먹는다는 것을 말한 줄로 압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면에서 강성하여지니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괘씸하게 여기시고 이웃나라를 붙여서 침략하게 만드시고 그 일로 인하여 르호보암과 백성들이 다시 회개하고 겸손하여지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면 손해만 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 잘 될 때에 하나님을 버립니다.
본문 1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하였습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잘 되었으면 더욱 감사하고 주께 영광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는 생활을 하니 하나님께서 섭섭하고 괘씸하게 여겨서 이웃나라로 침략을 할 수 있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기도하기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하였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잘 되면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한 점입니다. 사람이 잘 되면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더 섬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배반하고 멀리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2.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십니다.
본문 2-5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저에게 병거가 일천 이백 승이요 마병이 육만이며 애굽에서 좇아나온 무리 곧 훕과 숩과 구스 사람이 불가승수라(하도 많아서 이루 셀 수가 없음)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음으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렸다고 하시는 것은 영원히 버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사랑을 깔고 책망하고 징계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유는 회개를 촉구하시기 때문입니다(계 3:19). 하나님의 법을 떠나고 죄를 범하게 되면 요나처럼 바다에다 버리시고 가룟 유다처럼 영영히 음부에다가 버릴 수도 있으며 질병과 가난에다가도 버릴 수 있고 낭패와 실망에다가도 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겸손하여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3. 회개하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본문 6-8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그들에게 진노의 손을 거두시고 사랑의 손길을 펴시며 다시 회복하게 하시되 다시는 배반하고 반역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심판의 두려움을 약간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성도들의 장래를 위하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회개하는 자를 결코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더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하면 매를 때리시고 겸손하면 은혜를 베푸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결론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서 부강하여 지니까 하나님의 법을 버려서 망할 길로 치닫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징계하셔서 겸손하게 만들어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교만하면 하나님의 징계의 매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받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본문 : 대하 13:13-22
제목 : 유다의 승리
서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거역하고(5) 우상을 섬기며(8)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쫓아내고(9) 하나님의 명령을 명심치 아니하였습니다(12). 이는 망할 징조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들과 달리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만 의지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그렇지 이니하느냐 여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어떻게 전쟁에 승리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4 "유다 사람이 돌이켜 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군 18만 이상을 손도 대지 아니하고 물리쳤고 모세도 아말렉과 싸울 때에 손을 들고 기도하여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 기도는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를은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무엇보다도 기도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많은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2. 힘을 모았습니다.
본문 15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의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기도 현대화 해야 하고 강한 정신력을 길러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죽겠다는 정신에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국력이 분산되면 절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죽겠다는 정신으로 뭉쳐야 강한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아랍의 군사들이 이스라엘 군사들과 싸우면 패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굳건한 국민정신이 뒷받침 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본문 18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유다사람은 군사의 수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이스라엘은 군사의 수를 의지하였습니다(3).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11). 이렇게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서야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 유다사람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자기들의 전술을 의지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에 나아가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물론 전쟁인데 죽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유다 사람들이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것은 그들의 전술이 좋아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현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틀림없이 악한 마귀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14:1-8
제목 : 평안함을 얻으니라
서론
아비야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명령을 따라 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안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악을 행치 말아야 합니다(벧전 3:10-12). 평안함을 얻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아사왕이 어떻게 평안함을 얻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선과 정의를 행할 때입니다.
본문 1-2 "아비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 년을 평안하니라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를 의롭고 귀하게 보시고 그가 다스리는 그 땅 위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하면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그에 상응하는 물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 위하여 선과 정의를 행해야 합니다.
2. 우상을 제거할 때입니다.
본문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 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하였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 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5) 하였습니다. 솔로몬 말로에 세워진 우상들을 아사가 왕이 되자마자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아사왕에게 평안함을 주신 것입니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질투하실 정도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잡자마자 권력을 동원하여 사신 우상을 제거하였으니 그 얼마나 잘한 일입니까.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신 것입니다.
3. 율법과 명령을 행할 때입니다.
본문 4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하였습니다. "아사가 일찌기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7)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화를 주셨을 때에 전쟁을 위하여 성을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군사도 맡이 보유하였습니다. 항상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장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합니다. 즉 유비무환의 진리를 실천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잘 될 때에 잘못될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칠년 풍년들 때에 칠년 흉년들 것을 위하여 비축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하간 우선 잘 되고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평안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선과 정의로운 생활을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제일로 싫어하시는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15:8-19
제목 : 아사왕의 개혁 의지
서론
아사왕은 권좌에 오른 후부터 계속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오뎃의 설교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백성들의 의식구조를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그의 개혁의지가 투철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개혁 의지는 추호도 변함이 없고 심지어는 태후까지 폐위시키는 결단을 보여줌으로 온 백성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살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방에 평안이 있었고 35년까지 전쟁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개혁의지를 보여준 동기와 개혁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선지자의 예언에 힘을 얻었습니다.
