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일기 46 – 동시 제목으로 시 써보기 / 킹콩
화요일에 동시로 시 공부를 재미나게 했어요. 줌(구름방)으로 태석이와 경륜이가 참여하고 교실 아이들은 TV로 보며 공부하였지요.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한 단계 높여서 동시 제목만으로 시 써보는 공부를 해보았어요.
“오늘은 제목으로 시를 써 볼 거야.”
“시 또 해요?”
“많이 안 했잖아. 오늘은 길게 안 써. 일본에 하이쿠라는 시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세 줄만 쓰는 시야.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짧은 시가 있기는 했어. 그런데 최근에 유강희라는 시인이 짧은 손바닥 동시를 발표했어.”
일본에 하이쿠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손바닥 동시가 있어요. 시가 무조건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순간을 잘 잡아야 느낌이 오거든요.
“유강희 시인의 ‘차가 지나갔다’라는 제목으로 써볼까?”
‘물웅덩이가 / 날개를 / 편다’
짧은 세 줄 동시입니다.
“에이 가짜시네.”
아이들은 진실성이 없는 거 같다고 가짜시라고 합니다.
“물웅덩이가 있는데 웅덩이 가운데로 차가 지나가면 물이 튀기면서 날개처럼 보인다는 거지.”
“에이, 그래도 가짜시예요.”합니다.
“그럼 니들이 써봐.”
아이들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종이에 씁니다. 그런데 차가 지나갔다는 표현 뒤에 왠지 부정의 내용이 많네요.
‘차가 지나간다. / 경찰이 있다. / 음주운전’
‘차가 지나갔다. / 방귀를 잔뜩 뀌며 달려간다. / 사람들이 눈살을 찌뿌린다.’
‘차가 달려간다. / 과속 / 그 사람 통장이 불쌍하다.’
‘연예인 차였다. / 사람들이 차를 타고 / 차를 따라간다.’
‘차가 지나간다. / 쌩~ 하고 지나간다 / 바람 참 좋다.’
‘차가 지나갔다. / 앞에 사람이 / 있는데’
‘물웅덩이를 차가 밟았다. / 아이가 물을 맞았다. / 야, 127사 4852야’
툭툭 던지는 말들이 음주운전, 사고, 죽음 이야기가 있네요. 제가 제목을 잘 못 줬나 봐요.
“이번에는 ‘비 온 뒤’라는 제목이야.”
한 번 해봤으니 이번에는 좀 더 낫겠지요.
‘옆집 강아지가 / 물에 휩쓸려 / 떠내려갔다.’
‘오늘 놀이공원에 간다 예~~ / 긴급속보입니다. / 오늘 소나기가 퍼부을 예정으로.. 아이 씨~~’
‘사람이 / 물에 빠져 죽었다는 / 뉴스를 봤다.’
‘강이 불어나고 / 산사태도 나고 / 사람이 다치면 안 되는데’
‘농부가 있다 / 좋아한다 / 어? 생각보다 많이 오네?’
‘강에는 물이 넘치는데 / 하늘에 있는 무지개는 / 아무 것도 모른 체 맑게 떠 있다.’
몸풀기를 조금 더 해야겠네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이번에는 먹을거리로 해보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짜장면이야. 짜장면 좋아하잖아. 제목은 ‘짜장면이 오면’이야.”
‘짜장면이 오면 / 짬뽕도 오고 / 탕수육도 오네.’
‘와, 짜장면 / 맛있겠다. / 근데 난 짬뽕이 더 좋아.’
‘엄마 아빠가 먹으라고 덜어준다. / 나는 거절하고 / 볶음밥을 먹는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 왜냐하면 / 우리 집은 산골짜기다.’
‘짜장면이다. / 어? 근데 왜 군만두가 없지? / 화가 난다.’
‘엄마가 짜장면을 사 왔다. / 나는 좋았지만 / 형들은 면이 불었다며 성질을 냈다.’
‘빨리 먹고 싶다. / 허둥지둥... 망했다. / 짜장면이 엎질러졌다.’
‘와아~ 짜장면! / 맛있겠다. / 근데 난 짬뽕이 더 좋아.’
‘한 달 만에 짜장면 집에 전화를 걸었다. / 두근두근 / 영업을 안 한다고 했다.’
