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와 열매 오디 (4월에 눈을 틔운 뽕나무는 5월에 성장을 하고 6월초에 잎이 무성해지면서 열매도 익는 다. 지금시기에)
오디가 익어가는 과정(처음엔 파란색열매가 커가면서 붉어졌다가 검은색으로 익는 다.)
다자란 누에 (좀 징그러운가요 ?)
누에고치(누에가 뱃속에서 실을뽑아 만든 집. 고치속엔 번데기가 들어있다.
색깔이 하얗고 단단할 수록 상품인것이다. 잡색이 없어야 하며 누에가 병들면 고치색깔도 누렇게 변한다.
새로 개발한 칼라누에고치( 누에성장기에 누에 몸속에 색소를 넣어주면 칼라누에 고치가 된다. 좀 잔인한짓아닌지 ~)
누에가 변한 번데기(번데기는 일정기간을 지나면 나비처럼 나방이 나온다.)
전에는 도시의 공원이나 놀이터 유원지에서 사먹을 수있었다. 비위생적이라 해서 단속도 했지만 많이들
사먹었던 거 갔다. 고단백영양이 풍푸하여 배고픈시절 우리 서민들 건강을 지켜주지 않았을까?
지금도 다큐멘터리르 보면 아프리카나 아마존 정글에 사는 민족들이 번데기나 유충을 통째로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부지방에선 한창 모내기 할 지금
연두색 산처럼 밭가득 차오른 뽕나무 밭에선
오디가 맛있게 익어가는 시기이다.
어제는 남산길 산책을 하다가
산책로 길가 바닥에 시커멓게 떨어진 산뽕나무 오디를 보았다.
몇개 따먹고 싶었으나 언덕위에 있어서 그러지를 못했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엔 누에를 치는 집들이 많아서 뽕밭이 많았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 뽕밭이 있어서
이맘 때쯤 우리는 뽕밭에 들어가 검게 익은 달콤한 오디를
따먹었던 추억이 새롭다.
그 때 살금살금 들어가 조용히 따먹어야지
주인에게 들키는 날이면 된통 야단을 맞곤했다.
사실 뽕밭주인이야 뽕잎이 필요한것이고
우리는 오디가 필요한 것이라 서로 추구하는 욕구가 다른 데도
밭주인들은 뽕잎을 망친다는 핑게로
아이들이 뽕밭에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해 했었다.
우리 어린시절 돈안드는 추억의 간식거리는
그렇게 초여름의 향기와
익어가고 우리를 즐겁게 했었다.
오디를 이야기 하려면 누에를 알아야 한다.
원래 누에는 산에서 자라던 곤충을 우리가 잡아다
키우면서 집에서 기르면서 사육되었던 것이다.
산누에집 색이 아주 예쁘죠. 산누에는 이 파란색 집에서 겨울을 난다내요.
누에를 아시는 분들보다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누에는 생김새도 징그럽고(남자인나도 징그럽고 무서워서 만지지를 못했다)
누에의 알은 좁쌀보다 더 작고
깜해서 우리 시골에서는 누에 알을 누에 씨라 불렀다.
알에서 부화한 작은 애벌레는 너무나 작아서
처음에 뽕잎도 연한 것을 따다가 썰어서 먹여야 한다.
누에는 며칠을 밤낮으로 먹기만 하다가
일정기간동안 잠을 또 먹지도 않고 잠을 잔다.
이과정을 반복하면서 5잠(5령)이(약21일)
지나야 완전 성장을 한다.
완전 성장을 하면 섶에(그땐 밀대를 잘게 썰어서 엮어 만든 것)
누에를 올려주고
그러면 누에는 섶에 자리를 잡고서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
집(고치)를 만들고 변태기(번데기)를 거친다.
또 일정기간 번데기로 있다가 나방으로 변태하면 고치를 뚫고 나와
알을 낳고 죽는 다.
고치에서 번데기가 나방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고치를 채취하여 공판(농협에서 수매)을 한다.
농촌에서는 별다른 돈벌이가 없던 시절 누에를 치는 집에선
고치를 팔아서 몫돈을 받아
등록금등 요긴한 곳에 썼다.
누에는 버릴 것이 없는 곤충이다.
고치는 실을 뽑아서 옷감을 만들고 번데기는 우리가 영양간식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화학(석유)적 섬유가 나오기 전
우리는 실크(우리말로 명주실)를 최고의
옷감으로 비단이라 했다.
중국에서도 최고의 옷감으로 부자들이 비단옷을 입었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이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실크의 부드러움과 우아함, 그리고 하늘거리는 촉감의 우수성은
우리가 다 아는 바 아닌가~
방직기술이 발전하기전에는 비단을 짜기위하여
우리 어머니들은 모시 삼베를 짜듯
고치에서 물레로 실을 뽑아 베틀에 걸고 한올한올 정성들여
비단을 짰던 것이다.
머리카락보다도 5배는 가는 실로 비단 한필을 짜려면 밤새워서
수십일을 짜야만 한다.
참으로 옷감이 귀하고 어려웠던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 수고로움을 다 겪으며 사셨다.
불쌍하신 어머니들 ~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효자상품으로 많이
재배하던 특수작물이였던 것이다.
정부에서도 양잠산업을 적극장려하고 지원하였던 것이다.
6~70년대 지금쯤이면
시골 어디를 가든 뽕밭이 새파랗게 산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울의 잠실동도 예전에 6~70년대 대단위 뽕밭이였고
누에를 키우는 지역이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화학섬유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뽕밭이 다른 작물로 바뀌고
시골 고향이나 타향 어디를 가도 뽕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것이 다시 누에의 효용가치를 재발견하고
일부지방에서 다시 누에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여 칼라누에도 나오고 햐여
실크에 따로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될 수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또 누에를 약용으로 개발하여 이용하기도 하고
누에그라라하여 일부남성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ㅎ 힘없으면 그만들 두시지 ~ ㅋㅋ
누에는 봄누에 가을 누에라하여 일년에 두번 기를 수가 있다.
봄누에를 기르고 나면 뽕나무를 잘라내면 새순이 나와서
늦은 여름에 뽕을 채취하여 한번더 누에를 기를 수가 있다.
뽕잎을 따고 나무는 그대로 두면 이듬해 봄에
뽕잎을 채취하고 또 잘라내고 이과정을 반복하다가
몇년이 지나면 뽕나무를 캐내고
뽕나무 뿌리는 또 껍질을 벗겨 껍질은 한약재로 쓰인다.
뽕잎은 연한 부분을 채취하여 물에 데쳐서 나물로 해먹으면
아주 고소한 맛이 참좋다.
얼마전 성인영화 "뽕" 이라는 영화로 애로스타 이대근 원미경. 이미숙. 마형식.
등을 배출했다.
지금은 또 오디주라하여 오디로 술을 제조하여 약주로 많이 팔리고 있다.
"어느 주류광고 카피엔
"미안하다 누나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 가 생각나네~
특히 오디나 뽕잎은 여성들에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분들 중요한 가슴부분을 오디 같다고 하나 ~ ??? ㅋㅋ
여러분들도 시장에가면 오디가 나오고 있고,
뽕나무 나물도 나오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오늘한번 오디 맛보면 어떨까?
오디가 익어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 시인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