본문 8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또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하였습니다. 아사왕이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오뎃이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설교)하는 말씀을 듣고부터 생긴 것입니다. 그는 외치기를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7).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놀라운 힘을 얻고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강론을 열심히 들어야 하고 자신이 성곁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예언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깨달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1:3). 구약은 신약의 메시야 탄생에 대한 예언이요 신약은 구약의 예언 성취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심을 기억하고(행 10:33)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살전 2:13) 성경으로 확인해서 취해야 합니다(행 17:11).
2. 태우까지 폐위하였습니다.
본문 16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하였습니다. 이는 아사왕의 종교개혁의지가 얼마나 강했는가를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인정 사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인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아사왕은 자기 어머니도 사정없이 폐위시키키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결단성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하였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고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사왕은 모친까지도 제재를 가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이 점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그에게 평안의 상급을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하였습니다.
본문 12-15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무릇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무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라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이 의지는 보통 의지가 아닙니다. 아사왕이 강한 의지를 보여주니 백성들까지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주께서 보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아사왕은 선지자의 설교를 듣고 힘을 얻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여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려고 노력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잘 섬겨서 큰 복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 대하 16:7-14
제목 : 죽을 때가 좋아야 되는데
서론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 때는 35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36년을 맞이하면서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성전의 기물과 왕궁의 보물을 벤하닷에 주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착한 성품이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그는 신앙도 있고 통솔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아니하고 나중에는 병들어 죽게 되어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에게 구하여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는 처음에는 매우 잘 했는데 말로에 아쉬움을 남기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가 좋아야 하는데"라는 제목으로 말합니다.
1.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하였습니다. 15장에서는 아사왕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감화를 받아 용감하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는데 왜 죽음이 가까울수록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우상숭배하는 그의 모친까지 폐위시키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까지 하였는데 어찌하여 무엇 때문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옥에다 가두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시종여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이미 믿음에 병이 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7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도움을 간청해야 좋아 하십니다. 그런데 아사는 도울 힘이 전무한 인생을 의지하고 그의 도옴을 요청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좋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이십니다(삼상 2:6-10). 그런데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일이요 불신앙적인 태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도 마땅한 일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지하였으니 그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며 아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3.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병원부터 찾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 병원 가는 것이 불신앙적인 행동이며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병원 가는 것이 나쁜게 아니요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 잘못도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를 찾지 아니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고치는 일도 있고 의사의 손을 통하여 고치시는 일도 있으며 약으로도 고치시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의사를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무화과 반죽을 하여 상처에 붙이고 고침을 받았음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왕하 20:1-7). 그러므로 의원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요청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명은 의사의 손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요 아쉬운 점입니다.
결론
사람이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깨끗하고 분명하게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제자로 처음에는 제자로서 활약하였지만 나중에는 나중에는 예수를 배반하고 그를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강도는 처음에는 잘못되었지만 나중에는 회개하고 주님과 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처음에는 훌릉한 신앙인으로 활약했지만 나중에는 불신앙인으로 행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으니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17:1-19
제목 : 기도하는 여호사밧
서론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에게 부와 영화를 주시고 계속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번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가 경제도 튼튼하게 하였고 따라서 국방정책도 빈틈 없이 하여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의 기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본문 3-4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바알 신을 미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심을 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요 14:15). 하나님을 사랑했기 패문에 하나님께서도 여호사밧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잠 8:17).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2. 나라가 견고하였습니다.
본문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셔서 기반이 튼튼하여 흔들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셨습나다. 그리하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0). 그 뿐 아니고 여호사밧은 성을 튼튼하게 하고 용감한 군사를 많이 두어 나라의 국방을 더욱 튼튼하게 하였습니다(13-19). 그러므로 나라가 튼튼해지는 비결은 나라의 최고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에게 기도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면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셔서 흔들리지 아니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3. 국가 경제가 발전하였습니다.