아이들마다 짜장면으로 겪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재미난 건 태석이가 쓴 시에요. 산골짜기에 살아서 절대 배달이 올 리가 없지요.
“이번에는 먹는 거 말고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
“오! 스마트폰.”
“그래, 스마트폰으로 짧은 시를 써볼까?”
스마트폰에 관해서는 얼마나 쓸 거리가 많겠어요. 이제 몸이 풀렸는지 술술 씁니다.
‘핸드폰만 하다가는 / 폐인이 된다.’
‘네모난 기계가 내뿜는 / 강력한 / 유혹’
‘나만 / 공기계’
‘스마트폰으로 공부를 하려고 잡으면 / 옆에 있는 게임이 보인다. / 나는 그걸 보고 / 손이 먼저 간다.’
‘엄마가 3분만 하라 했다 / 3분을 넘겼다 / 내 입은 자꾸 1분만 1분만 한다. / 그러면서 십 분을 더 한다.’
‘책 보는 시간은 느린데 / 게임 시간은 어떤 것보다 빠르다.’
‘누나가 갖고 있다 / 내놔라 / 누난 “이거 끝나고.”라고 한다 / 나는 바보같이 알겠다고 한다 / 한 시간 남았다’
‘내 폰은 똥폰이다. / 게임을 하다가 / 렉이 심해서 / 한 대 치면 / 전원이 꺼지면서 / 30% 깎인다.’
‘엄마한테 핸드폰을 사달라고 하면 / 사주는 엄마 집으로 가라고 한다. / 나는 엄마가 한 명뿐인데.’
‘핸드폰을 하면 / 엄마 아빠가 눈이 나빠진다지만 / 차라리 나빠지고 / 더 하고 싶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 네모난 작은 기계.’
스마트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니 이제 몸이 풀렸는지 순간을 잘 잡은 시가 제법 눈에 들어옵니다. 눈이 나빠져도 차라리 더 하고 싶은 게 핸드폰입니다. 핸드폰을 유난히 안 사주는 장승에선 사주는 엄마 집으로 가라고도 하고요. 1분만 1분만 하다가 계속 하게 되는 게 핸드폰 게임이고요. 책보는 시간은 느리지만 게임을 하면 얼마나 빨리 갈까요.
“우와, 니네들 이제 몸이 풀렸구나. 이번에는 니네들이 제일 할 말이 많은 공부야, 공부. 김현서 시인의 ‘핑계’라는 시인데 한 번 볼까?”
시를 함께 읽었는데 역시나 아이들은 “가짜시네.”합니다. 아이들이 진짜시에 대한 기준이 아주 엄격합니다. 제가 어제 보여준 ‘참말과 거짓말’ 시도 가짜시가 되었네요.
공부 - ‘엄마 아빠는 공부가 / 중요하다고 한다. / 내가 볼 땐 / 공부가 다가 아닌 것 같다.’
공부 - ‘대학 가려고 한다. / 대학은 일하려고 한다. / 일은 돈 벌려고 한다. / 결국 돈 벌려고 산다.’
공부 - ‘우리 엄마는 공부 공부 한다. /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 엄마한테 풀라하면 / 못 푼다. / 엄마가 더 공부 열심히 하지.’
시험 - ‘과학 점수 65점 / 엄마가 내 아들 맞냐고 나무란다. / 수학은 90점 / 수학을 과학보다 잘 한 건 / 내 인생 처음이다.’
핑계 - ‘주말에 한다고 한다. / 주말엔 놀아야 한다고 안 한다. / 엄마가 이 방법을 알아버렸다.’
공부 - ‘재밌기도 하지만 / 때로는 /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공부 이야기로 시를 쓰니 정말 시가 술술 흘러나옵니다. 아이들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엄마는 못 푸는 공부, 엄마가 알아버린 핑계, 결국 돈 벌려고 하는 공부, 공부가 다가 아닌 걸 벌써 알아버렸네요.
시쓰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가볍게 툭툭 던지면서 아이들이 가진 생각들을 순간으로 바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생각이 참 대단하지요?
오늘 1묶음은 이렇게 시로 놀았답니다.(2021.5.6.)
첫댓글 ㅋㅋㅋ 잼나게 놀았네요~^^
아이들 시는 참 말랑말랑 ^^