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신문에, 한국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계층이 '20대여자공무원'이고,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계층이 '50대남자자영업자'라는 조사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굳이 그 데이터에 빗대지 않더라도,
50대남자자영업자인 나는 20대여자가 너무 낯설다.
20대여자손님에게 굉장히 이질감을 느낀다.
왜 그토록 거리감이 느껴지나 이유를 생각해보면, 공유되는 것이 눈곱만큼도 찾기가 힘들어서가 아닐까.
코로나로 손님이 뜸한 오후에 20대 여자 손님이 왔다.
간헐적으로 찾아와서 커트나, 파마나, 염색을 하고 가는 손님이다.
20대냐고 물어본적은 없었다.
그래도 20대인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그녀에게 딱히 할 말이 없고,
그녀도 내게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런 짐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공무원은 아닐것이다.
귀딱지에 굵은 피어싱을 주렁주렁 매달고, 옷으로 가려지지 않을정도로 티나는 선명한 문신을 뒷목아지에다가
떡하니 노골적으로 새겼는데도 면접시험을 통과시켜 줬을 관청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을것이기때문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50대인 나는, 내가 10대 20대였을 당시에 문신한 사람의 이미지가 건달양아치나 조폭의
상징같은 것이라서 아주 혐오스런 감정을 품고 있어서 20대, 그것도 여자가, 그것도 목아지에다 문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긍정적으로 봐줄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는 늘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닌다.
pc(정치적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 때문에 좀 조심스러운데,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자들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런 짧은머리스타일 말이다.
내가 청년이었을 당시에도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는 여자아이들이 물론 있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짧은 머리와는 의미가 약간 달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예전의 짧은 머리는 여성성을 고수하면서 했던 패션으로서의 짧은스타일라면,
오늘날의 짧은 머리는 뭔가 기존의 도덕이나 규범에 저항하는 상징으로서의 짧은스타일이라고나 해야할까.
내 생각이 맞는것인지 자의적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머리는 평소처럼 짧게 자르고 자연스런 파마를 해달라는 20대 그녀에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이건 말을 꺼내야, 공유되는 것을 찾게 되고, 공유되는 것이 찾아져야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 공감을 하게 될 것이고, 공감되는게 있어야 주인과 손님으로서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이를 물어볼까?
그런데 이건 숙녀에게 너무나 큰 실례가 아닌가?
사는 곳을 물어볼까?
남자친구가 있나 물어볼까?
혼자 사는지, 부모랑 사는지 물어볼까?
이런걸 꼬치꼬치 물어보면, 중년아저씨가 주제파악도 못하고 츠근댄다고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직업을 물어보기도 그렇다.
물어봤는데 아직 백수라면 아픈곳을 건드리는 것이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관심가지는 피어싱이나 문신얘기를 하면 대화의 물고가 트일것 같은데,
내나이가 적어도 30대나 많아도 40대초반정도만 되었더라도 괜찮겠지만,
50대에 피어싱이나 문신을 소재로 대화를 길게 이어갈 자신이 없다.
"파마 어떻게 해드릴까요"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무적인 말만한다.
"짧게 잘라서 가르마펌 해주세요"
그녀도 시술에 관한 주문만 하고 핸드폰화면으로 빠져든다.
공감가는 것은 없어도 나는 그녀가 어떤 헤어스타일을 원할것인지는 자세하게 따져물어보지 않아도 잘 안다.
그녀는 남자아이돌같은 스타일이면 만사오케이일것이다.
혹여 커트가 너무 짧게 되어도, 파마가 풀어진 듯 약하게 나와도
대수롭지 않아 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50대 남자인 내가 그나마 머리기술이라도 있으니까
저 안드로메다보다 더 거리감있는 20대 여자를 가까이에서 상대라도 하는 것이지,
다른상황이었다면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고보면 남자가 50대가 넘어가면 20대 여자뿐만이 아니라 아무도 곁에 오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일단 가족인 마누라부터 내 옆으로 오려하지 않고, 20대딸뿐 아니라 아들도 오려하지 않고,
늦둥이 어린 딸마저도 50대 아빠한테는 달콤한 미끼가 있지 않는한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오려하지 않으니 그 누가 50대 남자곁으로 오겠는가!
그래서 남자들이 늙을수록 돈에 집착하는것같은데 나는 돈도 없고, 돈에 대한 집착도 없으니
내 곁에는 영영 누구하나 다가올 일은 없겠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하겠구나.
아! 서럽다.
그나마 미용기술을 연결고리 삼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