본문 5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인 블레셋도 예물을 바치니 그 수효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11-12). 국가가 튼튼하기 위하여는 경제 발전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경제가 풍족해야 국력을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후진국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도우심을 요청하니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부강한 나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으며 부지런하게 일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시127:1-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먼저 농사가 잘 되고 백성들이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에 재난이 없게 하시고 전쟁이 없게 하시면 당장에 국가 경제는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지도자와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니라"(막 9:29)하였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만들고 나라가 튼튼하게 되도록 하며 국가 경제가 풍족하도록 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부강하고 싶으면 지도자를 비롯하여 온 백성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 대하 18:1-34
제목 : 거짓 예언에 망한 아합
서론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니까 타락한 아합왕과 사돈관계를 맺고 군사동맹을 맺어 아합이 길르앗 라못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라고 하니까 아합왕이 선지자 사백 인을 불러놓고 물어 보았습니다. 묻는 내용은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둘 중에 하나를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백 선지자들은 가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싸우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말하기를 사백인의 선지자 외에 물어볼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아합왕이 말하기를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기는 있는데 그는 나에게 길한 예언은 하지 아니하고 흉한 예언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그래도 물어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미가야 선지자에게 같은 내용을 물어 보았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가서 싸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보다 기독교 점쟁이들의 거짓 예언을 믿고 가정이 파탄되는 일들이 종종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1. 거짓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본문 5-10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400) 인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10-11)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 말입니까. 하고 싶은 대로 된다고 하는 예언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거짓말하는 영이 조종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였나이다"(22) 하였습니다.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물었는데 그들은 거짓 영을 받아 거짓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짓 예언을 진짜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망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를 삼가 조심하여야 합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9-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하였습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인정 받는 진정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합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지만 상관하지 아니하고 바르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르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여 인기와 물질을 취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는 것이 특징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순교를 각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3.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적하였습니다.
본문 25-34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을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라"하였습니다. 아합왕은 선지자를 무시하고 도리어 그를 옥에다 가두고 고생을 시킵니다. 이는 악인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동서고금 역사이래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고 잘 된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거역한 고라당은 망하였고 엘리사를 대적한 아이들은 숲속의 곰이 찢어 죽였습니다.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은 문둥병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른 말을 해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체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죄를 지으면서 자신은 죽지 않겠다는 수단으로 변장을 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혀서 싸움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겨 여호사밧을 도와 주셔서 여호사밧은 살고 아합은 죽고 말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 때문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거짓 선지자를 따르면 비참하게 망하고 만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거짓 선지자들은 위장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종인 것처럼 행세하고 천사와 같이 가장하며 의의 일군으로 가장합니다(고후 11:13-15). 그리고 큰 이적을 행하고(마 24:24, 계 13:13-15) 믿음을 내세웁니다(약 2:19).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들도 성경을 들고 나옵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거짓 예언자들에게 미혹을'당하고 있습니다.
본문 : 대하 19:1-7
제목 : 여호사밧의 장점
서론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 단점이 다 있습니다.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나쁜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만 보고는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악인 아합과 연합하여 그를 도와주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쟁터에서 살려서 무사히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견자 예후는 그외 잘못을 지적하고 잘한 점도 칭찬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의 단점은 생각하지 않고 그의 장점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 만을 찾은 것입니다.
본문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이하고 마음을 오로지(오직 한 곳으로)하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악인을 도와 준 것은 잘못이지만 하나님 한 분만 찾은 것은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에 너무나도 잘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하였습니다.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끝까지 우상을 섬기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여호사밧은 약간의 실수는 있었으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심은 그의 장점입니다. 이는 자기를 구원하여 주시며 복을 주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행 4:12).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히 11:6) 믿음으로 행치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롬 14:23).그러므로 하나님 한분만 믿기로 작정하고 흑시 죄를 범하였을 때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2. 백성들을 회개케 한 것입니다.
본문 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로 돌아오게 하고"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사밧 자신만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고 백성들까지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말하기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하였습니다. 전도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바을 사도는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회개케 하는 작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 5:32). 예수를 믿지 아니하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은 근본적인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은 그들을 회개시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이 그의 장점입니다.
3. 공정한 재판을 하게 한 것입니다.
본문 5-7 "또 유다 온 나라 견고한 성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마다 있게 하고 재판관에게 이르되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하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에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공정한 재판을 하라고 재판장들에게 당부를 하였습니다. 법의 권위는 공정성을 기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법은 당연히 보호를 받을 자들이 받게해야 하며 벌을 받을 자를 벌해야 합니다. 상 받을 자가 벌을 받고 벌 받을 자가 상을 받는다면 이는 법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은 잘못된 것입니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지 아니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법을 잘못 집행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아예 악의 소지를 잘라 버리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점이 장점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여호수아의 경우를 통해서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하나님만 찾았고 자신뿐만 아니고 백성들까지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바라며 공정한 재판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이 그의 장점임을 배웠습니다.
본문 : 대하 20:1-13
제목 :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서론
여호사밧이 나라를 개혁하고 종교를 개혁하며 사법기구를 개혁하여 나라의 평화와 번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다름 아닌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 및 연합군들이 힘을 모아 여호사밧의 나라를 침공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백성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시 50:5).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의지하며 주께만 간구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1.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입니다.
