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배우는 우주변화원리, 오늘은 그 열 여덟 번째 시간으로 교재 122~125쪽의 오운(五運)과 물(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신기지물과 기립지물의 개념에 대해 나와 있는데, 이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중요한 개념입니다.
1. 주체와 객체
運을 자율적인 변화현상과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運은 변화하는 환상이므로 오행은 주체이고 運은 객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행의 법칙이 지구에서 행해질 때에는 오행은 반드시 육기(六氣)로 변화하여 주체의 역할을 행하게 됩니다. 때문에 결국 우주의 운동은 자율적 변화를 일으키는 運은 객체가 되고 六氣는 주체가 된다는 결론이 됩니다.(참고, 五運이 하늘변화의 System이라면, 六氣는 땅변화의 System을 다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物은 六氣의 영향하에서 생성되는 것인데 때로는 만물생성에 좋은 영향도 주고 때로는 악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2. 신기지물(神機之物)과 기립지물(氣立之物)
運이란 것은 자율적으로 동하는(土가 주체) 형신지물(形神之物)의 운동법칙을 말하는 것인즉 그 운이 강하다는 말은 형체의 내부에 陽을 많이 함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기지물(神氣之物)이란 土를 주체로 하여 형제의 내부에 많은 생명력(運)을 함축하고 있는 것을 말하며 우주, 인간, 동물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반면 초목(草木)은 본래 기립지물(氣立之物)입니다. 기립이란 말은 형체의 내부에 陽을 축적하여서 그것으로서 생명력을 삼는 것이 아니고 다만 외부에서 주는 육기의 영향에 의해서 생존하는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태양광선이나 수분의 공급에 의해서만 生을 의존하는 것이므로 초목과 같은 물질에는 소위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바와 같은 자체의 율동력, 즉 자기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운(自己運)이 없는 초목같은 것은 六氣가 자유로이 순식간에 生死를 좌우할 수 있지만, 인간과 같이 강한 自氣運을 가진 것은 六氣가 임의로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개벽에 대한 암시
'그러나 인신(人身)이나 동물 등도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에서만이 자기호위(自己護衛)나 독존이 가능한 것뿐이고, 만일 우주조건이 달라지면 인간에 대한 보증도 달라질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외다. 다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비록 소우주라 할지라도 六氣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여하에 따라서 안부(安否)와 生死가 결정되는 것이다.' 한동석 선생의 이 말씀은 개벽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개벽할 때 육기의 틀이 뒤집어지는 사건, 즉 지축이 선다든지 하면 아무리 생명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살 수 있다는 보증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개벽에 대한 내용이 이렇게 복선으로 깔려 있으며, 또한 사실이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원리는 지축의 경사를 대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4. 土, 정신을 만드는 중매자
우주간에 있는 모든 物은 五行氣중에서 어느 한 개의 기운을 대표적으로 타고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중에서도 土氣를 주체로써 태어났습니다. 土라는 것은 분산된 陽을 통일하여서 정신을 만드는 중매자입니다. 그러므로 土를 주체로 하지 못한 物은 자기의 정신을 만들 수가 없으므로, 다만 외기(外氣)에 생명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신기지물은 土를 주체로 하고 탄생하였기 때문에 오행운동이 독립적으로 행할 수 있는 요건이 구비되었으며, 이것은 바로 대우주의 요건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또한 강한 생명력도 생기는 것입니다.
글쓴이 : 생명의빛(안영만) 메신저 : icarus0129@msn.com |
첫댓글 인간이나 동물은 土를 주체로 하는 자율적인 소우주로 태어났습니다. 이에따른 변화는 무엇일까요? 土를 주체로 하는 신기지물은 우주의 본성에서 독립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의지가 주어졌고 선악을 행할수 있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에 따른 인과응보는 심판의 계절, 가을을 맞아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겠지요.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60억 인류의 가장 큰 죄악은 바로 우주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만물을 비롯한 생명세계를 주재하시는 상제(上帝)님을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진정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참하느님을 잃어버린 것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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