본문 1-4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몇 마온(암몬) 사람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혹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고하여 가로되 큰 무리가 바다 저편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침략자와 싸울 준비를 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고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삼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이겨보겠다는 신앙심 자체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니면 이 나라는 죄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입니다.
본문 5-6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적의 힘이 약하다고 판단되었다면 그렇게 두려워 하지도 아니하고 떨지도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고 떤 것을 보면 적의 힘이 강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막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막을 수 있음을 믿고 적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나님만은 이길 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만 바라보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신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이 약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이용하여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3. 자신이 약하다고 믿을 때입니다.
본문 11-13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하였습니다. 적은 강하고 자신은 약하여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고 그분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더불어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결론
여호사밧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받아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승리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경우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좋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음을 깨닫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대하 21:1-30
제목 : 세력을 얻은 후에
서론
여호사밧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는데 그는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아합의 집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다윗의 혈통인데도 불구하고 죄악과 짝을 지어 하나님을 버리고 형제까지 살해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방국 에돔이 배반을 하고 립나도 배반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아 결국에는 창자에 병이 들어 고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열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이 세력을 얻으면 그래도 합당하게 살아서 세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며 타인의 억울함이나 고통을 덜어주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람은 정반대로 살았습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1. 형제를 살해하였습니다.
본문 4 "여호람이 그 부친의 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에 그 모든 아우와 이스라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하였습니다. 세력을 얻은 후에 피로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데는 뚜렷한 이유가 없고 시기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람도 뚜렷한 이유 없이 형제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합 2:12)하였습니다. 칼로 치는 자는 칼로 망하는 것입니다. 세력을 사람이나 죽이고 그 자리나 지키는 수단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람은 세력을 얻자 곧 바로 살인을 행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에게도 국가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 형편은 어떠한지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2. 우상을 섬겼습니다.
본문 10-15 "저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거민으로 음란하듯 우상을·섬기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케 하였으므로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가로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치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으로 음란하듯 우상을 섬기게 하기를 아합의 집과 같이 하며 또 너의 아비 집에서 너보다 선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와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fl고 자기보다 선한 형제들을 살해하고 우상을 섬겼으니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세력을 얻은 후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매우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3.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본문 16-20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음으로 그 무리가 올라와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그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말째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 창자가 그 병으로 인하여 빠져나오매 저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 열조에게 분향하던 것같이 저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람이 삼십 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저를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조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였습니까. 아끼는 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시니 이웃 나라가 침략하여 재물을 약탈해 가고 자식을 죽이며 아내들을 빼앗기는 비참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치지 못할 병예 걸려서 치료가 소용 없이 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여호람의 행적을 돌아보고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력이나 직분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아니하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세력은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신의 명예를 얻을 수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도 큰 유익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못 사용하면 이에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2:1-12
제목 : 사악한 여인
서론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제일로 아름답게 지어졌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때문에 인류가 타락을 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여자에 따라서 지아비의 면류관도 될 수 있고 욕도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잠 12:4). 그리고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다고 하였습니다(잠 31:10). 아담의 부인도 문제고 욥의 부인도 문제며 아합왕의 부인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은 매우 좋지만 사악한 여인은 가정과 교회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여자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사악한 여인에게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이세벨의 피를 받았습니다.
본문 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 이 세라(왕하 8:26에는 22세로 되어 있음)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오므리의 손녀더라"하였습니다. 오므리는 아합왕의 부친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성경에는 악한 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왕상 16:22-25). 오므리가 죽고 아들인 아합이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16: 26-29). 그리하여 그는 사악한 이세벨로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악한 여인의 피를 받아 태어난 여자가 바로 사악한 아달랴라는 여인입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볼 때는 혈통을 따지는 것도 있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것과 불상을 섬기면서 사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과정에서 가정 환경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자란 이삭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그러므로 불신 결혼을 삼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아들에게 악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3-4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그 부친이 죽은 후에 저가 패망케 하는 아합의 집 교도를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더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들을 꾀어서 악을 행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뱀의 꾐에 빠진 아내 때문라는 것입니다. 꾀어 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악으로 몰아 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혹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는 유혹을 받을만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타의에 의하여 유혹을 받으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악한 여인은 자기 아들을 꾀어서 우상을 숭배하게 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엄청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공인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책임성 있는 공인을 꾀어 그것도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아합의 집의 악을 행하게 하였으니 그 어찌 잘 했다고 할 수 있으며 복 받을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사악한 여인의 말로는 비참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아들도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사악한 자의 행동은 자신과 자기 주변에 있는 자들을 망치게 할 뿐입니다.
3. 왕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
본문 10-12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한 고로 아달랴가 저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더라 요아스가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하였습니다. 사악한 여인은 다윗의 집을 멸하고 그 위에 자신의 보좌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이는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자기가 왕노릇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달랴는 죽이는 사악한 여인이지만 여호사브앗은 사람을 살리는 여인으로 너무나도 대조적인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론
아달랴는 그 어머니의 잔인한 피를 받아서 아들을 꾀어서 악을 행하게 하고 왕의 씨를 진멸하는 잔인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인들이 많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11:13-16). 악을 심으면 언제나 악을 거두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3:1-15
제목 :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지 못한다
서론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무척이나 애쓰지만 그러나 아무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달랴는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하여 왕의 씨를 모조리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브앗을 통하여 요아스를 성전에 육 년 간이나 숨겼습니다(대하 22:11-12). 그리하여 제 칠 년에 세력을 내어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여호야다가 힘을 모았습니다.
본문 1-2 "제 칠 년에 여호야다가 세력을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유다로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로서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오니 용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지를 규합하였습니다. 이는 어린 요아스 혼자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시작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앞장서서 추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요아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독불 장군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뜸대로 이루어집니다.
본문 3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려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외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5)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이루어져도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훌륭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마귀는 형제들을 통하여 방해하겠다고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둘도 아닌 독생자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는데 마귀는 예수만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 그 계획이 실패할 줄 알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시사 마귀들의 계획이 실패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3.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본문 8 "레위 사람과 유다 무리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한 바를 준행하여 각기 수하의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안식일에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있으니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출번(교대하는 일직 당직)하는 자를 보내지 아니함이더라"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야다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였습니다. 다수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니 이는 어쩔 수 없이 요아스가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무 너져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잔인한 아달랴는 백성들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사람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지만 하나님은 그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그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고 맙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곁우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취소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4:15-25
제목 : 배은 망덕한 요아스 왕
서론
요아스는 왕위에 올라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권고를 듣고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즉 인생 선배의 충고를 삶의 지혜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과 의논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정을 베풀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를 권고하고 협조하던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제사장의 은혜도 잊어버리며 악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1. 방백들의 말을 듣고 타락했습니다.
본문 17-18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하였습니다. 여호야다의 말을 들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바로 살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하였는데 제사장이 죽고 나니까 방백들의 말을 듣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요아스는 아첨하는 자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들은 변하여도 너무나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숨어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이 되었는데 어찌 그렇게 쉽게 변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즉 배은망덕도 이 정도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본문 20-22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이켜 보시려고 선지자를 보냈지만 도리어 그를 죽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제사장의 은혜를 동시에 배반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충실하고 친절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했는데도 선지자를 무참하게 죽였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순교하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에게 복이 임할리 없고 저주만 임할 것입니다.
3. 배은의 대가는 죽음이었습니다.
본문 23-25 "일 주년 후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 하여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그 모든 방백을 멸절하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그와 같이 날아가 버리고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며 그의 후손도 이름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사 14:20).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은혜를 악으로 갚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일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결론
요아스는 제사장의 말을 들을 때는 성전을 수리하고 선정을 베풀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는데 여호야다가 죽은 후부터는 아첨하는 소인배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버리고 제사장의 권고를 버리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죄를 범하여 결국에는 망하고 마는 비참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어 깨닫는 바가 클 줄로 압니다.
본문 : 대하 25:14-28
제목 : 교만한 자의 말로
서론
요아스가 죽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지만 그도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하여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멸시하여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다가 그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그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만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1. 교만의 원인‥‥ ?
본문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하였습니다. 이는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과 싸워서 승리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잘 되면 자기의 이성을 잃고 안하무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하였습니다. 그의 교만의 원인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되고 교만할 바에야 못 되고 겸손한 것이 더욱 좋은 것입니다.
2. 교만의 상태는‥‥ ?
본문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성공하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 같이 되기 쉽습니다. 아마샤왕도 그렬습니다. 이와 같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충고도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저희가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음으로 그 대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더라"(30) 하였습니다. 교만한 상태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싫어 하시는 일만 골라가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죽을 일만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복을 받을 만한 일을 해야지 복 받지 못할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어떠한 짓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3. 교만의 결과는‥‥ ?
본문 27-28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 열조와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하였습니다. 교만한 결과는 결국 죽음 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신복들이 왕을 버리는 일이 없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버린 후부터는 신하들도 왕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만한 결과는 죽음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교만한 사람의 끝이 좋은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독일의 히틀러도 망했고 나폴레옹도 망하였고 일본 천황도 망했습니다. 웃시야왕도 아합도 모두 망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도 이점을 명심하여 겸손히 하나님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겸손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만 교만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모든 면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보내고 사람들에게는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존경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잘 될 때에 더욱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6:16-23
제목 : 감사해야 할 상태에서
서론
웃시야는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이 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4)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에 매우 잘 되었습니다(5-7). 그리고 타인의 도움으로 더욱 잘 되었습니다(8). 그뿐만은 아니고 그가 선지자가 사는 날에는 하나님을 구하였고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습니다(5).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처지에서 감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1. 교만하였습니다.
본문 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하였습니다. 번영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가능성이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하였습니다. 가난해서 예수 잘못 믿고, 부자라고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해도 잘 믿을 수 있고 부자라도 못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 절대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부자가 되면 타락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웃시야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면에서 잘 되었기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는 감사하지 못하는 교만에 사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2.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본문 16-18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 감사를 해도 많이 해야 할 웃시야왕이 감사는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괘씸한 일입니다. 위치 탈선은 죽음의 길입니다. 왕이 제사장노릇을 한 것은 왕의 위치를 완전히 벗어나 제사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매를 맞을 일입니다. 그 이유는 제사장 아닌 다른 사람이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민 3:10, 18:7).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화를 내다 병들었습니다.
본문 19-23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 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모르고 분수에 넘도록 살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결과가 좋지 아니합니다. 결국에는 병들어 죽는 일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시야왕은 감사하지 않고 제사장 노릇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사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결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면서 살아야지 반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하나님 노여워하시는 일만 해서 벌을 받는 일들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7:1-9
제목 : 행함에 따라서
서론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나이 이십 오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륙 년을 치리하는 동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큰 잘못이 없이 평안하개 정치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행위에 따라 그에게 복을 주어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은 즐거워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행하였는지 알아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본문 2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하였습니다. 요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백성들에게는 그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백성들은 오히려 사악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야 어떻게 하였든지 요담왕은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신앙생활 하였으니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생활인 것입니다. 다소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 잡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사악한 환경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히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노아도 당대에서는 의롭다고 인정 받았고 롯도 소돔성이 망할 때에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으로 구원은 개인 단위이지 교파 단위나 가족단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 성전을 돌아 보았습니다.
본문 3-4 "저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고 또 오벨(Ophel)성을 많이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하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의 윗문부터 수리하고 오벨의 성읍을 많이 건축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증거로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고 손을 보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봅니다. 자신이 은혜가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성전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애를 썼고 성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돌아보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 바른 길로 행하였습니다.
본문 6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화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성하여졌더라"하였습니다.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의 성전 돌아보는 생활을 계속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도 즉 바른 길을 가니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보시고 경제적으로 부요하게 하시고 세력도 튼튼하게 하시니 이웃 나라 사람들도 요담왕과 화친을 청해오고 또 요담왕을 화내게 하지 아니하려고 무척 노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사람에게는 이와 같이 번영을 주시고 나라가 더욱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요담왕은 평생토록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행위를 보시고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인이 잘 된다고 하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전을 돌아보면 바른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악인들이 받지 못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의 구원은 행위로서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며 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로서만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급은 오직 헌신과 봉사하는 것 뿐입니다. 요담왕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를 따라 살아서 형통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8:16-27
제목 : 아하스왕의 범죄
서론
요담왕의 아들 아하스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지도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으며 많은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깨닫지를 못하고 최후의 발악으로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을 파괴하고 다른신을 섬기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1.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본문 22-25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로 싫어하시는 것이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천하에 구원 받을 만한 이름은 예수 이름 외에는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행 4:12). 그래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히 11:6, 롬 14:23). 아하스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으니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겠습니까.
2. 사람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본문 10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하였습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하였더라"(20) 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욱 괘씸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앗수르왕에게 거절을 당하고 도리어 군박(군색하게 막혀 일의 형세가 절박하게 됨, 공격을 당하여 괴롭고 급하게 됨)하였더라"(20). 생각과는 달리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욱 다급하게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는 것은 잘못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한 불신앙적인 태도 때문에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신접한 자에게 자문을 구하다가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즉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매를 맞았습니다.
본문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하였습니다. 이는 불신앙적인 결과가 결국에는 매맞는 일 외에는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다른 신을 섬기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하나님을 섭섭하게 만들어 그의 진노를 초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매를 맞은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잘 된 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났고 죽음을 초래했으며 질병과 고통만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벌을 받은 것입니다(롬 6:23).
결론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도움을 구하다가 하나님의 매를 맞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아하스 왕을 거울 삼아 그와 같이 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29:1-24
제목 :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서론
하나님께 죄를 지은 아하스 왕은 죽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나이 이십 오 세 때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 년을 치리하였습니다. 그는 치리하는 동안에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성전문을 열고 레위인들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며 열조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성전 문을 열었습니다.
본문 2-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대문 양쪽에 있는 방)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6-9)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대에서 성전 문을 닫아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중단한 것을 자신이 다시 하나님의 전의 문을 열고 다시 종교적인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종교활동에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종교개혁인 것입니다.
2. 레위 인으로 전을 깨끗케 하였습니다.
본문 4-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 하라" "저희가 그 형제를 모아 성결케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한 것을 좇아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할새 제사장들도 여호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케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히스기야 왕을 보고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기구를 깨끗게 하였고 또 아하스 왕이 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기구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케 하여 여호와의 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15-19)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 문을 열고 그리고 그 동안에 더렵혀진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였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도 종교개혁의 일환입니다.
3.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본문 20-24 "히스기야 왕이 일찌기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과 어린 양 일곱과 수염소 일곱을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 제물을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하여 여호와의 단에 드리게 하니‥‥ 제사장이 잡아 그 피로 속죄제를 삼아 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동안에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고치는 것이 개혁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개혁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자체가 개혁인 것입니다.
결론
히스기야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종교를 탄압하였지만 아들은 종교를 개방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레위인으로 하나님의 전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에·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용서해 달라고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개혁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기쁘하심을 받고 백성들과 더불어 기뻐하였습니다(36).
본문 : 대하 30:23-27
제목 : 즐거운 유월절
서론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잊지 아니하기위하여 제정하신 유월절을 지키려고 많은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요구하며 예루살램으로 모여서 즐겁게 유월절 지킨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생존권을 의미하고 이스라엘의 자유를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행복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해서 절정을 이루고 모든 백성이 헌신과 제물 드리는 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이 즐겁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모두가 즐겁게 지켰습니다.
본문 23-26 "온 회가 다시 칠 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 일을 즐거이 지켰더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는지라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온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와 유다에 거한 나그네가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유월절 지키는 것을 기쁨으로 지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즐겁지 아니할 이유도 전혀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것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해방 받은 그 날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오늘의 성도들도 성찬예식에 참예할 때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예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죄에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2. 많은 제물을 드렸습니다.
본문 24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는지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무엇인들 아끼겠습니까. 늘 울어도 눈물로써 갚을 수 없어 몸을 드려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월절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물질을 드려도 자원하는 마음에서 기쁨으로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도 구속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본문 27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 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하였습니다. 유월절을 기쁨으로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진정한 마음에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유월절 행사는 보는 제사장들도 기쁨으로 축복하고 싶어서 마음껏 축복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복은 반드시 임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며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 그에게 영광과 찬양을 돌려보내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에 복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이 즐겁지 아니할 수 없는 잊지 못할 날입니다. 그 날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비참하여 자살하는 수가 늘어났을 것이며 무의미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이라는 역사적인 날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전개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되 즐거움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 대하 31:11-21
제목 : 형통한 삶
서론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왕과 백성들은 새로운 신앙적 각성이 일어나서 유다 성읍의 우상을 철거하고 우상의 단을 헐어버리며 백성들은 생업에 노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차분히 살아갑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니 백성들도 즐거움으로 드리고 헌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1. 십일조를 드릴 때입니다.
본문 11-12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 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하나님의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시고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말 3:10). 십일조는 감사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먹고 입고 쓸 것을 받았는데(고전 4:7) 그 중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형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선과 정의와 진실을 행할 때입니다.
본문 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았습니다. 사람이 정의를 행하고 선을 베풀면서 사는 것은 악한 생활과는 정 반대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뒤를 따르게 되어 있어 형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히 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욥의 친구는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5-7)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진실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잠 30:7-9).
3.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본문 21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이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계 5:8).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습니다(살전 5:17). 웃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대하 26:4-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는 생활은 형통한 삶의 비곁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형통한 생활은 누구나 바라는 바요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고 십일조 드리며 선을 행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는 삶이 형통한 삶의 비결인 것을 명심하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본문 : 대하 32:24-33
제목 : 회개만 하면
서론
히스기야는 앗수르와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숭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적 구원도 받고 육적 구원도 받았으며 국가적인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잠시나마 교만하여 그로 인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손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며 나라가 위태롭게 되는 처지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나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 교만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본문 24-25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기는커녕 도리어 교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와 국가에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들에게는 진노로써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여 덕 될 것이 없음을 깨닫고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2.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25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죄를 지었지만 뉘우치고 진심으로 회개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행 2:38) 기쁨을 주시며(행 3:19) 물질과 건강을 주십니다(욥 42:6, 10). 그 외에도 많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서 망하는 자가 없고 회개치 아니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고(롬 3:10) 만일 죄가 없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요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입니다.(요1서 1:8). 그러나 죄를 자백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요1서 1:9).
3.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본문 27-30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앙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교만할 때에 진노하셨지만 그가 뉘우치고 회개하니 좋은 것으로 아낌없이 채워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거의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회개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좋은 것으로 풍족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복 받는 비결로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죄인으로 보시고 그에게 진노하시지만 그가 회개하면 진노를 거두시고 복의 손을 펴서 풍족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33:1-3
제목 : 범죄와 회개
서론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와는 달리 세상 풍속을 따르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환난과 곤고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회개하여 우상을 파괴하고 바른 정치를 하는듯 하더니 또 범죄하여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회개하면 용서받고 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1. 므낫세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본문 2-9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 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하였습니다. 므낫세는 자신만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백성들까지도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자기만 죄를 짓는다면 문제는 간단한데 타인까지도 죄를 짓게 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본문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하였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왕의 잘못을 책하실 때에 다른 나라 사람을 들어서 몽둥이로 사용하였습니다.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사람을 통해서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도 사람을 통해서 채찍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아니하여야 사람을 만나도 유익함이 있고 하는 일마다 잘될 줄 압니다. 죄를 범하면 숨는 습관이 있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면 떳떳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잠 28:1). 죄를 범한 아담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고 가인도 불안해 하였습니다. 이것이 양심의 심판을 받아 벌을 받는 과정인 것입니다.
3. 므낫세가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12-13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을 때에 죄 값으로 징계는 하셔도 회개를 요구하시는 목적에서 하십니다(계 3:19).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난 것도 요나를 회개시키시고자 하는 수단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사 1:18, 60:21). 하나님께서는 회개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앞으로 왔을 때에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 것 만큼이나 좋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결론
지은 죄 사하시고 오는 죄 막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만 하면 이전의 죄는 사하시고 기억도 하시지 아니하시며(히 10:17-18, 8:12, 시 85:2, 요 8:11) 유쾌하게 하시고(행 3:19)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행 2:38) 물질과 건강의 복을 받고(욥 42:6, 10) 자신과 많은 사람이 살고(욘 1:12) 마지막은 영생을 상속하게 되는 것입니다(계 7: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도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 5:32). 그리하여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4:17).
본문 : 대하 34:1-21
제목 : 요시야왕의 행위
서론
아몬왕의 아들 요시야는 아버지 위를 물려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을 구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요시야가 사는 날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였습니다.
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본문 1-7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파괴하였습니다.
2.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본문 8-11 "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 팔 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넷세와 에브라임과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 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전을 수리하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본문 14-21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세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하였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감동이 되어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31).
결론
요시야 왕의 행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율법의 교훈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잘못을 회개하고 선지자의 지시를 따라서 살려고 애쓰는 행위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대하 35:1-19
제목 : 성경을 읽고
서론
요시야 왕은 하나님을 구하고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율법에 기록된 대로 종교적인 행사인 유월절 행사를 다시 행하고 레위인들에게 일을 맡기고 성경대로 살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만 다닐 것이 아니요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 지키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계 1:3).
1.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본문 1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으니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도 유월절 지킬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 너희 족속대로 반열을 따라 스스로 예비하고 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지니라"(4-6)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큰 복을 받는 비결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본문 12 "그 번제물을 옮겨 족속의 차서대로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소도 그와 같이"하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고전 4:6)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내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를 알아서 순종해야 합니다. 즉 말씀이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하는 것이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3. 준비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본문 16-19 "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단에 드렸으며 그 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요시야의 위에 있은 지 십 팔 년에 이 유월절을을 지켰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의 지시대로 그리고 미리 미리 준비하여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게하여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하고(요 4:23-24) 안식일을 기억하고 엿새동안 힘써 일하고 이레되는 날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출 20:8~11).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미리 준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의 뜻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롬 12:2).
결론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한 후부터 하나님의 말씀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성경에서 요구하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 대하 36:9-23
제목 : 절망에서 소망이
서론
요시아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는데 백성들의 죄는 계속되어 바벨론 침공으로 인하여 왕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왕국은 망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저자는 말하기를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잠 14:34). 그래서 죄를 지으면 절망이 있고 회개하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1. 절망의 원인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9-14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홀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세초에 느브갓네살이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기구도 함께 가져 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았더라‥‥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느브갓네살 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팍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난 후에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석달간 치리하고(1-4) 여호야긴은 11년간을 다스렸습니다(11). 그래도 백성들은 계속하여 죄를 지음으로 외침을 받아 살해되고 포로로 잡혀가서 백성들은 절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 더욱 절망은 말씀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본문 15-20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을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그들은 망하여 정말 소망이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예언이 성취되는데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21-23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 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포로생활이 끝나는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소망이 있기에 오늘의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죄악으로 인하여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희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